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왜 툭하면 백년만의 폭우를 들먹이나?
노컷뉴스 | 입력 2011.07.29 08:33 | 수정 2011.07.29 09:27 |
[CBS 권영철 선임기자]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서울시의 '도시 홍수'와 관련해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라는말 또는 '천재'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 광화문에 홍수가 났을 때도 '백년만의 기록적인 강수'라는 얘기가 나왔고 올해도 '백년만의 폭우'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왜 툭하면 백년만의 폭우를 들먹이나?'라는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봤다. 도대체 2011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백년만의 폭우라고 하냐? 정말로 기록적인 강수인가?
= 기록적인 강수인건 틀림이 없다.
기상청 집계에 따르면 27일 하루 동안 서울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301.5mm다. 이는 190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7월 중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 중 최고치라고 기상청은 밝혔다.
그러나 하루 중 내린 비의 양중 역대 최고치는 아니다. 기상청이 기상관측을 실시한 이후 하루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은 1920년 8월 2일로354.7mm이고 1998년 8월 8일 332.8mm가 내렸다.
서울지역에 하루 중 내린 비의 양으로는 역대 3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만 사흘연속 내린 비의 양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920년 8월 1일부터 사흘 동안 내린 535.7mm로 그동안 역대 최고였지만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587.5mm를 기록하면서 이 기록이 경신된 것이다.
▶ 서울시가 '백년만의 폭우'라는 발표를 한 거냐?
= 서울시는 그제 27일 강남과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기자 '100년 만의 폭우'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서울시는 시간당 113㎜의 폭우가 내린 것이 100년 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의 시간당 강수 기록을 살펴보면 1937년에 146㎜, 1942년에 118.6㎜, 1964년에 116㎜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미 113㎜를 넘어선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1일 강수량 기록을 기준으로 해도 서울시의 발표는 무리가 있다. 27일 하루 동안 서울에 301.5㎜의 비가 내려 7월 하루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지만 이는 밤 12시에 가까워졌을 때의 기록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27일 오전 8시에 1일 강수량이 200mm를 넘겼을 때 '100년 만의 폭우'라고 발표했는데 16시간이 지나서야 깨질 하루 최고 강수량을 서울시가 미리 발표한 것이다.
물론 서울시나 서초구청의 보도 자료를 보면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하지 않고 '100년 빈도의 폭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27일 서울시는 "서울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다"며 "27일 08시 관악 지역에 100년 빈도에 해당하는 시간당 110.5㎜의 국지성 폭우가 쏟아졌다"고 자료를 냈고 서초구청도 27일 보도 자료에서 "100년 만의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했다"며 "오전 6시50분부터 8시50분까지 2시간당 최대 강우량 164㎜로써 100년 빈도인 2시간당 156.1㎜보다 많이 내려 피해가 훨씬 컸다"고 밝혔다.
문제가 될 경우 '100년 빈도'라고 했지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할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기상청에서는 자신들은 '100년만의 폭우'라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1998년 이후 13년 만의 최대 폭우'라는 표현은 쓸 수 있지만 '100년만의 폭우'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면서 "기상청은 '100년 만의 폭우'라고 밝힌 적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뭘 근거로 '100년만의 폭우'라고 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 '백년만의 폭우'라는 의미가 많은 비가 왔다는 그런 의미 아니냐?
= 물론 많은 비가 왔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인건 맞다.
그런데 문제는 백년만이라는 것이 반드시 100년 전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강남 산사태나 수해가 인재가 아니라 천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 뉴스에서 100만의 폭우를 검색해보면 27일 28일 이틀 동안 엄청난 양의 기사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백년만의 기록적인 폭우' '강남지역 폭우는 100년만의 물 폭탄', '100년 만에 내린 폭우' 등등의 수식어가 붙은 기사를 게재했는데 서울시의 보도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
관동대 토목공학과 박창근 교수는 "수해가 터질 때마다 '백년만의 폭우' 또는 '천재'때문이라고 진단하면 대처방법이 재대로 마련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추석에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도 백년만의 기록적인 폭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올해 또다시 광화문 일대 도로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일어났다.
트위터에는 이를 비꼬는 글들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트윗 중 "100년만의 폭우와 100년만의 폭염과 100년만의 추위와 100년만의 폭설... 1911년 한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리트윗 되면서 서울시의 대응과 언론의 보도 태도를 꼬집고 있다.
▶ 그렇다면 이번 서울시내 수해는 인재라는 얘기냐?
= 전문가들의 진단은 그렇다. 비가 많이 온건 틀림없지만 이 정도의 비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동대 토목공학과 박창근 교수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이름아래 외양 가꾸기에만 치중한 결과로 나타난 인재"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광화문 광장 조성과정을 보면 물이 스며들 틈이 없다"면서 "흙을 다지고그 위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화강암을 붙이는 구조는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는 도시구조에 역행한 것으로 물이 스며들 공간을 차단해 침수피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시스템공학부 조원철 교수도 방송인터뷰에서 배수체계에 심각한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광화문으로 모든 물이 집중이 되게 돼 있다. 경복궁 동쪽에 삼청동 계곡의 물이 광화문으로 내려오고 서쪽 인왕산 물이 또 광화문으로 내려오고 그 다음에 사직공원 쪽도 전부 내려오고 다 모이게 됐다. 이 물은 배수계획에서는 물을 모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청계천을 복원하기 이전에는) 자연시스템으로 해 가지고 전부 분산되던시스템이었던 것을 하수관로를 자꾸 전부 모든 것을 청계천 중심으로 집중을 시켜버렸다"면서 "눈에 보이는 효율성만 따져가지고 그래서 물은 모으면 문제다. 분산시키는 새로운 도시계획을 지금 우리가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그러니까 '100년만의 폭우'라고 하면 책임이 가벼워 지는 거냐?
= 책임이 가벼워 지는 건 아니지만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건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번 서울시내 물난리를 '천재'로 규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28일 한강홍수통제소를 찾아 폭우 피해 상황 등을 점검하면서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면 어떤 도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이런 용량의 비가 오는 데 맞춰 있는 도시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적인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건 맞지만 '도시 홍수'를 인재로 진단하는 전문가들은 다른 시각을 보인 것이다.
서울시 주변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책임이 아니라 서울시 예산을 다루는 서울시 의회책임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문제가 생겼으면 책임을 지고 해결하고 사전에 대비하라고 뽑아준 시장이나 행정책임자가' 천재'의 뒤로 몸을 숨기면 해결 방안은 없어진다.
'100년만의 폭우'를 감당할 수방대책은 지나친 예산이 소요되므로 제대로 된대책을 마련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 광화문 침수가 인재라는 얘기는 알겠는데 강남지역 산사태나 침수도 인재냐?
= 100% 인재다 이렇게 얘기하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그러나 사고경위나 사고지점을 돌아본 기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진단은 인재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해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광화문 사거리에 물난리만 난 것이 아니라 우면산의 나무 3,500여 그루가 뿌리째 뽑혔다. 그런데 새롭게 심은 나무는 1000여그루에 불과하다.
지난해 폭우로 붕괴됐던 약수터 복구공사도 공사 지연으로 공정률 70% 수준이다.
우면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 중이고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며 산을 파헤쳤는데저수지의 물이 넘치면서 전원마을의 피해를 키웠다.
우면산의 동서남북이 모두 산사태가 났는데 강남순환도로 공사 주택택지 개발 등으로파헤친 곳 주변들이다.
산사태라는 것이 자연을 그대로 둔 곳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도로 공사를 하거나 택지 개발을 한다고 산을 깎아 내리는 인공적인 힘이 가해졌을 때주로 발생하는 데 우면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해 피해가 났고 위험이 경고됐지만 서울시나 서초구가 제대로 대처하지못한 것이다.
특히 CBS 취재결과 산림청이 서초구청에 산사태 경보를 발령하라는 전자공문과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지만 이를 무시하고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디자인 서울'이 서울 물난리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 전문가들의 진단이 그렇다. 디자인 서울은 서울의 외양을 가꾸는 사업인데 여기에 사업의 우선순위를 둔 오세훈 시장이 지난해 물난리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수방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오 시장이 관심을 둔 사업은 한강르네상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디자인 거리 조성 등의사업이다.
서울시는 강남대로와 반포로 신월로 등 시내 50곳을 대상으로 '디자인 서울거리'로 조성중인데 인도를 대리석으로 포장하면서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 공간을 없앴다.
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층이 지난 40여 년간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서울시는 특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 2008년 11월 서울시에 기상이변에 따른 돌발 강우 대비책을 제시하면서 '사전예방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건의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SNS나 인터넷에는 "서울시 신청사 건립 3000억 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4200억 원, 한강르네상스 5400억 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비용 180억 원…그러나 비만 오면 물난리"이었다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이런 글이 있다 .
"도시란 과거의 흔적도 디자인이고 현재의 존재도 디자인이며 미래지향도 디자인입니다. 모두 아파트, 모두 새 건물이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어린아이 레고 블록 하듯 말고 나의 서울 우리의 서울 이제 그만 갖고 놉시다. 디자인은 이제 그만, 품질과 시스템을 갖춥시다"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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