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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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56

2차진술서 - [이세종 열사 사망 사건에 대한 참고인 우편 2차진술서]

문 : 선생님께서는 지난 번 회신해 주신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요? . 답 : 제가 겪었던 당시 상황을 은미희 작가에게 설명해주었고 작가가 소설구성과 문장으로 작품화한 단편소설 '활착'의 일부입니다. 제 진술은 은미희 작가의 소설로 대신합니다. 소설속 내용은 한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 그 내용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한 ‘문학들 2021. 여름 제64호’ 문학잡지에 ‘활착’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단편소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참고: https://yellowroses.tistory.com/15855314) . 문 : 이세종을 처음 목격한 장소(선생님의 지점과 이세종의 지점을 나누어서 표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는 어디 인가요? . 답 : 1980년 5월 18일 01:30경, 그날도 저는 늘 하던 대..

[이세종 열사 사망 사건에 대한 참고인 우편 진술서]

이 진술서는 은미희 소설가의 단편소설 '활착'에서 인용했습니다. .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 - https://yellowroses.tistory.com/m/15855314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이 단편소설 '활착'은 '문학들 2021.여름 제64호'이라는 문학잡지에 실린 단편소설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우수문학잡지이고, 시, 소설, 동화, 평론 등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yellowroses.tistory.com. +++ 김상욱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요청하신 진술서를 간인하고 서명하여 pdf 화일로 만들어 보냅니다. 더 필요하거나 보충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여 답하겠습니다. . 동기 김차순이 당시 방송부장을 하던 이완배 선배에게 연락했더니..

이세종 (Lee Se-Jong) 열사

이 진술서는 은미희 소설가의 단편소설 '활착'에서 인용했습니다. .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 - https://yellowroses.tistory.com/m/15855314 [은미희 신작 단편소설 '활착']이 단편소설 '활착'은 '문학들 2021.여름 제64호'이라는 문학잡지에 실린 단편소설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우수문학잡지이고, 시, 소설, 동화, 평론 등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yellowroses.tistory.com. +++ 문 : 선생님께서는 1980년 5월 18일 당시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1학년 학생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는데 무슨 이유로 그 날 학생회관 어디에 계셨나요? You participated in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on Ma..

[金盤露積珠襦重 玉佩風生翠帶長]

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 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 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 부친 방..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101~125

방원 선생의 유품 보따리 중 지운 선생의 서화중에 세월의 부침에 헤지고 찢어진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 빛바랜 작품들을 접하니 지운 선생이 와세다대학 정치학 실과를 마치고 본과 진학을 포기하고 중국 대만 조선 유학생을 규합하여 신아동맹단, 곡귀단 등을 만들어 본격적인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연이 생각난다. . 지운 선생이 와세다대 유학시절인 1915년 9월 7일 화성 동탄 석우리(돌머루)에 칩거하며 전국에 똘똘한 자식들을 유학보내 나라 망할것에 대비하라며 사발통문을 돌려 본인 지운 선생과 많은 조선 청년들의 유학을 독려했던 나의 고조부 이명직(http://ko.wikipedia.org/wiki/이명직_(문신)) 선생이 친일세력에 의해 독살 당하여 돌아가신 소식을 접하자 이에 분연하게 일어나, 조국해..

막내 아들의 혼사기념품

나는 1988년 7월 16일 여의도 천주교회 성당에서 혼배성사 겸 혼배미사를 보았다. 내 혼배미사에는 전국성가대회 최우수상에 빛나는 여의도 성당 성가대의 축복 성가가 미사시간 내내 이어졌다. 그 미사에 참석했던 내 친구들 중에는 결혼식을 천주교식으로 하려고 천주교로 개종한 친구들이 여~러명 있다. . 내 각시가 군인이어서 고리타분한 집안어른들의 염려(?)가 많았다. 그래서 난 집안 어른들의 축복을 포기하고 그냥 날을 잡아 혼배미사를 강행했다. 아직도 나와 내 각시는 그때의 상한 기분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그해말 미국유학을 떠났다. . 집안 어른들의 결혼 축복을 포기했으니 결혼을 축하하고 기념해줄 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부친 방원 선생 유품보따리 안에는 내 결혼식 축하 서화며 동양화가 무려 2..

국군간호사관학교 부활의 숨은 은인 김근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홀짝수 남녀동수 배정을 이끌어 내어 대한민국에 여성 정치력 향상의 결정적 발판을 만든 그 배경 이야기] . 국군간호사관학교 부활의 숨은 은인 김근태 .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8년 IMF 경제위기 극복과 군개혁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폐교결정이 난 이후 1999년 가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어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법률 제4839호'에 의거 3년연속 신입생을 받지 못하면 자동폐교가 결정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상원 박사는 간호장교 출신 아내 김영신(26기)에게 선물한 사이트[2]를 중심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폐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3]를 조직하고 폐교 반대투쟁[4]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5개월간 온·오프라인 상에서 국민들에게 존속의 당위성..

5.18 민주화 유공자가 된 배경 진술서

[결과보고: 지난주 유타출장중에 5.18유공자 자격을 유지할 우수인재 복수국적 심사 결과를 통보받앗습니다. 일단 저는 우수인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승복합니다. 저를 불상하게 여겨 유공자격에 대해 특별귀화로 복수국적인정을 해보겠다고는 하나 5.18당시 수많은 분들이 저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많아 기대하지는 않치만 진술서는 제출하여 두고자 합니다. 그동안 살인마 전두환을 처형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공감을 표해주신 페이스북 인연분들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 000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2003년 당시 제출서류라는게 불법체포 구금 당한 사실에 대한 인의보증이 저는 미국에 있고 한국에서 함께 고생했던 분들이 만들어 제출했던거여서 제가 가지고 있는..

2018년 3월 미국적보유를 이유로 5.18유공자격을 박탈당한 이상원

올해도 어김없이 5.18이 가까워지면 5.18을 일깨워주는 분들이 있다. 바로 언론종사자분들의 취재요청이다. 나이도 먹어가고 해마다 나와 5.18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가는 것에 비례하여 취재요청은 줄어간다. 올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매체 포함 6곳, 그중에서 자신들의 편집 의도가 다..

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 / 사람과사회™ 2018 겨울 2019 봄

사람과사회™2018 겨울 2019 봄제2권 제3호 통권 제8·9호2635-876X 84People & Column기고애국지사 이철규, 그는 누구인가?이상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수자원에너지 전문가이자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검사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원 박사가 증조부인 애국지사 이철..

[1980518 나와 소년시민군 강용주와 고 김영국]

1980년 5월 17일 자정 저는 대학 1학년의 나이로 농학과 2학년 이세종 선배의 죽음을 보며 금마 7공수에 잡혀가 길고 긴 죽음과도 같은 감금과 고문과 두려움을 돌아 나온 80518 생존자 중에 한 명입니다. 그래도 살다 보니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을 보니 대학 1학년 19살의 나이가 자기 앞가림조차 벅찬 얼마나 어리고 연약한 나이인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 그런데 그 처절한 80518의 와중에 총을 들고 살인마 전두환과 맞서 싸운 소년시민군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비분강개함만 가지고 살인마 전두환 반란군 저격병의 총알과 헬기 기총소사를 피해 살아난 어린 전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강용주와 김영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강용주 서울 대림동 안아파의원 원장으로의 삶을 사는 강용주 . 80년..

[이영희파 운동권?!]

.한국의 10대 석학에 선정되었던 성균관대 교수 영희(이영희) 형 팀이 네이처에 연구결과를 올렸다. 언론매체에서 부산을 떨며 알려야 할 업적이다. 내가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http://blog.daum.net/enature/15852876)의 뒤를 이어 가업인 원예를 전공하기 위해 전북대 농대 농학 계열에 입학하던 때가 1980년이었다. 고등학교처럼 교양과정부 1년을 반을 갈라 다니다가 2학년 때 과를 정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같은 반에 나처럼 서울서 내려온 철도고 출신으로 철도청 공무원 하다 느지막이 대학에 입학한 박래준 형도 있었다. 당연히 같이 자취도 하고 기숙사 생활도 함께했다. 나는 전주에 연고가 없어 외로운 판에 래준이 형은 자신의 철도고 동창으로 이리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며 이미 ..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 소평전(小評傳)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을 선진 10대 경제 대국으로 만든 대통령!!]

‘▶◀근조’ 애통한 마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돌아봅니다 . OECD 국가 중에서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일 인당 국민소득 32,000불을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네덜란드는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그렇게 작은 나..

[5.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5. 저는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에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이세종 열사의 죽엄 앞에서 7공수에게 잡혀간 5.18민주화유공자 이상원 입니다. 저를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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