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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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22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3. 7. 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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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열다섯 번째 이야기-2013년 7월 18일 (목)]

    나를 묶은 자 누구인가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 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特不肯解 非不得解
    특불긍해 비부득해
    - 유몽인(柳夢寅, 1559~1623)
    「해변(解辨)」
    『어우집(於于集)』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밖의 빗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지 못하며, 여름날 고요한 밤하늘의 달빛을 응시하지 못하고, 새벽녘 홀로 일어나 앉아 방안의 침묵을 뭉클하게 보듬어 안지 못할 때, 아마 우리는 병든 것일 겁니다. 그 병명은 ‘매임’이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입버릇처럼 “무언가에 매여 있노라”고 말하는 그 ‘매임’. 그리고 입버릇처럼 하는 그 말의 앞뒤로 우리는 무수한 탄식과 희생, 포기와 눈물, 그리고 보류를 은닉하고 있습니다. 문득문득 우리는 이 매임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지 않습니까?

    유몽인은 같은 글에서 말합니다.

    “천하의 사물은 맺음이 있으면 반드시 풂이 있다. 띠는 송곳, 머리는 빗, 병은 약, 구름은 바람, 근심은 술, 적진은 장군, 귀신은 주문 등 맺은 것으로 인하여 풀지 않음이 없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다. 포승줄로 묶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붙잡아매고 있는 듯하다. 단단히 구속되어 스스로 풀질 못한다. 유독 어째서인가?”

    아마 우리는 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 답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요? 대상과 경계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대상과 경계를 오인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허상을 진짜라고 확신하겠지요. 개인의 허상은 개인을, 집단의 허상은 집단을 묶을 것입니다. 우리는 답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허상에 그리도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유몽인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말합니다.

    “지금 묶지 않았는데도 묶여 있고 풀려나야 마땅한데도 풀려나지 못한 지 20년째. 무엇이 묶었는지 따져보니 밧줄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 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벗어나고자 한다면 나를 붙잡아 맨 자를 찾으면 그뿐입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용기를 내어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 채 고요히 대면해 봄이 어떻겠습니까?

    글쓴이 : 이승현(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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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여든 번째 이야기-2013년 7월 22일 (월)]

    공중누각

    사상누각이니 공중누각이니 하는 말은 원래 토대가 약하거나 토대가 없는 일과 사물 또는 근거 없는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물색하여 측량하고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기초를 쌓고 골조를 얽고 기둥을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근거 없이 생각만 크고 비현실적인 공상에 사로잡혀서 현실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도 모른 채 터무니없이 큰 꿈만 꾸고 있는 것은 공중누각을 쌓으려는 허황한 욕망이다. 사람은 발로 땅을 딛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팔을 앞뒤 양옆으로 뻗으면서 몸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먼저 토대를 튼튼히 밟고 서야 한다.

    고대 희랍의 어떤 육상선수가 로도스 섬에서 올림픽 선수에 못지않게 멀리뛰기 기록을 세웠다고 자랑하였다.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여기가 로도스라고 치고 여기서 뛰어보라’고 하였다. 육상선수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모든 일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안락 선생은 낙양에 살았는데 공중누각을 짓고 스스로 무명공(無名公)이라고 호를 붙였다. 공이 이 누각을 짓기 시작한 것은 모든 것이 혼돈으로 있던 태초로서 궁극의 하나가 나뉘던 때이다. 선천이 이보다 앞서지 못하며 후천이 이보다 나중이 되지 못한다. 누각을 있다고 하자니 있는듯하나 없고, 없다고 하자니 없는듯하나 있다. 작기로 말하면 너무나 작아서 안이 없고, 크기로 말하자면 너무나 커서 바깥이 없다. 우뚝하게 높고도 높아 하늘, 땅과 함께 서서 틈이 없으니 누가 누각과 공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임을 알랴! 아! 사통오달하는 오묘한 경지를 이천(정이)이 아니면 누가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

    安樂先生居洛陽, 創空中樓閣, 自號無名公. 公之起斯樓也, 始於混元之初, 太一之判. 先天之所未先, 而後天之所未後也. 謂之有則似有而無, 謂之無則似無而有. 以言其小則無內, 以言其大則無外. 巍巍乎與天地幷立而無間, 孰知樓與公, 一而二, 二而一者乎! 噫! 四通五達之妙, 微伊川, 誰能名?

    - 박영(朴英, 1471-1540), 「공중누각기(空中樓閣記)」,『송당선생문집(松堂先生文集)』

    [사진] ▶ 15세기에 문청(文淸)이 그린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韓國의 美, 山水畵 上』에서 인용

    이 글을 쓴 박영은 중종 때 사람이다. 김굉필의 제자로서 김종직의 학맥을 이은 정붕(鄭鵬)에게서 학문을 익혀 일가를 이룬 유학자이다. 원래는 무예에 출중하여 무과로 출신하여 선전관으로 있었는데 ‘사람이 학문을 하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자각을 하였다. 이에 학문을 익혀 군자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고서 선전관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정붕 문하에서 『대학』과 성리학 서적을 익히고 사제와 도우의 관계를 맺었다. 천문, 지리, 성명(性命), 산수에도 통달하였으며 의서에도 밝아서 『경험방(經驗方)』, 『활인신방(活人新方)』과 같은 의서를 저술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대담하고 용감하며 기개가 활달하고 기지가 있어서 임기응변으로 도적을 물리친 일화가 여럿 전하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 명석한 판단으로 어려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벼슬을 시작하였지만, 학문적 업적이 탁월하여 문목(文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공중누각 이야기는 원래 불교 경전의 하나인 『백유경(百喩經)』에 나오는 비유에서 유래한다. 백유경이란 원래 이름은 『백구비유경(百句譬喩經』으로서 인도의 승려 상가세나가 저술한 것인데 중국에는 남조 제(齊) 때 번역되어 들어왔다. 비유를 담은 이야기 아흔여덟 편으로 사람들에게 불교의 진리와 세상살이의 슬기를 깨우쳤다.

    옛날에 어리석은 부자가 살았는데 다른 부잣집에 갔다가 삼층으로 된 높고 화려한 누각을 보고서 몹시 탐이 났다. 그래서 자기도 재산이 그만 못지않은데 어째서 지금까지 이런 누각을 지을 생각을 못 했을까 안타까워하고 즉시 대목을 불러서 저런 누각을 지을 수 있는지 물었다. 대목이 저 집도 자기가 지은 것이라 하자 부자는 곧 자기에게도 저런 누각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목수가 땅을 측량하고 기초를 다지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하였다. 어리석은 부자는 목수가 왜 자기가 부탁한 삼층 누각을 짓지 않고 무슨 일을 하려는가 의심하여 물었다. 목수가 삼층 누각을 짓는 중이라고 하자 부자는 아래 두 층은 필요 없고 맨 위의 삼층 누각만 필요하다고 하였다. 목수가 아래층을 지어야 이층을 올리고 이층을 지어야 삼층을 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어리석은 부자는 아래 두 층은 필요 없고 오직 맨 위층만 필요하다고 고집하였다.

    일과 사물에는 시작과 끝, 과정과 결과, 목적과 수단, 근본과 말단이 있다. 무슨 일을 하건 시작부터 차근차근하여서 정당한 과정을 거치고 올바른 수단을 써서 해야 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남이 이룬 화려한 결과에만 취하여 그것을 선망하고 탐을 낸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들인 수많은 시간과 기울인 노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보지 못한 채 남이 이루어놓은 결과만 부러워하고 탐을 내는 것은 바탕과 토대가 되는 일, 이층은 버리고 맨 꼭대기 삼층 누각만 바라는 이 어리석은 부자와 다를 바 없다.

    현대사회는 사회체계가 복잡하고 산업의 양태가 다양하고 변화가 너무도 빨라서 진득하게 시간과 공간 속에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가 없다. 기호와 이미지가 본체와 본질을 가리고 결과가 과정을 덮어버린다. 그리하여 화려한 외양과 공허한 이미지에 도취하여 마치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화끈한 찰나에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려고 덤벼든다. 자기 삶의 크기와 깊이를 전체로 성찰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사람은 태어나 몸을 버둥거리다 몸을 뒤집고 자기 손발을 놀려 기고 물건을 짚고 일어나 뒤뚱뒤뚱 아장아장 걷다가 자기 발로 걷고 뛰고 한다. 그런데 아주 어려서부터 기고 걷기도 전에 차를 타고 다니니 걷는 것보다 탈것을 타는 게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어디를 가려면 반드시 한 걸음부터 떼어놓고 한 발짝씩 쌓여야 하는데 문 앞에서 차에 오르기만 하면 어디든 짧은 시간 안에 도착하니 출발과 도착만 의식에 남는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과정에 따라 차곡차곡 해나가야 하는데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돈만 주면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무어라도 얻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만들고 기다리고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삶도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으며 본질은 버리고 이미지만 추구한다. 알에서 깬 병아리를 길러서 모이를 주고 둥우리를 만들어 족제비와 고양이로부터 지키고 길러서 중닭으로 어미 닭으로 키워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에 손으로 직접 잡아서 끓는 물에 넣어 털을 뽑고 삶아서 먹던 닭을 이제는 돈을 주고 꼬챙이에 꿰인, 또는 토막 난 닭을 바로 사서 먹기 때문에 닭고기 한 점을 먹는데 들어 있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철저히 결과만 취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 글은 박영이 무인다운 호방한 기상으로 시간과 공간의 의식을 무한히 확장하여 공중누각을 자기 스케일대로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공중누각기」는 일종의 우화 형식이다. 안락 선생이 공중누각을 짓기 시작한 때를 태초라 한다든지 무명공이라는 호, 선천과 후천의 시간적 제한, 있음과 없음의 존재 여부, 안과 밖의 공간적 제한을 넘어선다는 표현은 매우 우의적이다. 공중누각은 글자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니 바로 이 지구나 이 우주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삶의 크기를 무한 확장하고 무한 축소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다. 내가 곧 세계이고 세계가 곧 나다.

    안락 선생은 원래 북송의 유학자 소옹(邵雍)의 호이다. 『주자어류』에 이런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물었다. ‘정자(程子, 정이)가 강절(康節, 소옹)을 공중누각과 같다고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그의 시야는 사통팔달하기 때문이다. 장자도 강절에 견주면 거의 비슷하다.’” 위의 글에 ‘이천이 아니면 누가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라고 글을 마무리한 것은 바로 이천(伊川, 정이)의 이 말에서 나왔다. 소옹의 학문적 성향과 인품, 사상적 경향이 장자의 소요유(逍遙游)의 경지와 닮아 있어 정이가 이렇게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니 「공중누각기」의 안락 선생은 소옹이 아니라 소옹과 장자의 정신적 경지를 지닌 사람, 글자 그대로 대우주의 이치를 편안히 즐기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 이 대우주를 이런 시각으로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박영이 정주학을 익힌 유학자라는 점에서 이 글은 소옹의 학문을 공중누각이라고 비평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옹의 학문은 스케일이 굉장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경지를 넘나들지만 실은 현실적 토대와 근거가 없는 공중누각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이도 소옹의 학문을 ‘실학(實學)’이 아닌 공허한 학문이라고 은연중에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목하 정치권에서 NLL을 둘러싼 정쟁이 이전투구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색깔론에 얽힌 정쟁은 한번 얽혀들면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잠잠해진 듯하다가는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나 촉발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와 불의의 복마전인 외세에 의한 분단이 초래한, 우리의 정기(精氣)를 소진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우리의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부정적이고 어두운 기운으로 삽시간에 바꿔버리고 인정과 우애와 화평을 갈등과 증오와 불화로 화하게 하는 벌집이다. 이 정쟁은 한번 건드리면 삽시간에 떼거리로 쏟아져 나와 달려들어 쏘아대는 땅벌의 집을 건드린 것이다. 누가 왜 이런 논쟁과 투쟁을 시작하였고 왜 하는지 원인도 목적도 결과도 수단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한쪽에서는 물고 한쪽에서는 뜯는다.

    어쭙잖은, 무책임한 양비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단에서 비롯한 색깔론의 이념투쟁은 공중누각을 두고 다투는 일과 같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쟁에 휩쓸리면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된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서 본말을 왜곡해버리고 앞뒤를 뒤바꿔버리고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말하려는 의도는 도외시하고 겉으로 표현된 말투만 물고 늘어진다. 그러니 어떻게 논쟁이 되겠으며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문제, 문제 자체로 남아 있을 때 존재의의가 있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도리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바라고 다투는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일수록 냉철하게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찾고 열린 자세로 논쟁하고 전체 인민의 의지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김태완 글쓴이 : 김태완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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