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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과학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7. 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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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과학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년 11월 9일 ~ 1996년 12월 20일)은 미국의 천문학자, 천체화학자, 작가이자 천문학, 천체물리학, 그외 자연과학들을 대중화하는 데 힘쓴 대중화 운동가이다. 그는 외계생물학의 선구자였으며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계획의 후원자였으며 나사의 자문위원으로도 참가했다. 매리너 계획 참가, 하버드 대학교 강사, 코넬 대학교 교수, 파이어니어 계획 참가, 바이킹 계획 참가, 행성연구소 소장, 칼텍 초빙연구원 등의 경력을 가졌다. 냉전 말기에는 핵겨울 이론을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과학 대중서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60여 개국 5억여 명이 시청하였고 에미상과 피버디 상을 수상한 1980년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Cosmos: A Personal Voyage)의 제작자이자 공저자로도 명성을 얻었다. 《코스모스》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책으로도 나왔는데, 이 책은 휴고상을 수상했다. 또한 세이건은 1997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콘택트》(Contact)도 썼다. 일생동안 세이건은 600편 이상의 과학 논문과 대중 기사를 작성했고, 작가·공저자·편집자 등의 자격으로 20권 이상의 책들에 참여했다. 세이건은 자신의 연구와 작품속에서 지속적으로 세속적 인간주의, 과학적 방법, 회의주의를 주장했다.


칼 세이건은 1934년 11월 9일,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유대계와 러시아계 이민자로, 1904년에 외조부 라이프 그루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국이었던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의 사소브(현재의 우크라이나)에서 살다가 사람을 죽이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1905년에는 그루버의 아내 차야가 남편과 합류했고, 도착한 지 몇 주 만에 딸 레이첼 그루버를 낳았다. 한편, 아버지 새뮤얼 세이건은 사소브에서 남동쪽으로 190 km 떨어진 카메네츠포돌스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새뮤얼은 1933년에 레이첼을 만나 3월 4일에 브루클린에서 결혼했고, 그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세이건이 7살일 때 여동생 캐럴(캐리) 세이건이 태어났는데, 어머니 레이첼은 아들을 다소 편애했다. 세이건은 어렸을 때부터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부모에게서 처음으로 도서관 카드를 받은 세이건은 85번가의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별(stars)에 관한 책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사서는 클라크 게이블, 진 할로 등의 사람들의 사진이 실린 그림책을 가져왔고, 그는 항의를 한 뒤 올바른 책을 받았다. 어린 세이건은 우주의 거대함과 인간의 하찮음에 놀라워했으며, 이때부터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8, 9세 무렵에는 만화와 공상 과학에 빠져들었다. 학교측은 부모에게 세이건은 재능이 있으니 사립학교를 가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부모는 세이건을 공립학교에 보냈는데,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재능이 뛰어났던 세이건은 몇 학년을 월반했다.


세이건은 라웨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세이건은 이 학교를 ‘콘웨이(교장 이름) 수용소’라고 부르며 냉소하는 등,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세이건은 과학적 기반이 약한 선생들에게서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세이건은 고등학교 시절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면서 독서에만 빠져들었다. 이때 훗날 친구가 되는 과학소설계의 거물 아서 찰스 클라크의 《성간 비행》(Interplanetary Flight)을 접하고 로켓 기술과 수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클라크 외에도 아서 에딩턴, 제임스 진스, J. B. S. 홀데인, 줄리언 헉슬리, 조지 가모브, 윌리 레이, 레이첼 카슨, 사이먼 뉴컴 등의 저서들을 탐독했다.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오면서, 세이건은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굳히고 윌슨 산 천문대, 팔로마 천문대 등지의 천문학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하지만 가족들은 세이건의 진로를 탐탁치 않아 했다. 할아버지는 천문학자가 되었을 때의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했고,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의류 사업을 하기를 바랬으며, 어머니는 아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졸업식이 가까워지고 세이건은 대학을 알아보았다. 점수는 좋았으나 월반한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졸업 당시 나이가 겨우 16살이었다. 대학들은 이렇게 어린 학생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 상황을 따져본 뒤, 입학 연령 제한이 없고, 여키스 천문대를 소유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하고 시카고에 정착했다.


세이건은 가장 유명한 불가지론자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데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로써의 신에 대해서는 여러번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했지만, 우주를 창조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이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부정할려면 우주에게 시작은 없었다는 확고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이건의 어머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고 아버지는 불가지론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인 토라 회당에도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교 교육을 지루해했고 모든 신앙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1996년 12월 20일 골수암으로 사망했다.


[코스모스(Cosmos: A Personal Voyage)/1980]의 내용 - (캐츠비의 서평) 사람이 사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몇 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이라지만,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은 몹시도 미시적인 일이다.  인간은 더불어 비속한 동물이다.  만물의 영장, 지구를 지배하는 지적 생물, 종교적 입장에선 선택받은 자로 묘사되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만년에 지나지 않으며, 그건 지구의 나이라고 알려진 45억년이나 한때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의 시대가 3억년 동안 계속된 것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도 인류 문명은 온 우주의 진리를 독점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것처럼 큰소리를 치곤 했다.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중세 1천년의 시간은 인류의 지적 지평이 얼마나 허술하고, 고약한 비약을 감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중세는 AD 392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1천년간 중세 기독교는 세계를 종교적 색깔에 꿰맞추기 위해, 철학과 과학 등 모든 학문을 탄압했고, 그리스 초기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고 있던 과학과 자유로운 철학 세계의 사유를 짓밟았다.  세상은 성서적인 기준에 따라 해석되어야 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은 지구여야 했고, 그래서 태양을 비롯한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은 신앙이 되었다.

 

지상의 삶은 천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원받아야 할 여정이었고 과학자들의 연구는 성서의 창조 드라마에 시비를 걸면 심판을 받아야 했다. 지난 1천년은 우주의 역사에서 지극히 미약한 시간이지만,  그러한 시행 착오가 진리에 대한 인류의 각성을 가져왔다는 데는 도움을 주었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인류의 터전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바라는 것처럼 우주의 중심도, 유일한 행성도, 선택받은 대지도 아니었다.  지구는 우주의 수십억 은하 가운데 하나인 은하수 은하의 나선 팔 가운데 한 구석에 위치해 있는 존재 조차 미미한 태양계에 거주한다.  천상에서 가장 밝은 별인 태양이라지만, 은하수 은하에만 태양(항성: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나 그보다 큰 별들이 수천억개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구처럼 그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또 수조개가 있다. 

 

이러한 지구라는 주변부의 하찮은 행성에 발딛고 살아가는 인류는 대체 누구이며, 이 우주의 정체와 진실은 무엇일까 ?  오늘도 티뷰이 뉴스에서 순간 들려오는 온갖 개인과 사회, 세계의 문제들이란 하나 반갑고 환영할만한 게 없다지만,  우주라는 배경과 역사안에서 오늘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사소하고, 우습지 않을까?  왜냐하면, 현미경 속을 분주히 오가는 미생물의 날렵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누구든 그네들의 삶에서 역시 심각성과 진지함보다는 어떤 유머와 아이러니를 먼저 연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양 과학서로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그 명성대로 인류가 지금껏 발견한 과학 지식과 지적 탐구의 역사를 해설한 책이었다. 저자 칼 세이건은 1980년에 이 책을 탈고 했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 책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행성 전문가였던 세이건은 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천문학을 강의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과학지식을 보급하는데 관심을 두었고, 코스모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최고의 대중적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 책은 텔레비전 판 코스모스를 기본으로 하면서 더욱 정교하게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역사,철학, 생물학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던 저자의 해박한 글쓰기를 통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본질'을 사색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65

 

흔히 종교적 인간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신'의 영역에 남겨둔다.  무지가 신앙이란 고귀한 이름을 달고, 경건의 옷을 입는 것이다.  때론 이것이 삶에 보탬이 되곤 한다.  대부분의 신앙은 기복신앙의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중세 1천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미신의 해악은 순수한 과학 발전을 가로막았고 경건한 중세는 호기심 많은 인류가 탐구욕을 갖는 것조차 죄악시했다.  그리고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마녀 심판 하듯, 탄압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질문한다.  우주는 진정 창조 되었는가?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인과율을 생각해볼 때, 창조는 필연같다.  하지만, 세이건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묻는다. `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그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  흔히 종교적인 입장에서 세계는 인과율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원인의 끝에서 신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신의 존재 문제에선 인과율의 예외를 두곤 한다.  창조주는 인과율의 적용을 받지 않고, 본래 존재했다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인과율 아래서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엔 인과율을 생각할 때, 신은 대체 누가 창조했는가? 라는 이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누가 이 문제에 확실히 답할 수 있을까?  세이건은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주의 기원에 답이 없고, 신은 항시 존재했다는 답변은 우주가 항시 존재 했다는 답변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적 관점에선 몹시도 불경스럽다.  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 예민한 질문을 이 책에서 마주하자마자, 세이건이 무척 용기 있는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지 않는 종교인은 맹목으로 빠지기 쉽다. 창조주는 대체 누가 창조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줄 아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예민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신앙에 충실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인류의 진보는 과학적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탐구를 통해 이어온 것이다.  교황청이 20세기에 들어서야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탄압한것에 반성문을 썼듯이, 종교는 과학이 발견하는 진실들에 빚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이점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신의 몫으로 떠넘긴다. 이것은 여러 문화권에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신이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답은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근원을 묻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결하려면 당연히 `그렇다면 그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513

 

그렇지만,  칼 세이건은 과학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과학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자정 능력에 달려 있다고 역설한다.  인류 문명의 역사 1만년 가운데 인류가 코스모스의 일원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0년 안의 일이다.  그리고 인류는 핵무기를 갖게 됨으로써 세계를 수천번 파괴하고도 남을 힘을 갖게 되었다.  우주 탐사선을 지구 밖으로 내보내는 모든 기술은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기술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학이 가진 양면성은 이 지구 파괴와 우주 탐색이라는 부정과 긍정의 성질을 동시에 안고 있다.  

 

종교에선 흔히 종말론을 들먹이지만, 지구 종말은 필연이다.  태양은 헬륨과 수소가 핵반응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지만,  타는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태양은 에너지를 소실하고, 빛을 잃을 것이며 태양계의 행성들도 태양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하지만 지구의 나이만큼이나 먼 훗날의 일이다.  하지만, 세이건은 이러한 별의 탄생과 죽음이 코스모스의 일상다반사한 일이며, 지금도 우주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장엄한 서사시라고 단언한다.  별이 인간의 운명처럼 생과 사를 넘나들고 저 조용한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서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놀랍고 경이롭다.  더불어, 셀 수 없이 많은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저 은하들에 반드시 있을 것이고,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세이건은 확신한다.

 

"그런데 과연 우주에 이야기할 상대가 있을까?  우리의 은하수 은하에만 물경 3000억 내지 5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지적 생물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어찌 태양 하나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칼 세이건 <코스모스>,  p.595

 

한달 동안 700여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며 난 한 과학자의 지적 해박함에 놀랐다.  그는 천문학자지만 이 책에서 그는 인류역사와 철학에도 정통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도 어느 교회에선 성경 이외엔 다른 책은 불경스럽다며 읽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전도서에도 지식을 더하는 것은 번뇌를 더하는 것이란 말이 실려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중세가 갈릴레오와 같은 천문학자나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적 철학자에 의해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교회는 그 막강한 힘으로 불경한 것들을 마녀 심판하고 무고한 학자들을 불태워 죽이고 있을 것이다.  하여, 여전히 우리는 태양이 거룩한 지구를 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교회가 숭배하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탐구에서 나오며, 지식에서 나온다.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해서, 세상을 비합리적인 믿음에 묶어 둘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신념을 벗어나는 개념이라 하더라도, 우주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주하는 은하수 은하는 여타의 은하들과 같이 타원형이며 세이건은 이것이 마치 거푸집에서 동시에 재조된 듯 하다고 비유 한다.  지구에서 통하는 물리법칙은 우주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법칙으로 통한다.  1+1이 2가 되는 것은 우주 공통의 원리란 얘기다.  이 수학공식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과학이란 2가 되어야 한다고 소망하지 않아도 그냥 2인 것이다.  과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원리를 파악하려 한다.  넓게 보아 이것은 몹시도 종교적인 일이기도 하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모든 법칙까지 창조했을 것이다.  이 법칙을 연구하고, 감추어진 진실을 찾는 작업,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절대로 반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신의 섭리에 가닿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탐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편협한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은하수 은하의 구석진 나선팔에 위치한 태양계의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은 저 수조개의 별과 은하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 존재 자체가 몹시 미미하고 대수롭지 않다.  그 미미한 존재가 대우주를 인식하고,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의 언어와 지식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다.  신앙이 객관과 합리를 따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종교의 영역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진리'의 일부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Carl Sagan - Cosmos.pdf


 cosmos_sagan.pdf


 sagancosmos.pdf


 The Philosophy of Carl Sagan - Bob Kron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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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칼 세이건 : 과학주의의 대변자 (Carl Sagan : Prophet of Scientism)


David N. Menton, Ph.D.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과학 분야에서 그가 쓴 대중적인 글들과 특히 13부작 TV 영상물인 ‘코스모스(Cosmos)’를 통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모든 것에서 그는 오로지 과학적 증거에 의해 지지되는 과학적 이론이나 과학적 사실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잡지 글들과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들 중에서 경험적인 과학(empirical science )은 단지 한 조각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세이건 자신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생관에 기초하여 자유분방하게 포장된 증명되지 않은 추론(unprovable speculation)들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세이건의 종교는 과학주의(scientism)로서, 많은 부분이 과학(science)이 아닌 것이다.


과학주의(scientism, 과학만능주의)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가정(assumptions), 방법(methods), 심지어 추론들이 종교를 포함한 모든 지식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 아니라면) 동등하게 타당하다고 믿는 것이다. 과학주의는 진리의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 of truth)와 주권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영원한 존재에 대한 것들을 모두 노골적으로 부정한다. 과학주의라는 종교에서 우주(물질, 에너지, 시간, 공간)는 영원하고, 유일한 궁극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과학주의는 모든 사물들은 자연의 내재된 성질 안에 그들의 존재와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자연의 일부이자 산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주의의 사회적 철학적 의미는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 종교에 새겨져 있다. 세이건의 과학주의적 종교적 믿음과 선언은 그가 쓴 책들에 잘 나타나 있다.


Broca's Brain, New York: Random House, 1979

The Cosmic Connection, New York: Anchor Press, 1973

Cosmos, New York: Random House, 1980

Life in the Universe, San Francisco: Holden-Day Inc., 1966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A Search for Who We Are, New York: Ballantine Books, 1993

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 New York: Random House, 1996

Billions and Billions: Thoughts on Life and Death at the Brink of the Millennium, New York: Random House, 1997


”진화는 이론이 아니라 사실(evolution is a fact not a theory)” 이라고 주장했던 세이건은 ”우리(인류)는 일련의 긴 생물학적인 우연한 사건(accidents)들의 산물이다” 라고 하는 관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가 첫 번째, 혹은 마지막, 혹은 가장 최고라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The Cosmic Connection p.52).


칼 세이건은 우주천문학자 할로우 샤플리(Harlow Shapley)의 제자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어떤 종교적인 기록에는 ‘태초에 하나님이(In the beginning God...) 라고 되어있지만, 나는 ‘태초에 수소가(In the beginning hydrogen...)’ 라고 말하겠다” 샤플리는 무색, 무취의 기체인 수소(hydrogen)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샤플리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이와 동일한 무신론적 유물론(atheistic materialism)을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세상은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자연에서 물질들의 힘들이 작용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p.177)”라고 주장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믿음은 인간의 본질(nature of man)에 대한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이건이 자신에 대해 ”나는 물, 칼슘, 그리고 칼 세이건이라고 불리는 유기분자의 집합체이다(p.127)”라고 말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지독한 유물론적 논리의 연장선에서 세이건은 모든 인간의 특징들, 가령 사랑과 미움, 열정과 좌절, 선함과 공격성 등과 같은 것들도 단지 ”우리의 엄청나게 오래된 진화 역사에서의 작은 우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p.282). ”작은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태어난 인간의 의식에서 의미와 목적에 대한 이해를 찾으려는 절름발이와도 같은 시도에서, 세이건은 ”우리는 우리의 질문하는 용기와 그에 대한 대답의 깊이로 우리의 세상을 의미 깊게 만든다”고 말한다(p.193). 이러한 ”자력으로 진행되는” 신학의 연장선에서 세이건은 인류가 단지 우연에 의해 이제 스스로의 진화를 인계받아 조종하는 단계에까지 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p.320) 이와 함께 과학주의와 세속적 인본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침내 얻어졌는데,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창조자가 되었으며, 따라서 '신(god)”이 된 것이었다.


얼마 전 합동 인터뷰에서 조안 윅슨(Joan Sannders Wixen)은 칼 세이건에게 미래의 인간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어보았다. 세이건은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서 언젠가 국가, 종교, 인종, 경제적 그룹에 대한 충성을 포기할 수 있어야만 하고, 우리 자신이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힘에 의해서 생겨난 일시적인 생명체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St. Louis Globe-Democrat, Oct. 6, 1980). 세이건은 만일 인류가 인류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을 경배한다면, 그것은 이교도들이 자연을 숭배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세이건은 별들과 태양이 하나님 여호와보다 더욱 섬길만한 대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태양을 섬겼고,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양은 늘 같은 모습의 평범한 별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욱 위대한 힘을 경배해야 한다면, 태양과 별들을 숭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p.243) 그가 제안한 종교에서 세이건은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도 간과하지 말고 지구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라고 촉구한다. ”바다가 부른다.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이것이 우리가 출발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갈망은 무슨 신들에게로 향하건 부적절한 것이 아니다”(p.5)


어떤 경우에도 세이건은 '신들”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그가 우리에게 ”인간은 신들이 꿈꾸던 것이 아니며, 대신 신들은 인간이 꿈꾸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p.257). 그의 책 ”미확인 비행물체-과학적 토론(UFO's--A Scientific Debate)”에서 세이건은 자연스럽게 '과학은 종교의 한 형태가 되어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공정함을 가지고 말하자면, 세이건의 과학주의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경험적 과학(empirical science)은 반드시 관측가능하고, 반복이 가능하며, 설명하고자 하는 모든 현상들을 실험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런 종류의 진정한 과학은 성경과 모순되는 것이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는 수많은 공립학교들은, 교회와 정부 사이의 '분리의 장벽(wall of separation)”을 세우려는 많은 노력들 앞에서, 과학주의 종교와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 종교가 가르쳐지는 것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는가? 공립학교에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고,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시민 자유연맹(American Civil Leberties Union)의 분노와 소송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ACLU는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것이 허락된 종교와 허락되지 않은 종교가 있다는 것을 결정했는가? 진정 한 교사가 우주의 기원과, 특별히 사람의 기원,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가르치면서 종교에 대한 가르침과 토론 없이 이것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많은 주제들에 대해서 ”가치가 없거나” ”종교가 없는” 교육은 없을 것이다. 모든 학교들은 최소한 어느 정도 ”종교적인 학교”임을 결론짓게 되는데, 문제는 어떤 종교가 가르쳐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왜 칼 세이건은 이곳 세인트루이스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 가톨릭 교육자들과 사서들을 초대해 회의를 개최하였던 것일까? 이들 교육자들은 널리 알려진 세이건의 믿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아니면, 가톨릭 교육자들은 이러한 믿음을 사실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참조 : Stephen Hawking: the closed mind of a dogmatic athe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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