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여행스케치

[수도원 기행] ⑥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忍齋 黃薔 李相遠 2006. 9. 1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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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기행] ⑥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수도원 기행] ⑥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한국경제 2006/9/14/목/문화TVA33면>

 

 

침묵과 고독의 신비속으로

 

"자매님은 정결·순명·청빈의 생활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고 살기를 원합니까?"
 
"예,원합니다."
 
"자매님은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돕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를 원합니까?"
 
"예,원합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수유5동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하얀 수도복을 입은 수녀 한 명이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조규만 주교의 물음에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도원에 들어와 1년 반가량의 청원기와 1~2년의 수련기,3년의 유기서원기를 거쳐 평생을 이 수도원에서 살 것을 다짐하는 종신서원식에서다.

종신서원의 주인공은 '성면의 데레사 말가리다' 수녀.제대를 중심으로 일반 신자들이 들어가는 왼편의 외부성당에는 말가리다 수녀의 부모와 가족,친지,지인 등 15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평소 높은 담장에 굳게 잠겨 있던 이중 철제 대문도 이날만은 활짝 열렸다.


가르멜수도원의 봉쇄구역 안에 사는 수녀들만 들어가는 오른편의 내부성당 맨 앞에 서서 조 주교와 긴 문답을 끝낸 말가리다 수녀는 내부성당 바닥에 꽃으로 장식한 십자가에 부복(俯伏)했다.

가장 낮은 자세로 평생 하느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표시다.

곧 이은 장엄(종신) 서원문 낭독 순서.부복한 자세에서 일어나 수도원장 이명신 마리아 수녀와 마주 앉은 말가리다 수녀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저 성면의 데레사 말가리다 자매는 동정마리아와 함께…." 어렵사리 시작된 서원문 낭독은 첫 마디를 넘기지 못하고 또 끊어졌다.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말가리다 수녀는 부복했을 때부터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종신서원의 날,수녀는 왜 눈물을 보였을까.

이미 몇 년의 세월을 봉쇄된 수도원 안에서 보냈고,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수없이 점검하고 다짐했던 서원이 아니었던가.

종신서원을 기점으로 세상과의 마지막 접점마저 지워버려야 한 탓일까,갈망하던 꿈이 이뤄진 기쁨 때문이었을까.

 

자세를 가다듬은 말가리다 수녀는 정결·순명·청빈을 서약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복음적 자아포기로 완전한 애덕에 이르고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를 영원히 찬양하기 위하여 성녀 데레사가 개혁한 이 수도가족에 저 자신을 바친다"는 요지의 서원문을 낭독했다.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은 1940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완전봉쇄수도원이다.

지금도 서울에선 유일하다.

 

가르멜수도회는 이스라엘 서북부의 가르멜산에서 은수(隱修)생활을 한 구약시대의 예언자 엘리아에 기원을 둔 수도회.현재 세계 126개국 850여개 남녀 수도원에서 1만2000여명의 수녀와 4000여명의 수사가 고독과 침묵의 숨겨진 삶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

선교나 사회봉사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활동수도회와 달리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채 평생을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만 해도 외부인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어요.

외부인사를 만나는 면회실 칸막이도 3중 격자로 해서 서로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였지요.

세상과의 지나친 격리가 외부에는 거부감을 주는 측면도 있으나 완전한 관상에 몰입하기 위해서 세상과의 차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2000년 이상 기도생활의 경험에 바탕한 것입니다."

종신서원식에 앞서 면회실의 격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만난 수도원장 이 마리아 수녀의 설명이다.

가르멜수도회가 지향하는 봉쇄는 고행이나 고립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내적 자유를 획득하는 수단이라는 것.엘리아 예언자가 하느님을 찾기 위해 산과 사막에 은거한 것처럼,세상과의 물리적 격리를 통해 침묵과 고독의 생활을 더 쉽게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자아의 포기,항상 같은 수도원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데 따른 희생,수도회 규칙 준수,생활의 단조로움,노동의 수고로움 등은 불가피하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바깥일을 봐주시는 수녀님들이 계셔서 내부수녀들은 봉쇄구역 안에서만 생활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외부수녀를 하겠다는 지원자가 없어서 원장이 대외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요.

 

수녀원도 조직이 있다 보니 3년마다 심부름꾼을 뽑는답니다."

맨 처음 서울 혜화동에 있다가 1963년 수유리 산 밑에 1만여평의 터를 마련해 이사한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은 지금도 3000여평의 채마밭을 직접 일구고 각 성당에 미사용 제병을 만들어 공급해 생활비를 마련한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며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삶"이라고 이 원장은 설명한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동안 부산·대전·천진암·캄보디아에 수도원을 설립하며 가지를 쳤고,2008년 완공을 목표로 동두천에도 수도원을 짓고 있다.

서울수도원을 포함해 국내의 가르멜수녀원만 10개에 이른다.

 

서울수도원의 현재 회원은 27명.원래 정원은 21명이지만 동두천수도원을 준비 중이라 30명까지 받을 수 있다.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들 때까지 하루 7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기도를 바치고 노동과 독서,묵상으로 일관한다.

 

이 원장은 "현대인은 자기계발에 많은 것을 투자하지만 내면을 보면 채워지지 않은 영적 빈틈이 많다"며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것을 희생하는 자세와 자기 포기,자기수련이 있어야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종신서원식이 끝난 후 수도원 마당에서 작은 축하연이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자 수도원의 철제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세상 소식도,사람도 전혀 만날 수 없는 곳.그러나 절대 고독과 침묵만이 흐르는 그곳이 수도자들에겐 온 우주라고 했다.

바깥 사람들이 보기엔 수도자들이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세상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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