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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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55

원로 생태학자 고 김준호 서울대 명예교수 행장 (자서전)

2018년 4월 13일 작고하신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절친인 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 김준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1년 3개월 뒤인 2019년 7월 14일 작고하셨다.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故 김준호 명예교수는 공주사범대 교수를 지내다가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해 제자를 양성했다. 김준호 박사는 한국식물학회장과 한국생태학회장, 한국생물과학협회장, 한국환경교육협회 부회장, 환경운동연합 고문을 지냈다. ‘현대생태학’, ‘고급생태학’,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대통령 표창과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또 지난 2014년 평생 수집한 생태학 관련 문헌 22종 1485권을 국립생태원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곳에 생전에 김준..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10] 방원 이성찬 선생과 오지호 화백

삼가 오승우 화백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 김종필 국무총리가 만들었던 한국일요화가회의 지도교수였으며 목우회 회원이었던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이 2023년 4월 3일 오후 병환으로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이제야 접했습니다. . 193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 오승우 화백은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이며, 2006년 별세한 고 오승윤(1939~2006) 화백의 형이자 5년전 작고하신 제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친구입니다. 고 오화백의 큰 아들은 서양화가 오병욱 동국대 교수로 제 둘째형과 친구입니다. 둘째 아들은 평창무이예술관장인 오상욱 조각가입니다.3째아들은 저와 동갑으로 서울대 농대를 나와 미국유학하여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로 있는 오병하..

어머니 윤선 이춘연 여사 전여고(1회) 시절 사진들 ...

원래 내 모친은 음력 1932년 6월 10일 생이다. 그런데 호적에는 1933년 10월 10일로 신고가 되었다고 한다. 전주여고가 1926년 4년제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51년 9월 25일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정식 전주여자고등학교로 학제가 변했다. 그래서 1952년(단기4265년) 3월 25일 전주여자고등학교 3년제가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때 졸업을 하셨다. 동기동창으로는 가수 이문세 선생의 장모이신 고 #육완순(陸完順, 1933년 6월 16일~2021년 7월 23일) 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서양화가 오승우 선생 부인이신 고 정금자(1932~2020년 8월 2일) 여사, 이화여대 통일교 결혼식 사건의 주역으로 숙명여대로 편입해 졸업하여 평생 문선명 목사를 도와 ..

[滿洲(만주) 吉林省(길림성) 前郭期(전곽기)]

내 조부 고 이성구 선생은 8살(1915년) 때 할아버지(성우 이명직 대감)가 고종 측근 제거할 때 일제에 독살당하고 11살(1919년) 때 아버지(이철규 금광국기수, 평북 동 면장, 충주문성금광주)가 고종 독살 의문에 항의하자 일본 헌병에 척살 당하고 혈혈단신 수원태광보통학교와 수원농림을 졸업하고 만주에서 미곡수집회사에 근무하다 만주국이 들어서자 만주국 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만주 길림 전곽기에서 미곡검사관으로 근무했다. . 이곳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를 오갈 때 안전한 은신처와 군자금을 조달했다. 지운 김철수 선생은 이곳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해방 후 지운 김철수 선생은 창경궁 식물원을 책임지고 있던 그 아들인 방원 이성찬 선생..

[昌德宮 祕苑과 昌慶宮 植物園]

내 父親 芳園 李盛粲 先生이 昌慶宮 植物園에 勤務할 때 寫眞들이 書畫보따리 屬에서 나왔다. 昌德宮 祕苑은 一般人이 함부로 들락날락하지 못할 때다. 昌慶宮 植物園에 勤務한 㥁으로 祕苑 이곳저곳에서 恨 것 멋을 내어 寫眞으로 남기셨나 본데 寫眞 크기가 旅券 寫眞 크기 程度로 작고 빛이 바랬다. . 元來 昌慶宮 植物園에 있는 雄壯한 琉璃 溫室은 日帝强占期 때 有名한 獨逸의 建築家가 設計하고 建築했다고 한다. 解放後 美軍政 時節에 琉璃가 많이 깨지고 構造物이 망가졌다. 어찌 補修해야 할지 苦悶을 했는데 芳園 先生이 혼자서 原來 模襲으로 감쪽같이 補修했다고 한다. . 그 以後로 이곳저곳의 琉璃 溫室은 芳園 先生이 다 施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에 外國 孫吟이 오면 꼭 구경시키는 名所가 되었고 다들 韓國에도 西歐..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의 서화 작품

一言不中千語無用 (일언부중천어무용) - 한 마디의 간단한 말이 (이치理致와 도리道理에) 맞지(적중的中,適中하지) 않으면 천 가지(수없이 많은) 말이 소용(所用,쓸모,효과,믿음)이 없게 된다. 즉 한 마디 말이 맞지(옳지) 않으면 천 가지 말이 쓸데가(소용所用이) 없는 것이다. . 명심보감 언어편에 나오는 말이다. 족자로 되어있는 월남 이상재 할아버지의 서화다. 난닝구 바람의 내 부친 방원 선생이 생전 거실에 걸어놓고 감상하던 작품 중에 하나다. 필경 두형이나 누나 또는 여동생이 챙겨서 잘 보관할 것이다. 집안 한산이문의 어르신의 서화니 그분의 가르침을 명심하고자 챙겼을거다. . 마침 내부친 서화보따리 속에 사진이 있어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자 이곳에 소개를 한다. 늘 집에서도 의복을 잘 가추고 계셨는데 날..

[지운 선생과 방원 선생]

1945년 해방되던 해 1927년생 내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1927~2018) 선생은 경성원예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왕직에서 운영하던 창경궁 식물원 원장으로 취직했다. 말이 원장이지 혼자 서구식 유리온실을 관리하는 막일꾼이었을 거다. 만 18세 청년으로 그 창경궁 식물원은 사회에 첫걸음을 걷는 직업이었다. 1893년생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은 해방을 맞아 공주감옥에서 출옥하여 서울에서 장안파들과 남북으로 갈려질 조국의 운명에 노심초사하며 좌우익을 설득하여 분단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서로 우두머리가 되어야겠다고 치사하고 야비한 음모나 꾸미는 좌우익 정치가들을 대하며 얼마나 골머리를 썩여야 했을까? 지운 선생에게 창경궁 식물원은 그나마 머리를 식힐 곳..

방원 이성찬 선생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모친 친구분 서명진 여사 2019년 8월 28일 일산동국대병원 통일교식 장례 모습

1955년 이화여대에서는 재학중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퇴학시켰다. 당시 통일교는 결혼을 세례와 동일시 하여 믿음의 척도로 삼았고 재학중 결혼은 학칙에 위배된다며 퇴학시키는 사건이 언론에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모친의 전주여고 동기인 사길자 여사와 서명진 여사가 퇴학을 당하고 숙대로 편입하였다. 그분중에 서명진 여사가 2019년 8월 28일 요단강을 건너셨다. 통일교 성가정 출신답게 통일교식으로 장례예식이 치루어졌다. -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모친 친구분 사길자 여사 2019년 8월 23일 아산병원 통일교식 장례 모습

1955년 이화여대에서는 재학중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퇴학시켰다. 당시 통일교는 결혼을 세례와 동일시 하여 믿음의 척도로 삼았고 재학중 결혼은 학칙에 위배된다며 퇴학시키는 사건이 언론에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모친의 전주여고 동기인 사길자 여사와 서명진 여사가 퇴학을 당하고 숙대로 편입하였다. 그분중에 사길자 여사가 2019년 8월 23일 요단강을 건너셨다. 통일교 성가정 출신답게 통일교식으로 장례예식이 치루어졌다. 일찍 작고하신 부군 유효원 선생은 통일교 교전인 원리강론의 기초를 만든 분으로 알려져있다. - 고인의 명복을 빈다.

[6.25 피난민 1호 이승만]

1950년 6·25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피난민 1호 이승만이 전라도로 토낀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대구 거처 부산 가는 게 경상도에 빨갱이가 많다고 무장게릴라에 잡힐 수 있을지 모르니 사람들이 순박한 전라도로 피난 여정을 잡아 이리 거처 목포로 가서 배 타고 부산으로 도망갔다. 창경원 식물원 주임 겸 경무대 온실장을 하던 내 부친 방원선생도 귀한 식물들과 이승만이 좋아하는 품종들을 그 피난 기차 뒤편에 싣고서 대구갔다가 대전갔다가 수원으로 왔다가 다시 대전까지 따라 갔다가 각자 알아서 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전주에다가 피난 식물원을 꾸렸다. 월급도 끈겨서 전북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며 피난 식물원을 지켰다. 그래서 내 부친 방원선생은 전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중공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참전하여 ..

부천 별 사진관과 작가 김수열 선생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중에 부천 별 사진관에서 모친 이춘연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부천 33사단 입구 쪽에 있던 별 사진관은 동아 사진 대전에 대상을 받은 김수열 선생이 운영하던 사진관입니다. 김수열 선생이 38년생으로 27년생인 제 부친보다 11살 아래였지만 친구처럼 친하게 어울려 지내셨습니다. 그러다 제 대학 4학년 때인가 1983년에 김수열 선생이 암으로 일찍 작고 하셨습니다. 생전에 소명학교 국어선생을 하신 구자룡 선생이 대부를 서고 천주교 영세를 받아 영세명이 요셉이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부인을 찍은 사진이 그해 동아 사진 대전에 대상을 차지하여 더 서글펐던 그분의 죽음이었습니다. 따님 김광미(Gwang Mi Kim) 씨는 서양화가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 +++ 김수열 선생..

방원 이성찬 선생이 총괄 진행한 꽃씨 날리기 행사 - 1962년 4월 8일 14시

부친 방원(芳園) 선생의 유품 중에 나온 포스터입니다. 방원 선생은 수많은 사회활동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활동 중의 하나는 1962년 4월 8일 국제친선 꽃씨협회 꽃클럽 주최로 한국 최초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꽃씨 날리기 행사를 주도적으로 개..

함경남도 안변군 석왕사면 상용운리 출신 장준용 선생

함경남도 안변군 석왕사면 상용운리 출신 장준용(1927.6.25생~?) 선생이나 그 후손분을 찾습니다. .6.25 난리통에 친구인 제 부친 고 방원 이성찬 선생님께 짐을 맡기고 가신후 생사를 알수없는 장준용 선생님의 경성전기학교 졸업장과 재학증명서 1장, 졸업증명서 2장, 3학년, 4학년, 5학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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