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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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16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7. 1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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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

    김신 선생에 대하여

     

    [2007년 3월 구 동독지역 바이마르(Weimar)에 있는 바우하우스 대학에 학회를 참석하고 온적이 있다. 바이마르는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한후 독자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선포하고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고 주민의 복지권을 보장하는 등 전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엇지만 이원 집정제의 한계로 혼란을 겪다가 히틀러의 집권으로 17년만에 파멸하고 말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바이마르 시내에 일본식 스시바가 있어서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아난교수와 함께 찾았다가 스시바주인인 김신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주점부리로 가지고 다니던 "오징어땅콩과자" 한봉지와 한가할때 보려고 들고 다니던 내책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을 주었다. 부업으로 한국의 조기유학생을 돌보고 있다하니 '전세계로 향한 한국의 유학혁명'은 상당하게 진행된 모양이다.  

     

     

    일식 요리책을 보고 일식요리를 익혀 바이마르에서 일식 스시바를 운영하고 있다. 바우하스 공대를 나오고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릴 기회는 잡지 못한 모양이다. 김신씨의 성공을 기원해 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당시 김신씨가 운영하던 바이마르 조기유학홍보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져 있던 김신씨의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이라는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상원 주]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

    김신,

    (작성: 2007년 3월 12일 2시 27분 독일시간) 

     

    스시바에서 사십대 중반의 남자를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인인데 바이마르에는 콘퍼렌스에 참여하러 들렸다 한다. 명함 대신 '민주화유공자'라는 신분증같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때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불쑥 '오징어 땅콩' 과자 한 봉지와 본인이 직접 쓴 한권의 책을 선물해 주었다.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이라는....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나는 독일에 80년 2월 초, 국민학교 5학년중에 이민을 왔는데 당시 유일한 낙이 우리 가족이 살았던 간호원 기숙사에서 '에레베이터 타고 왔다갔다 하기'와 '테레비 보기' 였다.

     

     

    이민와서 삼개월 후 테레비를 통해 처음 한국을 접한 소식은 '오월의 광주'였던걸루 기억한다. 수많은 사진들을 이래저래 보아왔지만 유독 아래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 잡지에 실린 사진인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글도 읽을 수 있다.   조그만 양손사이로 소년은 그의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독재와 투쟁하다 죽었다.

     

    60-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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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 http://t.co/jZpaESV9 살인마 전두환을 처형하라!
    durl.me/2t66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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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ch this video to understand the largest banking corruption scandal in history. These large banks have stolen money from every single human on the planet. Not one person was left out. Not even YOU! Now that it is exposed there is no going back. We will ALL support the "NO MORE BAILOUT" mantra...

    This one will not go away. It was not planned to go away like other "banking scandals". This one will build and build and build until it is known by every man, woman and child on the planet. This is the exposure that will END the bad guys reign.

    I've said it over and over: Timing, timing, timing.

    The evil vampire banksters have been stabbed in the heart with various stakes in the past few months but this one is by far the largest. (note: the last one will be made of SILVER so be ready for it!)
    Watch this video to understand the largest banking corruption scandal in history. These large banks have stolen money from every single human on the pl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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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보앗던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가 또다른 모습과 의미로 다가오는 글입니다. 그리고 문득 영국에서 돌아온 돌팔이 약초꾼 전남편 칠링월스의 집요한 복수도 함께 떠로릅니다.
    인문학 스프-패러디 
    횡설수설㊳ - 주홍글자 
     
    목감기에 몸살 기운이 있어서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 하루종일 자리보전을 했습니다.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이 나이의 악몽이 청년기의 그것과 방불(彷佛)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쯤은 지나간 삶에서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 소멸에 대한 두려움, 지켜야 될 것들에 대한 조바심 같은 것들이 꿈의 소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런 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꿈은 여전히 ‘내 안의 작은 인간’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겪었던 것들로부터 기인한 분노, 실망, 질투, 불안과 같은 것들이 서사(敍事)의 주동(主動)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마치 주둔군처럼 행세할 때는 제 베갯머리가 아주 어수선합니다. 아무래도 ‘내 안의 작은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이 너무 승한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껏 그 옛날의 상처를 안고 웁니다. 시도때도 없이 징징거립니다. 그 아이에게는 상처를 감싸줄 어머니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몸’이 그 육체성을 잃고 관념 안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몸이나 마음이 힘겨울 때는 꼭 그렇게 다시 나타납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저의 ‘주홍글자’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억압과 열려진 기표로서의 주홍 글자] : 미국 건국의 초기 정착자들은 철저한 신정일체(theocracy)의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이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법은 거의 동일한 것”(religion and law were almost identical, Murfin 55)으로 여겨졌다. 이 같은 신정일체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실생활의 규범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청교도의 교리 자체에서도 발견된다. 청교도의 교리에 따르면 오직 신만이 인간 구원의 확실한 담보자이며,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리고 어느 경우라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같은 가부장적인 사회 체제와 사고방식을 거스르는 생각을 가진 이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청교도 사회의 모든 관행은 아버지의 이름(Name of the Father)으로 행해지며, 이에 거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제재와 억압의 대상이 된다. 모든 권력은 아버지의 이름에서 나오며 그렇지 않은 것은 정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외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 같은 사회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이 바로 헤스터의 간통사건이다. 
    헤스터는 아버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의 이름을 공개하기를 거부한다. 이는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모독이며 도전이다. 청교도 사회는 이 같은 헤스터의 행위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처한다. 이들은 헤스터가 낳은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을 그녀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헤스터는 이 같은 이들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녀와 간통한 남자는 딤즈테일 목사이지만,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으로 딤즈테일 목사 자신이 헤스터에게 아이의 숨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을 요구한다. 그는 헤스터에게 “그대의 공범이며 동고자(同苦者)의 이름을 백일하에 공포할 것을 그대에게 명하노라!”(I charge thee to speak out the name of thy fellow-sinner and fellow sufferer!, Murfin 67)라고 호통 친다. 그러나 헤스터는 그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물론 공범의 이름은 딤즈테일 목사이다). 딤즈테일 목사의 이 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헤스터가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지 않자, 윌슨 목사는 재차 “이름을 대라!”고 채근하지만, 그녀는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을 거부한다. 이에서 그치지 않고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말하시오. 그래서 당신의 아이가 아비 없는 자식이 되지 않게 하시오.”(Speak; and give your child a father!, Murfin 68)라고 소리쳐도 헤스터는 “나는 말하지 않겟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당사자인 딤즈테일 목사는 안도 반 불안 반의 심정으로 “그녀는 결단코 발설하지 않을 모양이군!”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아버지 이름의 중요성이다. 청교도 사회를 대표하는 딤즈테일 목사와 윌슨 목사는 헤스터에게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군중 속의 한 사람도 같은 요구를 하는데 그의 의도는 물론 위의 두 목사의 그것과는 다르다. 목사들이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 의도가 그녀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군중 속 무명씨의 목적은 아이가 아버지 없는 존재로 사회에 남을 것을 우려해서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을 요구한 것이다. 헤스터가 자신의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대지 않는 것은 단순히 자신과 간음을 한 남자를 숨기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이 같은 거부는 주변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던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에 바탕한 미국 청교도 사회의 바탕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아버지의 이름은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는 신분증명서(identification)의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같이 억압된 헤스터의 욕망은 그녀의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그녀가 달고 있는 주홍 글자가 된 것이다. [이정호, 『텍스트의 욕망』 중에서] 
     
    세상이 굳이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몸’, 그 둘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 아니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진리의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도 있고 소망도 있고 사랑도 있고, 그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 ‘이분법적 말씀’이 유독 자주 절실합니다. 아마 ‘해체와 재구성’이 요구되는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가(出家)한 이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는 아침입니다. 
     
    사진은 동네에서 보존되고 있는 옛건물. 대구상업학교 본관 건물로 사용되던 것이다. 학창시절 이 건물 앞을 지나칠 때면 이 건물의 건조하고 권위적인 모양이 싫었다. 인근의 대구사범학교 옛건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담쟁이를 입힌 지금의 모습은 그때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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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Sangwon Lee 아주 멋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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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Sangwon Lee 훈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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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Sangwon Lee "떠로릅니다"를 "떠오릅니다"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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