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59.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Distinction by Pierre Bourdieu 1979

忍齋 黃薔 李相遠 2024. 9. 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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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ktbH48e2Xg

 

우리는 지킬 자본이 별로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착취하여 자본을 축척하는 극우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걸 보면서 고개를 까웃둥해합니다. 미국의 노동자 농민들이 트럼프를 광신적으로 지지하는 거나, 한국의 빈곤계층인 실업청년층이나 실업노년층이 윤석열 한동훈 등 자신들을 착취하는 매판자본의 수호자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가는 현대 정치에서 대단히 큰 논란거리입니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대혁명과 68혁명을 좌절시킨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이런 한심한 짖은 1979년 피에르 부르디외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르디외의 ‘구별짖기’가 그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부르디외의 이 ‘구별짖기’에 의하면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 혁명이 200년이 지났음에도 68혁명이 무산되어 하위계층에게 평등의 개념을 오해시켜 자신들도 부르조아 특권층이 될수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뿌띠부르조아가 되어 버려서 개혁되어야 하는 하위계층이 보수화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진단합니다. 자 그럼 브르디외와 그의 구별짓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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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의 생애 – Life of Pierre Bourd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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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 사회학이론, 미학, 사회학에 대한 부르디외의 기여는 인류학, 미디어 및 문화 연구, 교육, 대중 문화, 예술 등 여러 관련 학문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년 ~ 2002년 1월 23일)는 프랑스 남부의 뎅귄 피레네-아틀랑티크에서 우편국 직원과 그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스 콘 방언인 베아르네제어를 사용했습니다. 1962년 부르디외는 마리-클레어 브리자르와 결혼했고, 이 부부는 제롬, 에마누엘, 로랑 등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부르디외는 파리의 루이르그랑 리세(고등학교)로 옮기기 전에 포의 루이바르투 리세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후 그는 파리에 있는 ‘파리고등사범학교 (École Normale Supérieure, ENS)’에 입학하여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부르디외는 1955년 25세때 교수 자격시험인 ‘아그리게시용 (agrégation)’에 합격 한 후,프랑스 군대에 징집 되기 전까지 1년 동안 밀스(Moulins) 에서 리세(고등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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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똘레랑스(Tolerance)를 지향하는 많은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졸업생들처럼 예비장교학교에 입학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1955년 10월 프랑스로부터 독립 전쟁 중 알제리에 사병으로 배치된 부르디외는 사무직으로 전속되기 전에 군 시설을 지키는 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1년간의 군 복무 후, 부르디외는 알제 대학의 강사로 남았습니다. 1958년~1962년 알제리 전쟁 동안 부르디외는 베르베르 족의 카빌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충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인류학적 명성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1958년 그의 첫 번째 책인 ‘알제리 사회학’이 나왔는데, 이 책은 프랑스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1962년 미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1960년 부르디외는 파리 대학교로 돌아온 후 릴 대학교에서 교수로 취직하여 1964년까지 근무했습니다. 1964년 34세에 파리 고등실천학교 학과장으로 부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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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유럽사회학센터를 설립하고 ‘사회학연구’를 발행하기 시작, 이 잡지에 활발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부르디외 학파'를 형성하고, 이때부터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는 한편, 후기 구조주의 입장에서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사회구조를 개관적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고수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는 거리가 먼 문화예술 현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미학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가는 방식 등에 관한 저서를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1970년에는 학교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구조와 행위의 통합을 꾀한 역저 ‘재생산’을 출간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 현장 연구를 1972년 책 ‘실천이론개요(Outline of a Theory of Practice)’에서 많이 인용했는데, 이는 인류학 이론에 대한 강력한 개입이었습니다. 1975년 그는 ‘유럽사회학센터’에서 구성한 연구 그룹과 함께 학제간 저널 ‘사회과학연구의 진행’을 창간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사회학의 과학적 엄격성과 사회학적 생산을 변형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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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사회과학대학원(EHESS)’ 교수로 있다가, 41세 때인 1981년 프랑스 최고 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가 된 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는 틈틈이 현실 참여에도 앞장서 텔레비전에 출연해 언론 기자들을 비판하고, 실업자들을 지지하며, 문명 파괴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신자유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들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인 지식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93년 그는 ‘국립과학연구센터 금메달(CNRS’)을 수상했습니다. 1996년에는 UC Berkeley에서 고프만상(Goffman Prize)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왕립인류학연구소 헉슬리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1968년 부르디외는 아롱이 설립한 ‘유럽사회학센터 (Centre de Sociologie Européenne)’을 인수하여 사망할 때까지 이끌었습니다. 부르디외는 2002년 71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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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많은 작품의 작가였으며, 수백 개의 기사와 30권의 책을 썼고, 그 중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출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실천이론개요(1972)’, ‘구별짓기(1979)’, ‘강의에 대한 강의(1982)’, ‘호모 아카데미쿠스(1984)’, ‘국가귀족(1989)’, ‘텔레비전에 대하여(1996)’, ‘맞불(1998)’, ‘경제학의 구조(2000)’ 등이 있습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책은 ‘구별짓기(Distinction)’로, 그는 이 책에서 취향 판단이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있거나, 더 정확히 말해서 그 자체가 사회적 위치 설정의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사회 이론과 양적 조사, 사진, 인터뷰의 데이터 를 독창적으로 결합하여 제시되었으며, 객관적인 구조 내에서 주제를 이해하는 방법과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르디외는 외부 사회 구조와 개인에 대한 주관적 경험의 영향을 조화시키려고 시도합니다. 생전에 한국도 방문했는데 2000년 9월 26일부터 3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00 서울 국제문학 포럼'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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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의 사상과 연구 – Thought and Research of Pierre Bourd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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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프랑스의 선도적 지식인이었습니다. 푸코(Foucault), 바르트(Barthes), 라캉(Lacan)과 같은 계급사상가였습니다. 부르디외는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가 제창한 ‘아비투스의 개념’은 유명합니다. 부르디외는 이론적 아이디어를 경험적 연구와 연결하려고 노력했으며 그의 작업은 문화사회학 또는 그가 묘사한 대로 "실천 이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에 대한 그의 기여는 증거적이고 이론적이었습니다. 그의 핵심 관심은 습관(habitus), 자본(capital) 및 현장(field) 입니다. 그는 자본이라는 개념을 재정적 자본,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 상징적 자본과 같은 범주로 확장했습니다. 부르디외에게 각 개인은 다차원적 사회 공간에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람은 사회 계급의 구성원 자격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본에 의해 정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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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본에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가치가 포함되는데, 부르디외는 이를 사용하여 불평등을 생산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부르디외의 작업은 행위의 표현에서 교육 및 문화적 자원의 역할을 관찰합니다. 부르디외는 실제로 경제적 명령을 자본주의 사회 내 권력과 행위의 주요 구성 요소로 식별하는 마르크스 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이에 동조했습니다. 부르디외의 인류학적 작업은 사회적 위계 재생산 분석이었습니다. 상징적 폭력은 사회 질서의 자의성을 무시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주장하여 기존 사회 구조의 정당성을 정당화하는 이기적인 능력입니다. 이 개념은 사회 세계에서 관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사회학적 분석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부르디외는 지성주의적 전통에 반대했고 사회적 지배와 문화적 재생산은 주로 사회의 신체적 노하우와 유능한 관행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르디외는 합리적 선택 이론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는 그것이 사회적 행위자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오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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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의 연구는 주로 사회 내 권력의 역학, 특히 권력이 이전되고 사회 질서가 세대 내 및 세대를 거쳐 유지되는 다양하고 미묘한 방식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에르빈 파노프스키, 마르셀 모스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비판하면서 그의 연구는 새로운 조사 프레임워크와 방법을 개척했으며 문화적, 사회적, 전통적인 경제적 자본 형태와 대조되는 상징적 자본 형태, 문화적 재생산, 아비투스, 분야 또는 위치, 상징적 폭력과 같은 영향력 있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현대의 후기 산업 사회가 형식적인 교육을 통해 달성한 기회 균등과 높은 사회적 이동성을 자랑한다는 신화에도 불구하고 사회 계급, 특히 지배 계층과 지식인 계층이 세대를 거쳐 사회적 특권을 보존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부르디외의 작업은 그가 자신의 이론으로 종합하려고 했던 많은 전통적 인류학과 사회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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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막스 베버로부터 사회 생활에서 상징 체계의 지배와 궁극적으로 부르디외에 의해 종교 사회학에서 분야 이론으로 변형될 사회 질서의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사회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이나 개인 간의 주관적 유대감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과 의지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관계입니다.’라며 마르크스로부터 '사회'를 사회적 관계의 집합으로 이해했습니다. 에밀 뒤르켐에서 마르셀 모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거쳐 부르디외는 상징적 구조와 분류 형식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 구조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경향에 대한 특정한 구조 주의적 해석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사회 구조의 체현을 통해 상징적 질서를 제정하는 사회적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뒤르켐과는 비판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는 나아가 사회 구조의 재생산이 기능주의적 논리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와 그를 통한 ‘에드먼드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은 부르디외의 신체, 행동 및 실천적 성향에 대한 초점 형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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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특히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아마도 내가 어려운 순간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철학자일 것입니다. 그는 큰 지적 곤경에 처한 시기에 일종의 구세주입니다.’ 라며 규칙 준수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았으며,부르디외의 작업은 그가 당시 ‘주관주의, 객관주의, 미시, 거시, 자유, 결정론 등 사회 과학을 특징짓는다고 생각한 일련의 대립을 초월하려는 시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의 습관(habitus), 자본(capital), 현장(field) 개념은 이러한 대립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고안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부르디외는 정치적 토론에 더 많이 관여하면서 프랑스의 중요한 대중적 지식이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자였던 부르디외는 장폴 사르트르가 수행한 ‘전체적 지식인’ 역할도 비판했으며, 사르트르가 프랑스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회학을 정치적 활동에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부르디외의 초기 글과 매우 ‘눈에 띄는 정치적 성명’을 통해 대중 지식인의 역할을 시작한 이후의 모습에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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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기 작업의 대부분은 사회학을 엄격한 과학 분야로 취급했지만 2001년 부르디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사회학은 무술이다"는 부르디외가 정치적 논쟁까지 확장된 공적 책임을 지며 사회학을 무기로 에밀 졸라와 장폴 사르트르의 망토를 걸치고 정치인들과 싸웠습니다. 부르디외는 이전에 사르트르와 같은 대중 지식인을 비난했지만, 후에는 사회학에 영향을 미친 강력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후기관심사는 세계화의 효과와 가장 작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의 정치는 더욱 노골적이 되어 ‘정치적 논쟁에서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담론에 반대하는 긴급성’을 주장했습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과, 특히 피해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1993년 연구 ‘세상의 무게’였지만, 그의 견해는 아마도 그의 논문에서 더 솔직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세상의 무게’는 프랑스 정치의 지배적인 추세에 대한 무거운 과학적 도전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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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회학자 팀작업이었기 때문에 부르디외의 협력적 성격을 보여주며, 그는 1993년에도 여전히 대중 지식인이라는 범주로 singled out구별되는 것을 꺼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판적 사회학자로서의 부르디외의 활동은 그를 대중 지식인으로 집단적 투쟁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그의 "사회적 삶에 대한 구성주의적 관점"을 충족시켰습니다. 그는 파업과 집회를 조직하는 공개적인 행동을 통해 미디어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많은 책은 더욱 대중화되었습니다. 비판적 사회학자와 대중 지식인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학계 외부의 대중 미디어 리소스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부르디외가 후기 저술에서 그러한 개인에 대해 경고의 말을 던졌고, 그들이 학계에 가져올 수 있는 원치 않는 요소에 대해 "트로이 목마와 같다"고 묘사하며 '대중 지식인'의 어려운 위치를 경계하며, 그것이 과학과 학문의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어떤 조건이 특정 지식인을 대중 지식인으로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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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의 내용 – Content of Distinction,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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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라 디스턴시용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1979)는 저자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수행한 사회학적 관점에서 취향과 생활 방식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문화의 현황에 관한 사회학적 보고서입니다. 영문판 ‘구별 짓기(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1984)’는 1984년에 출판되었고, 1998년에 국제사회학협회는 ‘구별짓기(Distinction)’를 20세기에 출판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1939)’과 피터 L. 버거와 토마스 룩만의 ‘현실의 사회적 구성: 지식 사회학 논문 (1966)’ 등 중요한 사회학 서적 10권 중 한권으로 선정했습니다. 취향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으로서, ‘구별짓기(Distinction)’는 교육과 지성, 말투와 옷차림 스타일 등 많은 문화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에서 좋은 취향을 구성하는 뚜렷한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참여한다고 제안합니다. 상황에 따라, 문화적 자본이 적은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취향, 정의, 그에 따른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구분, 그리고 경제적 자본,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의 유형의 사회적 전환에 대한 제한을 자연스럽고 합법적 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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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습관 (정신적 태도, 개인적 습관, 기술)의 한계로 인해 만들어진 사회적 불평등은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을 지배계급보다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예술 작품의 미학을 묘사하고, 감상하고, 즐기는 데 필요한 우수한 교육(문화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물이 실용적인 오락과 정신적 오락으로서 기능을 충족하기를 기대하는 반면', 중산층과 상류층 사람들은 미적 감상의 시선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서 오브제를 수동적으로 즐깁니다.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취향의 수용은 사회계급 간의 상징적 폭력의 한 유형으로, 지배계급이 사회 전체에 좋은 취향의 규범을 정의하고, 부과하고, 지지할 수 있게 해주는 권력 차이 에서 드러납니다. 따라서 취향의 구별을 자연스러워지게 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잘못 표현하는 것은 지배계급에게 그들만의 세계를 정의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을 거부합니다. 게다가 지배계급이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에 대한 그들만의 정의를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미학'은 지배계급의 지배적 미학의 용어로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해야 하는 지배된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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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Distinction)’는8개의 장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프랑스가 대혁명을 거친 후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귀족적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총체적인 비판을 가합니다. 2장과 3장에서는 사회변동의 방법론을 설명하고, 사회학에서 일상세계를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와 구체적인 문화분석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별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대사회에서 계급의 위치와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고 있는 5, 6, 7장의 계급론입니다. 5장은 지배계급론, 6장은 중간계급론, 7장은 피지배계급론입니다. 8장은 문화분석의 사례를 정치적 영역에 적용한 경우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 예컨대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경우가 현대 정치에서 대단히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부르디외의 해석은 큰 실마리를 줍니다. ‘구별짓기’의 마지막 결론 부분은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많아 대단히 전문적 지식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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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결론을 1장과 연결지어 해석해보면, 결국 프랑스가 자유·평등·박애를 기본이념으로 하여 혁명을 이루어낸 후 지금까지 200년이 지났건만 현대사회가 과연 이러한 이념들을 제대로 실현했는가는 대단히 의문스러우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불평등 상태가 과거와는 달리 문화적 생활양식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과 습관을 지배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연유로 해서 현대사회의 권력관계가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주장하는 상징적 폭력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문화권력의 그물망에서 평등의 실체를 망각하고 계급적 불평등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르디외는 상대적 위치의 사회적 공간 내에서 사회적 행위자를 분류합니다. 이 공간은 두 개의 축을 따라 다차원 통계 분석을 통해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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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사회적 자본, 문화 자본, 경제적 자본 등 모든 자본을 합친 대리인이 소유한 전체 자본 규모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아래에서 위로 자랍니다. 두 번째 축은 문화자본과 행위자의 경제적 자본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 책에서 사회적 공간은 그것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 속성이 능동적 속성인 한, 힘의 장으로 정의됩니다. 이 저작에서 부르디외는 또한 그가 구별을 위한 투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약한 차이를 계층적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차이로 변형시키는 것을 정의합니다. 특정 사회 분야에서 행위자는 모순되는 두 가지 의도 사이에 끊임없이 끼어듭니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지만,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그 분야에서 배제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에이전트는 구별과 적합성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패션을 따르는 동시에 몇 가지 개인적인 손길로 자신을 차별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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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과 노동계급 사이의 음식과의 관계는 소비되는 음식과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 모두에서 몇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그러나 경제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자본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자본이 낮은 집단도 풍성한 음식으로 뭉칩니다. 거기에서 '음식'은 '훌륭한 음식'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음식의 양과 풍부함은 문화자본과 함께 증가합니다. 반대로 강력한 경제적 자본과 강력한 문화적 자본을 보유한 그룹은 더 훌륭하고 희귀하며 세련된 음식으로 차별화됩니다. 양보다 질이 좋고,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요리가 정통 가족 요리보다 선호됩니다. 실제로 노동자 하위계급이 수프, 소스가 있는 요리 냄비를 테이블 중앙에 놓고 모든 사람이 같은 국자를 사용하여 음식을 제공하는 곳에서는 같은 물질의 공유, 가족과의 통합을 불러일으킴으로서 음식단위를 통해 여러 번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상류계급은 구운 고기나 생선, 야채를 개별적으로 섭취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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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가족 단위나 손님과 함께하는 경우, 사회 계층에 따라 음식과의 관계가 달라지는데, 하위계급은 음식자체에 중점을 두며, 섭취한 영양가 있는 음식 자체가 흡수되어 몸에 힘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상류계급의 경우 음식보다는 형태에 중점을 둡니다. 개별 부분이 선호되고, 건강한 음식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체하며, 신체의 관점도 위생적입니다. 영양가가 풍부하다거나 음식의 많은 양은 상류계급에게는 저속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식사는 체계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질서와 편리함의 습관이 이 사교 행사에서도 전개됩니다.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멀어지고 그에 따라 자연 자체가 검열됩니다. 문화적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소음과 서두름은 절제를 위해 금지되고, 식사는 삶의 예술로 변모하며, 유용함에서 벗어나 무익함을 위해, 몸에서 벗어나 지성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성의 관점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지배계급에서 가정에 덜 얽매이게 되면서 여성은 지위가 변하고, 시간의 가치인 활동적인 여성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몇 시간의 노동이 필요한 요리를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지위를 상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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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가이자 자유주의자인 래리 포티스(Larry Portis)에 따르면, 부르디외는 50년 전에 에드먼드 고블로(Edmond Goblot)가 옹호했던 아이디어를 "통계 기법, 사진 문서, 인터뷰 및 다이어그램을 활용하여" 발전시켰습니다. 부르디외는 생산적 용도로 사용되는 특정 자산의 합계로 정의되는 자본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로이크 와칸트(Loïc Wacquant)’는 자본을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자본의 세 가지로 나눕니다.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은 역량, 기술, 자격 등과 같은 자산을 보유한 자는 문화적 권위를 동원할 수 있고, 또한 오인과 상징적 폭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 계층의 아이들은 중산층 동료들의 교육적 성공을 항상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종종 계급적 불평등을 근면이나 '천부적' 능력의 결과로 여깁니다. 이 과정의 핵심 부분은 사람들의 억양같은 상징적 또는 경제적 유산을 대학 교육같은 문화적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 경제자본에 대한 대립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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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문화자본을 주로 보유한 사람들과 경제자본을 주로 보유한 사람들 간의 갈등은 예술과 사업이라는 대립되는 사회적 분야에서 표현됩니다. 예술 분야와 관련된 문화 분야는 역사적으로 자율성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는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다소 달성되었습니다. 자율적인 예술 분야는 "거꾸로 뒤집힌 경제 세계"로 요약되며 경제자본과 문화자본 간의 대립을 강조합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영향력 있는 지인과 제도화된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소유함으로써 개인이나 집단에 발생하는 실제적이든 가상적이든 이득 자원의 합계입니다." 개인이 그러한 사회적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부르디외에 따르면 시간이 걸립니다. 일부 가족의 경우 문화적 자본은 문화적 투자 전략을 채택하고 자녀에게 전수함에 따라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됩니다. 이를 통해 자녀는 교육을 통해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 얻고 동일한 가치를 자녀에게 전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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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가족의 개인은 문화적 자본를 얻어 다른 집단에 비해 고유한 이점을 얻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회 계층의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큰 차이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한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일정 수준의 존경과 지위를 얻음으로써 재정적 자본의 부족을 보상할 수 있게 합니다. 부르디외는 개인이 정치나 다른 수단을 통해 사회에서 권력과 지위를 추구할 때 문화적 자본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르디외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적 자본과 함께 사회적, 문화적 자본은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불평등에 기여합니다. 여기에 부르디외는 네 번째인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을 첨부하여 사람들이 자본을 인식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명성, 명예, 관심같은 형태의 자본의 효과를 나타냅니다. 상징적 자본폭력은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개인의 행동 양식과 인지 구조에 내재되어 있으며 사회 질서의 합법성이라는 유령을 부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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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에 따르면 교육적 성공은 걸음걸이, 복장 또는 악센트와 같은 명백히 비학업적 특징까지 확장되는 광범위한 문화적 행동을 수반합니다.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은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행동을 배웠습니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배경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은 교사들의 기대 패턴에 겉보기에 '편안하게' 부합합니다. 그들은 '순종적'입니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존재로 발견되며,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둘 다 양육에서 지시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편안함' 또는 '자연스러운' 능력, 즉 구별을 사실상 부모의 큰 사회적 노동의 산물로 간주합니다. 이 교육은 자녀들에게 교육 시스템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태도와 사고방식을 갖추게 하고, 나아가 부모의 계층적 지위를 더 넓은 사회 시스템 에서 재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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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언어(Language)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여깁니다. 한 지역에서 다른 방언을 사용하면 개인의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까지 방언의 차이는 개인의 추정된 사회적 지위를 직접적으로 반영했습니다. 농민과 하층 계급은 지역 방언을 사용했지만, 귀족과 상류 계층만이 공식 프랑스어에 능통했습니다. 악센트는 인구 내의 분류 및 권위에 대한 지역의 내부 갈등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특징이 권력의 표시로 인정되고 주목되기 때문에 그것은 권력의 메커니즘이 됩니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 (Distinction)’에서 미적 취향에 기반한 사회적 계층화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부르디외는 누군가가 세상에 자신의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지 선택하는지, 즉 자신의 미적 성향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고 하위 집단과 거리를 둔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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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르디외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이러한 성향을 내면화하고, 이러한 성향이 젊은이들을 적절한 사회적 위치, 자신에게 적합한 행동으로 이끌고, 다른 행동에 대한 혐오감을 키운다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사회계급 정체성의 발달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내리는 미적 선택은 또한 사회계급 파벌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사회계급 구성원을 서로 그리고 다른 사회계급과 구별짓게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진 문화적 자본, 특정 요리, 특정 음악 유형, 특정 예술 취향에 대한 선입견은 아이들을 사회계급과 사회계급 위계 내에서의 자신의 계급위치로 구별짓게합니다. 사회계급으로의 이러한 자기 선택은 아이가 주어진 사회계급에 특유한 사물과 행동에 대한 선호도를 내면화하고, 다른 사회계급에 대한 문화적 혐오감, 즉 "공포에 의해 유발된 혐오감 또는 다른 사람들의 나쁜 취향에 대한 본능적인 메스꺼운 편협함을 내면화함으로써 구별을 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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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이념을 통해 전달된 지배계급의 문화적 취향은 중산층과 노동계급에게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게 합니다. 따라서 좋은 취향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패권의 한 예이며, 지배계급이 사회적 재생산과 지배계급으로서의 그들 자신의 문화적 재생산을 보장하는 사회적 자본,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등 자본 유형을 소유함으로써 사회적 통제를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문화적 취향을 배우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취향은 그들의 성격에 내재화되고 주어진 사회계급에서의 자신의 기원을 확인하는데, 이는 상향적 사회적 이동성을 방해할 수도 있고 방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방법으로서 부르디외와 통계학자 ‘살라흐 부헤자(Salah Bouhedja)’는 "이러한 상관 관계에서 기록된 효과에 특유한 힘과 형태의 진정한 원리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의 완전한 시스템"에 대한 다중 대응 분석의 일부로 기하학적 데이터 분석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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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두 조사의 데이터에 대한 대응 분석을 사용했습니다. 부르디외는 "통계적으로 가장 어린 시절부터 높거나 낮은 소득을 소유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조건에 맞게 조정된 취향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 사회적 조건의 모든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음식, 문화 및 표현에 대한 취향은 소비 추세가 사회에서 개인의 위치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계층의 지표가 됩니다. 지배계급은 각 계층에 대한 자체적인 미적 기준을 개발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지위에 따른 다양한 계층의 관심사는 각 계층이 "미용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또는 재단사가 있는 것처럼 자체적인 예술가와 철학자, 신문 및 비평가를 갖도록"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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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계급 구분 이론 – Theory of Capital and Class Disti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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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적 자본과 경제적 자본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예술의 생산과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은 "예술과 문화의 세계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잡은 것과 관련된 성향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단과 여가 시간도 전제합니다." 그러나 선호도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없이 부르디외는 "응답자는 합법적인 문화에 대한 지위에 따른 친숙함을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취향은 일종의 사회적 지향, 즉 '자신의 장소에 대한 감각'으로 기능하여 주어진 사회적 공간의 거주자들을 그들의 특성에 맞는 사회적 위치와 그 위치의 거주자들에게 적합한 관행이나 상품으로 안내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습득 방식은 선호도의 본질에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인지 구조는 내면화되고 '구체화된' 사회적 구조"로, 개인에게 자연스러운 실체가 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취향은 부자연스럽고 거부되는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한 공포나 본능적인 메스꺼운 불관용으로 인해 혐오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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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 자신은 계급 구분과 선호도가 다음과 같다고 믿습니다. 가구, 의복, 요리와 같은 일상 생활의 평범한 선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교육 시스템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깊이 뿌리 박힌 오랜 성향을 특히 잘 드러내기 때문에 마치 맨살의 취향으로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르디외는 "유아 학습의 가장 강력하고 지울 수 없는 표시"가 아마도 음식 취향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르디외는 특별한 경우에 제공되는 식사가 "생활 방식을 '과시하는' 데 채택된 자기 표현 방식을 나타내는 흥미로운 지표"로 가구도 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그들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연관된 계층의 것과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하위계층의 어린이는 저녁 식사 구성에서 "싸고 기름진 살찌는 음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며,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음식과는 대조적으로 "양이 많고 기름진" 음식을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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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잠재적 결과는 사회 계층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날씬함을 위한 절제의 윤리"인 부르디외의 주장을 강화할 것이며, 이는 하위 계층의 특징인 "사교적 방종"과 대조됩니다. 사치 또는 자유의 취향과 필수품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 계층 간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사회적 기원이 이러한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교육적 자본과 경제적 자본을 모두 능가합니다. 입증 가능하게도, 동등한 수준의 교육적 자본 에서 사회적 기원은 이러한 성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 있는 요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본능적 서사가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회적 기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노동 분업 전체에서 "경제적 제약은 지출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도 완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관찰은 경제적 자본보다 사회적 기원이 미적 선호도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강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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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소비 패턴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부르디외의 냉철한 구별짓기 분석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옹색한 비판이 존재합니다. 첫째, 그의 통계적 연구 수행에 관한 방법론적, 인식론적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디외가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비참함에 관한 비판. 노동계급을 결핍으로만 보고, 이들이 문화적 자율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특히 청년을 통한 사회화 조건에 관한 새로운 개념은 부르디외가 묘사한 계급 아비투스의 동질적이고 안정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착취받는 하위계층이 자신을 착취하는 극우보수파를 맹신하며 극우화되어가는 미국과 한국을 보면서 부르디외의 냉철한 구별짓기를 비판하는 논리들이 얼마나 옹색한지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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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의 ‘구별짓기 (Distinction)’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양분이 풍부한 많은 양의 음식은 천박한것으로, 유기농등 건강하고 영양분이 최소화된 음식이 우수한 것으로,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을 잘 따라야 하며, 마치 자신이 상류 귀족계급인양 살아야 하는 뿌띠부르조아로 쇄뇌되어 자유, 평등, 박애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정신이 자신이 부르조아 상류계급으로 거듭날수 있다는 평등의 오해로 자신을 착취하는 극우보수를 광신하는 결과를 가져와 수렁으로 빠진다는 사실을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의 ‘구별짓기 (Distinction)’는 알게 합니다. 또한, 착취받는 하위계층이 자신을 착취하는 극우보수파를 맹신하며 극우화되어가는 미국과 한국을 보면서 부르디외의 냉철한 구별짓기를 비판하는 논리들이 얼마나 옹색한지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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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선 중 59번째 책 인문학 부문 29번째 책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이1979년에 출간한 ‘구별짓기 (Distinction)’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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