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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18카페를 개설한지도 벌서 5년째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곳 익명게시판에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라는 투박한 시(?) 한편이 올라왔습니다. 가페개설초기부터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되시는 회원한분의 사연과 일치합니다.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어느 회원이신가 쉽게 짐작이 갑니다. 그 분의 부친께서는 삼판을 하셨답니다. 삼판이란 지역별로 허가를 받아 벌목을 하여 그 목재를 공급하는 일입니다. 예전엔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좀 부족한 나무는 원목 그대로 공사판의 보조 목재로 사용을 햇습니다. 동바리라고 건축물의 지지대나 받침대등으로 사용을 하는 거지요. 이 시(?)를 올리신 회원의 부친께선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기전까지 벌목권을 받아서 벌목을 하셨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두환이 집권한 이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벌목권을 연장하지 못하시고 어려운 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부친을 대신하여 포장마차로 생업에 뛰어드신 모친께서도 분을 참지 못하시고 국가원수(?)를 모독하셔서 그마저 거덜이 나십니다. 이 시(?)의 작가분께서는 학교도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어린나이로 뛰어드십니다. 그 사이 부친과 모친은 병고에 시달리다 돌아가십니다. 작가의 부친께서는 돌아가시면서 벌목권을 다시 찾으라는 유언을 남기십니다. 고등학교진학도 못한체 섬유공장의 공원으로 공사판의 인부로 밥벌이에 연연하셨을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군요. 모두가 느끼듯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26년을 가로질러 2006년에 와있습니다. 마지막줄에 남기신 격한 풋념과 이제는 더이상 벌목한 목재를 동바리나 건축보조물로 쓰지 않는다는 외침을 던집니다. 그 외침 속에서 우리는 사무친 전두환에 대한 분노와 부친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저리게 느낌니다. 작가의 부친께서 전두환에게서 그 벌목권을 계속 유지를 했다는 가정도 보입니다. 그랬으면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더나가 외국에 유학하여 박사도 되고 그 분야에서 우리사회에 큰일군으로 살았을 거라는 것과 그랬다면 80518카페의 일원이 되어 전두환에게 분노를 퍼붇지도 않았을 거라는 가정말입니다. 아마 그랬다면 전사모(아마도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를 말하시는듯 합니다)에 가입하여 벌목권의 혜택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고 있으셨을 거라는 솔직한 가정이 씁슬하지만 이 시(?) 백미를 장식 합니다. 어쩌면 26년이 지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것도 같아 80518카페 익명게시판에 올려진 원본 그대로 이곳에 소개하여 봅니다. 마지막 첨언은 어쩌면 본인의 가슴에 싸이고 싸인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를 시로 전달하고 픈 마음을 표시한것 같습니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울진으로 삼척으로 울 아부지는 삼판을 하며 공사판 동바리며 나무를 대던 삼꾼이었다 어느날 전두환이네 삼판을 다 뺏어갔다 자기 졸병들에게 다 나눠주고 울 아부지는 삼판에서 쫏겨나셨다 울 아부지는 술로 화를 다스리고 울 엄마는 계명대 앞에서 포장마차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런데 울 엄마가 전두환이 욕했다고 포장마차도 몇년하지 못했다 난 고등학교도 못가고 양말공장 옷공장 시다를 뛰다 노가다 기술이 있어 공사판을 뛴다 울아부지가 동바리대던 어른들이 십장도 시켜줘서 그걸로 여태 산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나도 고등학교가고 대학교도 갔다 어쩌면 나도 미국유학박사되서 불상한 사람 도와주고 있었을 거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울 아부지 술때매 간암으로 억울하게 가지 않았을거다 울 엄마 화병으로 먼저 가지 안았을꺼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내가 여기 80518 카페 안들어 오고 전사모 회원했을지도 모른다 울 아부지가 수술받기전에 내게 한말 삼판을 꼭 다시 찾아라 그게 내인생 전부이고 니인생이다 c ㅂ 이젠 나무 짤라다 동발이쓰는 공사판 아무데도 없다. .... 이거 시가 될라면 어떻게 해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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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5.18 민주화운동 80518
글쓴이 : 노란장미 원글보기
메모 :
"삼판"은 "산판"을 뜻하는 듯 합니다. (편집자 주)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를 읽고
26년이 지난 우리들의 자화상
이상원(onesam)
80518카페를 개설한지도 벌서 5년째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곳 익명게시판에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라는 투박한 시(?) 한편이 올라왔습니다. 가페개설초기부터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되시는 회원한분의 사연과 일치합니다.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어느 회원이신가 쉽게 짐작이 갑니다.
그 분의 부친께서는 삼판을 하셨답니다. 삼판이란 지역별로 허가를 받아 벌목을 하여 그 목재를 공급하는 일입니다. 예전엔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좀 부족한 나무는 원목 그대로 공사판의 보조 목재로 사용을 햇습니다. 동바리라고 건축물의 지지대나 받침대등으로 사용을 하는 거지요.
이 시(?)를 올리신 회원의 부친께선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기전까지 벌목권을 받아서 벌목을 하셨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두환이 집권한 이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벌목권을 연장하지 못하시고 어려운 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부친을 대신하여 포장마차로 생업에 뛰어드신 모친께서도 분을 참지 못하시고 국가원수(?)를 모독하셔서 그마저 거덜이 나십니다.
이 시(?)의 작가분께서는 학교도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어린나이로 뛰어드십니다. 그 사이 부친과 모친은 병고에 시달리다 돌아가십니다. 작가의 부친께서는 돌아가시면서 벌목권을 다시 찾으라는 유언을 남기십니다. 고등학교진학도 못한체 섬유공장의 공원으로 공사판의 인부로 밥벌이에 연연하셨을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군요.
모두가 느끼듯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26년을 가로질러 2006년에 와있습니다. 마지막줄에 남기신 격한 풋념과 이제는 더이상 벌목한 목재를 동바리나 건축보조물로 쓰지 않는다는 외침을 던집니다. 그 외침 속에서 우리는 사무친 전두환에 대한 분노와 부친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저리게 느낌니다.
작가의 부친께서 전두환에게서 그 벌목권을 계속 유지를 했다는 가정도 보입니다. 그랬으면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더나가 외국에 유학하여 박사도 되고 그 분야에서 우리사회에 큰일군으로 살았을 거라는 것과 그랬다면 80518카페의 일원이 되어 전두환에게 분노를 퍼붇지도 않았을 거라는 가정말입니다.
아마 그랬다면 전사모(아마도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를 말하시는듯 합니다)에 가입하여 벌목권의 혜택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고 있으셨을 거라는 솔직한 가정이 씁슬하지만 이 시(?) 백미를 장식 합니다. 어쩌면 26년이 지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것도 같아 80518카페 익명게시판에 올려진 원본 그대로 이곳에 소개하여 봅니다.
마지막 첨언은 어쩌면 본인의 가슴에 싸이고 싸인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를 시로 전달하고 픈 마음을 표시한것 같습니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울진으로 삼척으로
울 아부지는 삼판을 하며
공사판 동바리며 나무를 대던 삼꾼이었다
어느날 전두환이네 삼판을 다 뺏어갔다
자기 졸병들에게 다 나눠주고
울 아부지는 삼판에서 쫏겨나셨다
울 아부지는 술로 화를 다스리고
울 엄마는 계명대 앞에서 포장마차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런데 울 엄마가 전두환이 욕했다고
포장마차도 몇년하지 못했다
난 고등학교도 못가고
양말공장 옷공장 시다를 뛰다
노가다 기술이 있어 공사판을 뛴다
울아부지가 동바리대던 어른들이
십장도 시켜줘서 그걸로 여태 산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나도 고등학교가고 대학교도 갔다
어쩌면 나도 미국유학박사되서 불상한 사람 도와주고 있었을 거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울 아부지 술때매 간암으로 억울하게 가지 않았을거다
울 엄마 화병으로 먼저 가지 안았을꺼다
전두환이가 울아부지의 삼판만 안뺏어 갔어도
내가 여기 80518 카페 안들어 오고 전사모 회원했을지도 모른다
울 아부지가 수술받기전에 내게 한말
삼판을 꼭 다시 찾아라 그게 내인생 전부이고 니인생이다
c ㅂ 이젠 나무 짤라다 동발이쓰는 공사판 아무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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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시가 될라면 어떻게 해야지요
2006-05-23 07:57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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