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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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3

검은엿 한덩이가 만들어 준 명치대 법대 유학의 꿈

일제시대 명치대 출신 한창달 변호사 . 함경남도 함흥출신으로 김병로, 이인, 허헌 3대 인권 변호사와 더불어 독립지사들이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때마다 수려한 변론으로 수많은 무죄방면을 이끌어낸 한창달(韓昌達, 1896년~1939년) 변호사는 1896년 7월 23일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풍상리(豊上里) 307번지에서 서당을 하는 아버지밑에서 여러 형제자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인천부 내리(內里) 148번지 외숙부 유승흠(柳承欽)의 집에서 거주하며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법학전수학교 2학년을 다니던 한창달은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3월 5일 서울역에 도착, 서울시내 학생들이 주도한 남대문밖 역전광장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11월 6일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한국기독교장로교 공로목사 장희진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1990년에 발간된 한신대학 50년사 106 페이지 제3편 수유리 캠퍼스 시절의 신장(1958-1980)에 "1957년 2월의 이회 실행위원회는 본관 건물의 설계와 시공책임자로서 본교 제1회 졸업생인 정희진 목사를 임명하였다."고 나옵니다. 한국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한국기독교장로교의 요람 한국신학대학의 본관신축을 평양 조산신학교 1회 졸업생인 장희진 목사님이 총책임을 맡아 캐나다 장로교단의 지원을 받아 건축했습니다. . 장희진 목사님은 1904년 7월 18일 함경북도 부령군 형제리에서 아버지 장윤식 선생과 어머니 이임칠 여사 사이에서 9남매중 다섯째로 출생하셨습니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만주 용정중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한 후 동생과 함께 만주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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