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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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 1080

류자흔(刘慈欣 Liu Cixin, 1963.6.23.~)의 San-Ti 문제(三体問題, 三體問題, The Three-Body Problem)

[[1980년 5월부터 5개월간 전두환 살인마의 보안대에서 받았던 그 잔인한 고문을 떠올리면, 내가 예원지에(豫文治) 박사와 같은 처지였다면 나역시 같은 짓을 했을것 같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 [1부작 - 류자흔(刘慈欣 Liu Cixin, 1963.6.23.~)의 San-Ti 문제(三体問題, 三體問題, The Three-Body Problem)] . 얼마전 네플렉스 초기화면에 떠 있어 보게된 “The Three-Body Problem”은 원 소설에는 중간에 나오는 1967년부터 1977년까지 있었던 문화대혁명 중에 칭화대학교 교수인 물리학자 예저타이(Ye Zhetai)를 어린 칭화고교 홍의병들이 반동으로 몰아 연단에서 인민재판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같은 물리학자였던 부인 샤오린(Shao Lin)은..

023. 6 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않된다!

https://youtu.be/3y7EV_PXMHE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 교전이 이어진 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사실상 3년 1개월(1,129일)간이며, 현재까지 명목상으로는 73년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역이용해, 극동아시아의 미소 냉전 사이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 의도가 있어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때문에 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 6·25 전쟁에서 각각 통일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북한은 이후 한반도의 정통 국가..

백선엽 백인엽 형제

어린 시절 원예 농장을 하던 부친은 용산 중고 교정 조경을 하기도 했는데 백선엽 백인엽 형제가 하던 인천 선인 학교 조경도 했는데 . 백씨형제가 얼렁뚱땅 조경 비용을 안 줘서 부친이 손해를 엄청 보았던 기억이 있다. . 그때 부친의 조경 일에 조막 손이라도 도와볼 요량으로 선인학교를 갔는데 기차 길에서부터 늘어선 선인학교 선도부들이 일반학생들을 이트집 저트집으로 줘패는 모습에 기겁을 했다. . 또 학교에서는 학생들 공부는 안시키고 벽돌을 이고지고 학교건물짖는 2층3층으로 잡부로 학생들을 부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공사를 맡았던 목수 한분은 칼을 몸에 품고 백선엽이 동생 백인엽에게 찾아가 안주고 땡가 먹으려던 공사비를 일부라도 받았다고 일하던 어른들이 이야기하며 백선엽 백인엽 형제의 악날함을 토로하던..

캐나다 장로교회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견되었던 선교사들은 함경도와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의 선교를 담당했습니다. 1919년 3.1운동때는 캐나다 선교사들만이 3.1운동을 지원했습니다. 평안도와 남한지역 선교를 담당했던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은 일본의 식민지를 나눠먹기식으로 용인했던 미국과 영국의 입장에 따라 조선인의 3.1운동을 고의적으로 방해했고 정치와 종교분리를 강요했으며 예수믿고 천당가라는 기복적 기독교로 변질시켰습니다. 캐나다 장로교는 민족독립운동의 반석을 만든 대자유(大自由)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선생의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와 한신대학교(韓神大學校)로 이어지는 한국기독교장로회(韓國基督教長老會)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전쟁없는 평화공전을 지속시킬 지도자가 절실한 지구촌]

전쟁을 일으키면 박살내던 어쩌던 한반도는 쑥대박 날건 자명하다. 오바마에 이어 힐러리가 북폭을 예고하고 워싱톤과 서울에서 전쟁시물레이션 세미나를 연일 개최하며 북폭분위기를 고조시킬때 많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가슴을 조렸는가를 기억해보자. 북폭을 무산시킨 막나니 트럼프의 집권을 얼마나 고마워했는가. 정신 좀 차리자. 이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북한과 미국의 핵전쟁이 불가피하다는건 어린아이조차 아는 상식이 되었다. 한반도의 폭망과 더불어 주변국 더나아가 지구의 지축은 더 기울어져 지구종말을 촉진시킬 일이다. 한국을 떠나 작금의 세계 지도자들은 전쟁없는 평화공전을 지속시키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걸 명심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냉전시대의 꼴통 지도자들이 사멸해야 될 시기라는걸 명심할때이다..

Ashkenazi Jews (아슈케나즈 유대인)

백인의 인종적 특성을 보이는 Ashkenazi Jews (아슈케나즈 유대인)이 가짜유대인이고 엉뚱한 민족의 음모 (유전자분석을 통해 거짓음모 증명됨)라는 주장에 대하여 - Diaspora (디아스포라)는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천년전에 박해를 받아 나라가 없어지고 뿔뿔이 타국을 떠돌아야 하는 디아스포라에 놓여졌습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민족과 나라가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사라져갔습니다. 잘 알다시피 동양인종은 유전적으로 열성이라 다른 인종과 교배되면 동양인종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른인종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 한국도 나라가 개방되자 한국말 잘하는 미국인들이 몰려와 방송연예인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한인2세 백인들이 마치 한인과 무관한 백인인양 국민을 ..

Americans tell what it’s like living in South Korea as expats

Moving abroad is always a challenge, and a specially difficult one when the country you happen to go to is oh-so completely different from what you’ve known your entire life. This is certainly the reality of most American expats who have settled in South Korea. . Don’t flaunt your feet . There are lots of cultural standards that you will need to learn if you move to South Korea. While you’ll eve..

유대민족과 한국민족

Oppenheimer (오펜하이머) 영화에서 시작한 유태인에 대한 친구들과의 대화가 깊고 심도있게 있엇습니다. 그 덕에 유태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일본통치에서 벗어나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시작된건 오펜하이머의 핵폭탄 덕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유대인들은 천년간 나라를 잃고 떠돌다가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은 나라가 아니었지만 유태인은 나라를 만들었고 팔레스타인은 나라를 만들지 못해 이게 중동 분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에 대해 한국의 지식인 조차 우리의 고구려를 들먹이며 그런이유라면 우리의 고토를 찾자고 해도 될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적 성찰이 부족한 말입니다. .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주이시 프로브롬(Jewish qu..

Oppenheimer (오펜하이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후 그덕에 일본이 항복했다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독일이 이미 항복했고 일본의 패망은 시간문제인데 핵폭의 실험대로 무고한 인명을 살생했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학자는 핵무기 경쟁으로 인한 핵폭발 실험등이 대재앙을 유발하는 지구 이상기온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 조금전 근처 에이엠시에서 아이맥스로 3시간짜리 오펜하이머를 보았습니다. 음식도 주문할수 있어서 점심겸 영화를 보았는데 좌석도 안락하고 편하게 누워서 볼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어 지루한 영화였다면 낮잠자기 좋았을 뻔 했습니다. . 이 영화는 세 개의 시간대에서 진행됩니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시간대, 1954년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후암동 관북학사 신우학사, 캐나다 선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

1950년 후암동 언덕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관북학사 초대사감을 한신대 3회 졸업생 난곡 조향록 (1920~2010) 목사가 맡아서 했었다. 김형숙 (1893~1961) 목사는 일제말기 함흥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을 도와서 협력하셨던 분이고 또 일제말기 캐나다 선교사가 한국에서 일본인들에게 추방되어 간 이후 그 선교부의 모든 재산과 선교사들의 가재도구까지 책임져서 보관하고 지켜 주었던 분이다. 8·15해방이 된 이후 캐나다 선교사들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김목사도 고당 조만식 (1883~1950) 선생이 이끄셨던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도당위원장까지 맡아 반공투쟁을 하다가 결국 남하하고 만 것이다. 서울에서 옛 친구들인 캐나다 선교사들을 맞아 이북에서 남하한 학생들을 도와주려고 캐나다 선교부의..

보빙사절의 보스톤· 뉴욕 시찰과 미 조야의 환영

제2장 보빙사의 미동부 시찰· 환대와 서구문명 수용의 두 유형 제2장 보빙사의 미동부 시찰· 환대와 서구문명 수용의 두 유형 1) 보빙사절의 보스톤· 뉴욕 시찰과 미 조야의 환영 국서 제정식이 끝난 후 사절일행은 뉴욕시와 센트럴 파크의 관광을 하고, 해군장관 체들러의 특별배려로 폴 리버 선 (Fall Rive Line) 기선회사의 브리스톨 (Bristol)호를 타고 오후 보스톤으로 떠났다. 이들의 보스턴 방문은 미국문화의 발상지와 미국산업의 시찰이 주목적이었다. 사절은 메이슨과 포크의 안내로 밤새도록 대서양 연안을 항행하여 9월 19일 새벽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외구박람협의회의 사무총장 노튼(C.B. Norton) 장군과 벤담 호텔 주인 월코트 (J.W. Wolcott) 의 영접을 받았다. (Boston..

상항한국인교회 중심 국민회운동 주도한 이대위

3) 상항한국인교회를 중심으로 민족목회와 국민회운동을 주도한 이대위 1903년 하와이 노동이민이 아닌 선교와 유학으로 도미하여 건전한 기독교 신앙과 민족정신으로 목회를 하며 반일구국운동을 전개한 삼총사와도 같은 세 젊은이가 윤병구, 신흥우와 이대위다. 이들은 1903년 다 각기 하와이와 대륙에 도착하던 초기부터 교회와 한인의 애국단체를 형성하며 ‘민족목회’라 부를만큼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특히 이대위는 흔히 재미사회에서 4명의 지도자로 내세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 등에 못지 않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연합감리교회와 대한인국민회 등을 통해 눈부신 활약을 하였기에 저자는 ‘미국속의 한국인’에서 이대위 목사와 그의 국민회에서의 활약을 극구 칭송한 최봉윤 교수와 함께 이대위를 제..

LA교회서 목회중심 민족운동 전개한 신흥우

L.A. 교회의 신흥우와 하와이 교회 민찬호의 목회를 중심한 민족운동 1898년 한국에서 의료선교를 하다 지병으로 일찍 사망한 셔만 (Dr. Harry Sherman)의 아내 프로렌스 셔만 (Florence Sherman)이 “한국에서 총명한 기독청년으로 한국의 희망’이라 일컬을 만한 출중한 인물을 눈여겨 보고, 그녀가 LA 최초감리교회의 전신인 ‘한국선교회’(Korea Mission)에서 활동하며 그를 미 대륙으로 초청한 젊은이가 바로 1903년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유학하여 온 신흥우다. 그는 17세던 1899년에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1년 독일어학교 재학시 학생회장으로서 개화사상과 독립의식을 고취하다가 투옥되고, 옥중에서 이승만, 성낙준, 양의종 등과 옥중학교를 개설하여 옥중의 재소..

초기 유학생들의 목회와 이승만 이대위

1905년 8월 일본 저지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난 윤병구와 이승만 이민 초기 유학생들의 목회와 이승만 이대위 하와이에 1903년 1월 정규 노동이민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던 이민시기에 정규 이민이 아닌 망명이나 유학 등의 목적으로 들어오는 동포들이 상당했다. 이민 초기 선교와 유학을 목적으로 1903년 윤병구, 신흥우, 이대위 등이 도미하고 1904년에는 이승만, 1905년엔 박용만, 민찬호, 정한경, 유일한, 그 외에도 신성구, 백일규, 이원익, 강영승. 강영대, 차의석, 송헌주. 임정구, 양주삼 등과 그 밖의 40명 정도나 되며 이들의 대학졸업율도 75%나 됐다. 이들 대부분은 한일합방으로 귀국하지 못하여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했다. (김원용, 재미한인 50년사 .p.36) 이들 중 상당수가 초기 ..

2008년 9월 2일, 125주년 재미한인의 날<재미한인이민사> 1883년, 고종이 보낸 보빙사절단 미국 도착일

재미한인이 기억할 두 날이 있다. 1902년 1월 13일 한인들이 노동 이민자로 미국의 하와이 섬에 처음 도착한 날이다. 게릭호를 타고 입항, 검역을 마치고 하와이 땅을 밟은 첫 한인들은 93명이었다.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숙원의 이민이 막혀버린 1905년까지 3년여에 걸쳐 입국한 한인 수는 65차의 선편으로 들어온 6.965명 이었다. 이들은 하와이의 여러 농장으로 나뉘어 뜨거운 뙤약 볕에서 고달픈 농장 노동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응당 기억할 이 날 재미동포들은 2003년 1월 13일을 전후하여 이민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고 미국 정부도 합께 축하해 주었다. 당연하고 경하할 일이었다. 또 하나는 1883년 9월 2일 한미수호조약과 미국의 푸트 주한미국전권공사를 한국에 파송한 답례로서, 고종이 민..

<제6장> 1886년 이후 재미한인의 잡다한 양상

이민 전기 1883년부터의 재미한인들 1) 도주망명 변수일행의 기구한 신세 1861년 역관과 의관의 중인 가문 변진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변수는 부친의 친구 시인이며 개화사상가인 강위에게 수학하며 김옥균과 교분을 맺는다. 한국은 1876년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일본의 국정을 살피며 차관도 얻으려 1881년 12월 김옥균을 파견하며 서광범 강위와 함께 변수도 대표단에 참여했다. 변수는 일본의 발전에 놀라며 특히 농업문제에 관심이 많아 실업학교에 입학 양잠술과 화학 등의 공부에 몰두했다.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의 여러 공장 시설을 시찰하며 뉴저지 뉴왁에 있는 죤커터쓰 John D. Cutters 견직공장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에, 뉴욕타임스 11/1..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2〉중인들이 쓰는 갓 쓰고 차관 임명장 받은 윤치호

월간조선 11 2015 MAGAZINE 글 : 윤경남 譯述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2〉 중인들이 쓰는 갓 쓰고 차관 임명장 받은 윤치호 尹慶男 ⊙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 거주. ⊙ 저서: 《부부의 십계명》 《노년학을 배웁시다》 《유니스의 지구촌 여행》 《성지의 향기(The Fragrance of the Holy Land)》 《고독》 《꿈꾸는 어른》(역서)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역서)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역술서) 《윤치호 일기 제4권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역술서). ⊙ 現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회원,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 1부 (1895~1896년)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1895년 3월에 일어난 일들 ● 윤치호는 부모님..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1〉“썩어빠진 조선사회에 넌더리가 난다”

개화기 선각자 尹致昊의 영문일기〈1〉 월간조선 0 2015 MAGAZINE 글 : 윤경남 譯述 [편집자 주]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애국가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尹致昊) 선생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맞춰 학계에서도 윤치호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윤치호가 일기로 기록한 1883~1943년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명예교수는, 윤치호 일기가 60년간 쓰였다는 점에서 예를 찾기 어려운 것일 뿐만 아니라 각 시기마다 국가적, 사회적 현안에 대한 소견이 실려 있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월간조선》은 윤치호 영문 일기의 사료적 가치에 주목, 그의 친일 시비와는 별개라는 인식하에 그의 일기를 국..

윤치호 영문일기 2편 에모리대학 소장본 H

YUN, CH‘I-HO, 1865-1945. Yun Ch‘i-ho papers, 1883-1943 Emory University Stuart A. Rose Manuscript, Archives, and Rare Book Library Atlanta, GA 30322 404-727-6887 rose.library@emory.edu Digital Material Available in this Collection Descriptive Summary Creator: Yun, Ch‘i-ho, 1865-1945. Title: Yun Ch‘i-ho papers, 1883-1943 Call Number: Manuscript Collection No. 754 Extent: 10.75 linear ft. (21 bo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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