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8_FaceBook_Twitter

2012년 12월14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12. 1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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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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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강풀~~
    media.daum.net  
    [일요신문]만화가 강풀이 13일 오후 예고했던 웹툰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예정했던 12일보다 하루 늦게 공개된 이 웹툰을 올린 뒤 강풀은 자신의 소감을 트위터를 통해 남겼다.강풀이 그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지난 8일 강풀은 "'나는 왜 문재인을 지지하는가'라는 좀 긴 만화를 그리려 한다. 여러분의 다양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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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들을 수십년간 아사시킨 댓가가 스페이스클럽 10번째 가입이군요.
    news.donga.com  
    북한이 ‘은하 3호’ 발사 성공으로 한국보다 빨리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정치적인 쇼일 뿐 기술력이 낮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은 것으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항공우주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발사체, 발사대, 위성 등 주요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이스클럽은 자국 영토의 발사장과 로켓을 이용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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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ver ending holiday part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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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본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심약하고 무능력한 임금은 어차피 만백성들에게는 해로운 존재일 것"이라는 말씀 한국의 대선판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스프 – 싸움의 기술 
    5. 망한 나라에는 반드시 
     
    망한 나라의 역사에는 반드시 악인(惡人)이 등장합니다. 중국 진(秦)나라의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도 그런 ‘역사의 죄인’입니다. 그들은 진나라가 망하는데 크게 기여한 ‘실패한 영웅’, 간웅(奸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조고가 최악입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시황제(始皇帝)가 사거(死去)하자 승상 이사(李斯)와 짜고 황제의 유지를 조작합니다. 태자 부소(扶蘇)가 황제가 되면 자신들의 안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한 그들은 부소의 동생 호해(胡亥)와 작당해 진시황의 가짜 조서를 만듭니다. 진시황의 죽음을 숨긴 채였습니다. 그들이 변방에 가 있던 태자 부소에게 조작해 보낸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난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는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화옥으로 국본을 삼았노라. 그러므로 누구나 여기에 위배되면 그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 부소는 나라를 위하여 공훈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광패한 글을 올려 함부로 군부(君父)를 비방하였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부자간의 정의로 보아서는 안 되었다만 나라의 법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해로 태자를 책봉하고, 너에게는 독주와 단검을 내리노니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여 자결하도록 하라. 그리고 장군 몽염(蒙恬)은 대군을 거느리고 외방에 있으면서 지엄한 국법을 문란시킨 죄가 있어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나, 아직 장성을 구축하는 대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대로 유임시키는 바이니 조서대로 시행할지어다. [김길형 편저, 『本 초한지』 참조] 
     
    뜻대로 부소의 자결, 몽염의 숙청을 이루어낸 조고는 나중에 이사까지 처단하고 홀로 제왕적 권세를 가지고 잠시 동안이나마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립니다(그래도 환관이 누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구든 그의 눈 밖에 나면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공포 정치로 천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늘(민심?)의 추인을 받지 못한 권력이었기에 이내 좌절하고 맙니다. 복심(腹心)의 추종자들이 많지 않았던 그는 곧 반역에 부딪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키운 자가 보낸 자객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의 일생은 전형적인 악인의 행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죄 지은 자의 말로를 잘 보여줍니다. 조고가 어떻게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평가되는지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조고는 통일제국 진(秦:BC 221~206)의 제1대 황제인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난 후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 결과 진이 몰락하게 되었다. 시황제를 모시는 환관 책임자였던 그는 황제와 외부 세계 사이의 모든 연락을 맡고 있었으므로, BC 209년 여행 도중에 일어난 시황제의 죽음을 별 어려움 없이 감출 수 있었다. 시황제의 큰아들 부소(扶蘇)는 이단적인 사상이 씌어 있다는 이유로 서적들을 모두 불태우게 한(분서갱유) 승상 이사(李斯)의 조처에 반대한 까닭에 북쪽 변방인 상곡군(上谷郡)에 유배되어 있었다. 시황제는 부소에게 보내는 유조(遺詔)를 남겼는데, 이 조서에서 그가 부소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 같다. 이사와 조고는 만약 부소가 제위를 잇는다면 자신들의 관직을 박탈함은 물론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소와 그의 친구이자 상곡군의 장군인 몽염(蒙恬)에게 가짜 조서를 보내 자살할 것을 명령했다. 편지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죽었다. 이사와 조고는 죽은 시황제의 시체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자, 포어(鮑魚:소금에 절인 냄새가 심한 생선) 한 가마를 수레에 같이 실어 시체의 냄새를 숨겨 수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亥)로 제위를 잇게 한다는 억지 조서를 꾸몄다. 얼마 후 이사와 조고는 서로 사이가 나빠졌고, 조고가 이사를 처형했다. 그 후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얼마 가지 않아 반란군들이 수도에까지 들어왔다. 조고는 허수아비 황제 호해를 처형하고 호해의 아들 자영(子)을 제위에 앉혔다. 그는 다시 자영까지도 처형하려고 했으나 음모가 발각되어 황궁에 들어서는 순간 암살당하고 말았다. [daum 백과사전] 
     
    제가 악인(惡人) 조고를 처음 만난 것은 어릴 때 본 한 홍콩 무협영화를 통해서입니다. 영화 제목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그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도륙했습니다. 시쳇말로 ‘사람이 아니무니다’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큰 공포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때의 인상이 여태 또렷합니다. 무협지 속에 등장하는 중국 환관들의 영화 속 캐릭터가 늘상 ‘조고 스타일’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조고 스타일’은 그 후 오랫동안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밑에 있으면서 위엣 것을 능멸하는 그 악행은 정말이지 치를 떨게 하는 ‘보기 싫은 스타일’이었습니다. ‘간웅 스타일’이 하나의 고정관념을 형성했습니다.  
    어쨌든(또 어쨌든?), ‘실패의 역사’에는 어디서든 그들 간웅들의 악행이 등장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역사 인식(?)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텍스트의 리얼리티는 어디까지나 텍스트 내적 ‘응결성과 응집성’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니까요. 그들이 왜 등장하는 것이며, 어디까지 그들에 관한 역사적 진술을 용납해야 하는가 따위의 ‘의도성과 용인성’까지 고려할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조고는 과연 악인(역사의 죄인)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진시황이 한 것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인데 왜 그만 악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본디 권력의 속성이 그런 것인데 진시황이 잡으면 정당한 것이고 조고가 잡으면 부당한 것이라는 것은 왠지 ‘불편한 진실’일 것만 같았습니다. 만약, 그런 역사적 진술들이 가진 ‘텍스트 무의식’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본디 정해져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당대의 지배층(무력지배층, 테크노크라트, 文士, 족벌 귀족, 在住地主 등)들의 ‘싸움의 기술’에 속아 넘어가는 일일 공산이 큰 것이었습니다(그래서 평생 ‘밑엣 것’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전해지는 조고의 고사에도 반발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부소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소가 그렇게 죽은 일이 왜 우리에게도 ‘억울한 일’로 각인되어야 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부소라는 진시황의 아들은 그런 심약한 태도로 어떻게 천하의 패자가 되겠다고 욕망할 수 있었단 말인가, 천하의 맹장 몽염과 그의 수십만 군사를 제 곁에 두고 있었으면서도(진시황이 그를 그곳으로 보낸 이유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시황은 겉으로는 부소를 책망하면서 멀리 내쳤지만 그에게 막강한 몽염 부대의 감군(監軍) 직책을 부여함으로써 힘을 갖고 조정의 실세 권력들과 맞서기를 원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반역도 꿈꾸지 못하고, 그렇게 겁에 질려 자결을 한 자라면 마땅히 조고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심약하고 무능력한 임금은 어차피 만백성들에게는 해로운 존재일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고라는 존재는 다름 아닌 ‘역사가 보낸 메신저’였을 뿐이었다는 겁니다. 중국 고대 왕조사에서 환관들의 역할 중의 하나가 강대한 귀족(문벌, 족벌)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도 그러한 역사인식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이야말로 ‘조고 스타일’을 가장 싫어하는 자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반성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조고는 통일제국 진(秦:BC 221~206)의 제1대 황제인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난 후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 결과 진이 몰락하게 되었다.”라는 백과사전에서의 기술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고는 통일제국 진(秦:BC 221~206)의 제1대 황제인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난 후 처절한 권력투쟁 끝에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끝내 조정의 기득권층과 지방의 토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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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소중히 모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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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19일 밤.... 진짜 축하파티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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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시간을 컴 앞에 앉아서 대가 없이 스스로 문후보를 직간접으로 응원하고있다. 혹자는 할 일 이 없어 그런다고 조롱하기도 한다. 하루는 24시간이며 이중 사용가능한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일을 해서 얼마를 벌면 좋겠지만 문후보가 지면 정치가 박그네 원하는 대로 될터이니 그런 꼴은 있어서 안되니까 열심히 만사 제켜놓고하는 사람들이 많을거다.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 노릇을 하게 정책을 만들어 놓고 일을 안한 다고 하면 적반하장 이다. 그러니까 일자리를 줄 것 같은 사람을 당선 시키려고 더욱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비밀 불법 사무실을 차려놓고 돈을 들여가며 억지로 negative 일을 시키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할 수없이 직업이니 악플 다는 일을 하면 돈이 얼마나 많아야 그 많은 사람을 고용 할 수있겠으며 악플의 품질조차 자원봉사로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의 것을 당할 수 있겠나? negative 도 악플조차도 품질이 좋아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대가 없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당할 재주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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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19일 밤..파티를 할지 ..이민을 떠나야 할지 ..결정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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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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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내가 할 수 있는 건... 투표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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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유신잔당+5공본당 의 신념 "100番 主張すればになる"
    <100번 우기면 곧 진실이 된다 
    100番 主張すればになる> 
     
    거짓말도 100번만 우기면 진실이 된다. 일본의 문화에 익숙한 분들은 이 격언처럼 그들의 언행도 거짓에 익숙하다.  
     
    어제 발각된 여의도 새누리당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이 새누리당과 전혀 관련없는 개인차원에서의 취미활동 이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취미 활동 치고는 너무 장기간이었고, 조직적이었으며 새누리당에 매주 정기적으로 보고가 올라갔기에 부인할 수 없는 사안이다. 
     
    선거는 이제 끝났다. 거대한 공룡은 스스로 자멸하기 시작했고, 대다수 국민들도 이미 눈치챈듯 하다. 
     
    그런데 아직 이걸 모르는 분이 계신다. 너무도 일본스럽고, 자기고집이 센 박근혜.  
     
    이명박근혜를 외치며 이 나라를 책임지겠다던 그녀가 이명박 정권을 되려 심판하겠다며 공중부양을 시도 하더니, 불법선거운동 사무실이 발각되자 갑자기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는 뻔뻔함을 과시한다. 
     
    일본에서는 거짓도 100번 우기면 진실로 탈색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박근혜 그녀 자신뿐이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불륜에 대한 소문이 당사자의 귀에 들리면 그것은 이미 다 소문이 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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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유신잔당+5공본당 의 신념 "100番 主張すればになる"

    [많이 많이 퍼날라 주셔요^^]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망친 첫번째 인물일 뿐입니다.
    [스크렘금지를 풀엇습니다. 많이 많이 퍼날라 주셔요^^] [역대 한국대통령 경제성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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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처럼 되길 ....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이 CF 처음봤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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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망친 첫번째 인물일 뿐입니다

    [역대 한국대통령 경제성적 비교]

     

    일본 속담에는 "거짓말도 100번만 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집요하게 그 속담을 현실의 역사 속에서 실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중에도 철저하게 거짓말이 진실이 되어있는게 있습니다.

     

    바로 친일파들과 5.16군부쿠테타 세력들 그리고 12.12군부쿠테타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역사와 국민세뇌를 통해 "박정희의 경제신화"와 "그래도 전두환때는 경제는 좋았다"입니다.

     

    여기 올린 7개의 통계치를 들여다 보면 그들의 거짓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경제발전은 자유로운 민주정부안에서만 가능하다는것도 알게될겁니다. 세계10대 경제대국에 진입한 것도 노무현 정부때라는걸 알게될 겁니다.

     

    한국은 해방이후 2000년도까지 비슷한 독재체재의 대만경제를 단 한번도 앞서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독재자 박정희와 대만의 독재자 장개석을 비교하면 박정희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없었습니다. 

     

    친일군부독재세력이 틈만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향해 "나라 말아 먹었다"고 침을 튀깁니다. 진실을 드려다보면 한국은 김대중 정부시절에 대만을 따라잡고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세계10대경제 대국의 반열에 진입을 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유연한 자유민주정부체제 안에서, 미국 일본도 차마 국민들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공유를 주저하던 사이에, 세계최초로 국가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한 소통의 속도혁명을 대한민국이 이루어 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세계10대경제대국의 진입은 (1) 자유로운 인터넷 소통의 초고속 정보공유혁명, (2) 한류로 대표되는 다양한 문화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3) 자유 민주주의 발전이 이룩한 쾌거인 것입니다.

     

    일본인들과 대만인들의 한국에 대한 시기와 시셈은 그냥 생긴것도 아니고 더더욱 5.16쿠테타, 유신폭압, 새마을운동, 12.12쿠테타, 삼청교육이 만든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친일매국세력과 군부독재세력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경제성장률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은 모른척합니다. 친일매국세력과 군부독재세력은 박정희가 죽은 이유가 핵개발하다가 죽었다는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과연 박정희가 죽은 이유는 뭘까요?

     

    저들의 소설과는 정반대로 박정희는 죽기직전에 미군이 철수 안하는 조건으로 핵개발을 포기합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말이 많은 매국적인 미사일 사거리 제한협정을 79년 체결합니다. 덕분에 한국은 우주개발분야에서 후진국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늦게나마 김대중 정부가 고흥에 우주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능한 독재자 박정희가 죽던 79년, 한국엔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걸까요?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던 부마민주항쟁은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박탈이 불을 당겼지만, 진짜이유는 경제파탄이었습니다. 79년 한국경제는 살인적인 고물가와 실업에 시름했고 서민들에 대한 세금폭탄등이 결국 부마항쟁을 유발한 근본이유였습니다.

     

    미국정부가 핵개발한다고 죽인 정치인은 이세상에 존재하질 않습니다. 오히려 핵개발을 포기하다 죽은 독재자들은 있지요. 가다피와 후세인 말입니다. 박정희는 친일매국세력과 군부독재세력의 소설처럼 핵개발하다 죽지 않았습니다.

     

    무슨 연고로 친일매국세력과 군부독재세력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증가률에 집착했을까요?

     

    인터넷상에 '키키다'라는 분이 좋은 예를 든게 있습니다. "1만원 용돈받던 백수가 취직해서 100만원 벌면 소득이 100배가 늘었다고 자랑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다들 대단하다며 박수를 칩니다. 100배 100배.. 우와.. 그런데 같은시기 백수였다가 취직한 대만인들은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데 매월 200만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국 독재자 박정희는 대만의 독재자 장개석에 비하면 그냥 무능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땅값은 당연하게 올라갑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요. 보편적인 범위를 벗어나 롯또 젝박수준이라면 그것은 경제성장요인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함때문입니다. 이런 부동산투기풍조 속에 사는 국민들은 총칼 안든 현대판 박정희와 전두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어쩔랍니까? 계속해서 또 5년 더 살아보시겠어요?

     

    한국은 민주화가 시작된 김영삼 정부이후, 국가부도가 난 1997년만 기억하시지요? 이곳에 올린 도표들을 잘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한번이 아니었습니다.

     

    언론이 친일매국세력과 군부독재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당하던 무능한 독재자시절인 1969년, 1974년, 1979년 이렇게 세차레에 걸쳐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사태가 있었습니다.

     

    국내외의 유수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한국국민들은 알지도 기억도 못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사태로 비록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조롱거리가 되엇지만, 외환위기와 국가부도를 3번이나 낸 박정희보다는 유능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박정희처럼 독재하며 언론을 통제하고 조작했다면 그는 온국민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았겠지요.

     

    해방이후 대만조차 따라잡지 못하던 한국은 2000년이후 대만을 멀지감치 따돌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엇을 까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병박 정권의 공통점은 일본을 모방하고 늘 북한과 대립하고 경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일본보다 먼저 움직였고 글로벌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했습니다. 

     

    50년동안 쭉 3류기업이던 삼성과 현대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시절에 일본을 누르고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꿈과 목표가 달라야 합니다.

     

    작은 예이지만 한국인들이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했지만 해방이후 늘 "한국"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르기 시작한건 2002년부터입니다.

     

    한국의 경제교과서나 서적을 뒤저보면 박정희시절 성장률수치만 알려줍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한 다른나라와의 객관적 비교수치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대통령들과의 객관적이고 다양한 비교수치조차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그렇까요?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경제성적을 비교하여 보면 박정희의 경제성적은 태국, 대만, 싱가포르의 지도자들보다 못합니다. 김영삼 대통령보다 못한자가 어쩌다가 신처럼 추앙을 받고, 영남대에는 박정희학과까지 생겼을까요?

     

    나는 내가 태어나던 1961년과 괘적을 함께한 박정희는 궁정동에서 살해되던 나의 고3말까지 나라의 국부요,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철저하게 각인되도록 교육받아온 세대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서, 박정희의 적자를 자임하며 12.12군부 쿠테타로 또다시 정권을 검어쥔 전두환에 저항했고 결국 나라를 등지며 살고 있습니다.

     

    긴이야기 한마디로 줄이겠습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망친 첫번째 인물일 뿐입니다.

     

    [참고]  

     http://blog.daum.net/enature/15851136

     

    [참고]

    IMF 외환위기는 박정희가 원조다 

    By John Coltrane

     

    IMF 외환위기가 마치 1997년 김영삼 정권에서만 발생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에 말씀이다.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달러가 부족하면 발생하는데,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경제수준에 비해 적자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김영삼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집권 내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고, 따라서 박정희 정권에서 여러 차례 외환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잘 모를뿐이지 당연한 현상의 이야기이다.

     

    다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발생한 외환위기 때는 김영삼 정권과는 달리 IMF 관리체제로 가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고 일본에 받아온 돈 겨우 3억불(타 피해국와 견주면 족히 30억불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나, 충성혈서 쓴 천황국이고 미국에서 장면정부에 약속했던 30여 억불이 날라간 판이라 국민들 원성이무서워 그 여론을 잠 재우느라고 일본군 출신 선배들을 통해 요로에 부탁해 몇천만 불 선금 당겨쓰고 황급히 1/10로 낙찰해 받음- 현 규모로 보면 수백억 불 천황국에 양보한 셈), 월남전에 대규모의 파병을 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미국에 받아온 돈 25억불(당시 총 GDP의 몇 배 규모) 중동 건설 특수 등으로 돈 잔치를 벌렸지만, 일본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 보니 최대 규모의 일본외채(YS 때는 IMF사태의 최대 원인이 됨)는 차치하고서도 겨우 겨우 상황을 모면해 나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박정희 권에서 언제, 어떻게, 왜? 외환위기 상황들을 맞았었는지 자료로 살펴보자.

     

    첫번째 외환위기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위한 투자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서 일어났다. 1963년에는 수출이 8,600만 달러였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그 배에 가까운 1억 4,300만 달러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누적적자는 2억 2,4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적자는 미국의 후원으로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8억 달러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에 의하여 넘어갔다. 이러한 자금의 규모는 우리의 수출규모가 1억 달러 전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였다.

     

    두번째 외환위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1967~1971) 기간 중 연간 4~5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어났으나 '월남전 특수'로 넘겼다. 1965년 '월남파병'으로 체결된 '브라운 각서'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정부 조달은 한국에 우선 배정할 것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한진은 월남전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수급의 어려움은 해결되었다.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에 돌아섰다.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방만하기 짝이 없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번째 외환위기는 1973년 10월에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두자리 수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일어났다. 미국의 씨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2억 달러의 점보 론(jumbo loan)을 받아 가까스로 유동성위기를 넘겼다. 우리의 건설업이 동남아에 진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 '중동건설 특수'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네번째 외환위기는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1970년대 중화학공업 투자에 의해 1979년부터 3년 연속 40~5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외환수급이 어려워졌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40억 달러의 '한일 경제협력자금'이 보증역할을 하여 대외신용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해외차입으로 외환수급의 어려움을 넘기게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이와같은 네번의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 하고 뼈를 깍은 구조조정의 노력보다 냉전체제의 산물인 한미일 특수관계, 월남전 특수, 중동건설 특수라는 외생적 변수에 의존하여 위기를 넘김으로써 위기불감증에 걸리게 되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동안 372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데도 원화를 절상하는 방향 착오에 의해 위기는 가속되었다. 1997년에 와서야 금융감독 체제를 개편하고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조성하여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떨어진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는 노력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남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IMF 긴급자금지원' 이라는 타력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조치들은 IMF 자금지원이 있은 후에 IMF 경제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법화되었다. 냉전체제도 사라지고 중국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한미일 특수관계도 약화되었고, 월남전 특수나 중동건설 특수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8.3 사채동결조치' 같은 특혜조치도 불가능했다. 기업 스스로의 자력에 의한 자본충실과 경쟁력 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참고자료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By John Coltrane)

    인용자료: "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 : Report of the 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of the Committee on International Relations, U.S. House of Representatives, October 31, 1978."

     

    인용자료요약: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z-up2VNU8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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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이 중요하고 설레는 이유는 많다. 하긴 어느 선거인들 중요하고 설레지 않을까마는 그래도 이번 대선만큼은 우리 미래의 존망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0년대, 세계를 열패감과 상실감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대공황 이래 우리는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세계의 경제는 연쇄적으로 반응하면서 추락하고 있고, 각국은 자국의 보호를 위해 우경화로 치달으면서 곳곳에서 아슬아슬한 분쟁을 낳고 있다. 이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삼류국가로 추락하고 만다.

    한때, 필리핀이나 폴란드 같은 여타 여러 나라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 나라만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 잘못의 일차적 책임은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국민에게 있다면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각설하고 피치나 무디스 같은 세계 유수의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리며 우리들을 고무시켰지만 어째, 그게 썩 달갑다거나 수긍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지금 우리의 경제구조가 참으로 위태롭기 때문이다. 국가부채는 물론이요, 지방정부와 공기업이 지고 있는 천문학적인 부채, 가계 빚과 나날이 줄어드는 내수와 수출물량들, 줄어드는 일자리에 반해 가계수입을 앞지르는 물가상승률…… 이렇듯 최근 들어 나타나는 수많은 지표들과 현상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작금의 국가 간 전쟁은 자원전쟁이 대부분이다. 영토분쟁 역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전략인 것이다. 헌데 우리의 귀중한 자원인 북한의 자원은 블랙홀처럼 중국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연길과 북한 라선 간에 매일 한차례씩 운행하는 정기 버스까지 개통이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찔하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일까. 우리를 위협하는 일은 많다. 삼성을 비롯한 우리의 일등 제품들은 이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견제의 대상이 되었고, 언제부턴가 조선 산업은 슬그머니 중국에게 1위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니 이번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치와 경제가 왜 중요한지 그 상관관계를 묻는 사람이 많다.

    정말,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렇게 붙어서 가는 것이 정치와 경제인 것이다. 그 나라에 정의가 없고, 투명한 정치가 없으면 외국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자본의 투자 없이는 시설확충과 새 공장을 지을 수가 없고, 그렇다면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 수 없다.

    설령 질 좋은 노동력을 찾아 외국기업이 국내에 투자를 하더라도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그 기업이 안정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행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또 정치적인 믿음과 신뢰도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가지고 전횡을 휘두르거나 정의롭지 못한 곳에 함부로 권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현명하고, 지혜롭고, 정직하고, 균형적 감각과 사고를 지닌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사람에 의해 역사의 물줄기가 뒤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영웅에 의해 인류는 구원을 받기도 하고, 한 사람의 독재자에 의해 많은 사람이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도자는 정직하고, 균형적 감각과 사고를 지닌,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구한말과도 같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처럼 영토문제와 경제전쟁, 안으로는 이념싸움에 휘말려 도무지 구심점이 없다.

    바른 말을 하고 나서는 이가 없다. 그저 당리당략에 따라, 사리사욕에 따라, 세상에 들이대는 잣대와 기준이 다르다. 정의를 외치면서도 내용과 사람에 따라 그 잣대와 기준은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당치가 않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부정인 것이다. 정말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의 영달과 영화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이 들기도 한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공멸하고 만다.그래서 이번 대선이 더욱 중요하다.헌데 누가 되어야 할까. 지난 대선처럼 무조건 잘 살게 해준다는 후보자에 내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까?

    대선 후보로 나선 주자들, 그들이 누구인가? 한 후보는 운명적으로 정치판에 몸담고 살았던 이고, 또 다른 후보는 지난 정권의 핵심인물로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던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나 진보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지만 어쨌거나 2명의 주자가 보여주는 색깔은 보수와 진보와 중도가 얽히고 섥혀 있다. 한명은운명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던 인물이며, 또 한명은 지난 정권 때의 핵심인물이다.

    헌데 눈길이 가는 후보는 지난 정권 때의 핵심인물인 문재인 후보다.

    우선 그가 내건 정책들이 마음을 끈다.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 국익을 위해 정책들을 만들겠다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게다가 그는 고집스럽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거나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유연함도 가지고 있어 그 또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그가 믿음직스러운 것이 그가 보여준 지난날의 행적이나 행보 또한 크게 과오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중소기업의 고충을 잘 알고 있고, 또 과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 또한 문재인 후보가 지닌 장점중의 하나일 것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그 나라는 건강하다. 대기업으로 버티는 국가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노키아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핀란드의 경제는 휘청했다. 핀란드의 경우가 어찌 남의 일만 일수 있을까.

    세상에 완전한 인물은 없다. 한 인물을 평가할 때 단점보다 장점이 많으면 그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이다. 어쨌거나 문재인 후보의 중도적 입장과 정책, 그리고 유연한 사고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덕목들이다.

    게다가 그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후보들처럼 당리당략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갖는 신뢰 또한 크다. 북한의 문제는 어떻게든 우리가 해결해야할 숙제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가 얻는 이익은 크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는 차갑고도 냉정한 시선이 필요하다.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지, 그 차갑고도 냉정한 시각으로 북한의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이제 제발 정신 차리고 우리를 돌아보자.

    어쩌면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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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정신적 행복지수도 높은 나라로 발전되어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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