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 저차 하여, 늦게 간 군대가 공병대였다. 제일 나이 많은 졸병,
해뜨면 작업이요, 해지면 이런저런 트집으로 고참들의 폭력이
난무하고. 주말이면 보안대 녹화사업 구타에 무릅이 상한 것 같아
아프다하면 쫄따구가 빠졌다고 또 터지고, 결국 무릅이 머리통만
해져서야 의무대를 거처 대구통합병원까지 가게되었다.
병원에 입원하니 연골연화증 이라는 진단명은 그야말로 신사였
다. 제대한지 근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도대체 이해가 않되는것
은, 멀쩡한 평화시에 다리잘리고, 손잘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중환
자가 얼마나 많은지, 온저히 제대하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 아직
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참으로 한심했던 것은 억울하게 다치고 불
구가 된 괴로움보다도, 자대에서 안터지고 고생안하는 즐거움으로
들 그 통합병원의 환자노릇들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이였던 것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환자들이 흔히 말하는
빽없고 돈없는 집 출신들이라.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한번보는 군의
관들이 던지는 공포스러운 말, “이수술은 00대학의 xxx박사가 최
고”라는. 내가 재력있는 집안 출신이기만 하다면, 언제든지 마음
만 먹으면 병도 고쳐주고 제대도 시켜 줄 것 같은 환상에 젖게 만들
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5년 가을, 전두환의 아들, 아마도 지금 출판사를 한다는 전재국
일 것이다.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얼렁뚱땅 만들어진 6개월 석사
장교 신체검사를 받으러 왔다는데 죽기직전의 환자를 제외한 온
통합병원 환자들를 다 동원해서 보이지도 않는 쓰레기를 줍는다고
난리를 펴대고. 그때 쩔뚝거리며 그 넓은 통합병원 청소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유학갈 비행기 값 만 수중에 있었으면 이렇게
억울하게 다쳐서 저 전두환이 아들녀석을 위해 청소도 않하고,
저녀석처럼 미국석사하고 6개월 장교할텐데.” 그런데 그 석사장교
제도가 몇년뒤에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
그 억울한 병상에서 감기가 걸려도 시꺼면 중탄산 나트륨, 심한 통
증에도 시꺼먼 중탄산 나트륨. 약은 위생병이 횡영하고 군의관은
알바하러 대구시내 병의원에 나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그나마 간호장교들은
진통제도 챙겨주고 그나마 우리를 인간취급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
기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간호기록을 위한 것인지를 아주
오랜 후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정당한 이유 없이 나를 비롯
한 졸병들을 구타했던 나보다 어린 고참 병장을 제대 후 혹시 길에
서 만나면 복수하려 했던 그 분노를 버리게 했고, 꼭 건강한 몸으
로 제대하여 빛나는 나의 앞길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리
고 그 희망 속에 나머지 3년의 사병생활을 수도하는 마음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 계시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간호장교 분
들의 이해심으로 봐서나 간호사관학교가 폐교위기에 처해있는 모습
이 그때의 우리와 비슷한 약자의 모습이라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소문에 간호사관학교폐교 선봉에 섰다는 이가 천용택씨라고들 하는
데,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없었다면 능력이나 실력이 있어도 경제적
인 이유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교육의 기회를 상실할 여성
인재들과 30 여 년에 걸쳐 국가가 배출한 동문들의 속알이는 어쩌려
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쉽게 말해서 그 정도의 여자쪽수는 우
습다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2001.02.27 11:50 에 작성한글 ...
Samuel Sangwon Lee | Create Your Ba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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