[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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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도 페이스북에서 7월 5일 올렸다고 뛰어나오는 군요. 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544번지 원예농장에서 음력 1961년 6월 11일 태어났습니다. 사진의 모습이 농장에서 한강 쪽으로 기찻길과 한강을 배경으로 제 어머니 품에서 인형을 가지고 재롱을 떠는 제 모습입니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3번지이고 조상의 세 거지는 경기도 동탄면 석우리이고 서울서 여러 대가 살았으니 서울 토박이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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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족보와 조상님들 공부를 하다 보니 구한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가며 일본에 저항했던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농업을 천시하듯 저 역시 농업을 천시했습니다. 특히 꽃 농사꾼인 아버지 뒤를 이어 농대를 갔다가 재수 없게 농대 입학 1달 반만에 못 볼 꼴 보며 잡혀가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 이후로 더욱 원예업을 하는 제 부친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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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식물원장을 했고 청량리 원예연구소 서울분원장을 했고 경무대 조경담당자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제 눈에는 윤우경 전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의 증손자 윤준선(JoonSun Yoon)씨 말마따나 윤유경과는 일면식도 없을 창경궁 식물원 일꾼에 청량리 온실과 경무대 조경 일하는 흙만 지고 거름 지는 일꾼이라는 아주 자존감 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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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황해도 연안 군수에 내장원경에 궁내부특진관을 지내다 일제에 암살당한 고조부 이명직 대감과 일제 초기 1919년까지 금광국 기수를 지내다 일본 헌병에 참살당한 증조부 이철규 기수를 알고 난 후, 난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이 고귀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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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청파동에서 쌀장사와 복덕방을 하다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는 고아로 만주국 농림국 미곡 검사관의 삶을 살며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 선생을 도왔고 내 아버지는 창경궁 초대식물원장에 6.25 참전 부상 상이용사에 청량리 원예연구소 서울분원장에 경무대 조경담당관을 지내고 부천에서 근교농업을 확산시킨 선구자로 살다 가셨다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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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해서 같은 모습도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쌀장수에 복덕방에 온실일꾼에 다친 졸병에 정원일꾼에 꽃 농사짓는 농사꾼에서 독립운동가에 식물원장에 분원장에 참전 상이용사에 조경담당관에 도시 근교원예농업의 선구자로 보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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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찍 젊은 시절에 족보공부를 하고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처절한 삶을 알았다면 가난하게 살며 나에게 원하는 과외며 학비를 대주지 않는다고 내 할아버지 아버지를 원망하고 무시하며 살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눈물 어린 참회가 없었을 터인데 정말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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