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世) 1代孫 이인간 (李仁幹), 정조호장. 금석문 '경선사금구(景禪寺禁口)'에는 '고려국(高麗國) 용령(龍領) 대정(隊正) 이인간(李仁幹)이 동량(棟梁)이 되었다'고 나온다. 슬하에 장남
충진(忠進)과 차남 효진(孝進)을 두었다.
참고자료:
1. 국가의 눈을 피해 국경에서 일어나는 밀무역은 고려 전시대에 걸쳐 변경지대에서 성행되었다. 예를 들면, 1101년(숙종 6) 정주(定州)의 장금남(長今男)이 관가 창고에 있는 철갑옷 네 벌을 훔쳐서 동여진에 판 경우도 있고, 서북면병마사 이지명(李知命)은 용주(龍州) 창고에 있는 저포(紵布)로 거란사(契丹絲) 5백 속(束)을 교역하여 바치라는 왕명에 따라 국법을 어긴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당시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밑으로는 일반 백성까지 밀무역에 관여할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에는 장사치들이 5-10명씩 패거리를 지어 마소와 금, 은을 가지고 날마다 외국으로 나가 파는 까닭에 국내에는 나귀, 노새 따위의 느리고 둔한 것만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었다. 1185년(명종 15) 서북면병마사 이지명(李知命)은 의주가 비록 여금(麗金)간의 호시(互市)를 금하는 곳이나 용주 창고에 있는 저포로 거란사(契丹絲)를 교역하여 바치라는 왕명에 따라 국법을 어긴 경우도 있다. 고려 말에는 장사치들이 5-10명씩 패거리를 지어 마소와 금, 은을 가지고 날마다 외국으로 나가 파는 까닭에 국내에는 나귀, 노새 따위의 느리고 둔한 것만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다.
2.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 | 일본 동양문고, 고서-금석문 | 종교/풍속-불교 | 이지명(李知命, 찬), 연의(淵懿, 서), 곡석(斛錫, 각) | 탁본 | 折帖裝(12張) | 청구기호(Ⅶ-2-280)
3. 『고려사』 「선거지」 - 1186년(명종 16) 판장작감(判將作監) 최선(崔詵), 대사성(大司成) 황보탁(皇甫倬),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문평공(文平公) 이지명(李知命, 1127년 ~ 1191년) 3명이 함께 국자시(國子試)의 시험관을 맡아 양공준(梁公俊) 등 37명을 선발했다.
4. 이지명(李知命) - 고려시대 정당문학, 태자소부, 동지공거 등을 역임한 관리, 재상,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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