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시조 호장공 이윤경의 묘지
좌측에 건지산이 있고 바로 오른쪽은 한산면 사무실입니다.
묘소 바로 뒤 나지막한 건지산을 지나면 기린 뿔 같은 쌍봉이 튀어나온 기린봉을 만나고, 더 올라가면 청등산(261m)과 노고단(229m)이 이어진다는 군요. 그 곳을 지나면 원진산(270m)의 호서정맥을 만납니다. 호서정맥은 속리산(1058m)에서 백두대간을 만난다지요.
후손이라는 것들이 겨란 3개 어쩌고 하면서 일제시대에 역사말살 정책에 일조하는 기록을 떡하니 붙처놓앗다는게 한심합니다. 기록의 역사를 전설화 시키는 이마니시의 식민사관에 놀아난 꼴입니다.
묘소 앞에는 3기의 고분이 있습니다.
한산면사무소
저는 호장공 이윤경 시조의 묘지에 얽힌 이야기가 그저 풍수와 관련되어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시조 호장공 선조의 묘지에 대한 전설을 접하고 보니 이게 뜬금없고 족보에 기록된 내용과도 너무 상관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출처를 찾아보니 이 전설이 조선서편수회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한산이씨 고적답사보고서 형식으로 이마니시 류가 1925년에 총독부에 보고한 날조된 내용입니다. 1925년 조선사편수회가 황제칙령의 독립기관으로 확대개편하는 문서에 단국환국을 위조하여 단군환인으로 변조한 이마니시 류가 호장공 이윤경 묘소의 기행문을 작성하여 첨부하며 '앞으로 조선사편수회의 할일은 기록문서가 존재하는 조선의 역사는 물론 조선의 가문조차도 전설 등으로 그 격을 떨어뜨려 조선인의 자존감을 상실케하는 그 본보기로 호장공 이윤경의 전설을 사용하라'는 조선총독 명의의 조선사편수회 내부 회의 명령지침를 내렸습니다. 이어 조선에는 풍수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으니 풍수쟁이들을 활용하여 조선인과 한산이씨 후손들에게 이 전설을 마치 사실인양 느끼게 하라는 지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식민사관의 선봉자인 친일사학자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의 수사관보를 지냈습니다.
제헌국회사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초대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는 조선의 기록문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1910년 11월부터 모든 행정력과 군경을 동원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근 1년 2개월 동안 종로 일대의 서점을 비롯한 지방의 대, 소 서점, 향교, 서원, 구가(舊家), 양반 사대부가를 수색하여 단군조선에 관련 사료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내용의 서적을 압수하거나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단군조선을 조작한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대표적 친일사학자 이병도(李丙燾)
한산이씨 호장공파의 시조 이윤경(李允卿)의 묘소와 묘비
호장공 이윤경 묘소에 관한 전설의 허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고려시대의 행정조직상으로 한산은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는 곳으로 그곳의 유력가문의 장으로 지방관인 호장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받는 곳이었습니다. 호장공 이윤경에 이어 2세 정조호장 이인간, 3세 봉헌대부비서랑 이효진, 4세 봉익대부판도판서 이창세,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로 전북정읍감무를 지낸 이자성까지 5대에 걸처 호장직을 세습했습니다. 하여 전설 속 “고을의 관청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고려호장(高麗戶長)은 마을의 우두머리로 그 마을의 대지주의 역할을 하는 자리인데 “매우 가난하여 근근이 살아간다”는 가설 부터 잘못된 기술입니다. 이는 단군조선의 사실 역사를 허구의 단군신화로 변조한 이마니시 류의 수법을 한산이씨 가문에 적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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