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II] 인문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1962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3. 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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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o2cer2b-Tg

 

 

 

04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 The Savage Mind by Claude Lévi-Strauss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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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는 '슬픈 열대'와 더불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입니다. '야생의 사고' 구조주의자로서의 레비스트로스의 문명론과 사회사상에 담긴 독창성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그는문명의 사고미개의 사고 이분법을 거부했습니다. 미개의 사고는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은 야생의 사고입니다.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구체의 과학이라는 그의 주장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학자들이 즐겨 다루는 토테미즘은 신화적 사고로서의 야생의 사고가 갖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토테미즘에는 사물들의 분류체계와 위계질서의 기초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토테미즘은 미개인의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사유의 보편적 특성을 보여준다는 그의 분석이었습니다. 야생의 사고에 대한 다양하고 치밀한 논증에 기초해 책의 결론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검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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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변증법적 이성을 분석적 이성의 우위에 두는 사르트르 철학이자기 중심주의’, ‘서유럽 중심주의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견해이지만, 1960년대 초반 당시 그의 이러한 비판은 서구 중심주의적 사유를 해체하는 중요한 사상적 거점을 제공했습니다. 그가 겨냥한 것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인간과학의 확립이었습니다.'야생의 사고' 보여주듯 레비스트로스 이론은 서구 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착상과 이론 틀을 제공했습니다.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매우 중대한 과제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읽어야 이유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생애’와 그가 전하는 ‘야생의 사고’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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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 Life of Claude Lévi-Stra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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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 11 28 ~ 2009 10 31)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1908 11 28일 프랑스 국적을 가진 유태인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인상파 화가로 부친이 그리는 그림은 팔리지 않아 포목공예, 가구공예등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1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부친은 징병되었고, 6세부터 10세까지레비스트로스는 파리의 고급스러운 16구의 거리에 있는 유대교 랍비인 외할아버지댁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생때부터 맑스주의를 배웠으며1918년부터 1925년까지 Janson de Sailly 고등학교에서 공부하여 16세때인 1925 6월에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26년부터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심리학, 정신분석학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장자크 루소를 공부하고 사회주의 정치와 행동주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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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그는 법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여 철학을 선택했고, 1930년부터 1931년까지 아그레가시옹(Agrégation) 교원 자격을 얻기 위해 철학 통합과정을 준비하는 집중하기 위해 정치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1931년에 그는 아그레가시옹 합격하여 3등을 했고 22세에 동급 최연소였습니다. 이때 대공황이 프랑스를 강타했고 레비스트로스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1932년에 디나 드레퓌스(Dina Dreyfus) 결혼했습니다. 1934중등학교에서 년간 가르친 ,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 문화사절단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아내 Dina 민족학 객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부부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브라질에서 살면서 인류학 작업을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첫부인 디나(Dina) 함께 마투 그로소(Mato Grosso)와 아마존 열대우림(Amazon Rainforest) 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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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부부는 먼저 과이쿠루(Guaycuru ) 보로로(Bororó) 인디언 부족을 연구하며 며칠 동안 그들 사이에 머물 렀습니다. 1938년에 그들 부부는 남비크와라 투피를 연구하기 위해 반년이 넘는 번째 탐험을 위해 돌아왔습니다. 이때 그의 아내는 눈에 염증이 생겨 연구를 마치지 못한체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튼 이 경험은 인류학자로서 레비스트로스 직업적 정체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2 세계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1939년에 프랑스로 돌아와 마지노선(Maginot Line) 연락 요원으로 배정되었습니다. 1940 프랑스가 항복한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그는 몽펠리에의 학원 고용되었지만 비시 인종법에 따라 유태계인 그는 해고되고 프랑스 시민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때 부인 디나(Dina)와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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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a 프랑스에 남아서 레지스탕스 로 활동했고, 레비스트로스는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배를 타고 비시 프랑스를 탈출하여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추친한 유럽학자 구명계획 덕분에 미국으로 초청되는 형식이었습니다. 1940년대에 뉴욕시 사회연구학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객원 교수를 지냈습니다. 인류학연구를 위해 그는 남아메리카를 거쳐 푸에르토리코 갔습니다. 그곳 에서 수하물에 담긴 독일 편지가 세관원의 의심을 사서 FBI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대부분의 전쟁기간을 뉴욕에서 보냈습니다. 미국 망명기간동안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 등과 만나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42 어느 추운 겨울날, 프란츠 보아스는 콜롬비아 대학 캠퍼스 교수회관에서 저녁식사하던 중 치명적인 심장마비로 고통을 받으며 레비스트로스품에 안겨 사망할 정도로 친말한 간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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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의 이러한 친밀한 관계는 레비스트로스의 초기 작품이 미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지는 도움이 되는 독특한 미국적 성향을 부여했습니다.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청바지 주문 전화를 자주 받았는데, 사기꾼이 리바이스 상표 등록을 해서 리바이스에게 돈을 뜯어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 1945년 전쟁이 끝난후에 프랑스에 돌아갔습니다. 레비스트로스 1946년에 로즈 마리 울모(Rose Marie Ullmo) 두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워싱턴 DC 있는 프랑스 대사관의 문화 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1948년에 파리 돌아올때까지 레비스트로스는 미국공립도서관의 자료들을 읽고 친족 관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인류학적 저서 하나인 논문 친족의 기본구조 썼습니다. 친족의 기본구조 비서구 문화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중요한 저술로 시몬 보부아르 의해 호의적으로 검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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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레지날드 래드클리프-브라운(Alfred Reginald Radcliffe-Brown) 같은 영국 인류학자들은 친족관계가 공통 조상의 혈통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반면,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관계는 집단의 여성이 다른 집단의 남성과 결혼할 형성되는 가문 간의 동맹에 기초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에 레비스트로스는 출판을 계속했고 상당한 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50년에서 1974년까지 파리대학교의 민족학연구소장을 지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1954년에 로랑(Laurent)이라는 아들을 남기고 로즈 마리 울모(Rose Marie Ullmo)와 이혼했습니다. 같은해에 레비스트로스는 모니크 로만(Monique Roman)과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하여 아들 마티유(Matthieu)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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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하지만 1955 파리에서그의 시간과 여행을 자세히 설명하는 회고록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출간됨에 따라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지식인 명이 되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절묘하게 아름다운 산문, 눈부신 철학적 명상, 아마존 민족에 대한 민족지학적 분석을 결합하여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1958년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인류학과 정교수가 되었고 1959년에는 학과장이 되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그는 구조주의에 대한 예와 프로그램적 논술을 모두 모아놓은 구조 인류학(Structural Anthropology) 출판했습니다. 1962년에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야생의 사고(라총시쏘파지La Pensée Sauvage)’ 출판했으며 영어로 The Savage Mind 번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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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서 에드몽 자베스,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와 함께 명의 프랑스 작가 하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한국에도 전두환 집권시절인 1981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청을 받아 방한하여 안동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며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통도사 인근 도요지를 방문하여 백자 항아리 위에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항아리는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8년에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 아카데미(Académie française)100세에 도달한 첫 번째 회원이 되어했으며, 플레이아데 도서관(Bibliothèque de la Pléiade)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출판한 되는 생존 작가 명이 되었습니다. 2009 4 14 모리스 드루농(Maurice Druon) 사망하자 레비스트로스 프랑스 아카데미의 최장수 회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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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101 생일을 앞둔 2009 10 30일에 사망했고 그의  사망은 4 후에 발표되었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프랑스 대통령은 레비스트로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학자 "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기호학을 바탕으로 언어와 문화에 내재하는이항적 대립 분석함으로써 사회를 재생산하는 구조를 발견하고 "모든 형태의 인간 활동에서 근본적인 사고 패턴을 찾는 " 구조주의라 칭하므로서 구조주의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저서로는 야생의 사고, 달의 이면, 신화학(1964~71) 등이 있고 가장 유명한 책으로는 1955년작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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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사상과 업적 – Thought and achievement of Claude Lévi-Stra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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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심리학에서 대표적 심리학자하면 프로이드가 뉘어나오듯, 흔히 레비스트로스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덕에, 정작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거리감을 느끼는 비주류적 인물임에도 "대표적인 인류학자는?" 하고 물으면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튀어나오는 이름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인데, 하지만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생리학자이지 인류학자가 아닙니다. 데즈먼드 모리스 역시 인류학자가 아니라 동물행동학자입니다. 학계의 대표적인 인류학자는 보통 프란츠 보아스나 마빈 해리스, 클리포드 기어츠 정도가 꼽히곤 합니. 2009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영화아바타 사상적인 부분에서 레비스토로스의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첨단 과학문명을 가진 지구인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여졌던 나비족이 알고 보니 정신감응 네트워크에 기초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도의 정신문명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 등장인물 아니라, 관객들까지 경악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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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는 데 노력했습니다. 원시사회를 통해 보편적 규칙을 탐구하던 그는 원시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화'에 주목했습니다. 이때 신화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인간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해결된 것처럼 옮김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본 신화는 불안 해소를 위한 도구이자,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인류학이라는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성을, 그리하여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있게 해줄 무의식적 기초를 찾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공통된 질서를 경험적 방법론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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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았다는 지점에서 탈근대적이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에 공통된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이를 다시 구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칸트적이며 근대적입니다. 결국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탈근대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서 근대적인 기획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있습니다. 그의 저작에서는 문명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 담겨있는데, 프로이트 심리학과 소쉬르의 언어학을 바탕으로 원시부족의 문화를 연구하며 그들의 문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혀 미개하지 않고 매우 체계적이고 수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구조적 안정과 느린 변화를 하는 '정적 사회' 우리가 아는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동적 사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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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기획은 지금까지 서구 문명인의 우위성을 주장하던 기존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해체하였고, 그동안 미개한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오지 원주민 사회와 민속 문화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 인류에 대한 보다 넓은 인식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기여했습니다. 원주민의 과거 식인풍습조차도 종교적 차원의 문화 현상으로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고 했으며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사회관계나 사회적 행위는 우리가 사회를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개념적 대립쌍들에 의해 구조화 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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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등과 같이 개념적 대립쌍들을 통해 그 사회를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독일의 관념론적 사상과 영미의 실용주의적 사상이 서양 사상의 양대 축에서 2 세계대전 이후 영미와 독일의 사상에 대응해 프랑스 사상의 독자적인 전통을 구축한 구조주의 사상이였습니다. 구조주의는 인식론에서 사회이론에 이르기까지 주체보다 구조를 중시한 사상의 혁명이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인류학을 시작으로, 루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롤랑 바르트의 구조주의 기호학, 그리고 구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셸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사회이론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인문사회과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더하여 구조주의와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자크 데리다와 들뢰즈의 철학, 그리고 페르낭 브로델과 엠마뉘엘 라뒤리의 역사학까지 시기야말로 프랑스 사상의 전성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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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보편적인 사유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구조주의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대해선 격렬한 논쟁이 진행있었습니다. 프랑스 안에서는 사르트르가 구조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부정한다고 비판했고, 앙리 르페브르는 레비스트로스 이론에 내재된 ()정치적 성향을 비난했습니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등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서 새로운 이론적 아이디어를 도출해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 지식사회에서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가 실존주의를 대신해 새로운 지적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미친 영향의 직접적인 증거였습니다. 프랑스 밖에서도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 방법론을 활용해 무의식의 정신 구조와 이와 연관된 문화를 분석한 것은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이론적 성취로 평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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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심층 구조를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로 파악하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긴 했지만,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자원주의적 해석에 맞서는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전후 사상의 역사에서 구조주의는 포스트구조주의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고, 포스트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는 독일 비판이론과 함께 유럽 사회사상의 양대 축을 이뤄 왔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는 사회이론 사상의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누가 역사를 만드는 주체인가 아니면 구조인가라는 과도한 구조결정론에 선듯 동의하기 어렵지만, 지나친 자원주의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의 본분이기에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의 중요성을 주목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기여를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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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의 배경 – Background of The Savag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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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야생의 사고(라총시쏘파지La Pensée Sauvage)’ 출판했으며 영어로 The Savage Mind 번역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제목 라총시쏘파지(La Pensée Sauvage) 번역할 없는 말장난입니다. 총시(Pensée)라는 단어는 '생각'’팬지 의미하는 반면 쏘파지(sauvage) 영어 '새비지(savage)'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 햄릿(Hamlet) 4막에서 오필리아(Ophelia) 연설에서 차용하여 영어 제목을 Pansies for Thought 이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라총시쏘파지(La Pensée Sauvage) 프랑스판은 종종 표지에 야생 팬지의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The Savage Mind 이전 인류학자들이 정의한 범주인 "원시적" 사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사고 형태에 대해서도 논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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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반부는 문화 정신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을 설명하고 후반부는 설명을 역사와 사회 변화 이론으로 확장합니다. 책의 후반부는 인간 자유의 본질에 대해 레비스트로스와 사르트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한편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있다는 입장을 그에게 부여했습니다. 반면 권력자들이 그들에게 부과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이 제약을 받는다는 생각에 전념했던사르트르는 좌파 였습니다. 레비스트로스 사르트르에 반대하여 행위주체에 대한 구조주의적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사이의 이러한 논쟁의 메아리는 결국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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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의 내용 – Content of The Savage Mind,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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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의 원주민 가후쿠가마족도 유럽 문명의 유입으로 축구라는 새로운 게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양 팀의 승부가 똑같아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계속 경기를 했다고 합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것은 게임이란 승패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원주민들이 게임을 의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게임과 의례의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게임은 1, 2등을 가림으로써 팀들의 차별성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의례는 서로 다른 두 팀 사이의 대칭적 관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대칭적 관계를 통한 공존의 세계, 이것이 가후쿠가마족의 기묘한 축구가 보여 주는 무승부의 사유입니다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의 이러한 사유를 ‘야생의 사고’라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원주민들을 아무 원칙도 없이 살아가는 ‘야만인’이나 ‘미개인’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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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편견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를 통해 우리의 편견을 깨고자 합니다. 구조는 체계와 다릅니다. 체계가 한 사회 내부만을 문제 삼는다면, 구조는 두 개 이상의 사회를 대상으로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현대대수학의 군론(群論)을 차용해 설명합니다. 군론은 질적인 ‘수’를 다루는 대신 ‘연산 구조’를 중심에 둡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질적으로 다른 두 집합도 연산 구조의 측면에서는 동일하게 다룰 수 있다는 군론의 아이디어를 인류학에 적용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학을 가미해 원주민과 유럽 문명 사이의 구조를 정치하게 비교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원주민 사회에도 문명사회와 동일한 구조가 숨겨져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야생의 사고는 야만인의 사고도 아니며 미개인이나 원시인의 사고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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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련화되었다든가 길들여진 사고와는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사고다.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뢰르’(손재주꾼)를 통해 이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를 설명합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소개하는 작품 하나를 보면, 동서양과 시간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건축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우편배달부 슈발의 아방궁’입니다. 피카소까지 감동시킨 그 궁은 우편배달부 슈발이 편지를 배달하는 길에서 주은 돌들을 쌓아 만든 작품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슈발을 브리콜뢰르라 부릅니다. 브리콜뢰르는 문명의 상징인 장인과는 다른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인은 자신에게 꼭 맞게 마련된 재료와 도구가 없으면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훌륭한 재료와 도구는 좀 더 나은 작업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브리콜뢰르의 재료들은 우연적으로 그의 손에 들어온 것들입니다. 장인의 눈에 브리콜뢰르의 작업대는 너저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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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브리콜뢰르는 그런 눈으로 재료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잘 다듬어진 재료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 앞의 그 우연적 재료들을 가지고 바로 작업에 돌입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재료와 직접, 그리고 전면적으로 만납니다. 그 부딪침 속에서 재료가 가진 잠재적 능력을 끝까지 끌어올려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브리콜뢰르는 훌륭한 재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재료를 훌륭한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야생의 사고가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입니다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그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폭력적’이지 않겠는가 하는 마뜩지 않은 눈길, 분명 원주민들이 보여 주는 통과의례는 끔찍해 보입니다. 영화 ‘아바타’에도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통과의례를 겪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나비족의 전사가 되려는 제이크는 자신을 허락하는 익룡 ‘이크란’을 찾아 교감에 성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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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 세련되고 효율적인 매뉴얼이 들어올 틈은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싸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싸움은 제이크가 인간으로서 이크란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릴 때 끝납니다. 문명 속의 우리는 그런 싸움을 통해 ‘나’란 존재가 다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친절’이나 ‘상냥한 미소’의 서비스를 바랍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알았습니다. 교감은 그런 서비스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나’를 지키겠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교감을 싸움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임을, 그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껏 타자였던 자연과의 교감 능력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감은 오로지 인간이란 정체성을 버릴 때 가능합니다. 통과의례의 고통은 자신을 해체시키는 데 따르는 아픔을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게임의 원리를 따르는 서구적 지성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특권적 영토 안에 인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꼭 그만큼, 인간들 스스로도 서로에 대해 분리된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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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고립된 채 자신의 영토를 지키고 확장하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농산물 파동,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종 분쟁과 종교 분쟁, 그렇게 우리는 교감과 공존의 능력을 상실해 갔습니다타자든 자연이든 교감과 공존은 나의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후쿠가마족이 바보여서 그런 기묘한 축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같이 살아가는 무승부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교감과 공존은 길들여진 자신만의 영토에서 나올 때 시작됩니다. 자신을 해체한 마주침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형성되는 교감과 공존의 지반, 그렇기에 레비스트로스는 말합니다.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용해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덧붙입니다. 설령 그 용해가 기존의 ‘나’를 통째로 뒤집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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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야생의 사고 (The Savage Mind)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야생의 사고 (The Savage Mind) 보여주듯 레비스트로스 이론은 서구 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착상과 이론 틀을 제공했습니다.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매우 중대한 과제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읽어야 이유입니다.
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선 중 49번째 책 인문학 부문 19번째 책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61년에 출간한 된 야생의 사고 (The Savage Mind)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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