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함께 하는 삶

忍齋 黃薔 李相遠 2006. 12. 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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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80518의 회원이시고 제 개인적으로는 어린시절 친구이기도 한 권오창 선생이 보내주신 글을 함께 나누고자 올려 봅니다) 

 

21세기 대동아전쟁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서 아시아가 하나가되어 번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반도와 중국등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던 그 일본이 거대한 해일처럼
성장하는 중국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첨병이되어 이번에는 大東亞전쟁이 아니라
對東亞전쟁을 하려한다

우리한반도에 한민족이 어찌해야 하겠는가
아니 이미 위기상황이 목전에와 닿았다
"북한의 핵실험이다"
여러가지를 보고듣다보니 문득 미국의권력아래 휘둘린것이 남한도 그러하지만 북한
또한미국에 대항했다기보다는 희롱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대만 한국 일본을 핵벨트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보이며 그러기위해서 극동지역 한가운데서 소란을 피우는 북한이 필요했고 그런연유로 지난 경수로 사건시 북한이 자신들의 목줄인 생명과도 같은 에너지보급 열쇠를 미국손에 쥐여주겠다해도 이를
거부했던것이다
*멜깁슨 로버트루빈 빌더버그 키신저



정말 미-일 찰떡궁합인가?

부시와 고이즈미 가미가제도 잊고 어깨동무하며 가라오께도 함께 했다더니
태평양전쟁 참전용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살아있는데 8.15 오늘 그들에게 총 칼 휘두르던 위령들에게 참배하는데도 말한마디없다
그렇게 악을쓰며 미워하는 자살테러도 가미가제에게서 배웠는데 ...
지구저편 인권유린도 참견하는 미국언론은 죽었는가
죽지않고 눈감고있다면 그뻔뻔한 이익추구에 침을 ?b는다


짧은생각
성체줄기세포로 현재 문제가되고 있는줄기세포의 활용성을 대신할수 있는가?
현재도 빈부격차로인한 생존문제가 발생하는데 최소한 생존은 공동체가 보장하면서
윤리를 고집해야하지않을까 합니다
사학개혁반대도 기존 사학이 바람직하게
운영되었다면 개혁시도도 없었을것이며
또한 이사진에 소수 사외이사참여가
바람직하지않을까 합니다
그나저나 간추린사회교리를 각 본당 사회사목부에 한 권씩 보내면 어떨까 합니다



한 여름 밤에는 꿈도 없다
어제는 한달에 한 번 활동하는 노숙자 방문이 있었다.
노숙자 방문을 3년이나 한 사람이
노숙 하시는 분들과 가슴열고 대화한지 3년이나
되었다는 사람이
여름 밤 모기에 한 두곳만 물려도
잠을 못자고 설치는 사람이
여름 밤 노숙자들 에게 필요한 것이 물파스 모기약
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끼다니
아직도 멀었다
당신을 조금이라도 닮아 보려고 애썼는데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만나러 갔으니
아마 끝까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자신이 없어집니다
당신이 너무 멀어보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도 가출하신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분을 만났다.
세운상가 사업 30년의 50대.
배우자. 군대간 아들. 대학재학중인 아들.
수 많은 어음부도에 속상해 귀가하면
가슴을 쓰라리게 찌르는 한 마디 한 마디
공과 사를 구별하며 씻고 잊고 들어가나
사랑하는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슴 깊이 아프게 파고 들어온단다.
다음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무력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처음 만남에서 조금은 이해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나
감싸안고 함께 할 내 가슴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 보며 한숨을 내쉬어도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답답하다.




서기 이천사년 유월 대한민국
청색 수위복 딱딱한 모자에
한 60대 노인에 거수경례한 오른손이
바르르 떨린다.

육중한 검은 차 검은색 유리 안에
차 만큼이나 무게있는 또다른 60대 남자.
이 두 분은 만난지 오십년이 넘었다.
같은 산 같은 계곡에서 살았다.
먹는 밥, 먹는 찬은 달랐지만 말이다.

오십년 두 사람 인연중에
가장 승복하기 어려운 사건이
오 일 전에 있었다.

장마철에 우산 없이 퇴근하실 아버님을 생각하며
장대같은 빗속을 걸어 정문에 닿을 즈음
두 아들이 만난다.

한 아들은 우산 속에서
또다른 아들은 검고 육중한 차 속에서
그렇게 말이다.
-
-
-
음주운전도 아니고
어떤 차인지 보지도 못했다.

하반신 장애인 동생도
아버지와 함께 출근했다.
첫 출근이다.




성서위에 낙서
성서위에 낙서

이라크 파병
투표를 어느곳에 했는가
손주 자식이 파병되어 전사 부상당한다면
그래도 그 곳에 하겠는가
왜 싸워야 하나
대량 살상 무기는 어디에 있는가
핵무기는 왜 미국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파병이 경제적 국익을 위해서인가
정녕 그렇다면 매일 전에없는 수많은 자살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그달러는 어디로 가는가
예전에 1억불을 버는데
천명이 천시간 일해서 비록 저임금 이었지만
그나마 어렵게 벌어 먹고 살았으나
지금은 어떤가
백명이 백시간으로 1억불을 번다
나머지 900명이 900시간을 어디서 일해야 하는가
오래된숙련공이나 열심히 공부하고 건장한 청년은
어디서 어떤일을 해야하나
"A.smith는 도덕 철학자 였다"
정당화한 자기이익 추구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에 의해 규제되는 이기심이다
"자비는 건물을 지탱하는 기초가 아니라 건물을 장식하는 장식물이다.
그러므로 권장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의는 구축물 전체를 지탱하는 주 기둥이다.
만일 이 기둥이 제거 된다면 전 인간 사회는 순식간에 산산조각 날것이다."
- 도덕 감정론 -
자비는 장식이지만 정의는 기둥이다.
cf 우리의 나눔은 자비? 정의?
사회교리는 나눔을 자비에서 정의로 귀향하게 한다.

최선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항상 경제적이고 합리적인가?
이 합리성이 자기만족의 방법일까?
이 보편적 이기임의 충족만 요구 한다면 윤리적 이기주의(충족감)은 어디서 어떻게 만족할까?
ex) 일본의 경제발전은 합리성보다는 선진자본주의에서 볼 수 없는 의무감 충성심
같이 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가톨릭에서 주인의 사랑을 나누는 그 만족 또한 경제에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만족 아닐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다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전체 이익을 추구해야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개인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규칙이 필요하고 상호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공동선을 향하게 된다.
인내와 절제와 나눔으로 사랑은 실천된다.
-캠브리지 대학에서는 경제학이 도덕철학의 한 분야이다.-
현대경제학의 비판근거는 현대경제학이 실제 행위를 합리적 행위와 일치시킨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의 행위가 사람들의 사회적 존재로써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윤리학과 경제학은 행위가 지닌 이런 의미를 정당하게 다루어주기 위해
다시 긴밀한 접촉을 가져야만 한다.

앞으로 5년간 미국의 북한 봉쇄정책을 지속한다면 북한은 식량, 연료 문제로 고사 할 것이다.
한국군 1개 소대에도 주한미군 사령관의 명령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아 대한민국
친일파명단 작업예산 5억원 지원 안을 냈으나
삭감도 아니고 아예 삭제해버린 국회 아니 국회의원님들
이 기사를 보고 열흘 만 에 5억 2천만 원을 모금한 돈 많고 어리석은 국민들
(실업자가 되어 신용불량자가 된 동네 선배가 뉴스 보면서 소주 한 잔 하다가
열받아서 시퍼런 만 원짜리 한 장을 동참 했단다.)

북한에 쌀 보내고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서 빵, 우유를 보낸 것이 돈으로 환산해서
1인당 2500원 정도랍니다.

월남전 때는 파병을 반대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8명이나 사표를 던졌는데
이번에는 몇 분이나 던졌나?
더웃 명분 없는 전쟁에다 수천억 비용까지 대면서 ~ 무슨 이유일까?
나토 파병거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파병거부
터키 파병결정 철회 이탈리아, 폴란드 조기철군 의사표기

아버지 없는 생쥐 탄생~ 생명인가?
배아세포 12일 배양해서 죽어가는 생명(자식, 손주..) 살리려는 사람들
그 또한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주님이 주신 시간만 살다가지...
그러다 다시
이 능력 또한 주님께서 주신 큰 은총 아닐까?





2003.9.6 영안실
2003.9.6 02:44 영안실
야!~~~~~~ 이 새끼야,
왜 먼저 가냐고 울부 짖는다.
바닥을 뒹굴면서 몸부림을 친다.
통곡을 한다
엎드려 야! 이 나쁜 놈아~~~~~~~
흩트려 질대로 흩트러져 울부짖다 통곡하다 흐느낀다.
어쩌면 저렇게 슬플까
가족도 없나보다, 친척도, 친구도...
먼저 간 동생을 원망하며 서른 살 남짓한 형이 통곡한다.
사진도 작은 사진을 급히 확대해서
흐릿한 영정 앞에서 숨차게 울부짖는다.
남자 둘, 여자 둘.
조문객.
이것이 모두 다.
홀어머니 모시고 모녀가 딱 두 분만 사시다
연로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 왔다가
옆 상가를 본 모습이다.
여기도 가족도 친구도 전혀 없이 성당 조문객만 지나간 상가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보호 대상자로써
삼일장도 못모시고 하루만에 화장터로 모시는 집이다.
세상이 이렇다 ~~아!세상이 이렇단다~~ 아!
세상이 이런데~~?

-권오창 T.아퀴나스-






자유게시판






No. 391 이름 권오창 날짜 2003-11-07 조회 27



동방예의지국


동방예의지국

노인 자살이 이 작은 나라에서 한 해에 3천여명이 넘게 발생하고있으며,
하루 일곱분이 얼마남지 않은 그 아쉽고 짧은 인생을 당신들 손으로
스스로 마감한단다.
아들의 핍박이 가장 크고 며느리가 그 다음 순서란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동방예의지국, 충효의 나라가 아닌가
이제는 아니다.
개선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윤리가 아니라 섭리다.
생명공학을 생명윤리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는가.
윤리가 깨지고 섭리도 못 지키는 세상에서 무엇을 논하겠는가.
무슨 염치로 생명윤리를 논하겠는가.

-권오창 T.아퀴나스-




평등
평등
인류 전체 역사중, 정대 평등의 공동체인 구석기 시대의 비해 신석기
이후의 세계, 즉 계급과 불평등 사적소유가 인정된 시기는 24시간중
5분 정도에 지나지 않은 아주 짧은 세월이라는 예가 있단다.
그래서 막연히 인간은 절대 평등이 본능처럼 느낀다고, 그래서 평범한
복지론 자의 이상인 모두가 잘사는 절대적 평등은 꿈이며, 더 나아가
무능은 고사하고 게으른 자도 남의 노력으로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다고 한다.
고로 상대적 불평등이 정의라고 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불가피한 열등자.
기회로부터 소외된 자, 정보, 권력, 기타 여려 조건으로부터
불평등하게 소외된 자는 누가 어떻게 구원하겠는가.
하지만 경제학이 효율이상을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윤리학과 종교가 그 이상의 효율적 못지않은 비효율의 선을 추구하면서
찾아내야 하고, 전하고,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학에 없는 사랑을 간직하며 말이다.

-권오창 T.아퀴나스-








世監圖世 監 圖 -권오창 토마스아퀴나스-

아름다움에 진정한 아름다움에 善이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까?
진정한 善에 서로 나눔이 없는 善이 있을 수 있을까?
진실된 善만이 진정한 美가 아닐까?

이중섭의 일그러진 근육에서
苦痛에 찬 삶의 연민과 강한 삶의 意志를 느끼지 못했다면
이중섭의 “소”를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게르니카에서 善을 향해 목숨을 내던지는
인간의 강한 意志를 느끼지 못했다면
피카소의 苦惱를 이해 할 수 있을까?
노을진 만종에서,
한낮 태양아래 그 땀을 느끼지 못하고,
석양의 평화와 고요만을 느꼈다면 밀레를 다 본 것일까?

모나리자의 미소에서 인간의 苦惱를
충분히 알고있는 미소를 느끼지 못했다면
철없는 아이의 순진한 미소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술병든 神仙圖에서 세상의 苦惱를 충분히 번민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酒酊圖와 무었이 다르겠는가?

梅 欄 菊 竹 그 모두 찬바람과 거친 땅이 아니었다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보다 더 가치있고 아름답겠는가?
진실된 苦惱와 나눔이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살면서 그려야할 그런 人生圖가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이십여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자주가던 단골집 아줌마였다.
오래된 화랑의 주인이었다.
처음만난 그때 그는 빡빡머리 까만교복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 사십이 넘어 만난것이다.

몇 번 들러 차도 한잔씩 마셔가며 그림을 보다가 화랑들이 잔치를 한단다.
그 이름하여“청담 화랑제”
이 나라에서 가장 돈많은(풍요로운)동네에서 말이다.
그때 그 빡빡머리 학생은 이 나라에서
가장 돈없는(소외받은) 동네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생각나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스스럼없이
그 아이들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랑주인도 쾌히 동의하여 추진하였다.
왜냐하면
“싸우지마라”,“욕하지마라” 하며 수십번을 타이르는것보다
“고요한그림”,“고운그림”,“시원한그림”을
항상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아시는 아름다운 분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실무자를 만났다.
아주 적극적이고 호의적이었다.
그날 아이들 점심으로 보통 그러하듯
“햄버거”,“피자”를 거론하기에
“그날 거기서까지 그런 것 먹이고 싶지 않는데”했더니
그 다음 순간 “이심전심”말이 필요없이
점심이지만 정식코스로 추진, 준비하였으며
한국이 8강에 들던날
전화로 “오!필승코리아”를 외치며
예정에 없던 응원복을 하나더 준비해준 예쁜 사람.

그날 어린아이 들과 화랑을 함께 돌던날
그 회장님은 새로운 결정을 즉흥적으로 내리신다.
이제부터 “청담화랑제”가 있는한
계속해서 이 소외된 어린 천사들을
이 아름다운 세계로 초대한다고
즐겁게 결정해준 멋진사람.

전인구 4700만 중 450만이 장애인이란다.
선천적 장애확률은 25%이며
긴 인생 살면서 수많은 질병과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75% 이상이라는데
거기서 내가 제외된 감사의 표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인생에10%는 이런이들에게
드리는 것이 정의로운 분배가 아닌가 싶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던 친구의 아내가
중증장애인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Friend Care"를 설립했단다.
그 분들을 돌보는 전문인을 양성하고
파견하여 돌보는 사업까지 수행한단다
연약하게 생겼는데
주님뜻에 따르면 강해지고 아름다워지나보다.

대한민국 사람이 다 아는 서울역
바로 그 맞은편에 1~2평 남짓한
아주 좁은 공간에 이름하여 “쪽방”에
계시는 분들을 돌보는 “함께하는집”
어려우신 환경 안에서도 자발적은 주민들의 봉사활동.
사방에서 답지하는 뜨거운 관심과 도움.
함께하는집은 그래서 그 어떤 호화저택보다도 아름다운 집이고
노숙자 분들의 편안한 쉼터이다.

오랜만에 산에 갔다.
성당에서 간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배낭도 없이 산에 올랐다.
녹파란 숲 푸른하늘 굳센바위 맑은물에
취해 오르면서 한참을 오르다
간간히 눈에 띄는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들.
옥에 티 같아 한두개씩 주우며 올랐다.
하산길은 물이 좋아서 그런지 쓰레기가 많았다.
한 봉투 찼다.
물에 발 담그고 계신 분들께 빈 봉투 하나를 청했다.
그 봉투 받아들고 가려는데 그 가득찬 쓰레기 봉투는 두고 가란다.
배낭이 없는 것을 보고 베푸신 배려이다.
그렇게 하고는 빈 봉투를 채우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에 세 번이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이 세상이 아름다워 지려나 보다.
주님이 바라시는 그런 세상이 되려는가 보다








사회교리 머릿말

사회교리 머리말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적 자본주의가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원하시는 그런 나라입니까?
저는 ‘새로운 사태’ 공부하기 이전에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정치혁명은 여러 번 있었느나 인류 역사상 생산혁명은 두 번 이었는데
그 첫 번째는 수만년전 신석시시대의 농업혁명이었으며 그 이후 불과 300년 전 산업혁명이
두 번째입니다, 그렇게 보면 두 번째 혁명은 아직도 활발한 진행중이라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 농업혁명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채취하는 시점에서 무엇인가 즉, 능동적이고 가변적인 생산을 하는 시기로의 거대한 변환이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발생했고 차별과 계급이 생기면서 역사가 흐르더니
그 모순을 보시다 못해 하느님은 예수님을 보내시어 세상을 구원케하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계속 자정케하셨는데 그 말씀을 우리 카톨릭은 산업혁명 이 후 급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수 백년 동안 연구해 왔으며 그 과정과 결과물을 21세기 들어서면서 이제야 공부해보자는것입니다.
진정 주님의 뜻이 무엇이지? 지금 주님의 자식으로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것인지?
말입니다.


-권오창 토마스 아퀴나스-







2003.2.18일대구
2003.2.18 오늘
대구 지하철이 사고가 아니라 방화로 인명피해만 백여명을
예상하는 대형사건이 일어났다고 속보로 나온다.
이렇게 대형참사를 일으킨 분이 50대 지체장애인 이란다.
점화순간에 본인에게먼저 불이 붙어 당사자가 화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있단다.
왜 그러셨을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방화를 생각하셨을까?이렇게 큰 피해를, 이렇게 큰 상처를 상상이나 하셧을까?
몇 년전 동경 지하철테러나 9.11테러나
차라리 사고라면 어느 한 사람의 이기심이나 실수로
접어두고 부정을 막고 경계훈련이나 열심히 하고 그 사람만
원망할 터인데.
참혹한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 자꾸 ‘나때문인데’,
‘우리때문인데’ 하면서 가슴이 무거워짐을 숨길 수 없다.
우리가 좀더 나누고 돌보아 드렸다면
우리가 진정 가슴으로 감싸드렸다면
저분 절대 오늘 저런모습으로 누워계시진 않았으리라.
“용의자” “용의자” 하며 아나운서의 그 호칭에서
전혀 상관없는 자를 호칭하는것처럼 가볍게 들리지를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떳떳하게 전혀 가책없이 용의자 호칭을
들어야 할 터인데...
목숨걸고 사람을 구하러 가는 소방관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나
하늘 보며 여쭈어본다.
목숨걸고 이렇게 억울한 사람은 없게 하라고 하신다.
목숨걸고 이렇게 부정한 세상을 바로잡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내일도 지하철로 출근한다.
권오창 토마스 아퀴나스

함께하는삶

함께 하는 삶

봉사가 아니라 나눔이라 배웠습니다.
너와 내가 있는 곳에서는 봉사이고, 너와 내가 없이 우리나라는 곳에서는 나눔이지요.
어찌보면 나눔도 내것을 너에게 주는 그런 나눔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찾아주는 일용할
양식을 찾아 주는 그런 나눔이 주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나눔이라고 이제사 어렴풋이
짐작됩니다.

누군가는 10등 5등을 해야 1등도 있게되는 것이고, 물건을 사서 소비하는 소비자가 있어서
그 이익으로 대기업이 오늘에 저 웅장한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기에 소외된 분들돠의 나눔은
정당한 권리의 회복이지요
이 동자동 형제들을 방문할 때면 매일 빈손으로 찾아 뵙는데도 뭐 그리 반가워 하시고
고마워 하시는지 송구스런 마음이 들어 가슴으로만 “형제분들의 정당한 권리에요.”하고
가슴으로만 조용히 외쳐봅니다.

처음 방문시에는 경계심과 냉소와 귀찮음으로 대하시던 분들이 가슴을 조금씩 여시고
당신들 현실을 말씀하시다가 마침내는 호적에만 올라있어 국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의
혜택도 받을 수 없게 하는 바로 그 자제분들 사연까지 말슴 하실 때면 송구스러움으로
고개를 숙이고 별 도움도 못되는 무력감에 저희가 빚을 진 듯이 마음이 무거워 지고
마침내는 이세상에 분노하다가 바로 그 다음 순간에는 저 자신에게 손가락이 향합니다.
무려 20년 넘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너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런 주제에 그분들을 판단하는 죄도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젊으셨을때 워하셨냐고”
“왜 열심히 사시지 못했냐고.” 원망아닌 원망도 해봅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열심히 사셨고 그분들이 방황과 욕망어린 세월까지도 보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저 또한 “주여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해 봅니다.

형제가 궁핍하고 형제가 기뻐할 때
우리또한 즐겁게 언제나 우리는 형제 들과 더불어 주님의 주님의 사랑을 보이며 살아가리.


Dog War世上 世上 世下

CNN뉴스속보 속보 속보.
속을 다 드러내 보인단다.
美國이 이라크를 공격 한단다.
아름다울 美 자란다.

부시가 잠시 부인과 저녁식사후 개전 발표 한단다.
부시가 잠시 부인과 저녁식사후 개전 발표 한단다.
증시 시세판은 개전 전부터 폭등의 붉은 피바다.
증시 시세판은 개전 전부터 폭등의 붉은 피바다.

무차별 폭격속에
무너진 기둥밑에 깔린
어린아이와 할머니를 상상하며
모두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린다.

지하철TV 앞에 수많은 눈동자안에 맺힌 눈물들.
하염없이 흐르는 저 눈물들.
멀리서 아주 멀리서
큰 바다 건너에서
DOG WAR DOG WAR를 발표하는 저분.

부인과 다정하게 저녁만~찬 후
이는 닦았는지..
이라도 닦았는지..
-권오창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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