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8_FaceBook_Twitter

2013년 7월26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3. 7. 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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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참석하러 갑니다^^ 얼굴 한번 봅시다^^] 청년 광복군 장준하 귀국 기념 호프데이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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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그런일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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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이 박사님, 우리도 미국에서 한 번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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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그러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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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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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박사님이 올리는 사진중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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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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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하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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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제가 다음달 16,17일 샌디에고와 la 에 갑니다. 17일은 추모식을 la 에서 합니다. 다음에 이박사님 계시는 곳에 가게되면 호프데이 한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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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시카고 에 그호텔은 내부 경관도 특이 한데다 매년 dental seminar를 거기서 하느라 알고 있지만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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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이박사님도 오시나요? 저두 참석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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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접기 - Yard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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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삼매경 - 지상 최고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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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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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태닝 자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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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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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Oh, I love this poster. 이것...pdf file 을 제게 보내 주실 수 있으세요? Facebook 외에 따로 이메일...그리고 교육 자료로 쓰고 싶네요. Message 방에서 제 이메일 주소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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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무겁어~ 내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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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그냥 찾아가면 되는건가요? 참가비랑 준비 사항도 안 써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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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순다섯 번째 이야기-2013년 7월 25일 (목)]

    전원으로 돌아가리

    아침저녁 온종일 너무도 바빠
    먼지 속에 잠시도 쉬지 못하네
    청산에는 기쁜 일 많을 터이니
    돌아가서 띠풀을 베어보련다

    朝暮一何忙
    塵中不蹔歇
    靑山樂事多
    歸去茅將伐

    - 정탁(鄭琢, 1526~1605)
    「귀전원(歸田園)」
    『약포집(藥圃集)』

    이 시는 33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에 대사성, 대사헌, 이조 판서, 병조 판서, 예조 판서, 우의정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7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퇴하고 고향 예천으로 돌아간 정탁의 시이다. 전체 3수 중 두 번째 시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전원으로 돌아가고픈 소망을 간절히 그리고 있다. 관직 생활에 분주했던 그의 행력을 살펴볼 때에 전원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일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그 세 번째 시도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러나 나아가길 구하지 않으니 退潛不求進
    세인들 물정 모른다 말들을 하네 世人或曰迂
    이 마음 어디고 매인 데 없으니 此心無係累
    영욕의 마음이야 본래 없다네 榮辱本來無

    출세를 지향하는 세속에서, 물러난 후 다시 나아가기를 추구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말이 많았나 보다. 그러나 시인은 영욕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의지에는 변함이 없고, 청산을 즐길 뿐이다. 옛날 벼슬한 관인들은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전원의 한가로운 생활을 노래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진정한 바람 속에 모든 관직을 거절하는 경우일 때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그저 욕심 없는 마음을 보이기 위한 구호에 불과할 때도 하다. 「귀전원(歸田園)」의 전통은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며, 현대로 내려와서는 전원주택 생활과 귀농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한 전원생활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이었을까? 농가 생활을 노래한 또 하나의 갈래는 「상전가(傷田家)」 전통일 것이다. 당(唐)나라의 섭이중(聶夷中)은 “이월에 새 고치실을 팔고, 오월에 새 곡식을 판다네. 눈앞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겠지만, 심장의 살점을 도려내는 것이라네.……[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라고 하였다. 2월에 이미 여름에 생산할 고치실을 저당 잡혀 돈을 꾸고, 5월에는 또 가을 곡식을 먼저 저당 잡혀 돈을 꾸고 있으니, 정작 수확을 했을 때에는 내가 가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미리 돈을 꾸고 있지만,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장을 도려내는 삶의 파탄뿐이다. 결과를 모르지는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다. 그 옛날 수많은 백성은 어떤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은 전원에서의 한가한 삶을 꿈꾸고 있다. 지역마다 전원주택 단지도 생겨나고, 수많은 귀농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은퇴 이후의 전원생활을 위하여, 혹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며 열심히 주말농장을 경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지, 오이, 고추, 토마토 등이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러나 바쁘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바쁘기만 하고 바쁜 만큼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농사에 나와 가족의 생계를 모두 걸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이 시대에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귀농하여 올해 처음 고추농사를 짓기 시작한 오랜 친구가 생각난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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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40대 초반에 귀농했으니 시간은 좀 됀것 같은데 아직도 뭘 모르는 것 뿐이네요. 그저 지금 살아 있는 걸루 감사하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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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티아라 라는..걸그룹의 전원일기 라는..가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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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준이 글 정말 공감된다. 북한 인민군대는 10년씩 복무한다지 ... 정말 가슴 아프구나 ㅠㅠㅠ
    북쪽의 인민군 소년 병사가  
     
    감자 6알 훔치다가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 
     
    햐... 한 달 전 쯤인가.. 집에서 가져온 감자 다 먹지 못해서 5알 아깝게 버렸는데... 
     
    음식물이 의류처럼 썩지 않으면 좋으련만.... 
     
    북한에 식량지원을 해주면 대부분 군량미가 되어 일반 인민들은 먹지 못한다고 하는 분들이 주변에 종종 계셨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인민군은 사람 아닙니까? 또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요.." 
     
    "김정일의 요리사"의 저자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처가집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결혼한 10살 연하의 부인이 2~3일에 한 번씩 남편도 모르게 어딘가 다녀오는 등 행동이 수상해서 미행해보니 끼니거리를 챙겨서 친정에 가는 것을 알게되었고 일반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알게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지금도 그러하지만) 과거 주변 친인척에 직업군인이 있으면 군납 용품을 빼돌려서 자기 집과 주변에 나눠주는 경우가 있었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군납" 마크가 찍힌 맥주를 팔았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즉 북한 인민군들에게 식량이 보급되면.... 충성심에 안 건드릴 병사가 얼마나 될까? 
     
    당장 집에서 부모형제, 처자식이 굶주리고 있으면 어떻게든 훔쳐가서 주변인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려는게 보통 인간의 당연한 행동양식이지 않을까? 
     
    하지만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좀 하려면 퍼주기다 뭐다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발광하는 무리들이 우리 사회에 은근히 많다.  
     
    웃기는 것은, 그들은 잘 먹고 잘 살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기부 활동 등 자선사업 쪽에는 별로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또 그런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을 운운하고 있는게 현재 대한민국의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온다고, 인권도 배가 불러야 챙길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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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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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지금은 생각이 달라도 엄연히 동포인데 우리끼리 제 살 뜯어 먹기 하다가 미국,일본,중국 틈새에서 과연 우리 주권을 제대로 지킬 것인가? 앞 길이 구만리다. 10년 세얼 도로 아미타불에다가 가속도까지 역으로 붙었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더럽다. 희망을 잡기가 버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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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우리 알도령 생각나는 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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