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71 서화보따리

우계(于溪) 오우선(吳禹善, 1932~) 화백 작품

忍齋 黃薔 李相遠 2019. 2. 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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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예술가족 ⑥ / 오우선. 현정. 현아
두 딸에게 그림철학을 강의하는 스승이 되기도…
 
 
우리 화단에는 부부, 부자, 부녀, 형제, 자매 등 한가족에 여러 명의 미술인이 있는 케이스가 많다. 미술가는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보다는 부모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각과 재능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어느 화가의 가족을 들여다보더라도 대부분 부모형제 중에 또 누군가는 비슷한 재능을 타고난 구성원이 존재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한 가족에 다수의 미술인이 나오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우계(于溪) 오우선(吳禹善·64) 화백의 가족은 두 딸 현정(28), 현아(24)양이 화가인 3부녀 화가 가족이다. 부녀 미술인 가족의 시범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다.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두 아들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딸들은 모두 화가가 된 것이다.
 
오화백 일가족과의 만남은 많은 것을 배우게 하고 좋은 기사도 쓰게 되어 필자로선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오우선 화백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 집안에선 묵향이 물씬 풍겨 나와 동양화가의 가정다운 운치를 느낄 수 있었으며, 벽마다 세 화가의 작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거의 종일 화선지와 붓을 놓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틈틈이 딸들을 앉혀놓고 운필에 관한 기법을 논하며, 스승의 입장이 되어 그림철학을 강의하기도 한다. 딸은 대학에서 현대식 동양화 교육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수십년(화업 50년)의 경험에서 체득한 더 절실하고 값진 내용을 무료로 배우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딸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이런 면에선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향 광주가 고향인 우계 선생은 광주가 낳은 한국 남종화의 대가 고(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문하에서 화업을 쌓아 남종화풍 산수화의 정통 맥을 이어받은 손꼽히는 대가 중의 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붓을 들었으니 화가가 된 과정이 매우 이색적이다.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화가가 되면 깡통을 차게 된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을 시대였으니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공부하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어렵게 그림공부를 해야 했다. 그가 의재의 문하에 들어간 건 중학교 2학년 때라고 한다. 그는 날짜까지도 1946년 2월 15일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친형이 동생의 그림에 대한 열망과 소질을 알고서 소개해 의재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매주 토, 일요일에만 가서 배웠는데 먼저 사군자만 1년여 동안 공부했다. 난초만도 3개월을 계속 쳤다고 하니 학습 방식이 실기 위주의 반복학습이었던 것 같다.
 
기초과정을 거쳐 산수화를 배우는 도중에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일단 부모님의 뜻을 존중해 약대에 시험을 치렀다. 충분히 의대에 갈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약대는 의대에 비해 예과 2년 과정이 없으므로 빨리 졸업해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에서 약대를 택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반 동안 약무장교로 근무, 병역을 마치고는 고향인 광주에 약국을 개업했다. 이후 의재가 세상을 떠난 1977년까지 드나들었으니 모두 30여 년을 모신 것이다. 45살 때인 1975년엔가는 그의 그림 한 점을 보고 스승인 의재가 "이쯤 되면 누구라도 명화라 하지 않겠는가"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니 수제자의 하나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그림으로 돈이나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우계 선생은 어떠한 공모전에도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그의 그림에 관한 철학은 확고하다. "좋은 그림은 사회를 맑게 하고 기본과 화법에 맞지 않게 그린 그림은 얼핏 보기엔 좋을지 모르나 자주 보면 내면의 결함이 드러나며 인간의 심성을 거스르게 만들며, 결국은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다.
 
요즘 화가의 기본인 사생력과 묘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추상화에 몰입하는 작가들이 양산되는 화단의 현상을 놓고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산수화는 다른 그림과 분명히 다르다"고 전제하고 산수화의 기본정신을 '기운생동(氣運生動)'이라는 말로 집약해서 표현했다. 이 말의 뜻은 처음 볼 때는 강하게 보이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힘이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풍경화를 산수화로 오인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산수화는 풍경화를 몇 단계 승화시킨 것으로써 그려내지 못하는, 보이는 것의 뒷면까지도 마음의 화폭에 담아낸다고 한다.
 
오화백은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를 "서양화는 바라보는 그림이고, 동양화는 읽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화면에 안 보이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읽어내는(讀畵)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림이 순수하면 세상이 깨끗해진다. 화가는 그런 그림을 그림으로써 세상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고 말하는 선생은 온화하고 덕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딸에게도 늘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마음이 맑아야 하며 수양을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되풀이 해준다. 신세대인 딸들이 부친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는 건 무리이겠지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엔 틀림이 없다.
 
화가인 부모는 대부분 자기 자녀는 화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게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이다. 그 세대엔 누구나 그림을 그리며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계 선생은 두 딸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일찌감치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도록 놓아두었다.
 
셋째이자 맏딸인 현정 양은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나온 재원. 1992∼1994년 미술대전(국전)에서 3회 연속 특선을 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꽃을 주제로 구상과 비구상을 겸한 표현주의적 작품 경향을 갖고 있으며, 젊은 세대답게 색채 구사에 남보다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요즘도 "화가는 기본기가 확고해야 한다"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 하시는 아버지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고 있다. 현정 양은 신세대 작가로서는 흔치 않게 석채를 다룬다. 서초동 교육대학 부근에 화실을 갖고 있는 그는 화가로서 가야할 길을 아버지로부터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재물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인격을 수양하고 남이 보아서 즐겁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그림철학이다.
 
막내인 현아 양은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고교 때까지 서양화를 선호해 서양화과 입시를 준비해오다 "한국 작가는 한국적인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좇아 동양화과를 지원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다시 서양화를 공부하고 있다.
 
오화백은 두 딸이 그림에 대한 감각을 모두 잘 타고 났다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독특한 세계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술의 해인 올해에 3부녀가 모두 참여하는 가족전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전시할 화랑과 정확한 시기는 정하지 않았으나 미술의 해를 그냥 넘기지는 않겠다는 생각에서 착실히 계획을 짜고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계 선생 부녀의 오손도손한 그림작업을 보며 가업을 물려주는 과정서 노하우가 축적되어 결국 사회를 발전시키듯이 우리 화단에서도 화업을 잇는 예술인 가족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Mar 10, 1995/이득수 / 일간스포츠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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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오우선 Oh Woo Seon 于溪 吳禹善
 
우계 오우선(于溪 吳禹善, 1932~)
 
한문 吳禹善
아호 우계 (于溪)
장르 미술(한국화)
본적 광주
 
학력 및 경력
1932년 광주 출생
1953년 전국 학생 미술대회 수상
1955년 서울대학교 약대 졸업
1966년 국전
1974년 문예진흥원 초대 출품
호남미술제 초대, 한중일 문화교류전 초대
1980년 한국의 자연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
1981년 한국 미술 80일전 초대전, 한국화 원로중진작가 초대전, 한국현대미술대전 초대, 전남미술대전, 국전심사위원 역임
작품발표
1982년 오우선 한국화전(부산 보문당화랑)
1983년 제 8회 개인전 (인사동 해송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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