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8_FaceBook_Twitter

2012년 10월27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10. 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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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연방정부학술회의
    www.ohmynews.com  
    미국연방정부는 4년에 한번씩 연방기술연구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전문분야에 따라 학술회의를 개최합니다. ▲ 연방 내무부 산하 국토개발국에서 학술장에 세운 홍보물입니다. 원 ▲ 연방 농립부에서도 홍보물로 한것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자랑합니다. 원 올해는 네바다 리노에서 침전 (Sedimentation) 수문학 (Hydrology) 의 학술회의가 있었습니다. ▲ 저는 유한차분법을 이용한 3차원 댐유출수해석 프로그램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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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군부독재세력이 틈만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향해 "나라 말아 먹었다"고 침을 튀깁니다. 진실을 드려다보면 한국은 김대중 정부시절에 대만을 따라잡고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세계10대경제 대국의 반열에 진입을 합니다. ...
    [역대 한국대통령 경제성적 비교] 일본 속담에는 "거짓말도 100번만 하면 진실이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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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박사의 의학상념
    요새 알러지 환자들이 무척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얼마전 외국논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알러지를 일으키는 꽃가루, 미생물 들이 환경오염등으로 자신의 생존환경이 더 열악해지면서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더 독해진 결과, 인간에게 더큰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지구가 생긴지 40억년, 인간이 탄생한지는 20만년전, 지구가 만들어져 현재까지를 일년이라고 했을 때, 인간이 탄생한지는 두어시간 정도나 되었을까요? 
     
    지구에 생명을 내리고 살다간 공룡은 산개월을 살았다는데, 그리고 지구에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를 남긴 생명체들은 적어도 몇주는 살다갔다는데, 인간은 이제 겨우 두어시간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은 이 지구의 환경에 아직 살다간 증거를 남기지 못하는 테스트 단계의 입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만드는 환경오염이 심각합니다. 
     
    어려서는 없던 코와 눈의 알러지가 나이가 든 지금에 생기다니....... 
     
    오래 산다는 것보다는 최고의 상태로 산다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질적인 환경, 정신적인 환경 모두 최적의 상태가 되었으면 합니다.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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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 you live in Palo Alto (Silicon Valley area), why don't you join "KOSENIA in Silicon Valley (KSV) Party"
    Saturday, November 3 at 10:00am at Friends Nursery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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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유투부에서도 영업에 도움을 주었으니 감사장 하나 줄수도 ... 하하하
    맞는걸로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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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근데 진짜 정답은 뭐지? 외교통상부?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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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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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아~ 문화부가 더 가깝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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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유투부에서도 영업에 도움을 주었으니 감사장 하나 줄수도 ...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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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벡 박사는 “미라를 본 모든 전문가는 지구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ET구나!
    news.chosun.com  
    이집트서 발견된 2000년전 외계인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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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박통때 IMF에 돈 빌린적도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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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박정희 정권 시절에 발생한 외환위기 때는 김영삼 정권과는 달리 IMF 관리체제로 가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고 일본에 받아온 돈 겨우 3억불(타 피해국와 견주면 족히 30억불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나, 충성혈서 쓴 천황국이고 미국에서 장면정부에 약속했던 30여 억불이 날라간 판이라 국민들 원성이무서워 그 여론을 잠 재우느라고 일본군 출신 선배들을 통해 요로에 부탁해 몇천만 불 선금 당겨쓰고 황급히 1/10로 낙찰해 받음- 현 규모로 보면 수백억 불 천황국에 양보한 셈), 월남전에 대규모의 파병을 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미국에 받아온 돈 25억불(당시 총 GDP의 몇 배 규모) 중동 건설 특수 등으로 돈 잔치를 벌렸지만, 일본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 보니 최대 규모의 일본외채(YS 때는 IMF사태의 최대 원인이 됨)는 차치하고서도 겨우 겨우 상황을 모면해 나갔을 뿐이다." By John Colt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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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구체적으로 박정희 권에서 언제, 어떻게, 왜? 외환위기 상황들을 맞았었는지 자료로 살펴보자.

    첫번째 외환위기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위한 투자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서 일어났다. 1963년에는 수출이 8,600만 달러였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그 배에 가까운 1억 4,300만 달러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누적적자는 2억 2,4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적자는 미국의 후원으로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8억 달러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에 의하여 넘어갔다. 이러한 자금의 규모는 우리의 수출규모가 1억 달러 전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였다.

    두번째 외환위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1967~1971) 기간 중 연간 4~5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어났으나 '월남전 특수'로 넘겼다. 1965년 '월남파병'으로 체결된 '브라운 각서'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정부 조달은 한국에 우선 배정할 것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한진은 월남전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수급의 어려움은 해결되었다.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에 돌아섰다.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방만하기 짝이 없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번째 외환위기는 1973년 10월에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두자리 수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일어났다. 미국의 씨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2억 달러의 점보 론(jumbo loan)을 받아 가까스로 유동성위기를 넘겼다. 우리의 건설업이 동남아에 진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 '중동건설 특수'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네번째 외환위기는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1970년대 중화학공업 투자에 의해 1979년부터 3년 연속 40~5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외환수급이 어려워졌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40억 달러의 '한일 경제협력자금'이 보증역할을 하여 대외신용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해외차입으로 외환수급의 어려움을 넘기게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이와같은 네번의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 하고 뼈를 깍은 구조조정의 노력보다 냉전체제의 산물인 한미일 특수관계, 월남전 특수, 중동건설 특수라는 외생적 변수에 의존하여 위기를 넘김으로써 위기불감증에 걸리게 되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동안 372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데도 원화를 절상하는 방향 착오에 의해 위기는 가속되었다. 1997년에 와서야 금융감독 체제를 개편하고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조성하여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떨어진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는 노력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남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IMF 긴급자금지원' 이라는 타력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조치들은 IMF 자금지원이 있은 후에 IMF 경제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법화되었다. 냉전체제도 사라지고 중국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한미일 특수관계도 약화되었고, 월남전 특수나 중동건설 특수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8.3 사채동결조치' 같은 특혜조치도 불가능했다. 기업 스스로의 자력에 의한 자본충실과 경쟁력 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참고자료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By John Colt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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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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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저 이런 것 너무 좋아해요. 외계인의 랩이 지구가 아닐까 생각해온 사람이라..종교라는게 결국 안드로메다 저기 어딘가에 있는 우리를 만든 고등우주생물체를 향한 인간의 숭배라고 믿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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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객곽적 사실에 의한 명쾌한 분석, 시원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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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대한민국의 딜레마중 하나가, 문화 체육 관광부서가 하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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