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

忍齋 黃薔 李相遠 2021. 6. 2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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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소설 '활착'은 '문학들 2021.여름 제64호'이라는 문학잡지에 실린 단편소설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우수문학잡지이고, 시, 소설, 동화, 평론 등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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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여류소설가 은미희 선생님께서 송구하고 영광스럽게도 부족한 저를 대상으로 '활착'이라는 단편소설을 문학잡지 '문학들 2021 여름 제 64호'에 내주셨습니다.

그 '활착'이라는 단편소설을 작가 은미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공개합니다.

활착에 등장하는 노란 장미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한 감상평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에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은미희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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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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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제위께. 작가님께서 제 블로그에 있는 저에 대한 논픽션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집필하셨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려진 게시물의 분량이 방대하여 작가님이 블로그를 통해서 알거나 믿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작가님이 믿는 것과 실제와의 차이, 또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로 말미암아 그 내용이 사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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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실제와 차이나는 점을 몇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점은 작가님의 양해를 구하여 작품 말미에 첨부합니다. 또한, 작가님께서 차후에 작품집에 수록 할때 이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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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에서 제가 제 각시를 만난 때가 제 각시가 간호장교였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제 각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제 각시가 대구통합병원 옆에 있었던 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였을 때였습니다. 그 점이 중요한 것은 규정에 장교와 사병의 교제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여 간호장교들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제각시를 만났을때는 사병환자와 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였을 때입니다. 또 만났던 장소는 대구통합병원내 성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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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각시가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간호장교가 되어 대구통합병원 옆에 있었던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떠나 수도통합병원에서 간호장교로 복무할때는 저는 퇴원하여 자대로 복귀하였을 때입니다. 실제로 제 각시와 사귀게 된 때는 제가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일때 부터입니다. 즉 사병과 장교가 아닌 민간인과 간호장교의 사귐이었던 거지요.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제 각시에게 있어서 이점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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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후 초대 창경궁 식물원장으로 서구식 식물원을 한국에 선보이고 6.25이후 부산원예시험장 원장이던 우장춘 박사를 도와 서울 청량리 원예시험장 분원장으로 통역을 해드리고 식물육종분야에 조교로 평생 원예분야에 종사하셨던 분은 제 조부님(할아버님)이 아니라 제 부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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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조부님(할아버님)은 일제시대 수원농림을 나오시고 만주국 문관시험을 거쳐 만주국 부흥부 미곡검사관을 지내시다 해방을 맞으신 이성구 선생님이십니다. 제 할아버님은 제가 대학 2학년때 작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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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님은 일제시대 경성원예전문학교를 다니시다 해방과 함께 졸업하셔서 이왕직에서 일제에게 반환받은 창경궁 식물원을 맡아 초대 식물원장을 하시며 서구식 원예식물원을 국민들에게 선보이셨던 방원 이성찬 선생님이십니다. 6.25때는 꽃을 좋아하는 이승만 박사부부와 몰래 기차 4동을 달고 피난길에 올라 대전 대구 이리를 갈팡질팡하다 이승만 박사부부는 목포로 도망가고 제 부친은 창경궁 식물원의 식물들을 가지고 전주로 도망가셔서 전주임업시험장에 피난 식물원을 운영하셨고 그때 호구지책으로 전주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시며 그 식물들을 돌보셨습니다. 이후에 전주농림의 동료친구 선생님들이 전북대학교 농대 교수님들이 되어 제가 전북대학교 농대에 입학하게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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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가 중구난방하여 은 작가님이 정리하시는데 혼란을 드린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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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가 1980년 5월부터 10월까지 전주 35사단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고문을 받던 장소는 전주 인후동에 있던 '인후공사'라는 간판을 단 보안대 건물 지하실이었습니다. 실제 헌병대 유치장 안에는 예비검속된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수감되어 오리걸음 철장타기등 다소의 가혹행위는 있었지만 폭력과 물고문 전기고문이 행하여진곳은 인후공사 보안대 건물 지하실이었습니다. 보안대 지프 차에 태워져 그곳과 35사단을 오가며 조사 진술서 작성등을 명분으로 가지가지 고문을 받았습니다. 풀려날때도 35사단 헌병대 유치장이 아니라 인후공사 정문에서 제 어머니에게 인계되었답니다. 이 부분도 35사단 헌병대 유치장에 감금되었던 저를 아는 사람들이 볼때는 제가 심하게 뻥을 치고 있는 걸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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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1일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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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드림

 

활착1)

은미희

 

모종포트에 담긴 식물은 양파 같은 둥그런 알뿌리위로 푸른 잎과 꽃대가 성큼 자라나서는 앙증맞은 꽃을 틔우고 있었다. 꽃은 엄지손톱보다도 작았다. 부화관을 가운데 두고 6장의 꽃잎이 받침처럼 퍼져있는 그 꽃은 화려하기 보다는 귀여웠고,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수선 화에요. 내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을 본 여자가 말했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머리에 주황색 두건을 쓴 여자는 햇빛에 그을려 볼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꽃이 예쁘죠? 흙이 묻 은 흰목장갑을 낀 여자는 꽃을 바라보며 웃었다. 수선화가 이렇게 생겼던가? 생각해보니 수 선화를 실물로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디선가 봤을 텐데 그게 수선화인 줄 몰랐다. 이게 수선화였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시에서만 살았고, 그것도 마당이 콘크리 트로 타설된 주택이나, 아파트에서만 살았다보니, 꽃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금빛으로 산란하는 봄 햇살 속에서 수선화는 건강한 생명력으로 한 뼘 정도 자라 있었다. 낭창낭창한 플라스틱 모종 포트로는 더 이상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다년생이니 내년에도 볼 수 있다고, 추위에도 강해서 기르기가 쉽다고, 망설이는 나를 보며 모종의 주 인은 이야기했다. 수선화 말고도 다른 모종들도 많았다. 산세베리아, 문주란...... 종이컵보다 살짝 더 큰 플라스틱 포트에 심어진 그것들은 온 몸으로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건 심었다기보다는 담겨있다고 해야 옳았다.

 

가까이 두고 그 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 손 끝에 죽어나간 생물들을 생각하 면 나는 선뜻 그 작은 꽃을 집어들 수 없었다. 집안에 생물을 들여 본 지가 언제인지 몰랐 다. 살아있는 것들은 내 손에서 잘 크지를 못했다. 화분의 식물들은 물론이고, 동물들도 마 찬가지였다.

 

내 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면 반대였지. 전자파에 좋다 는 말에 망설이다 구매한 산세베리아는 양분 삼아 먹다 은 우를 화분에 뿌려주었다가 시말라 죽었고,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는 손이 올라 그만 죽고 말았다. 또 조 카가 자이 여가는 사이에 잠깐 맡아달라고 고 간 금어는 시도도 없이 먹이를 주 는 바에 과식으로 죽고 말았다. 그렇게 내 손에서 죽어간 생명들은 많았다. 으로 마한 집 화은 죽어나간 것들의 지였다. 그것들을 자양분 삼아 키와 려 가던 측백들은 기야 제 와 비좁간을 이기지 못하고 어름 태풍째 꺾여 나가 죽어렸다.

 

였을 것이다. 나는 생명 있는 것들을 내 안에 들이지 않았다. 저 무심한 지 나거나 그 성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대해했을 ,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서로에 게 그게 좋았다. 나는 상처를 받지 않았고, 그것들은 자들의 생명을 이어수 있었으.

 

물만 잘 주면 .”

 

물만 잘 주면 된다고? 여자의 말은 물을 너무 많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 운목을 올리게 만들었다. 죽어버린 그것들을 바라볼 마다 나는 들었다. 우고 싶었다. 그것 들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게 자랐으면 했고, 강아지도 튼튼하게 자라서는 제 짝을 는 것을 보고 싶었다. 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기대나 바과는 달리 오살지 못했고, 이 내 에 머물지 않고 .

 

겨우내 온실에서 를 뿌리거나 갈무리해았던 알뿌리들의 을 틔어 들고 나 온 여자는 망설이는 나를 을성 있게 지보며 내 정을 기다렸다. 사고 싶었다. 가까이 두고 수수 튀밥보다 작은 그 작은 란 꽃을 보고 싶었다. 을 하다 에 고개 돌리 면 그에서 란 얼로 안, 하고 나를 위로하는 그 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자가 에 그 꽃을 아두고 싶었다. 봄이에요. 한겨에서 크리고 있다 이렇게 예쁘게 . 죽음의 시간들을 고 이렇게 다시 화려하게 부. 자가의 기적 을 .

 

자가에 대한 생각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자가도 위로가 요했다. 나는 화분 2개 값을 지했다. 하나가 아니라 두 였다. 하나는 걸린 십자가 , 에 두고 하나는 엄마의 화장대에 심산이었다. 여자는 내게 모종이 담긴 비닐봉투를 건며 말했다.

 

예쁘게 잘 보세요.”

우세요, 가 아니라 잘 보세요,였다. 우라는 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손에 걸린 모 종의 게가 생각보다 가웠다.

뭐냐?”

여 꽃잎이 봐 조심스비닐봉투에서 꽃을 는 나를 보며 금한 얼로 엄마가 물었다.

꽃이에요.”
무슨 꽃이?”
무슨 꽃이는 말속에는 꽃이보다는 금없이 꽃이는 의가 들어있었지만 나는

짐짓 모른 했다.
나는 엄마의 화장대 한여있던 화를 우고 그 자리에 수선화 모종포트를

. 한 며보다가 아파트 화에 심어줄 요이었다. 엄마의 시선이 화를 .
그것은 하게?”
화보다는 생화가 더 낫잖아요.”

리려고?”
엄마는 생져 물었다.
색이 바어요. 지도 . 너무 래됐잖아요.”
리지 마라.”
니를 낀 엄마의 에서 나온 리지 마라는 말이 지 서글펐. 엄마는 그 화에 당

투영고 있었다. 음과 모없다는 존재. 엄마가 한 해 한 해 생기와 활기를 비쩍 마른 가리처럼 갈 때, 시 시나로 색이 바, 지가 아서는 계륵으 로 해가고 있었다.

 

엄마가 그 화를 사들고 , 같이 물었었다. “에요?”
꽃이다.”
무슨 꽃이에요?”

나는 그꽃이금해서가 아니라 어디서 꽃인지, 갑자기 꽃인지, 그게 더 금했다. 내 물음에 엄마는 무슨 꽃이라고 대했을까. 아마 엄마는 나처럼 꽃이예쁘

 

,라고 물었을 것이다. 빠듯한 살림형편에 엄마는 그 꽃을 사기 위해 꽤 갈등했을 것이 다. 하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엄마의 정에는 흐뭇함과 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정에 대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생화를 사지, 화는 ?”
생화는 금시들고 말. 이 아까. 이건 시들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물을 아주어야 하는 성가신 일도 없고.”
시들어야 꽃이죠. 기도 없는 꽃이 예쁘다고. 그리고 집에 화가 있으면 안좋대요.” 엄마는 내 말을 전으로 려들으며 그 꽃을 화았다. 그리고 한동안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뒷걸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도 하며 꽃의 위를 바었다. 사에 푸른 겨있는 줄기는 엄마가 하는 대로 리를 거나 모양을 고 바었다. , 양귀, 백합, 모란...... 더기 꽂혀있는 그 화는 지나색적이고, 지나싱싱하고, 지나안의 다른 집기들과 어리지 않았다.

 

화는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대로것이다. 색은 더 바래겠지만 꽃잎은 여전히 그대로인 채 현실과 기억의 간을 것이다. 정지된 시간들. 생명 있는 모것들에 게 주어진 은 이 꽃에는 없다. 하긴 언가 이 모의 꽃들도 지로 해 사라지지만 화무십일홍, 픈 절정의 시간들이 이 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인지 그 화에 정이 가지 않았다.

 

엄마의 시선이 모종포트의 수선화보다는 내 손에 들려있는 화를 라다.
다른데 두었다가 꽃이 시들면 제자리에 가져다 을게요.”
리지 않다는 말에 엄마의 얼에서 안도더니 그제야 하게 수선화를 바라보았.
무슨 꽃이?”
엄마가 다시 물었다.
수선화에요.”
라고?”
수선화요. 오다가 예쁘기에 사어요.”
나는 목키워 했다.
이쁘긴 이쁘다.”
전에 아온 당질환으로 모것이 굴절되고 이지러져 보이는 엄마의 에도 앙증맞은 작은 꽃이 보이는 모양이다.


화 말고도 우리 집에는 꽃이 있었다. 세상에 하나 인 꽃. 그건 바로 엄마였다. 생각 해보면 엄마는 꽃이 고 싶었고, 그런 을 살았다. 한 화가의 아내로 당장의 궁 핍하고 들었지만 엄마는 여자로서의 리지 않았다. 닥 엮어 꽃이처럼 부 풀린 를 머리에 고 어디 한 곳 꺾인데 없이 빳빳하게 먹인 동정이 달에 나서면 사들은 꽃을 보엄마를 바라보했다. 엄마는 사들의 시선이 자 에게로 모아질 때마다 행복하고 달뜬 표정을 지었다. 게 다물린 입가 어에는 자부심도 느껴졌, 볼은 달아올랐다. 엄마도 알았다. 이 꽃이라는 것을.

 

지는 그런 엄마를 못마하게 여기. 보들이나 하는 을 살하는 여자가 하고 다니다니. 제 여자에게 보라는 말을 들이지가 라웠지만 아지의 그 말속에는 질투와 노와 경계와 단속이 들어있었다. 지는 언제나 그지만 엄마가 색을 감춘

 

게 자식들을 우고, 느질로 집안 형편기를 바랐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잘못 이식된 나였다. 다른 에 이식어 당의 뜻대로 살았더라면 그 화보다 더 화려한 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부잣집 로 자라나 부족없이 살던 엄마가 가하디 가부의 장에게 시집온 그 간부잘못된 이었다.


엄마는 손을 어 수선화를 만져보았다. 푸른 줄이 보이는 손으로 더는 그 손심스고도 찬찬했다. 정을 지나는 꽃의 그 간이 부러운 것인지, 아니면 잘 보이 지 않는 손의 각으로 꽃을 고 싶어서인지, 꽃을 만지는 엄마의 속마음을 수 없었다.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마하고 아했다. 여 꽃이 어지지 않을까, 잎이 상하지나 않을까, 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질환고 있는 어머니의 에 그 꽃이 어상으로 보금했다. 그러지, 굴절되어도 그 란색만큼은 하게 보것이다. 랑으로, 어리진 랑으로.

 

칙칙하던 어머니의 에 그 랑꽃은 다른 실내처럼 주게 만들었다. , 각기 다른 색들이 이면 다른 색으로 하지만 랑은 만들어수 없다지. 빨강, , 파랑, 그 세 가지 색가운데서 가장 은 색이 랑이라고 했다. 빛이 이면 흰빛이 지만 랑은 어것으로도 만들어수 없다고 했다. 서 가장 한 색이 랑이 다. 음과 결함은 생존조건에서 , 아니면 . 꽃들은 하 기 위해 더 고 강한 색을 택한다는데. 그렇다면 랑은 생존조건에서 것이다. 그게 사이라면?

은 모종 하나는 자가 아, 에 올렸다. 에도 이엄마가 사은 크고 작은 화들로 화려한 꽃을 이고 있었다. 한여땡볕, 한겨한과, 의 간지러, 가을의 스산한 기운들을 내부에 집시다 어화르, 꽃으로 져 나온 생명의 기운 들이 아의 꽃들로 이어진 꽃은 생기가 지 않았다. 화들 가운데서 생기를 지모종포트의 수선화는 오히려 소박하고 수수해보였다.

수선화, 이 꽃의 명이 나르수스라던가. 수면에 의 모에 반해 못에 져 죽었다는 년의 화를 가진 꽃. 지중해, 스한 에서 살던 꽃이 어, 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꽃을 웠을까. 그것도 모종포트 속에서. 르지 않은 소녀 같은 모의 꽃으로 다시 년의 화는 내년에도, 그 내년에도 속해서 이어수 있을까. 뿌리를 내리려면 더 생이한 에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화들을 웠다. 그제야 랑은 은 제 모으로 . 랑꽃. ...... 면 이 란색에 먼저 렸을 것이다. 여자가 던 그 많은 모종의 꽃들가운데서.

 

. 랑이었다. 란색만 보면 그가 올랐다. 물이 그렇게. 고 살다가도, 아니 의도적으로 리려고 해도 랑만 보면 스위켜듯 마음에 랑물이 지면서 그가 올랐다.

 

황장, 란 장. 그는 란 장였다. 그가 설해로그 이란 장2)였고, 한 황장, 란 장였다. 처음에 란 장라는 그 어과 꽃이 주는 이지가 어린왕자 나 르바를 올리게 만들었고, 나는 그가 르바나 어린왕자처럼 호기와 치상상력이 가한 인물거라고 예했다. 하지만 에 올라있는 빛바사진속의 그는 어린 왕자나 르바는 거리가 어보였다. 한손을 리에 살짝 몸을 자세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정은 오히려 진지했고, 했다. 그런데 왜 노란 장미일. 호기심에 그의 로그 속으로 들어, 나는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다.

 

거긴 그추어있었다. 여전히 명과 식과 음과 성이 가했고, 증오여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그 안에 끊임없이 용돌고 있었다. 무방비 로 대면해버린 명들은 나를 게 만들었고, 란 장가 주던 매적인 상상은 금피투성이 장으로 었다.

 

도대, 그는, , 집요하게 한 인간을 증오하고, 새김질 할. 나는 다시 그 로 그에 들어가 볼 기가 나지 않았다. 로그를 어보는 것은 해두었던 내 부을 대면하는 이었고, 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이었다.

 

9간의 . 그리고 기억들. 그 기억들은 내 내면에 은 어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랑하면서도 하게 이어지던 여자의 호를 나는 그 해 527에 들었었 다. 사이. 그들이 죽음과 경계에 서서 장하게 전을 다질 때 나는 나른한

속에서 여자의 에 가까운 호를 들었다.


주 시여러분. 지금 우리 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니다. 게 집에서 안하게 실 수 있니까. 여러분들이 도으로 나오서 우리 제자매들을 살려주시오.”


그것은 마지이었고, 언과도 같았다. 나는 어나지 않았다. 여자가 어의 도시를 울 때, 죽음의 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이을 목까지 어다 으며 나의 안위를 정했다.

 

만한 포물선을 이아가던 알의 적은 공터에서 트리던 죽과 하다고 생각했다. 아가는 거리가 더 었을 . 펑펑. 점점어지던 알들은 리 바라보는 구장에서는 히고 던 반이나 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 그 찬란한 봄에. 생의 의지로 몸이 달던 그 시. 나의 20대의 시작은 그렇게 하게 시작했다. 한 시간들로부도망수 있다면 , 아주 리 도망고 싶었고, 고 싶었다. 이제까지 해온 대로 아무 일 없다는 치미,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를 다시 그 시간 속으로 고 간 건 란 장였다.

 

한 지역 방송사에서 그방송으로 그를 하게 었는데, 나는 그 로그에 작가 , 션겸, 출연자로 여하게 된 것이다. 주에서 집살이 어나기 , 도시에서 던 그들의 력을 고하고, 져 있던 첫 희생자를 알리며, 인 의 에서 어게 망가지고 음하는지를 추적하는 내이었다.

 

나는 재무장이 요했다. 그가 들려줄 그의 진실과, 그 시의 내 을 대면한다는 건 다른 기가 요했으.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You'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란시스에 가려면 머리에 꽃을 으라고 했던가. 나는 이 낭만적인 노래가사처럼 머리 에 꽃을 고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부담에서 어나고 싶었다.

 

머리에 꽃을 지는 않았지만 사는 만수 있었다. 그가 사는 동에는 꽃들이 러 지게 어있었다. 실하게 자란 큰 나들에는 주먹만한 흰 꽃들이 만해있 었고, 관목과 으로 가지를 늘린 모를 꽃나들은 형형색색 정의 간을 보내고 있 었다. 생명의 포였고, 가였고, 였고, 열락이었다. 유난명한 에 꽃들은 비현 실적으로 보였다. 꽃이어에요? 꽃은요? 일일이 그 꽃들을 물어보지 못했다. 꽃들은 그꽃이었고, 그렇게 리지어 봄을 지나가고 있을 이었다.

 

, 황사와 미지로 하렇거나 뿌의 하과는 달리 그가 사는 동명했고 햇빛은 명했다. 그 햇빛 속에서 꽃과 사물들은 선명하게 제 존재러내고 있 었다. 은 사이에요. 도가 . 그러니 반사거나 굴절되없어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가 말했다.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좋은 일일. 살아가는데 있 어서 낱낱부가 러나는 것과 적당히 그 부추며 살아가는 것. 것이 더 나은지 모르. 감춘다고 해서 언제까지 수 없지만 그도 당장에 을 수는 있다.

, 이 머리.”

그가 을 지지머리를 만지며 하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의 머 리에 가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이는 머리를 지 않으면 시큰거려서 못 . 도 자다가 명을 지르며 어나 죠. 체 무슨 고 물어도 대해주지 않아요.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 다 말을 하지 않아요.”

에 있던 그의 아내가 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내의 말에 장처 럼 귀을 본다고 말했다. 수가 귀들을 아내는데, 그 귀들 안에는 그죽 은 동생도 있고, 도 있고, 하게 죽은 사들이 있다고 했다. 처럼 말했지만 그의 에는 장기가 없었다.

 

그는 렌즈 앞에서 아내에게도 해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

 

전 그때 남쪽의 국립대학 농학계열 1학년생이었습니다. 1. 한창 에 부어 있 을 . 에서 까지 왔냐구요?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질 테, 집안사정 문이라고 해두죠. 사실 그으니까요. 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이 많았지요. 데 운명은 평범생으로 살게아두지 않았니다. 으로 오기 전, 부대가 있던 처에서 살았니다.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던 구들 이 스위크지나 타지 같은 지를 가져다 지요.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니다. 지 말아야 도라의 상자를 고 말았던 거지요. 구들에게서 받은 발 잡지에는 라운 내들이 들어있었니다. 당시 대최규하였는데, 실세는 로 있었니다. 철저검열의 사, 우리가 보고 는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니었 니다. 막 뒤어 세상을 움직이는 세력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만 보고 들을 이었니다. 나는 에서 발행된 그 지들을 해 전두이라는 이을 처음 알았니 다. 거기에는 19791212, 당시 육군소장이었던 전두데타를 , 으로의 정향후 의 정세를 예하는 기사가 상히 실려 있었니 다. 때 노태우도 장하는데, 그는 전두데타를 모의하고 당시 을 지9 단 병력을 서 서로 들어다고 했니다. 그런 은 아도 지는 이가 없 는 산 상었지요. 는 이 사실을 사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뜻을 같이 하는 구들을 모았니다. 같은 년이었던 동기1년 선였던 이세종 선다고 나. 제가 지에 실기사들을 하고 우리는 그 한 기사를 가지고 학교 학관에서 사했니다. 사지에 으로 한 기사를 , 크를 러를 식이었지요. 그렇게 만든 유인물을 우리는 구들에게 나어주었니다. 지 않았구요? 당시는 보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명의 식이 더 컸습니다. 은이로서 마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가

 

인물을 구들은 물었죠. 전두.

 

운명의 날이었습니다. 80517자정의 이었죠. 그러니까 날짜 변경선이 17 에서 18로 바니다. 도 이세종 선와 저하던 대로 인물을 인 하고 기사로 아가려는 이었니다. 갑자기 란스러웠니다. 에 말이죠. 것이 고요하고 적하게 가라을 시각에 말니다. 가운 시트 바리는 어지러운 리들과 거게 문이 리는 , 언가 바에 내동지는 리들, 리들이 뒤섞여 사렸죠. 간 이세종 선내 시선이 부딪쳤습니다. ? 무슨 리지? 우리는 안하게 으로 물었니다. 안은 이내 포로 니 다. 도망! 먼저것도 없이 선나는 상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은 베모를 M16에 대관으로 들어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곤 봉휘둘댔습니다. 맞으면 두이 바스러지는 죽음의 곤봉이죠. 우리는 얼마가지 못해 그들에게 히고 말았니다. 이세종 선는 제 에서 곤봉M16머리으로 머리를 맞고는 니다. 머리가 진 선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죠. 도 예가 아니었니다. 곤봉군홧에게도 퍼부어, 전 다리 인대가 파피투성이가 된 줄에 용무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니다. 용무...... 은 어두컴컴했고, 기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요. 치 무속 같았니다. 그 부대는 전라산시 금마면에 있는 731년대 속으로, 금마부대로 렀습니다.

 

그 뒤로 어땠냐구요? 을 것 같니까? 그들이 려해을까요? 먼저 이세종 선의 이야기부해야니다. 그 선5.18첫 희생자였니다. 주에서 생자가 나오기 전, 이세종 선가 죽었죠. 대의 과 이세종 선의 죽음은 주에서 난 비극의 전주같은 것이었니다. 그들은 야들이었고, 두억시니들이었고, 마였니다. 이라면 그수 없지요. 에서 금까지 을 마주고 온기를 나던 선의 죽음 은 내 생을 두리들었니다.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건 무척이나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려간 은 전주 35유치장이었니다. 에서 그들 은 나를 협박하고 겁박하고 니다. 그들은 내게 종이 하나를 들이고는 적그대 로 우고 자하라고 강요했니다. 그들이 작성한 서였지요. 은 이니다. 내가 대중에게 50을 받고 요를 기 위해 서에서 부러 전라도 학교 에 위장했다는 내이었니다. 세상에 대중에게 50을 받았다니요. 나는 한 대중을 만적이 없었고 당도 받은 적이 없었니다. 그들은 이세종 선의 죽음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강요했니다. 아예 기억자를 지우라고 협박니다. 트였죠. 하지도 않은 을 했다고 시,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라니요. 하지만 전 하지 않았니다. 아니, 하지 못했니다. 게 제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하고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거말을 하니까?

 

이 꽁지머리가 궁금하다 하셨던가요? 으로 기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니다. 전주 35유치장에 려가 고문을 받을 때 일입니다. 보안대의 고문담당 중사가 살려달라는 내 애원에 살려달라고 할 짓하러 했5파운드 쇠파이로 내 수를 내려쳤습니다. 간 나는 기억이 나지 않니다. 차린 건 하가 지니 다.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내 몸 위로 거적기를 았더. 거적기 안에서 정

 

차린 나는 그들이 내가 것을 모르기만 바이었니다. 파이로 맞은 너무 . 너무 아파 라리 죽었으면 했니다. 하지만 목으로 기더. 에는 아아있니다. 에는 이 있는 이지요. 상처들은 아물면서 더 단단살로 어지지만 제 상처는 생의 허방처럼 은 어으 로 니다. 는 아도 한 번씩 증으로 그와 불안 속으로 를 데려갑니다. 병원에 가서 고 진도 받아봤지만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니다. 스트스 장라고 하더. 증이 잠잠해지면 그니다. 모자를 지 않으면 시려서 수 없어요. 가 모자대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니다. 모 자를 는 것보다 머리를 기르는 훨씬 . 삼손의 은 머리에서 나지만, 제 머리은 제 연약을 가리기 위한 것니다. 하하.

 

목숨을 부지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제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기들이 살아 아온 하더. 학교에 이상한 문들이 퍼져있었니다. 그들은 라며 수거리고 니다. 에서 죽어간 이세종 선는 건물 상에 서 어져 죽은 로 바어 있더. 그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선동기들은 에 대한 의심의 초리를 거두지 않았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니다. 나를 시하던 보 안사의 제 담당은 한 떠 저에게 운동권 학생들을 시하고 그들의 동을 보고하라며 끊임없이 하고, 협박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대생을 집에서 오가며 하게 수 있도록 특혜를 주고, 호주나 본으로 도 보내다고 했지요. 그들은 에게 예수를 다처럼 동기들을 고하는 파한 인간이 라고 하고, 니 다. 전 그들과 타하지 않았니다. 다시 전 보안대 화사니다. 그들은 대시, 사라는 이으로 를 고문했지요. 그들은 으로 집요하고, 니다. 물면 지 않는 도사같았지요. 거기서 두들겨 맞았니다. 연골지요. 얼마나 세게 렸으면 한창 강건나이의 연골니까. 엉덩이만큼 부어올랐죠. 나는 국군통합병원에 실려가 수을 받아야 했니다. 병원 에 있을 도 그들의 시는 집요했지요.

 

헌병대 유치장(보안대 지하실)에서 죽음을 헤맬 때, 를 구한 이가 예수였다면 이에는 제 아내가 를 구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국군간호사관학교하고 통합병원에서 간호장복무하고 있었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전 아마 디지 못했을 니다. 죽음의 포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의 떨림이더. 사랑은 죽음의 포도, 증도 게 만들었니다. 유치장에서 만예수이 아내를 보내니다. 라고. 정말 그를 보면서 증을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니다. 라운 이지요. 죽음을 목도하고 한 사의 가에 그런 떨림들 수 있다 니. 그건 기적니다. 악몽으로 매죽고 싶었던 사이 그 사랑으로 하가 설, 살고 싶어으니까요. 이란 알 수 없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는 데, 전 그 사랑으로 생명을 었어요. 아내로 인해 게 된 에 대한 의지가 망가 운데로 인도했니다. 제대할 때 그들은 협박하더. 사에 대해 설하면 가만 두 지 않다고. 원할 때 의사가 은한 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더. 을 적에는 그도 살이 있어 그을 수는 있지만 나이 들어 살이 지면 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니다. 하지만 그와 함수 있다는 사실만으도 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

 

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랑이 제 목을 살렸니다. 서 말인데, 같은 그들도 사 랑을 알까요? 사랑이 있을까요? 그들에게도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랑은 어이 고, 형태이며, 까요. 그들도 세상 사 같은 빛으로 사랑의 어를 속이고 내을 설지요.

 

전 그분이 아니었으면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죽는 게 라리 다는 심정으로 모것을 포기했었으니까요.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온전히 제 정으로 살지 못했을 니다. 그 트라우마, 충격, 그 분는 제 안하게 뒤흔들어 았을 니다. . 그분이 나를 구했니다. 그분이 구요? 그 분은 바로 하고 초라한 예수니다. 를 위해 죽음의 자가를 진 예수. 그분이 나를 구니다. , 대로 잡혀간 나는 니다. 스러웠지요. 죽음이 목전에 다가있는 데도 수치감은 어수 없더. 인간이란 그런 게 아까요? 심이 있어 인간의 고아 을 지수 있지 않을까요? 겨진 내 몸 위로 은 모포 한 장이 던져지더. 그 리고 이내 나는 그 모포에 여서는 하게 맞아야 했니다. 5파운드짜파이는 거침없이 제 몸 위로 퍼부어니다. 머리고, 이고, 구리고, 이고 가리지 않 고 아지는 파이는 나를 이기고 . 번씩 내리칠 때마다 내 혼과 정과 생명은 , 그 사이로 생기가 져나. 살려달라고, 살려달 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에게 내 애원하지 않았니다. 그들은 이죽음을 보 았고, 들이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었지요. 510까지, 6동안 나는 철저히 망가지고 지고 밟혔니다. 님께 살려달라고 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 청춘의 시기에, 살 문지 못하고 죽기는 너무 하지 않고 하나님께 며 매달렸니다. 하지만 하나은 제 기도에 침니다. 주기도도, 화살기도도 다 없었니다. 나는 그런 예수이 야속했니다.

 

어느 날 문득 예수님이 내 눈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데 전지전능하으로가 아 니라 가장 없고 가한 모으로 제 에 나타나니다. 피투성이가 된 가시관을 40로그램짜리 오크 자가를 지고 죽음의 장려가는 예수. 바로 그 예수니다. , 가죽아 만플라그럼에는 으로 만든 공로운 져 있지요. 번씩 내리칠 때마다 는 살어내고 이는 갈비를 부러니다. 으로 인정사정없이 맞은 예수의 몸은 성한 이 없었니다. 곳곳라 지고 겨지고 겨져서는 건 속살이 러나 있었고, 으로 나오고 있었지요. 느 곳에는 어진 속살 사이로 흰 도 보이더. . 그 분은 나보다 더 하고 비참니다. 자가를 지고 고다 언을 올라가는 그 가한 예수를 해 사 들은 침을 , 과 야를 퍼부었니다. 하지만 그분은 살려달라고, 그만하라고 애 원하지 않으지요. 묵묵히 당에게 지을 받아들이니다. 과는 다르지요. 그게 그 분의 명이었으니까요. 예수도 자기 족에게 버림받고 죽을 당하지요. 를 구하기 위해 자가를 지거지요. 는 그 간 생각했니다. 그 분도 말없이 죽 음의 을 받아들이는데, 그런 예수에게 내 목지 말자, 라고. 그러자 기적이 났습니다. 나를 극으로 몰아던 고문의 증과 두려이 가시더니 담담해니다. , 죽자, 더 이상 망가지지 말고 죽자, 그렇게 받아들이는 간 나는 당당해, 안해니다, 살려달라고 던 내 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갈져 나온 것도 그 간이었

 

니다. 는 나 같은 동생이나 조카도 없! 그러자 게도 그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 했니다. 물론 고문과 은 이어지만 강도는 줄었지요. 예수를 살렸다고 생각니다.

 

1988년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서는 한동안 전 제 과거를 고 살았니다. 의도적 망각이었죠. 그게 를 살리는 이었니다. 을 이는 세포하나하나에 각인된 기억들은 어수 없더. 두고 온 것들이 사무치 게 그리웠니다. 1990년 어이었니다. 유난가 먹고 싶었니다. 몸이 기억하고 몸이 하는 것이지요. 먹는 것은 바로 을 구성하고, 을 만니다. 내 의 지는 달리 내 몸은 철저히 한을 그리하고 있었니다. 을 수 없어 5시간이 는 거리를 운전해 를 사러던 적이 있었니다. 제가 있던 에서 한인들이 살고 있 던 지니아 동까지는 5시간 리는 거리였죠.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까지 엄두를 내니까...... 까지 없이 달려가는데, 어디선가 문노래가 들려니다. 그대 가에 얼을 묻고 오고 싶어라......노래러나오는데 갑 자기 명하게 지더니 왈칵, 올라니다. 도 모르게 음이 지요. 엉엉. 이었니다. 내가 여기 있지? 내가 여기 있어야 . 은 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렇게 떠돌아다야만 . 그 모것이 서, 니다. 을 사기 위해 5시간 동안 를 운전해야 하는 그 상황이 이해지 않았니다......

 

그는 그 말을 마고는 한동안 지 못했다. 당시의 정이 다시 아온 그 는 우리에게 을 보인 도 하지 않았다.

사각의 프레속에서 그를 지보던 감독라를 내리고 그의 정이 아들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란시스의 하유난명한 파란색으로 빛. 그 파란색이 다른 의 빛로 내 기억에 각인간이었다.

우리는 그, 그의 인를 마고 그의 집 거실에 았다. 면 모두에게 요했을 것이다. 구는 부채감과 부에서 도망기 위해, 구는 그 악몽 같던 간들을 기 위해 요했다. 우리는 서기 속으로 도망. , , 모두에게 도의 시간이었고, 의 시간이었고, 황음의 시간이었다.

50도나 주였다. 시 죽어도 어수 없다는 심정으로 그 주를 마. 없이 파이프 밑에서 지던 그의 상처를 위하고 침하며 살아온 내 지시간들에 대해 속하고 싶었지만 어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로 더 마.

간의 을 마고 우리는 도망치듯 으로 .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집 기 속에서 가 묻어나는 그에 대해, 스러운 그의 에 대해, 증언하고 있었다. 집 실, 은 사각의 간 안에서 그는 로그 속 세상과는 달리 그는 시종 침하고, 젠틀했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와 정신없이 사는 동안 아들이 태어났죠. 에서 자란 아 들은 대한민국을 잘 알지 못했니다. 어나고 제 상들이 있는 그는 아들 이 알 수 있기를 바랐니다. 증의 나라여도 이니까요. 서 전 의 명 문대에 다니고 있던 아들에게 말했니다. 도 제 본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 아들

 

은 고게도 제 뜻을 아 고려대학교 국부로 편입게나마 한을 했니다. 에서 아이들에게 어를 가르며 한국 친구들을 사귀고 한을 알아. 그 모이 얼마나 대하고 기하던지. 저와로 아들에게는 아들의 이 있고, 그런 까저 와는 다른 대한민국하게 하고 싶었죠. 히 아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좋은 기억을 많이 니다. 고마운 이지요. 2003주화 유공자로 지정면서 어정도 제 명예가 복되니다. 물이 났습니다. 물만이 아니다. 거웠니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이었니다. 이세종 선오르더. 가 죽지 않았다면 이런 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니다. 혼자 살아아 그런 예를 리는 것이 안했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고마웠니다. 지 않았구나. 디다 보니 이런 도 맞이하는구나, 내 고과 상처가 하지 않았구나 싶었죠. 나를 기억해 대한민국으로 사했니다. 보상금도 주더. 는 그 보상금을 히 지인이 운하는 장재단에 기부했니다. 지만 한 인들이 대한민국 을 지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이고 가으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시 저를 내쳤습니다. 내게서 주화유공자 자니다. 이라 에게 자이 없다는 거지요. 국국적이. 그 말이 . 살기 위해서, 기 위해서 인데, 그게 이라니...... 전 도망지만 그도 대한민국은 언가 제가 갈 곳이라고, 아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적 을 복할 방을 알아보니 우수인재복적인정 제도라는 것이 있더.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성과가 있는 사은 이중적을 허용하는 제도였니다. 나는 이에서의 지적들을 정리해 적 인정 신청을 했니다. 는 그동안 에서 심히 부 했고, 정부의 자금 지을 받아 환경부가 사하는 준코드개발하기도 했으니 까요. 는 우수인가 아니라며 거당했니다. 들은 그런 제게 국국적을 반 하고 다시 한국국적을 하라고 하더. 그것이 말처럼 운 것이 아니다. 그간 전 에서 공무원으로 살아니다. 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에서 산 시간이 더 많지 요. 국 국적을 반하는 은 그간의 제 을 부정하는 과 같니다. 그 시간을 화시 이지요. 게다가 금마사라지고 니다. ...... 그것은 이 아니라, 물이고, 이고, 니다. 편견과 맞서 우며 살아온 제 지시간의 적물 인 것니다. 노후를 지해줄 목이지요. 국국적을 하게 면 그것들은 다 사 라지고 니다. 에서 도망치듯 으로 건너와 치하게 살아온 제 은 다시 물거고 말지요. 그렇게 말하고 보니 제 존재방울 . 국연고위공무원. 빛나 보이지만, 한없이 존재. 잘못하면 한간 파, 사라지고 마는 존재...... ...... . 어디 한짱짱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같은 존재가 나......귀화라도 신청해보려고 력했지만 그마지 않았니다. 으로부다시 니다. 대한민국를 한 도 아니고, 년의 거부하는 까요. 주 화를 위해 나름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게 잘못한 일일까요? 에게도 귀본능이 있는데 제가 갈 곳은 어디까요.

 

자괴감이 듭니다. 에서 심히 부했고, 전문지식을 했고, 제 지식이 한에 도 었으면 했니다. 이 나마음도 있었니다. 그런데 한를 받아주지 않 았니다. 살기 위해서 고 살아던 지제 생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만 같아 자

 

니다. 그렇게 내 대한민국을 했니다. 번 쓰리는, 아니 다의 을 사는 것을 강요했고, 그 강요를 거하면 하고, 겁박하고, 협박했고, 종내는 니다. 에서의 은 어구요?. 동양인인 제가, 없는 동양의 나라에서 온 없는 제가 살아기 위해서 어을 살았을까요. 여러분은 아마 작도 하지 못하실 니다. 그렇게 렸는데도 왜 저는 대한민국이 그리까요. 제가 있고 좋은 을 지니고 있었다면 어을까요? 버림받은 를 아들은 어게 생각까요. 부디 제 아들이 대한민국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니다. 이니 까요.

 

세상에 정의가 존재할까요? 을 그렇게 내았는데, 이세종 선는 목을 바는 데, 제가 정의를 이야기하고, 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사들은 지겨워합니다. ? 시작이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니다. 예수은 세상의 구을 위해 자가에 매달려 아가지요. 로 세상의 의를 이시려했니다. 서 세상에 의선은 구현되었 을까요? 이세종 선가 목을 바는데, 저 역렸는데, 세상이 달라을까요? 은 이렇듯 송두리히고 위들리는데, 가해자는 아사과를 하지 않았니 다. 진정으로 사과하면 받아줄 의가 있는데, 그 사은 끝내 우리를 니다. 서의 성은 가해자가 서를 구했을 만 성니다. 그들이 언제쯤이나 진정으로 제 잘못 을 서를 구해올까요.

 

방송은 그가 던지는 물음과 한으로 끝을 었다. 그의 말처럼 사들은 여전히 그에 올리면 지겨했다. 진실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그은 생기를 , 더러는 진실 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증언과 고은 지들만 보고 들을 수 있었 다. 역방송의 한였다.

 

그를 다시 만방송이 전파를 , 년이 지난 후였다.
지가 위하다는 연락을 받고 황히 한으로 들어온 그를 집 에서 잠깐 적이 있었다. 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하면서도 강건한 아내가 있었다. 그는 언제 나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정말 한에서 내 뿌리가 혀버린 것 같니다. 도 아 지가 는 언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는 말을 마지 못했고, 그런 그의 시선은 창가로수를 하고 있었다. 는 가에 가로수는 제 대로 잎을 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달려있는 잎도 끝이 말려들어가거나 렇게 말라가 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이어지는 침고 싶어서 었다. 내 시선도 그의 시선이 있는 에 가있었다.

 

아파트 화의 나들이 제대로 크지를 못하고 시다 죽어요. 잘 크나 싶으면 가 지기를 너무 심하게 해리는 에 과살 수 있을까 싶어요. 그 모양이 마치 불구나 기 같아요.”

나는 아싶었다. , 그에게 말이 아니었다.

아파트 조경수들은 오살지 못해요. 지하주장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어 만이라 나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그러니 어정도 크면 더 크지 못하고 죽어리지 요.”

 

에 그가 대했다.

에 대해 해한 지식을 고 있는 그였다. 에는 그의 지가 있었다. 대한민 국에서 처음으로 서구식 식물을 선보인 사이 그의 지였고, 지는 없 는 수을 만우장한 지기였다. 지의 영향으로 그는 감치 목에 관한 지식들을 습득했고, 그 할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농학계열이 있던 남도의 학교로 진했던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올해처럼 가물 때 그도 하수구 가 있는 의 나들은 그런대로 생기가 . 으로 뿌리를 내금이라도 물을 빨아들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나들은 금 가물다 싶으면 바짝 말라 들어가죠. 심을 뿌리를 동여줄이라도 제거해주면 좋을 텐데 귀다고 심어리는 것이 더 문제에요. 그러니 뿌리가 제대로 내수 있어요? 인간의 이기심이 나를 죽이는 거죠.”

 

도 하수구 가 있는 의 나들은 그런대로 생기가 . 금이라도 물을 빨아들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나들은 바짝 말라 들어가죠. 심을 뿌리를 동여줄이라도 제거해주면 그심어리는 것이 더 문제에요. 그러니 뿌리가 제대로 내수 있어요? 인간의 이기심이 나를 죽이는 거죠.”

 

그도 가으로 말라 들어가는 가로수가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들이 씽씽 내달리는 도로의 가로수들을 심히 살보게 된 것은 그 였다. 그의 말마나 가이 들었을 도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나들은 하수구 가 있는 의 나들이었다. 있는 물기를 아 생명을 지하고 있는 나들을 볼 마다 그 수고생의 의지가 안기도 하고, 장하기도 했다.

시 나였다. 뿌리에 이식된 한 그. 뿌리가 친친 묶여있는 나. 하지만 빛을 아 가지를 는 주성의 식물처럼 그의 해있었다.

지의 초상을 마그는 다시 자이 사는 동. 나는 염탐그의 이 스로그의 들을 으며 그의 황을 살. 그는 여전히 그에서 고하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 리를 은 그에도 만해있었고, 편견이라는 물 들과 맞서 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의 집 마당으로 살기위해 고양이를 돌봐주고, 그로인해 은 알러지를 하러 병원에 다니기도 했고, 여 자의 정성을 을까부지런히 한산 이, 그 선대를 아 그들의 정보들을 모으며 보를 기해나가고 있었다. 보는 그 대로 아들에게로 이어것이다.

 

이제 갑의 나이를 지그는 분하게 가라고 있었다. 그의 에서 지짱짱하던 안은 사라지고 대굿하게 내려한 인상마저 풍겼다. 은 그를 단련고 주저앉. 게도 그는 자이 안전하게 서있을 아 더 게 뿌리를 내를 하고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망보다, 버린 조에 대한 증의 하소연보다는 은 생을 잘 두하기 위해 제가 서있는 에서 살고 있었다.

 

, 요의 에서 죽음을 맞이한 야은 그다지. 해를 이에 묻지 말고 간하고 있다가 고아가거에 묻어달라고. 의 부은 아들들에게 자 보를 지 말라는 아지로서의 마지당부선물 같은 건지도 모르. 그도 야의 심정. 제 뿌리를 인하고 가를 거러 올라가며 선들을 인하고 그들의 생을 기하고 모아는 것. 면 그것은 그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생의 고 의 선물지도 모른다.

 

그가 더 잘 주었으면 좋. 한 이기심이지만 그가 잘 살아내 안의 부채감이나, 도도 그만큼 수 있을 니까.

 

3만에 수선화는 자라있었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실하게 하려야 하는데 종이컵 보다 살짝 큰 모종포트속의 수선화는 뿌리도 위보이고, 늘 린 꽃대잎도 어이 없어보였다. 잎들은 큰 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져내려 있었다. 다른 잎도 마찬가지였다. 금만 을 주어 만지면 금이라도 물크러 질 듯 힘이 없어보였고, 빛 속에 르스한 기운도 지고 있었다. 어제 오, 물을 흠 뻑 주고 햇빛을 아 베란다에 포트를 내았지만 그 햇빛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잎을 올리고 꽃을 웠으니 어느 때 보다도 자양분이 것이다. 이 아니라 아지내리는 푸하고도 햇빛과 양분이 가, 그 뿌리를 보어줄 대지것이다. 그것들은 간지게 꽃잎을 건리고, 잎을 뒤흔들며 에서 것 이다. , 우도 내리고, 서리도 내리고, 대지도 얼지만, 그것들은 수 선화가 더 튼튼하게 자수 있도단련것이다.

나는 엄마 의 모종포트를 들고 . “하게?”
엄마의 시선이 수선화를 . “에다 심어주려구요.”

사서 고생은 . 예전에 있던 꽃 제자리에 아라.”
싱싱한 꽃으로 사게요.”
. 애먼지 말고.”
엄마의 타화를 있던 자리에 는데 그이 문득 조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줄에 려있는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생기를 어가는 그이 그 꽃을 았다.

은 꽃들로 했다. , , ...... 금빛으로 빛나는 봄햇살 속에서 꽃들은 형형색 색, 마다의 모으로 어나 다음 생을 기하고 있었다. 에 퍼져있는 햇빛들이 꽃잎 을 건리고 을 더고 있었다. 그 간지러운 햇살의 애무속의 것들은 부지런히 기지 , 색으로 얼어있던 에는 어푸른 이처럼 퍼져있었다.

도처가 꽃이었다. 는 생기와 활기로 세상이 부산스러웠다.


나는 . 한겨는 파고햇살로 적당히 부어 올라있었고, 파는 대로 흙은 몸을 집으며 제 속을 . 그 작은 에 수선화를 심고 뿌리가 들지 않게 흙을 꾹꾹 눌러주고, 여 아파트 제초작에 다른 들과 려 나으로 마른 가지를 주워 와 울타리를 러주었다. 그리고 뿌리까지 적시게 물을 흠뻑 주었다. 지 중해 그 먼 곳에서 이까지 뿌리를 내수선화가 살아아 내년 봄에도 꽃을 틔수 있도나는 정성을 다했다.

그도 수선화, 이 꽃처럼 그 줄에서 내려부디 건히 에 뿌리를 내리고 자을 사랑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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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한거나 겨 심은 식물이 제대로 거나 뿌리를 내려서
2) 로그는 실제 존재하는 로그이며. 로그 속에 들어있는 내을 작화하였니다. 인물도 실인물

이며 작으로 도 된다는 을 받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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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제위께. 작가님께서 제 블로그에 있는 저에 대한 논픽션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집필하셨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려진 게시물의 분량이 방대하여 작가님이 블로그를 통해서 알거나 믿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작가님이 믿는 것과 실제와의 차이, 또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로 말미암아 그 내용이 사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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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실제와 차이나는 점을 몇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점은 작가님의 양해를 구하여 작품 말미에 첨부합니다. 또한, 작가님께서 차후에 작품집에 수록 할때 이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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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에서 제가 제 각시를 만난 때가 제 각시가 간호장교였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제 각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제 각시가 대구통합병원 옆에 있었던 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였을 때였습니다. 그 점이 중요한 것은 규정에 장교와 사병의 교제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여 간호장교들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제각시를 만났을때는 사병환자와 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였을 때입니다. 또 만났던 장소는 대구통합병원내 성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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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각시가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간호장교가 되어 대구통합병원 옆에 있었던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떠나 수도통합병원에서 간호장교로 복무할때는 저는 퇴원하여 자대로 복귀하였을 때입니다. 실제로 제 각시와 사귀게 된 때는 제가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일때 부터입니다. 즉 사병과 장교가 아닌 민간인과 간호장교의 사귐이었던 거지요.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제 각시에게 있어서 이점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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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후 초대 창경궁 식물원장으로 서구식 식물원을 한국에 선보이고 6.25이후 부산원예시험장 원장이던 우장춘 박사를 도와 서울 청량리 원예시험장 분원장으로 통역을 해드리고 식물육종분야에 조교로 평생 원예분야에 종사하셨던 분은 제 조부님(할아버님)이 아니라 제 부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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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조부님(할아버님)은 일제시대 수원농림을 나오시고 만주국 문관시험을 거쳐 만주국 부흥부 미곡검사관을 지내시다 해방을 맞으신 이성구 선생님이십니다. 제 할아버님은 제가 대학 2학년때 작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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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님은 일제시대 경성원예전문학교를 다니시다 해방과 함께 졸업하셔서 이왕직에서 일제에게 반환받은 창경궁 식물원을 맡아 초대 식물원장을 하시며 서구식 원예식물원을 국민들에게 선보이셨던 방원 이성찬 선생님이십니다. 6.25때는 꽃을 좋아하는 이승만 박사부부와 몰래 기차 4동을 달고 피난길에 올라 대전 대구 이리를 갈팡질팡하다 이승만 박사부부는 목포로 도망가고 제 부친은 창경궁 식물원의 식물들을 가지고 전주로 도망가셔서 전주임업시험장에 피난 식물원을 운영하셨고 그때 호구지책으로 전주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시며 그 식물들을 돌보셨습니다. 이후에 전주농림의 동료친구 선생님들이 전북대학교 농대 교수님들이 되어 제가 전북대학교 농대에 입학하게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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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가 중구난방하여 은 작가님이 정리하시는데 혼란을 드린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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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가 1980년 5월부터 10월까지 전주 35사단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고문을 받던 장소는 전주 인후동에 있던 '인후공사'라는 간판을 단 보안대 건물 지하실이었습니다. 실제 헌병대 유치장 안에는 예비검속된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수감되어 오리걸음 철장타기등 다소의 가혹행위는 있었지만 폭력과 물고문 전기고문이 행하여진곳은 인후공사 보안대 건물 지하실이었습니다. 보안대 지프 차에 태워져 그곳과 35사단을 오가며 조사 진술서 작성등을 명분으로 가지가지 고문을 받았습니다. 풀려날때도 35사단 헌병대 유치장이 아니라 인후공사 정문에서 제 어머니에게 인계되었답니다. 이 부분도 35사단 헌병대 유치장에 감금되었던 저를 아는 사람들이 볼때는 제가 심하게 뻥을 치고 있는 걸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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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1일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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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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