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07 05:56
[프로배구 19년 만에 은퇴… '스커드 미사일' 후인정 인터뷰]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후(侯)씨는 단 83명(2000년 기준)뿐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아보자면 배구 스타 후인정(42)이 아닐까. 대만인 아버지를 둔 후인정은 한국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1994년 귀화했다. 그리고 '수원 후씨'의 시조가 됐다. 그의 아버지는 왕년의 배구 스타 후국기(전 선경 감독)씨다.
후인정은 지난 4일 공식 은퇴식을 갖고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선수 생활 19년은 국내 남자 배구 최장 기록이다. 지금 팀에는 21세 차이가 나는 조카뻘 선수도 있다. 후인정은 1997년부터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에서 뛰었다. 강력한 후위 공격(백어택)이 특기라 '스커드 미사일'로 불렸다. 2005년 프로 배구 원년 시즌엔 정규 리그 MVP와 공격 성공률 최고상을 받았다.
19년 만에 은퇴한 후인정은“나보다 훨씬 앞서 감독과 코치가 된 동료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표정은 느긋해 보였다. 5일 경기 의왕의 한국전력 체육관 배구 코트에서 만난 그는 요청하는 대로 포즈를 다 취해줬다. 그는 이곳에서 선수 대신 트레이너로 새로운 배구 인생을 시작한다. /남강호 기자
9년 선수생활의
원동력은 무릎부상
은퇴 후 인정받는게 목표
5일 경기 의왕 한국전력 배구 훈련장에서 후인정을 만났다. 그는 "나도 배구를 19년씩이나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2005~2006시즌 우승했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나도 우승은 해보고 은퇴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때만 해도 30대면 은퇴할 나이였죠. 그런데 그게 벌써 10년 전 얘기예요."
그는 선수 초기부터 무릎 부상을 안고 뛰었다. 1999년 수술한 왼쪽 무릎은 여전히 아프다. 코트 위에서 버틴 게 용할 정도다. 그래도 그는 올 시즌 '원 포인트 블로커'로 21경기 중 17경기에 나왔다.
후인정은 "무릎 부상 덕분에 오히려 긴 시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후인정은 1999년 시드니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수술대에 올랐다. 양쪽 무릎의 연골이 손상됐지만 올림픽 출전을 위해 왼쪽 무릎만 수술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여 체중을 조절하고 휴가 때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서 다리 근력을 키웠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 됐으니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전엔 발목 한 번 휙 돌리고는 볼을 때렸어요. 힘이 넘쳤으니까요. 이젠 운동을 쉬면 계단 올라갈 때도 무릎이 찌릿찌릿하네요."
함께 뛰었던 김세진·신진식·임도헌은 11~12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미 프로팀 감독과 코치가 됐다. 후인정 입장에선 조바심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후인정은 "조금 늦었을 뿐 선수 생활은 더 오래 하지 않았느냐"며 "이제부터 부지런히 배우겠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은퇴 후 인정받는 것이다. "나중엔 국가대표 감독도 되고 싶어요. 김세진 감독한테 뒤지면 안 되겠죠? 저 지는 거 안 좋아합니다."
선수 생활 19년이 항상 행복했던 건 아니다. 그는 "매일매일이 (은퇴) 위기였다"고 하면서도 "서른아홉이던 2013년 친정인 현대캐피탈에서 방출됐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1998년 당시 후인정(오른쪽)의 경기 모습. /전기병 기자
가장 힘든시기는
방출통보 받았을때,
40대 재계약 어려워…팀동료 응원
"시즌이 끝나고 휴가 중이었는데 구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은퇴 결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섭섭했습니다. 3개월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40년 중 30년을 배구만 했는데, 사형 선고 같았지요. 뭘 해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때는 짐도 못 챙기고 팀을 떠났다. 당시 입었던 은퇴 유니폼을 챙겨올 생각도 못 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다시 해보자"며 손을 뻗었고 그는 코트에 복귀했다. 후인정은 "마흔 다 된 선수와 재계약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때 경험이 은퇴 이후를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번엔 유니폼 4벌을 챙겨놨다가 열성 팬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후인정이 코트를 떠나면 같은 팀의 방신봉(41)이 최장수 선수가 된다. 1997년 입단한 방신봉은 2008년 은퇴했다가 2009년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후인정은 "방신봉은 내 몫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06/2016010603468.html?pmletter
+++
'2. Humanities > 22_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5전쟁 여군 참전사 - 간호장교들의 활약상 (0) | 2016.01.24 |
---|---|
6·25전쟁 여군 참전사 - 첩보부대에서 간호부대까지 (0) | 2016.01.24 |
동양 최초의 공산주의 사상가 한인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 (0) | 2016.01.01 |
독립운동가 김창숙과 박정희…그리고 김수환, 윤우경 (0) | 2015.12.30 |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 (0)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