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아내의 유혹'을 보니
다 아는 얘기이지만, 미국 사는 한국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 TV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한국 음식점에서 한국 TV 뉴스나 드라마를 틀어놓는 것도 흔한 일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아내의 유혹'이라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는 소식 역시 즉각 전달됐다.
어떤 드라마이기에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것까지 화제가 되는지 궁금해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그 연속극을 보았다. 몇회를 보면서 한국에 있었다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것을 목격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지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드라마 내용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이 드라마의 줄거리를 놓고 '막장'이라고 한다지만 줄거리로 따지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TV 드라마도 이 못지않은 것이 흔하다. '아내의 유혹'을 보면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을 쓰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심한 것 같은 한 회(回)는 화면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보았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시종일관 악쓰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극중의 어느 여자는 악을 쓸 때 몸을 떨면서 소리를 쥐어짜는 모습도 보였다. 길거리에서 악쓰며 싸우는 장면 그대로다. 악역만 악을 쓰는 것이 아니고 주연급까지 같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악쓰며 상대를 향해 퍼붓는 저주도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에 와서 이제 다섯달이 넘었다. 그동안 어느 쇼핑몰 주차장에서 흑인 남녀가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본 것이 악쓰는 소리를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외에 길거리에서든, 식당에서든, 교통사고 현장에서든, 술집에서든, TV에서든 그 어디에서도 악쓰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출연자들이 교대로 나와 악을 쓰는 우리 TV 드라마를 보니 쇳조각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그 소리만 유난히 더 거슬리게 들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왜 시청률 최고를 기록했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툭하면 맞붙어 죽기 살기로 악쓰고,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저주를 퍼붓는 것이 혹시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 그대로는 아닌가,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닌가, 나아가서 악쓰는 모습에서 비슷한 감정이나 카타르시스까지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 도처가 악쓰는 싸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국회에서 악쓰는 모습은 '아내의 유혹'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 얼마 전 용산 참사도 서로 악을 쓰다 벌어진 참극이다. 지금 전국의 이해 다툼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악다구니가 벌어져 있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악쓰는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심성이 원래 이런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미군 전투기가 민가에 추락해 젊은 한인 어머니와 어린 자식 둘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을 당한 한인 아버지는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었다. 미국 TV에 그가 나온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악에 받쳐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닥친 비극을 비통해하고 그들을 절절이 그리워하면서도 사고를 낸 미 공군과 그 조종사를 비난하지 않고 위로했다. 억만금으로도 이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그의 모습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사고를 수습하는 것에서 나아가 미국 사회에 큰 감화까지 주었다.
한인 아버지가 TV에 나온다는 예고를 보자마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면서 통곡하고 악에 받쳐 소리지르는 장면이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보니 필자만 그런 예감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 익숙한 광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한인 아버지는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을 당하고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가 만든 차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는 한국식의 '악밖에 안 남은 사람들'은 잘 볼 수 없다. 미국이 우리보다 여유가 있는 탓도 있고, 더 좋은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도 악쓸 필요가 없도록 제도를 만들고 관리해 나가면 악다구니는 줄어든다. 그러나 '악을 쓰면 통한다'는 생각이 횡행하도록 만들고, '악쓰는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피하기만 하고, 그 틈에 끼어들어 악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까지 악을 쓰는 것을 용인한다면 '악쓰는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몇십년은 더 가야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이렇게 악쓰고 살아야 하는 수준은 벗어나야 할 때가 이미 지났다.
- 양상훈·워싱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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