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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고수의 삶 / 국민일보 [2011.04.27]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8. 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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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고수의 삶 / 국민일보 [2011.04.27] 





나는 진정한 삶의 고수를 알고 있다. 사람마다 상정하는 고수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고수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고수 중에서도 상당한 고수다.

하지만 이 고수라는 말에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수라는 말 속에는 어느 정도 삶을 기술로 바라보는 도구적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도 기술이 있어야 하지 않든가. 정직하고 우직하게 사는 것이 삶의 기본적 태도이겠지만 너무 우직하고 정직해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사실 지천명의 나이를 살다보면 어느 정도 내 형편과, 돌아가는 주변의 실정과, 타인의 사정 정도는 헤아릴 줄 알게 된다. 그러니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인 것이다.

시련을 즐겁게 유쾌하게 살아내다

내가 알고 있는 고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숱한 시련들을 감내하며 즐겁게, 유쾌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 사람의 표정 어디에도 짜증이 묻어있거나 힘들다는 불평 한마디 들어볼 수 없다. 어쩌다 자신의 신산한 삶을 입에 담을라치면 남 이야기하듯, 농담하듯, 그렇게 우스갯소리로 눙친다. 내공이 깊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장영일 화백. 잠자리 화가로 화명을 얻은 그가 바로 그 고수다.

몸속에 창창하게 들어있는 병마 말고 그 화백이 가진 것이 무엇이던가. 아니, 가진 게 더 있긴 하다. 아들과 딸도 있고, 손녀도 있고, 아내도 있으며, 작고 낡았지만 아파트 한 채도 있으니 그만하면 다 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건 그 화백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게 또 여의치가 않다. 다들 오늘이 불안한 마당에 누가 그림을 사는 호사까지 부리며 살 것인가. 그러니 전업화가로서의 고충과 고민이 클 터인데도 그는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리거나 화가로서의 자존심도 잃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고수인 까닭은 또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삶은 그를 녹록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고아가 된 화백은 오갈 데가 없어 뒷골목을 전전하며 하룻밤 잠을 구걸했고, 그 와중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미대를 졸업했다. 게다가 일찌감치 고아가 된 탓인지 화백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보다는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니 그악스러운 사람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그러나 내가 아는 고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고수다.

폐암… 방랑… 뇌졸중… 불평하지 않다

오래전, 폐암선고를 받은 그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이유로 6년간을 방랑으로 지냈다고 했다. 삶이 불가사의한 것이, 사형선고를 받고 그렇게 마음 비우고 떠돌아다니니 죽음도 떠나더라는 것이다. 이어 찾아온 두 번의 뇌졸중은 그에게 또다시 사형선고를 내렸고,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번번이 죽음으로부터 빠져나왔지만 한쪽의 시력만큼은 회복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이가 시력을 잃었으니 좌절할 법도 한데 화백은 남아있는 시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한쪽 눈으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 몸으로 어느 날 문득 전화해서는 중국이라고 하고, 또 문득 전화해서는 일본이라 하고, 또 문득 전화해서는 먼 곳의 지명을 댄다.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몇 달씩 집을 비우며 방랑을 계속하는 것이다. 고행에 가까운 그의 방랑에 식사는 하셨냐고 물으면 도리어 밥이 뭐냐고 묻는다. 어떤 때는 초코우유 하나가 전부일 때가 있고, 딸기웨하스 과자 하나가 전부인 때도 있다. 아니,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때가 먹는 때보다 더 많다. 하지만 그 고수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 화백에게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그 화백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삶을 힘들어한 쪽은 나이고, 그런 나를 위로하는 쪽은 장영일 화백이다. 그러니 어찌 고수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를 닮고 싶다. 삶에 있어 여유를 부리며 삶과 달착지근하게 동거하는 고수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불평을 해도 그 형편이고, 불평을 하지 않아도 그 형편이라면 차라리 화백처럼 삶을 전적으로 수용하며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시대의 진정한 고수는 바로 장영일 화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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