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권의 그 아홉번째 책,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의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를 시작합니다. “전쟁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이라며 전쟁의 무고하고 잔혹함을 지적한 종군지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의 삶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7-21~1961-7-2)는 1899년 7월 21일 일리노이 시카고 교외의 오크 팍(Oak Park)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활동적인 사람으로 낚시와 사냥 그리고 권투를 즐겼습니다. 고등 학교때는 풋볼 선수였고 졸업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917년 "캔자스 시티 스타"지의 인턴 기자가 되었습니다.
.
19살때인 1918년에는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의용군으로 적십자의 제1차 세계 대전 구급차 운전사로 이탈리아 북부 호사루타 전선에 투입되어 다리에 심하게 부상을 입고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며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런 전쟁 경험들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기초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쟁이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토 스타”지의 자유지고 기자를 지냈고, 특파원으로 파리로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E. 파운드 등과 사귀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1921년에, 그는 그의 4명의 아내 중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하였습니다. 부부는 그가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했고 1920년대의 근대주의적 작가와 미술가들의 "잃어버린 세대" 외국인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았었던 파리로 이사를 갔습니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를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1924년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1926년 『봄의 분류』와 헤밍웨이의 첫 소설이자 밝은 남국의 햇빛 아래 전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메마른 허무감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습니다.
.
1927년, 그가 해들리 리처드슨과 이혼한 후에 헤밍웨이는 여성잡지 보그의 유럽 편집장 폴린 파이퍼와 재혼했습니다. 파이퍼는 미국 아칸소주의 부호 집안 딸이었고, 로마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결혼 전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그와 폴린 파이퍼는 스페인 내전에서 해외 특파원 생활을 마친 후에 이혼했고, 1929년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 장편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
헤밍웨이는 1930년도에 플로리다 주에 있는 키웨스트(Key West)에 거주했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북아메리카신문연맹(NANA)’ 통신의 종군 기자로 또 스페인에 가게 됐습니다. 하루는 다른 두 기자와 함께 전선에서 가까운 곳을 운전하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차량은 두 개의 백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반군은 그 차량이 적군의 장교를 태우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헤밍웨이는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
1940년, 스페인에서 만난 기자겸 작가인 마서 겔혼이 그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또다시 종군 기자로 유럽 전선에 파견됐습니다. 가디언이 2009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KGB를 위해 일하며 ‘아르고’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스탈린 시절에 헤밍웨이가 미국 내의 KGB 정보원 목록에 올라 있었다고 주장하는 예일 대학 출판부의 ‘간첩들: 미국 내 KGB의 흥망성쇠 Spies: The Rise and Fall of the KGB in America’라는 책에 대한 기사에서 주장했습니다. 이 책에서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1941년에 KGB에 채용되었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가 있었으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장난으로 했기 때문인지 간첩 활동 능력이 떨어져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그가 런던에서 타임즈 기자인 메리 웰시를 만난 후에 1945년 마서 겔혼과 정식으로 이혼했습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파리 해방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2년에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고 난 이후에,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갔습니다. 그는 그의 남은 생애 대부분을 통증과 나쁜 건강에 시달리게 했고, 그를 거의 죽은 상태로 내몰은 비행기의 충돌 사고를 두 번 당했습니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쿠바에서 살았습니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 촌구석에 있는 케첨 위에 지어진 집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 여름, 신경쇠약과 피해망상 그리고 우울증 등 정신병에 시달려 전기충격 요법 등으로 치료받던 그는 그 곳에서 6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엽총 자살로 마감합니다.
.
하지만 비밀해제된 FBI 문서에 의하면 1940년대부터 헤밍웨이는 FBI의 감시목록에 올라 전화도청과 편지검열을 받았습니다. 말년 헤밍웨이가 FBI가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며 우울증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망상을 격었다는 증언들은 사실 헤밍웨이가 FBI의 감시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그 감시내용을 생생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최악의 지옥이다. 정말이지 빌어먹을 지옥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도청했다. 그래서 우린 듀크의 차를 썼다. 내 차도 도청당했다. 모든 게 다 도청당했다. 전화도 쓸 수 없었다. 편지도 중간에 뜯어보았다.” 작가 헤밍웨이는 작품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아카데미상,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쭉 읽다 보면 작가로서 갖출 작품 창작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었다는 사실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戰死는 개죽음” 전쟁 꼬집은 기자 헤밍웨이
.
아무튼 헤밍웨이는 뛰어난 작가였을 뿐 아니라 미국 사회 곳곳과 유럽의 전쟁터를 25년간 누빈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18세 때부터 지역 신문사에서 수습기자로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400여 편의 기사와 칼럼을 남겼습니다. 그 기사와 칼렴들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들은 그를 뛰어난 작가로 만든 기반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전쟁이엇습니다. 그는 유럽특파원으로 활동하며 1922년 그리스-터키 전쟁과 1936년 스페인 내전 등 20세기 초 각종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가했습니다.
.
그가 쓴 전쟁 기사 대부분은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전에서는 당신의 죽음이 아름답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당신은 그저 개죽음을 맞이할 뿐이다”라며 전쟁에 대한 강한 회의감을 보였습니다. 2022년 이런저런 이유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습니다. “戰死는 개죽음”이라는 헤밍웨이의 전쟁의 무모함과 잔혹함에 대한 지적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의 문학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는 미 육군상사로 예편한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의 모험의 삶, 그리고 대중적인 이미지가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동안 그의 실속 있고 절제된 방식은 20세기 소설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대다수의 작품들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그의 대다수의 작품을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하였고,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7개의 소설, 6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그리고 2개의 비소설 작품들을 출판하였습니다. 3개의 소설, 4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그리고 3개의 비소설 작품들은 죽은 뒤에 출판되었습니다.
.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습니다.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습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경험한 세계 1차 대전을 비롯하여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도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했습니다.
.
이런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병원에서 한 간호사와 나눈 사랑은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재가 되었으며, 1936년 에스파냐 내란 발발과 함께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한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1938)이 탄생되었고, 다시 1940년에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습니다.
.
이처럼 전쟁을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작품들은 헤밍웨이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1950)는 이전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습니다.
.
다음 작품인 『노인과 바다』(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입니다. 심볼리즘과 운율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그린 용기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니힐리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외에도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1927) 『승자(勝者)는 허무하다』(1932)가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1927), 『킬리만자로의 눈』(1936) 등이 있습니다.
.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29)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소재는 그가 직접 전쟁에 참전 한뒤 그의 경험을 살려 소설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기여 잘있거라"는 전쟁과 사랑에 관한 소설입니다. 19세 때 헤밍웨이는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의용군으로서 참가했습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또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초점은 남녀주인공인 프레드리 핸리와 캐서린 바클리의 사랑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
줄거리를 살펴보면,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는 미국인으로서 이탈리아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야전병원의 운전수로서 전선에서 두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입원한 이래 영국 출신 간호사인 캐서린 버클레와 서로 사랑합니다. 캐서린은 그를 만나기 전에 다른 애인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전사 한 뒤에 사랑의 상처를 입은 후 전쟁터로 온 여인입니다. 캐서린의 치료로 헨리는 다시 회복하는데 그들의 사랑도 무르익고 그녀는 핸리의 아이를 임신합니다.
.
다시 부대로 복귀한 헨리는 전선에 재 배치되지만 후퇴 명령을 받고 후퇴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부대에서 이탈되어 있다가 헌병부대에 의해 '부대포기 탈영'의 죄목으로 사형되기 직전에 탈출에 성공하여 캐서린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탈주하여 스위스로 도주하는데 성공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스위스에서 겨울의 목가적인 생활을 즐기고 봄에 출산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왕절개 수술이 실패하여 낳은 사내 아이는 사산(死産)되었습니다. 캐서린도 많은 출혈로 불행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걷는 핸리의 장면에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
이 작품은 전쟁에 절망하고 사랑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발버둥치는 남녀의 패배감을 허무주의적인 수법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이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보여지는 여유와 농담을 발견하게 됩니다. 헨리와 캐서린이 이탈리아에서 도망쳐 스위스로 몰래 입국하다 걸리는 장면에서 헨리가 늘어 놓는 변명은 압권입니다. 왜 스위스로 보트를 타고 왔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운동선수지요. 노젓는게 내게는 큰 운동이랍니다. 언제나 기회만 있으면 젖지요. 이탈리아에 동계스포츠와 건축공부하러 왔는데 전쟁 때문에 할 수가 있어야 지요" 라며 능청스럽게 농담을 하는 장면과 헨리가 전쟁 중에 치즈를 먹다가 폭탄에 중상을 입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는 여유가 재미있게 이 소설에 독자들을 붙잡아 두게 만듭니다. 그로인해 장편소설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완독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국적 농담과 여유가 넘치는 헨리에 반하여 캐서린은 계속 자신의 사랑을 헨리에게 확인을 받고자 합니다. 혹시나 옛 애인처럼 불행한 결과가 자신에게 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캐서린을 시종일관 감싸고 돕니다. 매사에 진지하고 소심함이 쉽게 표현되는 영국인의 모습이 투영되는 듯 합니다. 캐서린의 불안감의 복선은 오히려 죽음이 왔다는 것을 느끼자 캐서린이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게 합니다. 캐서린은 그 죽음을 통해 헨리와의 사랑이 완벽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느닷없는 캐서린의 행복한 죽음은 헨리에게는 불행함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은 늘 남성에게 불행함을 주게 되는 것은 작가 헤밍웨이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여성 편력에 기인한게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미국인들의 영웅주의적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세계 평화주의를 부르짖지만 전쟁을 찾아다니며 마치 전쟁을 즐기는 듯한 미국식 이율배반적인 사고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보야야 하는 그 미국적이고 헤밍웨이적인 체험적이고 모험적인 태도가 돗보이는 작품입니다. '무기여 잘있거라' 작품에서 헤밍웨이의 전쟁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주인공 헨리의 사고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확실하게 엿볼수 있습니다.
.
이 '무기여 잘있거라'는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헤밍웨이를 미국 최고의 문학가로 올려놓았습니다. 사랑과 죽음의 한계 정황(情況)을 한 줄의 군말도 없이 묘사하여 20세기 실존철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설사 책을 읽지 안았어도 영화나 남들이 떠드는 줄거리라도 귀동냥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도 그가 그 모든 글에서 다루었던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전에서는 당신의 죽음이 아름답지도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개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라는 헤밍웨이의 전쟁에 대한 호소는 2022년 자행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침공에도 적용됩니다. “戰死는 개죽음”이라는 100년전 헤밍웨이의 전쟁의 무모함과 잔혹함에 대한 지적을 전쟁을 자행한 러시아는 가슴 깊이 세겨야 할 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