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4. ETIC/41_스크랩

도둑과 소설가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9. 29. 14:46
반응형

도둑과 소설가

  

1948년 서른여덟 장 주네가 프랑스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열 살 때 소년원에 간 이래 거듭한 강·절도로 열 번째 기소됐기 때문이다. 주네는 주로 술 다섯 병, 손수건 한 다스, 책 몇 권 같은 것들을 훔쳤다. 그가 감옥에서 쓴 시와 소설에 감명받은 장 콕토, 사르트르, 드 보부아르, 자코메티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프랑스 문단의 보물이 감옥에서 썩게 할 순 없습니다." 

 

주네는 이듬해 특별 사면을 받고 대표작 '도둑 일기'를 발표한다. 탈영한 뒤 유럽을 떠돌던 20대 시절 소매치기, 강도, 남창(男娼) 노릇을 그대로 담은 자전 소설이다. 그의 소설들엔 살인청부업자, 포주, 성도착자들이 등장한다. 그는 더럽고 위험한 것,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것들을 '성(聖)스러움'에 이르는 단계로 표현했다. 사르트르는 평론 '성(聖) 주네, 배우와 순교자'에서 이 실존주의 문학의 증인을 '성자(聖者)'로 불렀다.

 


시인 새뮤얼 콜러리지부터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와 잭 케루악, 그레고리 D 로버츠에 이르기까지 마약이나 부랑생활, 범죄에 빠진 문인이 적지 않다. 그 밑바닥 경험은 장 주네처럼 작품의 밑거름이 되곤 한다. 어느 소설가가 강원도 농촌 빈집과 공사장을 돌며 고추, 철근 따위를 훔치다 붙잡혔다는 기사가 어제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렸다. 석 달 사이 29차례 훔친 물건 값어치가 1300만원이라니 한번에 50만원꼴도 안 된다. 
 

이 52세 작가는 1990년대 지방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5편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대표적 소설가 단체에도 소속돼 있다고 한다. 그는 경찰에서 "글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생계가 안 됐다"고 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리까지 다쳐 춘천 허름한 월세방을 전전했다고 했다. 몇 차례 절도 행각엔 장애가 있는 아내도 나섰다. 글 쓰기론 살 수 없어 그야말로 먹고살려는 도둑질이었다는 얘기다. 

 

문학지 소설이나 수필 고료는 원고지 한 장에 5000~1만원, 시는 한 편에 3만~10만원이다. 다른 직업 없는 전업 문인은 배고플 수밖에 없다. 천하의 미당도

'

한 수에 오만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찬술)

고 썼다. 소동파는 "가난한 사람의 시가 좋은 법(窮者詩乃工)"이라고 했다. 배고픔은 글 쓰는 이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 극단적 모습을 작가 도둑에게서 보자니 마음이 짠하다.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