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그 분 찍은 적 없지만 서거후 생각 달라졌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8. 2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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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 찍은 적 없지만 서거후 생각 달라졌다”

나는 이래서 나왔다

경향신문 | 김보미·유정인·대구 | 박태우기자 | 입력 2009.08.21 03:44 | 수정 2009.08.21 09:41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0일에도 전국 분향소에는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폭염도, 빗줄기도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물결을 막지 못했다. 어린 학생부터 거동이 불편한 칠순 노인, 손을 잡고 온 일가족, 낯선 외국인까지 추모객들로부터 '왜 김 전 대통령을 그리는지'를 들어봤다.

지역감정으로 폄훼 그만, 인식 바뀌어야

신윤근씨 < 61·대구 중구 동인동 > "평생 경상도 토박이로 살며 선거 때 김 전 대통령을 찍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서거 이후에 그분을 달리 평가하게 됐다. 그래서 대구 2·8 중앙기념공원의 분향소를 찾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때 나라를 구하려고 애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지역감정의 최대 희생자인데도 영남 쪽에서는 되레 지역감정을 조장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으로 그분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지역감정에 매몰돼 그분을 폄훼했던 주변 사람들이나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도 서거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인터넷 맘껏 할 수 있게 IT환경 만들어줘

이가영양
< 18·해성국제컨벤션고 2학년 > "소식 듣고 놀라서 서울광장에 나왔다. 방학 중이지만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와야 할 듯해서 교복을 입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초등학생이라서 어렸다. 고등학생이 된 후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인터넷 게시물을 읽으며 정치를 배웠다. 김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인터넷을 맘껏 할 수 있도록 IT환경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데 남북정상회담도 처음 하신 분이다. 엄마는 김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외가는 한나라당 쪽이다. 요즈음 자격 없는 정치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선거를 하게 되면 김 전 대통령처럼 믿음이 가는 정치인을 뽑겠다."

인권·민주화 정착, 한국브랜드 가치 높여

나라부 아지사카
< 61·일본 도시사대 사회학 교수 > "한국·일본의 도시를 비교연구하기 위해 19일 서울에 왔다. 서거 소식은 오기 전에 들었다. 서울 일정은 끝났지만 그냥 갈 수 없어서 들렀다. 일본에서 김 전 대통령은 영웅 같은 존재다. 인권과 민주화를 한국에 정착시켰고 나라가 어려울 때 가장 열심히 일한 분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민주화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라면 한국은 스스로 쟁취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중심에 있었고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 분이다. 아시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웅이라고 본다. 과거 도쿄납치사건 때 일본 젊은이들과 재일교포의 인권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의 노동 운동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금강산 관광, 즐겁고 행복한 길 열어줘

김동석씨 < 75 >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 배 타고 다녀왔다. 정말 즐겁고 행복한 여행길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노력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금강산뿐 아니라 조금 있으면 북한 땅에 언제라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이 땅에 남북화해도 멀고 민주주의도 멀었는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 큰별이었던 지도자가 가셨다. 암울한 시대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내 고향은 마산이지만 지역은 관계없다. 민주화를 위해 갖은 고초를 겪던 모습과 끝까지 인자함을 잃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다."

불굴의 소신 본받게 아이들과 같이 왔다

김옥심씨
< 40·주부 > "서거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국민을 위해 애쓰셨던 분, 국민의 아버지로 기억한다. 국민들에게 정신적 기둥이셨던 분을 보내는 현장을 직접 함께하고 싶어서 초등학생 두 딸을 데리고 나왔다. 분향소에 나오니 더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남북평화를 위해 애쓰셨는데 너무 일찍 가셨다. 건강만 괜찮으셨어도 현정은 회장이 간 자리에 대신 가서 큰 역할을 하고 풀어주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아쉽다. 아이들이 김 전 대통령을 본받아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과 뜻을 펼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 김보미·유정인·대구 | 박태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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