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낙타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6. 6.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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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선 길 건너는 동물 조심하라는 '로드 킬(Road kill)' 경고판에 사슴이나 무스, 곰을 그려놓는다. 호주는 캥거루·타조, 우리는 노루·고라니 그림이 많다. 사하라 사막 북쪽 튀니지엔 낙타 표지판이 서 있었다. 목동이 모는 낙타 떼가 자주 지나다녔다. 북아프리카에선 낙타가 하나 버릴 게 없는 살림 밑천이다. 고기는 먹고 털로는 옷·담요·양말을 짠다. 낙타젖은 우유보다 철분이 열 배, 비타민이 세 배다.


▶몇년 전 튀니지 고도(古都) 캐루안에서 1200년 된 우물을 봤다. 천으로 눈을 가린 낙타가 연자방아처럼 바퀴 돌려 물을 길었다. 사하라 관문 두즈에선 낙타를 탔다. 한 시간 반 사막에 들어갔다 오는 맛보기다. 낙타들이 안장 얹고서 손님을 기다렸다. 등에 혹이 하나 달린 단봉낙타여서 몸집 작고 온순했다. 목 치켜들어 쳐다보는 얼굴이 영락없이 반갑다고 웃는 표정이다. 마부 아닌 '타부(駝夫)'가 네댓 마리를 줄로 연결해 끌었다. 열심히 걷고 뛰느라 물결치는 낙타 등이 얇은 안장 위로 전해 왔다.


▶카타르 도하엔 낙타 시장이 섰다. 낙타들이 철망 너머 목을 길게 내밀어 알은 체했다. 일행이 낙타 입과 닿을 듯 입맞춤 시늉을 했다. 낙타는 숙명적으로 착한 짐승이었다. 중동에선 낙타 고기를 차리는 게 우리 소 잡는 것만큼 극진한 대접이다. 결혼식 같은 잔치에 마리째 사서 쓴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3월 중동 두 나라에서 낙타 고기를 대접받았다고 자랑했다.


▶수행했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이상한 맛은 아니지만 찾아 먹을 맛도 아니다"고 한 말이 새삼 화제다. 보건복지부가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 이상한 메르스 예방법을 올리면서다. 그림 곁들여 '낙타와 밀접한 접촉을 피하라'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乳)와 익히지 않은 낙타 고기 섭취를 피하라'고 했다.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도 두 대목이 '예방 수칙'으로 올라 인터넷과 SNS에 야유가 넘쳤다.


▶'유니콘 타고 명동 가지 말라는 소리' '낙타 말고 알파카 타고 학교 가야겠다' '냉장고에서 낙타유 꺼내 마실 뻔했네' '낙타 고기가 삼겹살이냐….' 애꿎은 동물원 낙타까지 격리됐는데 낙타가 어딨느냐는 조롱이다. 복지부 예방법은 질병관리본부 홍보물 '중동 여행 시 주의사항'에서 제목 떼고 두 대목만 올린 것이었다. 손가락질받아 싼 무(無)신경이다. 가정통신문도 마찬가지다. 하긴 메르스 터지고 당국 하는 일이 그랬다. 방심하고 때 놓치고 헛다리 짚고 허둥대고. 야유와 조롱은 보건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만물상] 낙타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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