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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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20일 Facebook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3. 9. 2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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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들 가져보셔도 좋을것 같군요]

    《민족문화》42집 논문 투고 안내


    ◈ 한국고전번역원 발행 학술지 《민족문화》42집(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을 아래와 같이 모집합니다. 관련 연구자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논문성격 : 고전 번역 및 고전적 정리에 관한 연구 논문 및 관련 자료
    고전과 관련된 한국학 분야 연구 논문
    2. 분 량 : 200자 원고지 150매 내외
    3. 원고작성 : 「원고 투고 규정」 참조
    4. 마 감 : 2013년 10월 20일
    5. 발 간 일 : 2013년 12월 31일
    6. 접 수 처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연구소 담당자
    (전자우편 : itkcjournal@naver.com / ☎ 02-6263-0299)
    7. 투고방법 : 「논문 투고 신청서」와 투고 논문을 전자우편으로 제출

    ※ 참고
    - 투고 논문은 다른 학술지나 단행본에 발표되지 않은 것이어야 함
    - 논문 게재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동일 연구자의 논문은 연속 게재하지 않음.
    - 동일 호에는 투고자 1인당 1편의 논문만 투고할 수 있음

    ※ 「원고 투고 규정」및「논문 투고 신청서」는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게시된 ‘《민족문화》42집 논문 투고 안내’에서 내려 받으시기 바랍니다.

    ※ 편집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게재가 확정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50만원)를 지급합니다.

    ◈《민족문화》41집에 수록된 논문이 본원 홈페이지(http://www.itkc.or.kr/)에 새로 업로드 되었습니다.
    홈페이지 ‘간행물 소개 > 회지 민족문화’로 들어오시면 창간호부터 41집까지 수록된 논문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연구자들의 많은 이용 바랍니다.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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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여든여덟 번째 이야기-2013년 9월 16일 (월)]

    화왕계(花王戒)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 권력을 잡게 되면 권력에 도취되어 남의 충고나 비판을 멀리하고 꺼리게 되며 그 자리에는 아첨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채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고 마침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최고 권력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신문대왕이 한여름(5월)에 높다랗고 훤한 방에서 설총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은 여러 날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남풍이 불어 시원하구나. 맛있는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더라도 고상한 이야기나 재미있는 우스개로 답답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하리라. 그대는 틀림없이 색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터이니 나에게 들려주지 않겠는가?”
    설총이 대답했다. “예, 제가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에 꽃의 왕(모란)이 처음 들어왔을 적에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을 둘러쳐서 보호하였더니 봄철이 되자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게 뛰어났다. 이때 가까이서 멀리서 곱고 아름다운 꽃의 정령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질세라 다투어 달려와 꽃의 왕께 배알했다. 그런데 문득 한 아름다운 여자 정령이 발그레한 얼굴, 옥같이 깨끗한 이에 곱게 단장하고 말쑥하게 차려입고서 간들간들 걸어와서 얌전하게 다가가 말했다.

    “첩은 눈같이 흰 모래 벌에 자리 잡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 보며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쐬며 마음대로 노닐며 사는데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대왕의 어진 덕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대왕의 잠자리를 모시려 하옵니다. 대왕께서는 저의 뜻을 받아주시렵니까?”

    이때 또 어떤 남자 정령이 베옷에 가죽 띠를 띠고 성성한 백발에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굽실굽실 걸어와 말했다.

    “저는 서울 밖 큰길가에 자리 잡고서 아래로는 아득하게 탁 트인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높이 솟은 산에 의지해서 사옵니다. 이름은 할미꽃[白頭翁]이라 하옵니다. 제 생각에는 가까이 모신 사람이 넉넉히 공급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차와 술로 마음을 맑게 하더라도 상자 속에는 원기를 보충하는 좋은 약과 독을 없애는 극약이 저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과 삼베가 있더라도 왕골이나 띠풀을 버리지 말라 하였사옵니다. 모든 군자는 결핍을 대비하지 않음이 없으니 대왕께서도 혹 이런 생각을 하시옵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두고 누구를 보내시렵니까?”

    꽃의 왕이 말했다. “노인장의 말도 이치에 닿는 말이지만 어여쁜 사람은 얻기가 어려우니 장차 어찌해야 좋을까?”

    노인이 나아가 말했다.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의리를 아실 것이라 생각하여 온 것이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임금 된 사람 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불우한 신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풍당(馮唐)은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낮은 벼슬자리에 머물렀사옵니다. 옛날부터 사정이 이런데 전들 어찌하겠사옵니까?”

    꽃의 왕이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하고 말하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왕은 서글픈 기색으로 말했다. “그대의 우화는 참으로 뜻이 깊구려.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임금이 된 자의 경계로 삼게 하오.” 마침내 설총을 뽑아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

    神文大王以仲夏之月, 處高明之室, 顧謂聰曰, 今日宿雨初歇, 薰風微涼. 雖有珍饌哀音, 不如高談善謔以舒伊鬱. 吾子必有異聞, 蓋爲我陳之. 聰曰, 唯. 臣聞, 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粧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 曰,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 而沐春雨以去垢, 快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 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 左右供給雖足, 膏粱以充腸,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故曰, 雖有絲麻, 無棄管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王亦有意乎.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矣,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疏遠正直. 是以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郎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 於是王愁然作色曰, 子之寓言誠有深志. 請書之以爲謂者之戒. 遂擢聰以高秩..

    -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설총전(薛聰傳)」, 『삼국사기』

    광활한 중국 대륙에 붙어 있어 그 문명과 문화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유구한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온 우리나라는 갖가지 문학 장르가 중국 못지않게 발전하였으나 유독 우화 분야에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물론 우화소설이나 우화 형식의 민담과 전래동화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위선과 약점을 꼬집고 짤막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지혜를 주는 우화는 별로 없다. 그래서 역사기록이나 문헌에 나오는 우화는 한두 편이라도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우화가 바로 설총이 남긴 이 이야기이다.

    설총은 원효대사의 아들이다. 설총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능통하고 글을 잘 썼으며, 말을 잘했다고 한다. 아버지 원효대사와 달리 유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문학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국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왕에게 늘 정치적 자문을 하였다. 유가의 경전을 한자음을 빌어 신라 말로 풀이하였으며 이것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설총은 한자음으로 신라 말을 기록한 이두를 집대성하였다. 여러 갈래로 내려온 이두 표기법을 정리하고 집대성하여 체계를 세우고 기존의 이두법과 함께 우리 식으로 읽고 새기는 방법을 새로이 고안하였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설총이 이두로 유가 경전을 해독하고 보급한 공적을 기려서 홍유후(弘儒侯)에 봉하여 문묘에 종사하였다.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준 이 이야기는 「화왕계」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신문왕은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아들로 10여 년간 왕의 자리에 있었다. 문무왕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직접 말에 올라 싸운 왕이지만 신문왕은 통일된 신라를 물려받은 왕이다. 신생 통일왕국의 미래를 위한 머릿돌을 놓아야 할 책임을 진 신문왕은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술과 음악을 마냥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통일을 이룬 초기라 국가의 기강을 안정시켜야 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위로하여 대립 의식, 우열과 차별 의식을 없애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급선무였다. 실제로 신문왕은 왕으로 있는 동안 신라 귀족의 반란, 고구려 유민의 반란을 진압하였고, 그 소용돌이 가운데서 왕비를 폐위시키는 일까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처럼 어수선하고 혼란한 통일 초기의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려면 왕이 이성을 지니고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마음을 굳게 다져야 한다고 권고하는 우화이다.

    장미는 아첨하는 신하, 또는 평정한 마음을 유혹하는 향락을 상징하고, 할미꽃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갖도록 충고하는 지혜로운 신하를 상징한다. 권력을 갖게 되면 누구나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유혹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충고하는 말은 귀찮게 여기고 듣지 않으려 한다. 또 권력 주위에는 온갖 아첨과 그럴듯한 말로 환심을 사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의 말은 달콤하고 솔깃하긴 하지만 진실이 없다. 『논어』에는 “말을 그럴듯하게 잘하고 낯빛을 꾸미는 사람 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고 하였다. 『공자가어』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고치는 데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을 바로잡는 데 이롭다.”고 하였다. 『노자』에도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권력의 자리에 있을수록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듣기 싫은 말이라도 충고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권력은 개인이 명예, 향락, 행복을 누리는 수단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보편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개인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공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좋은 말로 설득하고 충고하여 권력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설총은 권력자에게 훈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맹자와 풍당(馮唐)을 예로 들어 말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학설을 받아들여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주장과 이상적인 정치로 왕도정치를 시행할 것을 역설하였다. 당시는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려서 저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수적인 투쟁만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진 정치와 인간을 사랑하는 정치를 주장하는 맹자의 말을 귀담아들을 정치가는 거의 없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자기의 정치 이상을 설득하였지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맹자의 정치 이념은 그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고대 정치철학의 주요한 이념이 되었다. 풍당은 한대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나서 낭중이라는 벼슬을 얻었다. 그는 당시 황제인 문제(文帝)에게도 서슴없이 솔직하게 말을 하여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곧바로 풀려나 황제에게 바른 판단을 하도록 이끌었다. 풍당은 나중에 화를 당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바른말을 하는 지식인의 상징이다.

    충고하는 사람도 객관적이고 공평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감정을 내세우지 말고 공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옛말에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고치는 데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을 바로잡는 데 이롭다.”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부터 충고를 받아들이고 훈계를 따라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을 고치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역사상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치가는 모두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기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한 사람의 판단보다 여러 사람의 견해를 종합하면 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경』에, “우 임금은 타당한 말을 들으면 절을 하고 받아들였다.”고 하였다. 겸허하게 남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우 임금은 고대 중국 문화의 기틀을 놓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신문왕도 음식과 술과 여자로 얻을 수 있는 온갖 향락보다 고상하고 뜻이 깊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였다. 신문왕에게는 충고를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열려 있었던 것이다.

    글쓴이 : 김태완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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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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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el Lee 아! 드뎌 여행 무드에서 일 무드로 돌아 오셨네여!!!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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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순아홉 번째 이야기-2013년 9월 19일 (목)]

    서울에서 추석을 맞아

    서울에서 나그네 신세 되고서는
    일 년 내내 집안 소식 드물었네
    한 점 구름은 가을빛을 머금고서
    홀로 먼 산 고향으로 돌아가네

    自作漢陽客
    一年家信稀
    孤雲有秋色
    獨向遠山歸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한양추석(漢陽秋夕)」
    『석북집(石北集)』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귀성 대란’, ‘기차표 예매 전쟁’, ‘고속도로 체증’, ‘선물 고민’, ‘명절증후군’ 등 즐거워야 할 명절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 사람들의 입과 방송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은 이런 어울리지 않는 단어 속에서 힘겨워한다. 그러나 이런 힘겨운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여 더욱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위의 시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바쁜 도시의 생활 속에 고향을 찾을 짬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어려워진 형편에 차마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명절의 전쟁보다 더 치열한 취직과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느라 고향을 찾을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 넘을 수 없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인 사람들…… 가을빛을 가득 머금고 고향 하늘로 흘러가는 구름이 부러울 뿐이다. 차가 좀 막히면 어떠랴. 더디 가는 것이지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운 고향으로 가는 길에 다소 비싼 댓가를 치룬들 그리 아까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진 자의 사치스런 푸념에 불과할 것이다.

    객지에서 맞이하는 추석에 대해 읊은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서쪽 변방의 둥글고 둥근 달 西塞團團月
    오늘 밤 내 옷을 비추는구나 今宵照我衣
    맑은 빛 누구를 주려하는가 淸輝欲誰贈
    먼 곳 나그네가 의지한다네 遠客許相依
    서리 내리는데 선영은 멀고 霜露先塋遠
    자식 노릇 봉양도 못한다네 晨昏子職違
    처자식 그래도 옆에 있으니 妻孥還在側
    서로 마주하여 눈물 뿌리네 相對涕交揮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시이다. 둥근 달을 보면 고향 생각이 간절하지만, 한편으론 그 밝은 달빛이 나그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오면 선산을 돌아보며 관리해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을 살피며 봉양해야 하는데, 이런 자식으로서의 기본적인 직분을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시인은 옆에 아내와 자식이 함께 있어 이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나 보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외롭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 외로움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상대적 외로움일 것이다. 평소에는 고향에 찾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명절이 되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을 때면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명절에 즈음하여 또 한편 생각해야 할 것은, 찾아가지 못하는 외로움보다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움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옆집, 뒷집에는 자식들이 모여 시끄러운데, 홀로였던 집에 오늘도 여전히 혼자라면 그 적막함과 외로움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밝은 달빛이 오히려 처연함을 더할는지 모르겠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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