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TV 방송국 History Channel 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콰이강의 다리를 포함한 버마 철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포로들의 이야기를 방송하였습니다. 동남아에서 일본군의 전쟁 포로가 되었던 유럽군인들의 증언이 많앗던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그 내용은 우리네 부모님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었던 한국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만행을 넘어서고 있엇습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도 그들이 저지른 온갖 잔혹한 일들을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살아 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답니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잠시 틀었던 TV방송 인지라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자 막 끄려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들린 “Korean”이란 단어에 갑자기 머리끝이 섬뜩하여 눈과 귀가 고정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전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역사의 한자락이었습니다. 무려 25만명이나 되는 유럽군인들이 동남아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 몇 만명이 버마 철로 건설현장에 끌려가 노역을 하였답니다. 많은 포로들이 하루에 1000칼로리도 안되는 쌀죽으로 연명을 하며 영양 부족으로. 그리고 말라리아와 콜렐라와 같은 풍토병으로. 또 탈출하려 시도했다는 등의 죄목으로 총살당하여 일부 부대는 전체 포로인원의 47%까지 죽어 나갔다는군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포로들을 하루에 2시간씩 재우며 일이 좀 늦어지면 대나무로 구타하고 아주 쉽게 총살했답니다. 대나무로 얼기 설기 지은 포로들의 잠자리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쏟아지는 몬순 소나기를 피할수 없었답니다.
이 포로들을 담당하는 일본군 간수들은 일본 정예군이 아니었다는군요. Second Ranked Troup 이라 표현할걸 보니 군대로 치면 질이 떨어지는 부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부대에는 한국에서 징용당해온 한국인들이 제법 있엇다는군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혹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일본군 간수가 바로 일본군으로 징용나온 한국사람 이었답니다. 포로들이 Mr. Blood 라고 불렀다 하니 제게는 ‘흡혈귀’쯤으로 이해가 되는 군요. 그 Mr. Blood 는 일본이 패전을 하자마자 포로들에게 잡혀서 교수형에 쳐해졌다는 군요.
살아오면서 사소한 일상들 조차도 쉽게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해자가 쉽게도 피해자로 둔갑되기도 하지요. 한국사람들은 일본이라고 하면 분노가 삭혀질 수 없는 피해자로 인식되어야만 하는줄 알고 살았답니다.
90의 나이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 살아남은 그 네델란드 노인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일본군으로 징용나온 그 한국인 간수가 자행했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증언하는 그 방송 내용을 보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수치스러워움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침략 만행에 피해자이면서 그 만행에 협력한 한국인들의 심리연구와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떠한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랜세월이 지났지만 우리가 무슨 이유로 친일파를 척결하려하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저만 모르고 있었나요? 잘 모르셨다면 우리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