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공항 앞 북한 아가씨들
네팔 카트만두 공항 바깥으로 나오니, 하얀 스커트 차림의 '우리' 아가씨들이 도열해 있었다. 같은 비행기에 VIP가 탔구나. 환영 행사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내게 전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한번 꼭 들르세요. 평양 옥류관에서 하는 음식 그대로입니다. 맛있습네다."
전단에는 '옥류관' 상호 아래 육개장, 김치찌개, 문어 절임, 냉면 등의 음식 그림과 시설이 완비된 노래방이 인쇄돼 있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월·금) 한국서 들어오는 KAL기의 도착 시각에 맞춰 공항까지 나와 '서울 손님'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마중 나온 현지 여행사 사장이 무심하게 말했다.
"저 아가씨들 시내 쇼핑센터 앞에서도 전단을 돌려요. 주로 노래방 찾는 손님들이 갑니다. 북한 아가씨들이 들어와 같이 놀아요."
전단의 기억이 선명해, 귀국 전날 밤 '옥류관'에 갔다. 여종업원들은 10명 남짓 됐다. 이들은 출신성분이 좋은 집안에다 외국어대나 예능 대학을 마쳐야 선발된다. 북한 안에서는 선망(羨望)의 엘리트다. 저녁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여종업원이 방긋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쇼를 할 겁니다. 보고 가십시오."
음식점에는 우리 일행까지 포함해 단 3개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두 테이블은 중국 손님들이었다. 한쪽에 설치된 무대에서 한국·북한·일본·중국 노래와 팝송 등 '글로벌한' 노래를 돌아가면서 불렀다. 전기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고, 그때그때 모자와 미니스커트와 드레스를 갈아입고 춤을 췄다.
이 북한의 엘리트 아가씨들이 펼치는 '쇼'를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상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체제의 '외화벌이'를 위해 공항까지 나가 전단을 돌리고 겨우 몇천원짜리 밥 먹는 자리에서 이런 공연까지 하는가. 내 딸자식이 저렇다면 참을 수 있을까. 이들이 선발된 존재라면, 선발되지 못한 주민들 삶의 비참함은 어떤가. 이런 체제를 언제까지 우리는 곁에서 방관해야 하는가."
하지만 어느 세월에 '북한 주민의 인권'은 우리에게 너무 진부해졌다. 고문과 공개처형, 강제수용소의 증언에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고, 인신매매됐던 탈북 여성의 눈물 앞에도 우리는 분개하지 않는다. 지금 북한 주민 3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소식에도 우리는 안타까움이 없다. 장마당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북한여성들을 '자전거 못 타고 바지 못 입게' 했다는 유엔보고서도 그냥 '해외토픽'처럼 여긴다.
10년의 '좌파' 정권이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한 것은 다 안다. 당시의 주류 지식인들과 '정의'를 부르짖는 운동권들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것은 남북 화해를 해치는 것" "그건 내정간섭"이라며 결탁했다.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 일부 양심세력이 이에 맞섬으로써 북한 인권은 더 많이 시끄럽게 사회적 논쟁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 사례를 수집해 나중에라도 형사소추하겠다는 서독의 '잘츠기터' 같은 기구를 만들 의지는 없다. 단지 북한 인권 활동을 둘러싼 마찰과 투쟁, 파열음이 사라졌을 뿐이다. 북한인권단체끼리의 세미나는 좀 더 편안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권에서는 멀어졌다. 마치 유행이 다한 것처럼. 지난 정권에서는 북한 인권이 버림받았다면, 현 정권에서는 잊힌 격이다. 연애소설에는 "실연당한 여인보다 잊힌 여인이 더 불행하다"고 한다."
무슨 섭섭한 소릴" 하며 현 정권은 '공적'을 내세울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눈치 보면서 기권했던 대북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인권상도 줬다. 또 인도적 차원에서 (80만t의 쌀이 부족한 북한에) 옥수수 1만t을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지만 현 정권이 '북한 주민들이 현재 처한 삶'에 대해 직접 관심을 표한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핵문제와 6자회담만 반복했을 뿐이다. 미국 국무부에서, 저 멀리 떨어진 북유럽 나라에서도 우려를 표시하는 북한 인권 유린 상황은 화제에서 빠져 있다. 먼저 앞장서 "당신들의 아침은 안녕한가?" 살펴야 할 당사자가 우리 정부라는 점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없다.
우리 대통령이 역사적 소명을 가졌다면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 편에 늘 우리가 있다. 당신들은 인간으로서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을 벌써 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위에서 관심이 없으니, 자기 먹고살기에도 바쁜 일반 대중들이야 당연히 관심 밖이다. 언젠가 참혹한 고통의 질곡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면 "그때 당신은 왜 우리에게 침묵했나?"고 틀림없이 물을 것이다.
- 최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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