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다시 나는 새’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책들. 빼어난 산세,그 혈을 짚고 들어서 있는 사찰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자잘한 돌멩이들의 탑 무더기들처럼 일정한 높낮이 없이 쌓여 있거나 혹은 낱권으로 여기저기 내팽개쳐 있는 책들은 여자가 대부분 읽다 만 것들이다. 각기 다른 제목을 명찰처럼 달고 있는 그것들은 전혀 다른 공간, 시간, 존재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서로 싸우는 일 없이 그렇게 서로 몸을 포갠 채 무료한 잠을 자고 있다. 중간쯤, 혹은 몇 장 넘기지도 않은 채 갈피갈피에 갖가지 모양의 책꽂이를 끼워두거나 얄팍한 분량의 두께를 날개가 감싸고 있는 것에서 여자가 읽기를 중단한 자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끝을 보지 못하고 그렇듯 표시 하나로 덮어버린 책들은 지루해서거나 아니면 함부로 읽을 내용이 아니어서 언젠가는 저작하듯 꼼꼼히 들여다보리라며 내팽개쳐놓은 것들이다. 하지만 손만 대면 흔적이 남도록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 언제 펼쳐보았는지 모르게 방치돼 있는 중이다. 아니 버려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자는 날밤을 새워 기술했을 저자들의 한탄 어린 한숨이나 뼈가 물러 나갈 듯한 고통이 배어 있는 수고로움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한다.때문에 책들은 여자에게 있어 모두 죽어있다. 그저 죽어있는 세상일 뿐이다. 거기에 대해 여자는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다.자신이 게으르다는 식의 반성. 반성을 하기에는 여자는 이미 무기력하고, 사유할 의사마저 상실해버린 지 오래다. 번득이는 삶, 전장 같은 치열한 삶의 무대에 뛰어들어 함께 하기에는 여자는 너무나 가볍고 치밀하지 못하다.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추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서로 포개어져 있는 책 주변으로 장미가 금박으로 물린 검은색 휴지통이 있고 빨간색 뚜껑 위로는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자의 두피에서 빠져나간 머리카락들, 올올이 엉겨 불결하게 보이고,간밤의 화장을 지운 휴지와 안면의 각질을 안은 채 버려져 있는 팩의 잔해물이 뿌연 비닐막으로 다른 쓰레기들과 같이 버려져 있다. 마치 여자의 얼굴이 처박혀 있는 형국.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얼굴, 데드마스크를 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오래 전에 사멸돼 버린 감정. 무정물의 마네킹처럼 여자는 그것들 속에서 뒹굴고 있다. 그런 의미로 여자 역시 하나의 허섭쓰레기일 뿐이다.
쓰레기통 위로는 책상이 놓여 있고, 그 한편에 시계가 엎어져 있다. 한때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여자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약관을 지나고, 입지의 다리를 지나 불혹의 세계로 이동해 가는 동안 여자는 빛 속에서 시간이 실종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마다 시간의 개념과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처음에는 완만한 유속을 보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생체 반응 시간에 여자는 멀미를 일으키면서 더 이상 시간을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여자에게 맹목적인 조바심 따위를 심어주지 못한 채 방 안의 공기처럼 탁하게 떠돌다 그녀의 무관심 속에 그렇게 죽어 나간다.그 시간이 죽어 부유하는 공간에 반지며 목걸이 따위의 액세서리들이 오래 전에 체온을 잃고서 던져져 있고, 여자의 허리를 졸라매고 있던 검은 가죽 허리띠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서 시간의 사체 위에 올라타 있다.
부스스 일어서 있는 머리를 매만지며 여자가 돌아보는 곳에는 철 지난 옷들을 넣어둔 붙박이 장이 비밀스런 공간처럼 자리하고 있다.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그곳, 음습하고 곰팡내 나는 그 비좁은 공간에는 여자가 탈피해 나온 껍질들이 올마다 그녀의 각질과 자잘한 터럭들을 숨긴 채 다시 부화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난장이다. 여자의 삶은. 단조로운, 그러면서도 지리멸렬한. 에넘느레한 방 안의 풍경처럼.
잡동사니들로 난장을 이루고 있는 그 안, 시간의 사각 지대인 좁은 방 안에 쓸모없는 물건처럼 여자 또한 버려져 있고, 그녀 옆으로 역시 휴지처럼 구겨져 있는 한 명의 사내가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 담배 연기를 고리로 만들어 허공에 날리고 있다. 꼭꼭 문을 처닫은 방 안에는 바람 한 점 들지 않아 고리는 흐트러지지 않고 제법 형태를 오래 유지하고 있다. 그 누런 고리들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장난을 치는 여자. 그녀의 손가락에 고리는 형체를 잃고, 여자는 장난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은 자신의 삶의 고리를 파기하는 기분으로. 발목을 붙들어주는 고리 하나 없이 그렇게 무리진 삶들의 변방만을 겉도는 자신의 삶의 형태를 닮은 고리가 소리없이 흐트러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가져볼 수 없다. 그런 여자의 손등에서 벌레처럼 도드라져 있는 푸른 혈관이 불끈거리고, 손톱은 이 밀리미터 이상 자라나 있다. 언제부턴가 깎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지금껏 실행하지 못하고 있고, 그녀의 무기력의 징표인 손톱은 오늘도 무사함을 보장받는다.
후후…. 그가 갑자기 입바람을 불어 고리들을 없애 버린다. 푸른 벌레가 꿈틀대는 그녀의 손등에 남자의 폐를 빠져나온 뜨듯한 날숨이 엉기고, 여자의 뇌리에는 혈관을 순환하는 혈액들에서 끊임없이 불순물을 걸러내는 남자의 폐가 한 장의 모노크롬으로 떠오른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도 하나의 불순물이다. 여자는 몸을 뒤집어 배를 깔고 엎드리면서 머리맡에 놓아둔 페트병 주둥이에 입을 가져다 댄다. 쿨렁쿨렁. 식도를 따라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물을 받아들인 위장은 금세 묵직하게 느껴져 온다.
“한 시인의 연봉이 백오십만원이었대. 혈기왕성한, 삼십대 남자의 연봉이 말이야.” 필터의 목이 끊어지도록 힘주어 담배를 눌러 끄며 남자가 문득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백오십만이라는 단위는 여자의 의식에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삼십대 초반이라는 남자 시인 역시 그녀의 관심을 환기시키지 못한다. 타인의 삶에 오지랖이 넓지도 않았고, 언제부턴가 자신의 일상이나 주변의 삶에 지나치리만큼 심드렁해져 버린 여자는 자신의 삶이 마치 화석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걸로 어떻게 사는지 알아? 그야말로 신선처럼 살지. 이슬을 먹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는 꿈을 꾸는 거야. 당신이라는 여자도 꿈이 있나? 꿈 말이야. 꿈.아니야, 당신은 악몽도 꾸지 않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여자는 힘이 들어가 있는 남자의 손길에서 할 말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는다.
“이슬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매미가 먹으면 노래가 되지. 시인이 먹으면 시가 되고…. 아니 시가 아니라 정신이 되지.한데 당신은 무얼 먹고 무얼 만들지?” 남자는 자꾸만 돋보기를 여자 코 앞에 들이밀고 있다. 은색의 금속 테두리에 갇힌 볼록거울에 그녀를 담아내는 남자의 손길이 무엇을 찾으려는 듯 진지하기만 하다. 입술을 감쳐문 남자의 눈가에 웃음기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것이. 이리 와 봐.하지만 너무 가까이 들이미는 바람에 그는 여자의 코도 놓치고,입도 놓치고, 눈도 놓치고, 결국 모공마저도 놓쳐 버린다. 저리 가. 여자가 고리에 손가락을 끼우던 손으로 돋보기를 밀쳐내지만 그는 용케 손톱이 긴 여자의 손을 피해 가며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자꾸 굴절시키고 왜곡시키고 종내는 여자를 해체하고 만다.
“가까이 보이는 너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아.” 역하게 풍겨나오는 술냄새. 욱, 여자는 토악질을 일으킨다.돋보기의 차갑고도 매끄러운 질감이 그녀의 뺨에 와닿는다.여자는 그를 거칠게 밀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둘둘 감고 있던 침낭이 떨어져 나가듯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남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에도 당혹스러운 기색 없이 일어서서 유방을 내보이며 미황색의 브래지어를 하고, 팬티를 입고, 머리를 매만지는 여자를 팔을 깍지끼어 머리를 받친 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말한다.
“우리에게는 이제 설렘이 없어. 설렘을 줄 수 없는 상대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유난히 숱이 많은 눈썹 아래, 작지 않은 남자의 눈매가 호르륵,바람결에 불꽃을 죽였다 일어서는 촛불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여자의 감정에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고 눅눅한 대기중에 무겁게 깔리는 연기처럼 흩어지고 만다.
여자는 어제 저녁에도 관성처럼 자신의 집을 찾아 들어온 남자와 애무가 궁색한 섹스를 했고,안주 없는 술을 마셨고, 그리고 등을 돌린 채 잠을 잤다. 무미건조함 속에 그 모든 것들을 마쳤고, 잠속조차 그저 암흑이었다. 의식의 텅빈 공간. 그녀는 낮에도 잠속을 헤맸다. 어쩌다 서로의 등이 닿으면 흠칫 벌레처럼 몸을 접으며 상대의 체온이 자신들의 의식 속에 입력되기를 거부했다.
아무런 감응도 안겨주지 못하는 관계, 섹스조차 지리멸렬한.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전등처럼 그렇게 흔들리다 서둘러 끝내는 섹스에 여자는 늘 마침표를 찍고 싶었지만 놓아두고 보면 번번이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거나 물음표였다. 어찌된 일인지 마음 한 구석에 갈무리해 놓은 마침표는 세상에 나오기만 하면 슬그머니 변형이 돼 버렸고, 여자는 알을 품듯 또 하나의 마침표를 가슴에 안고 지내야 했다.
“나 지방 출장이야. 일주일 동안.” 일방적인 통고 형식의 남자의 말에는 인력(引力)이 들어 있지 않다. 여자 또한 남자의 말에 의문을 달거나 치레 같은 무사함을 당부하지 않고 타월지로 된 목욕 가운에 팔을 꿴다. 서먹함. 그 서먹함이 두 개의 동심원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고, 두 개의 동심원이 섞일 때쯤 남자는 뭉기적거리고 있던 자리를 미련없이 털고 일어선다. 그녀보다 열살 아래인 남자의 구리빛 나신은 매끈하면서도 표면에는 윤기까지 도는 것이 마치 좋은 목질을 보는 듯하다. 마치 저 혼자 살아 꿈틀대는 것처럼 보기 좋게 뭉쳐졌다가 풀리는 남자의 근육은 세월의 침윤으로 이미 헐거워지기 시작한 여자의 근육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그 확실한 비교점을 목도한 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 한편에서 살별 하나, 뚝 떨어져 나간 것을 느낀다.
그 음울하고 시린 소감을 묵묵한 침묵으로 견디며 여자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방 안, 자잘한 잡동사니 그 무엇도 여자의 눈은 담아내지 않고, 대신 상실감만이 희미하게 깃들이다 사라질 뿐이다. 배코치듯 뒷머리를 바짝 올려 깎은 머리카락을 위아래로 쓸어내리며 남자는 욕실문 뒤로 사라진다. 쿵! 문이 닫히고, 그가 일으켜 놓고 간 공기의 파장이 희뿌연 담배연기로 가득 찬 방 안에 이동하는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놓는다. 이봐 비누가 없어. 목욕실 안으로부터 지하 음습한 곳에서 울려오는 듯 공명을 품은 소리가 들려온다. 옥색의 거실장을 뒤지는 여자의 손이 해찰하듯 자꾸만 멈추고 찰기 없는 그녀의 시선이 비누와 치약 등속이 들어 있는 거실장을 떠나 베란다 밖, 폭우가 쏟아지는 세상으로 표표히 떠돈다. 그러다 문득 한숨을 내쉬는 그녀. 이어 귀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녀의 눈에 활기가 돌고, 마침내 비누를 집어들고 욕실로 향한다.
비누…. 여자는 입을 다물고 만다. 수음(手淫)이었다. 어두침침한 화장실에서. 입을 벌리고, 동공은 풀어져 그 틈새로 남자의 영혼이 새어나오고 있다. 얼핏 남자의 얼굴에 경멸의 미소가 깃들이다 사라지고. 여자는 성기를 잡고 서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을 닫는다. 잠깐 동안의 암전…. 뒤이어 그녀의 감은 눈안에 수많은 새 떼가 길라잡이 새 없이 날고, 여자의 가슴 속에서는 무수한 살별들이 떨어져 내린다. 여자는 알았다. 남자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다시는 이 방을 찾지 않을 것임을. 마흔이 다 되도록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가정도 없는 여자의 방을. 그리고 꿈도 없이 점점 박제가 돼가는 여자의 방을. 시간도 정지해 버린 채 그저 지루함만이 모든 사물들의 표면에 더께처럼 눌러붙어 있는 자신의 방을. 그럼으로 허상의 세계같은.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사람은 이별의 순간을 본능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탕!! 잘 있어,라는 남자의 말과 함께 문이 닫히고, 여자는 부메랑처럼 휘어진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려다 슬그머니 그만둔다.
밖은 아직 비다. 때에 따라 줄기만 바꿀 뿐 연 일주일째 계속되는 지루한 장마에 여자는 양기(陽氣)가 그립다. 그것도 폭양이. 살비듬이 일도록 이 눅눅함을 말려줄 햇볕, 그대로 데일 정도의 뜨거움을 지닌 햇살이 그립다.
그 햇살 아래서, 노란 저고리에 목숨 수(壽)자를 금박으로 물린 현란한 붉은 치마를 입고 손에 칼을 든 채 펄쩍펄쩍 내림굿을 하는 자신을 환영으로 만난다. 여자는 자신 안에 고인 광기를 풀어낼 길이 없다. 길이 없어 아예 방기해 버린 삶.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으로 여자는 더욱 답답하고 울울하고 그래서 삶이 더욱 지루하기만하다. 보이지 않는 단절의 벽을 쌓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 남자는 검은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네가 보이지 않아. 조금 전 남자가 돋보기를 들이밀며 내뱉던 음성이 들려온다. 돋보기 밑, 남자의 확대된 눈가가 마치 섬모를 가진 벌레처럼 보였고, 여자는 그 섬모충의 독에 쏘인 것처럼 전신이 따끔거렸다. 나도 네가 보이지 않아. 여자가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비…. 네가 보이지 않아. 끝에 덧붙여 내뱉는 여자의 말. 여자는 아마 남자를 향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삶이 지루해 찾은 남자. 그렇다고 황음은 아닌. 남자가 자신의 삶에 곁을 만들어 주었던가? 유리창에 엉긴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마치 창이 녹아내리는 듯 보인다. 하강하는 비의 가속도를 뚫고 상승하는 소리. 츠츠츠츳. 단지와 단지 사이의 양회바닥에 막으로 덮여있던 빗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바퀴 소리가 또렷하다. 여자의 무연한 시선이 남자의 흰색 차 지붕에 떨어지고, 주렴같은 비의 장막을 뚫고 그의 차가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갈 때까지 여자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퀴가 수막 위에 흔적으로 남겨놓았던 평행선마저 사라지고, 세상에 다시 빗소리만이 가득할 때 여자의 마음은 시렸다.
마치 종이에 베인 것처럼 섬칫해 여자는 남자가 사라진 지점에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온 전신을 덮는 소름이었다. 한여름인데도 잎을 올리지 못한 주목이 잿빛 하늘을 향해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는 화단 입구, 물매가 완만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물마를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쳐다보며 서있는 경비원의 모습이 여자의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물멀미를 일으킨다.
당신이라는 여자, 뭐랄까?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 같은 거였어. 당신에게는 요령부득의 어떤 신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내가 해독할 수 없는 그 신비한 힘이 나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줄 줄 알았어. 아무것도 기대해 볼 수 없는 내 삶에. 무언가 신선한 것을 안겨줄 줄 알았지. 하지만 나 혼자만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았어. 당신을 품고 있으면 나마저 그대로 자폭하고 말 것이라는 위험이 느껴져.
남자의 말이 울린다.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위협처럼 사방군데에 들러붙어 있다가 무시로 뛰어나와 여자를 물어뜯는다. 벤자민 이파리에, 켄차의 갈라진 잎새 사이에, 오디오의 스피커 속에 남자의 점액질 말이 숨어있다 시간차를 두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여자는 담배를 찾는다. 장대로 내려꽂히는 비의 기세에 밀려 담배연기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도로 여자의 얼굴에 와 엉긴다. 스멀스멀 열린 모공 틈새로 연기는 잠입해 들어와 그녀에게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아득히 십사 층 아래, 남자는 사라지고 없고, 여자의 후줄근한 모습만 빗방울이 엉겨있는 유리문에 담긴다. 소매 없는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혈색 없는 얼굴로 멍한 시선을 세상에 풀어놓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왠지 처연해 보인다.
비는 좀체 그치지 않는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비는 공격적이다. 세상에 묻은 오물을 씻어내려는 듯, 아니, 이 지구의 삼분의 일인 육지를 전부 집어삼키려는 듯 기세가 등등하다. 삿갓 모양의 굴뚝 지붕 아래 둥지를 튼 까치가 사나운 비에 겁먹은 양 둥지 주변을 날고 푸덕푸덕 비맞은 날개에 바람을 싣지 못한 까치의 날갯짓이 무겁다. 무거워 추락할 듯 위태롭다. 검은새. 폭우 속의 검은새는 상서롭지 못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검은새는 멈추지 않고 둥지 주변을 위태롭게 선회한다. 심상치 않은 날갯짓. 새끼, 새끼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자가 고개를 쭉 빼고 발돋움질을 해 유리창 너머 둥지를 보려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도 안다.
흘긋, 검은새의 눈과 여자의 시선이 마주친다. 여자여,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비가 한 번 휘몰고 지나가면 생명의 신비가 요술처럼 펼쳐지는 불가해한 땅. 아프리카 대륙의 황금빛 사막을 아느냐? 까까까깍! 까치가 묻는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곳. 하지만 그곳에 숨어있는 질긴 생명력들을 너는 모르느냐. 죽어있는 것에서 다시 삶을 피어올리는 아프리카의 신비, 그 아프리카가 너에게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네 음부의 깊숙한 곳에 자궁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앉은 무한의 세계를. 여자야, 네 자궁을 열고 생명의 신비를 세상에 풀어내 봐.
신오른 무당의 푸닥거림처럼 예사롭지 않은 날갯짓으로 검은새가 주문을 걸어오고, 그녀는 검은새의 날갯짓을 따라 아프리카를 꿈꾼다. 분가루처럼 날리는 모래, 폭양은 쏟아지고, 거대한 금빛 동물처럼 자꾸 몸을 뒤채는 모래 언덕들, 그 속에 몸을 숨긴 채 숨죽여 밤을,비를 기다리는 생물들, 한 번 비에 생물들 뛰어나와 축제를 즐기고, 이내 사라지는 살아있는 것들. 하지만 결코 사멸하지 않는 생의 의지…. 하지만 살아있는 것을 한 번도 토해내지 못한 여자의 자궁은 그대로 죽음의 공간일 뿐이다.
여자가 아프리카 속을 헤매고 있을 때 검은새는 둥지로 몸을 숨기고, 검은새와 함께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다시 사라지고 만다. 다시 돌아온 현실의 세상은 비의 천지다. 비에 세상이 침몰돼 가고 있다. 시간이, 사람이, 서서히 비에 수몰돼 가고 있고, 노아의 방주는 아무데도 없다. 빗물이 알루미늄 섀시 틈새를 비집고 스며들고, 십육층짜리 아파트도 결코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될 수가 없다. 어디에도 여자의 삶을 안전하게 부려놓을 곳은 없다. 딩동딩동. 암죽처럼 물큰하게 가라앉아 있는 방안의 권태를 헤집으며 초인종이 울린다. 여자는 붙박아 놓은 듯 바투 다가서 있던 베란다 유리창에서 떨어져나와 잠금쇠를 풀고 현관문을 연다. 조금 전 남자가 사라진 문 앞에서 프릴이 달린 엷은 모싯빛 블라우스에 빨간 치마를 입은 계집아이가 비를 흠뻑 맞은 채 여자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우산을 써도 소용 없었어요.” 홍수 속에 맞는 이다는 여자에게 묘한 기분을 안겨준다. 가닥가닥 갈라진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블라우스가 몸에 들러붙어 있는 상체에서는 막 부풀어오르는 젖무덤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아이는 현관문을 잡고 서있는 여자의 팔 아래로 몸을 끼어 마치 제 집처럼 스스럼없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가 지나가는 길에 흔적으로 남는 물방울이 여자에게는 마치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여겨진다. 여자는 아이가 벗어놓고 간 신발에 고개를 돌린다. 구절초 모양의 커다란 흰꽃이 달린 아이의 노란색 샌들이 물에 씻기어 색이 더 선명해 보인다.
“아저씨 오늘 안 오셔요?”아이의 눈길이 얼른 여자의 방안을 훑고 지나간다. 마치 먹이를 찾는 고양이의 눈처럼 재빠르고 약삭빠른 눈길에서는 초등학교 삼학년 아이의 순진함은 엿볼 수 없고, 여자는 그런 반지기 같은 아이의 관심이 달갑지 않다.
“나 머리 잘랐어요. 어때요?” 아이는 여자가 건네준 수건으로 물기를 훔쳐내며 말한다. 가무잡잡한 피부, 검다 못해 초록빛이 도는 머리카락에 도톰하고 큰 입술은 자둣빛으로 붉어 아이에게 기이한 매력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여자의 시선은 자꾸만 아이의 상체에 머물고, 그녀는 얇은 블라우스 위로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아이의 젖꼭지가 도발적으로 보여 눈에 거슬린다.
“마른 옷으로 갈아 입을래?” 당돌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젖꼭지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여자는 제 옷을 내준다. 흰색 바탕에 동그란 검은색 무늬가 들어있는 원피스는 아이의 걸맞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감추어주기에 충분하리라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의 손에서 옷을 받아 든 아이는 거리낌없이 그녀 앞에서 옷을 훌렁 벗는다. 탈피를 하듯 아이의 몸에서 젖은 옷이 떨어져 나가고, 이어 갈색 유리 표면과 같은 매끄러운 살결이 봉긋하게 솟아오르는 유방과 함께 드러난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수한 생물이 살아있는 갯벌 냄새같은 비릿함이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잊을 뻔했네.” 이다가 젖은 제 빨간 치마주머니를 뒤지더니 종이에 싼 물건을 여자에게 불쑥 내민다.
“아주머니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펴보세요.” 아이가 건네주는 물건이 여자의 손에 묵직하게 얹힌다. 종이는 빗물을 먹어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안의 물건은 단단함만이 감지될 뿐,외형이나 용도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빨리 펴보세요. 이다가 개봉을 종용한다. 여자가 젖은 종이를 벗겨내자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청동의 조각이 모습을 드러내고, 천수관음보살! 기도문을 외는 것처럼 여자는 낮게 웅얼거린다.
“칼리예요.” 머그컵 정도 크기의 청동 조각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청의 빛깔을 잃고 있지만 왠지 기괴한 힘이 느껴지는 듯해 여자는 등줄기가 서늘하다.
“천수관음보살이 아니고?” 진저리를 치며 여자가 묻는다.
“칼리예요. 파괴의 신 시바 부인. 칼리는 초록빛의 피부를 가졌대요.”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칼리는 오른편 손에는 북 방패 컵 물병을, 그리고 왼편에는 창 칼 뱀 종을 들고 있다. 시바. 창조를 위해서 파괴도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 파괴의 신이 된 그는 자신의 링가를 숭배토록 해 밀교 의식을 만들어냈다. 아이의 입가에 실린 미소가 청동 조각 안 칼리의 미묘한 웃음과 닮았다.
“제 부적이에요.” 이다의 당찬 말에 여자는 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내 다시 칼리에게로 옮겨놓는다. 칼리를 왜 부적으로 삼았을까. 존재에 대한 보존 본능? 아이에게서 발산되는 비릿함이 여자에게 또다시 멀미를 일으키고, 아이의 그런 강렬한 삶의 에너지에 자신이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아 여자는 두렵다.
“헌데 왜 나를 주니?” 여자는 그 느낌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아이에게 묻는다.
“오래 전부터 드리고 싶었어요.” 큰 은혜를 베푼 사람처럼 조금은 느긋하고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다는 성큼성큼 피아노 앞으로 다가간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쳐들며 걷는 폼새에 시혜자의 거만함까지 깃들여 있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몸피에 비해 큰 원피스가 엉덩이의 근육에 따라 출렁이고, 여자는 와락 달겨들어 되바라진 아이를 밖으로 내쫓고 싶어진다. 그런 여자에 아랑곳없이 아이는 검은 표범처럼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피아노를 어루만진다. 마치 첫출산을 경험한 산부가 충만한 기분으로 아직 붉은기가 사라지지 않는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아이의 눈가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결정(結晶)들이 고인다.
자신의 미립으로도 헤아리기 힘든 어떤 세계, 어둡지만, 그렇다고 결코 어두운 것만은 아닌, 또다른 세계가 아이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만 같아 여자는 칼리를 들고 어찌할 줄을 몰라한다. 시뻘건 불빛을 내부에 감추고 있는 마그마처럼 삶의 에너지가 내재해 있는 아이다. 아이의 그런 삶의 힘이 왜 자신에게는 자꾸만 위험스럽게 보이고 경계심을 주는 것일까.
“인도 신화에 보면 말예요. 이다는 홍수의 신 마누의 딸이었대요. 이다는 그런 신이 내린 벌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죠. 이다…. 나도 신화에 나오는 이다처럼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피아노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이가 대뜸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하지만 여자는 아이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버림으로써 대답까지 회피한다.여자는 매일처럼 이루어지는 이다의 방문이 썩 내키지 않는다. 궂은 날에도 아이는 거르는 법 없이 한 마리의 정충처럼 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여자의 생활에 잠입해 들어와 모든 사이클을 자신에게 맞추어 놓고 그렇게 소리없이 빠져나간다.
애초부터 여자의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아이는 다시 피아노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아이의 손에 검은 표범은 저항없이 입을 벌려 고른 치열을 드러내놓고, 그 치열들을 대하는 아이의 눈이 방안을 탐색할 때처럼 빛난다. 여자는 안다. 이어질 아이의 일련의 행동들을. 이다는 피아노에 올려놓은 초보자용 교본을 찾아 책걸이에 얹고 자신 있는 곳을 찾아 몇 번 되풀이해 칠 것이다. 난 이곳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아이는 언제나 자신있는 번호를 골라 몇 번 치는 것으로 하루의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랑하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여자를 돌아보고 씨익 미소를 짓는다. 어때요? 한 번 더 쳐볼까요? 멜로디의 여음을 즐기기 위한 듯 아이는 표정으로 묻는다. 잘 치지 않아요? 여자는 아이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번번이 대답을 대신한다. 왜 아이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환심을 사려하는 것일까. 다른 아이들처럼 진도를 빨리 빼기 위해 안달을 하지 않고, 같은 번호만 되풀이하는 것일까. 아이의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만큼이나 음 하나하나가 또랑또랑하다. 하지만 가끔씩 아이는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듯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손목의 힘을 풀고 노려보듯 악보를 외우고서는 다시 건반을 두드린다.
아이를 만난 것은 지난 봄 문구점에서였다.
여자는 그때 가위가 필요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다섯 개가. 집안에나 사무실에는 서랍마다 가위가 한두 개씩 굴러다닐 정도로 많았지만, 그녀는 새로운 가위를 사기 위해 문구점을 찾았다. 녹슬지 않은, 잘 벼리어진 날이 푸른 빛을 쏘고 섬뜩함에 후두둑 진저리를 칠 만큼 잘 드는 가위를. 잘 익은 과일에게서 맡아지는 그런 단내가 날 것만 같은 크고 탐스런 입술을 가지고 있던 한 여성작가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던 여자는 동티를 막아줄 새로운 가위가 필요했다.
통통 살이 오른 뱀이 나무줄기에, 땅에, 색이 선명한 꽃밭 속에 똬리를 틀고 있거나 거무스름한 나무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는 그림만을 그려 온 작가는 자신의 전생은 뱀이라고 했다. 언제나 빨간 립스틱이 그려져 있던 그 작고 육감적인 입술로 나는 전생에 뱀이었어요,라고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롱하게 말했다. 왜 뱀이 두렵지요? 온몸으로 세상을 건너는 뱀처럼 난 내 삶을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살고 싶어요. 뱀은 사람이 생각한 것처럼 사악한 파충류는 아니죠. 단지 종교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들이 뱀을 희생물로 삼은 거예요. 그런데 왜 꼭 뱀이었을까요? 혹시 뱀에게는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될 그 어떤 비밀한 것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요? 그 미끈한 몸체, 내부에 품은 독으로 자멸하지 않는 지혜. 생각보다 뱀은 온순한 동물이지요. 건들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뱀의 갈라진 혀만큼은 어쩔수 없이 나도 싫어요. 그러고 보니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통통 살오른 뱀의 몸통을 닮았다. 난 뱀이에요. 그것도 꽃뱀.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가성을 내며 살아오던 여자에게 그녀의 존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가위 주세요. 다섯 개. 아주 잘드는 걸로.” 의역으로는 여자의 삶에, 직역으로는 보름 동안 이어질 그녀의 개인전에서 부정을 없애기 위해, 동티가 나지 않도록 여자는 새로운 가위가 필요했다. 주술이 갖는 원초적인 힘. 여자는 미라처럼 건조해가는 자신의 삶에, 그 어떤 새로운 힘을 그런 식으로라도 이식해 와야만 했다.
시퍼런 날로 오색 테이프를 끊고 동티를 물리쳐 줄 가위를 고르고 있을 때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놀던 한 여자아이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식 없는 분홍색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뒤로 묶고, 헐렁한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아이는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놀기에는 커 보였다.
“가위를 왜 그렇게 많이 사세요?” 한 개도 아닌, 한꺼번에 다섯 개의 가위를 필요로 하는 여자가 아이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만도 했다. 여자와 아이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먼저 거두어들인 것은 여자였다.
“뭐에 쓰세요?” 아이의 호기심치고는 집요한 면이 있었다. 그저 쓸 데가 있단다,라는 모호한 대답으로 여자는 얼버무렸다. 여러 가지 가능성에 뿌리를 둔 모호함은 여자가 숨기에 알맞은 안전 지대였다. 왜 지금껏 결혼하지 않지? 결혼은 하긴 할 건가? 남자는 있어? 은밀함에만 모아지는 관심들, 그 은밀함에 여자는 모호함으로 대처하고, 그 모호함으로 사람들은 한편의 혹은 여러편의 구전소설을 창조하면서 여자를 경원시하거나 때론 선심쓰듯 자신들의 동정심을 던져준다.
하지만 여자에게 있어 여자는 언제나 여자일 뿐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 대목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히고 만다. 정말 자신은 자신일까? 덩굴처럼 뻗어만 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 여자는 생각의 미로에 갇히면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타인들의 의혹 속에 묻어있는 진지함 때문에 돋아나는 의문, 나는 누구일까? 정말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일까? 삶의 엑스터시는 무엇일까? 진정한 오르가슴은? “왜 가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아이의 호기심이 여자를 생각의 늪으로부터 끌어낸다. 왜지요? 아이의 강한 호기심이 기어이 여자를 굴복시키고 만다. 테이프 자를 거야. 무슨 테이프? 오색 테이프. 빨강 노랑, 파랑 분홍 무슨 식장에서 쓰는 거 말인가요? 그래.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아이의 시선이 잠시 초점을 잃고 몽롱해지는 것이 어떤 황홀감에 빠져드는 것 같다.
“그만 가라.” 멈출 줄 모르는 아이의 추근거림이 내심 미안했던지 작달막한 문구점 주인이 짐짓 험악한 얼굴을 지어보이며 아이를 제지시키고, 주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표정이 몽환의 늪에서 빠져나오며 시무룩해졌다. 그만 가 봐. 꿈쩍도 하지 않고 서있는 아이에게 주인이 다시 한번 채근하고, 어깨를 잡혀 쫓겨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여자가 물었다.
“어느 집 아이예요?” 설령 어느 집 아이라고 일러준들 여자는 그게 누구 집이고, 또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한다. 이웃들과의 교류가 별반 없는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계집아이만 했을 때, 콧잔등의 땀을 손수건으로 꼭꼭 찍어누르며 지나가는 그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이 하던 말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어느 집 아이예요? “요 아래에 있는 영신원 아이예요.” 아!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아. 왜 여자가 그 고아라는 단어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녀의 무의식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던 고아 의식. 그랬다. 그녀는 늘 고아였다. 정신적 고아.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을 치면서 스스로 고아이기를 자처했다. 오라 넌 교장선생님네 딸이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지르고 싶었던 소리. 내부 깊숙이 침잠해 있는 소리들. 응어리져 명치 끝을 늘 아프게 하던 소리. 아버지를 부정하고 싶었던 반항.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었다는 이유로 그녀는 늘 모범생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부에 들어 있는 화냥끼를 숨긴 채 조신하고 정숙한 아이로 그들에게 비춰져야만 했던 사춘기 시절. 여자의 목소리는 담 넘어가면 안 된다. 아버지인 교장선생님의 말을 좇아 가만가만 속삭이듯 말을 해야 했고, 여자는 웃을 때 이가 보이면 안된다,라고 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무례하게 행동하면 안된다,라는 가르침에 어른들의 부당한 요구도 묵묵히 눈을 내리깔고 따랐고, 공부를 잘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자는 팽팽하게 긴장돼 있던 시위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한치의 틈도 허락지 않던 아버지의 울타리에 있을 때 그녀를 짓누르던 자살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녀는 그 모든 고리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매일 이렇게 와서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논답니다. 귀찮고 영업에 방해도 되고 해서 몇 번 오지 말라며 쫓아내도 소용없습니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만, 이목구비 자그마한 문구점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여자에게 친절하게 굴었고, 그녀는 거스름돈을 받고서 황급히 아이가 나간 문을 밀쳤다.
그런 여자의 뒤에 대고 남자는 소리쳤다.
“손버릇도 좋지 않아요.” 아이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문구점 건물 모퉁이에 몸을 바짝 붙이고 서있다 여자를 제가 먼저 발견하고 공이 튀어나오듯 불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색 테이프 보고 싶어요.” “네 이름이 뭐니?” 여자는 머쓱한 기분으로 물었다.
“이다예요. 이다. 성은 이가고, 다는 이름이에요. 차 다 자를 써요. 차처럼 맑고 푸르고 또 향기가 나라고 지어준 이름이에요.” “넌 언제나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논다는데?” 여자의 물음이 언짢은 듯 아이의 미간에 잠깐 주름이 잡히더니 이내 풀린다. “넌 공룡과 펭귄은 싫으니? 요즘 아이들은 공룡과 펭귄을 좋아한다던데?” 아이들은 왜 공룡과 펭귄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들에게서 아이들은 어떤 이미지를 보는 것일까. 혹시 자신들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이미지들에 세뇌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룡은 크고 힘도 세고 무서운 게 없으니까 공룡은 좋아해요. 하지만 펭귄은 싫어요.” “펭귄은 왜 싫지?” “뒤뚱뒤뚱 걷는 게 뭐가 보기 좋아요? 보세요.” 아이는 양손을 바지 봉제선에 갖다붙이고 뒤뚱뒤뚱 걸었다. 발부리를 안으로 모은 채 오금을 굽히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나간 아이는 힐끗 여자를 돌아보았다. 굳어있는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고, 여자는 아이의 그런 행동이 우습다기보다는 왠지 가슴 한 구석에 스산한 바람이 휘돌다 지나간 것처럼 시렸다. 어쩌면 아이는 공룡에게서 무소불위의 힘을 보았는지 모른다. 반면에 펭귄에게서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까? 정신적 불구? 뿌리가 거세돼 버린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그래 펭귄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를 흉내내면서 스스로 제 약점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것이 불쾌했을까? 제 힘으로 울타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에게 공룡은 어쩌면 부모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아노가 치고 싶니? 왜 피아노가 치고 싶어?” 펭귄의 자세를 풀고 아이로 돌아와 있는 이다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래, 정말 아이는 왜 피아노가 치고 싶은 것일까? 한때 그녀도 피아노를 갖고 싶어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아이처럼 초등학교 시절, 여자는 자신 안에 갇혀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소진시켜 줄 도구로 피아노를 갖고 싶었다. 고래처럼 미끈한 피아노. 그녀가 만져주는 대로 노래 부를 그 피아노가 갖고 싶어 열흘 밤낮을 울었다. 천장 군데군데 쥐오줌이 누렇게 얼룩지고, 싸구려 벽지가 닳아 무늬를 잃고 들떠 있는 상하방 한 구석에 털갈이하는 동물처럼 윤기 없는 얼굴로 식구들에게 적의를 내뿜으며 그렇게 서럽게 목놓아 울었다. 피아노가 갖고 싶어….
상하방 남의 집살이에 피아노가 웬말이냐고 어머니가 모지락스럽게 여자의 울음에는 귀도 안 기울일 때 여자는 그게 더 서럽고, 오기가 나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몽니를 부렸다. 여자는 사력을 다해 울었다. 매를 맞고 울다 혼절하듯 잠을 나고 나면 또 울고.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 장독대, 자갈 틈사이를 비집고 자란 봉숭아꽃잎에 노닐고 있는 햇살이 서러워 울었고, 간짓대로 지탱해 놓은 빨랫줄에 널린 눈부신 흰빨래가 서러워 더 목놓아 울었다.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을 때, 여자는 피아노에 몰두했다.
실체와의 접촉에서 즐길 수 있는 촉감과 청각의 자극이 아닌, 단지 그 관념적 단어에 몰두했다. 하지만 몽니를 부리면 부릴수록 허망함은 배수로 커져만 갔고 여자는 어느 순간 배선을 끊듯 그렇게 울음을 그쳐 버렸다. 여자는 지금 그 포달이 그립다.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들에게 내보일 수 있다는 것이.
여자가 다시 한 번 묻는다.
“왜 피아노가 치고 싶니?” “그냥 나를 알리고 싶어요.” “너를 발설하고 싶다구?” 자신에게 엉기는 여자의 시선을 당당하게 받아내며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표면장력처럼 자신의 내부로만 응축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는 세상 밖으로 자신을 밀어내기 위해 피아노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집에 피아노가 있는데 가지 않을래?”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영매자의 눈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빛. 여자를 투사해 들어가는 것 같은. 아니 빛났다기보다는 차라리 향기가 났다. 다(茶)라는 이름처럼. 그랬다. 여자는 아이에게서 삶의 비릿한 내음을 맡았다. 모든 삶의, 생성의 냄새는 비릿함이었다. 여자의 기억에 있어서는. 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 없이 순순히 따라왔다. 이 모진 세상에서. 처음보는 사람 따라가지 말아라.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불신에 대한 추종이나 맹종 없이. 아니, 오히려 끌려간 것은 여자였다.
아이는 여자보다 더 종종걸음을 쳤다. 간혹 대지의 선을 흐트려 놓는 봄아지랭이를 쫓느라 그녀의 걸음이 늦어지면 아이는 여자를 책망하는 눈길로 뒤를 돌아보며 해찰하는 그녀의 걸음을 채근했다. 그래, 지금 몇살이니? 몇 학년이야? 여자는 쐐기처럼 자신에게 날아와 박히는 아이의 눈빛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물었다. 하지만 여자의 물음은 번번이 아이의 조급한 발걸음에 채이고 밟혀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는 수고스럽게 두세 번씩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반밖에 듣지 못했고, 여자는 왠지 아이에게 내몰리는 듯한 초조감까지 일었다. 초등학교 삼학년이고,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만이 그녀에게 들려준 자신의 짧은 생애에 대한 대답의 전부였고, 아이의 관심은 온통 피아노에 쏠려있는 듯 그것마저도 건성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여자는 흘긋 아이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불끈 주먹을 쥐고 입술을 감쳐물며 표시창에 나타나는 층수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는 문득 무언가 파괴해 버리고픈 잔인한 욕구가 내부에서 요동치면서 그녀 자신을 몹시 불안스럽게 만들었다.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 형형한 눈빛으로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행복, 그 자체였다. 자신에게도 그런 삶의 희열이 있었던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 가도가도 끝없는 그 누런 모래수렁들, 제대로 발을 딛고 서 있기조차 힘든 지층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자신에게 그런 삶의 쾌감이 있었던가. 문득 아이의 떨림이 동심원을 만들며 자신에게로 조용히 넘어오면서 여자는 가슴 한 자락이 떨려왔다.
부스럼같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검은 동물처럼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피아노를 보자 아이는 여자가 미처 들어오라는 말도 하기 전에 제 집마냥 스스럼없이 들어와 피아노로 다가갔다.
자성을 가진 두 개의 물체가 결합하 듯. 오래 전에 여자와는 교감의 문을 닫아버린 피아노는 아이로 인해 다시 깨어나고, 아이와 피아노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공간에 오직 피아노와 자신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 이다는 그렇게 피아노에 빠져들었다. 악보도 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치는 동요 한 곡 없이 아이는 건반을 차례로 누르거나 다시 거꾸로 반복하면서 소리내기에 열중했다. 소리. 그저 소리였다. 어린아이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처럼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하는 소리. 그저 소음에 불과한. 딩딩딩. 오랫동안 발성을 정지한 피아노는 정확한 제 음을 찾지 못했다.
이다는 여자가 준 옷으로 갈아입고 무방비로 등을 내보인 채 피아노에 열중해 있다. 비맞은 머리카락은 두피에 달라붙어 있고, 제대로 닦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으로부터 흘러내린 물이 기다란 선을 그리며 옷을 적시고 있다. 아이의 어깨가 움찔거릴 때마다 그 젖은 부위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편형동물처럼 기이한 동작을 보여주고 여자는 와락 달겨들어 그 동물을 제거해내고 싶다. 한 마리의 무골충(無骨蟲)이 살아 꿈틀대는 아이의 어깨에, 의자 위에 얹혀져 있는 아이의 자그마한 엉덩이에 여자의 눈길이 머물다 떠난다. 영악스러운 아이는 자꾸만 자신의 등뒤에 여자의 거미줄같은 끈끈한 시선이 날아와 엉긴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하지만 이다는 뒤돌아 보는 일이 없다. 뒤돌아 보지 않을수록 여자의 시선은 켜켜로 쌓이고 아이 역시 여자의 시선에서 자유스러워질 수 없다. 간혹 여자의 시선이 무장을 해제하고 딴 곳으로 주의를 돌리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행동은 이제까지와는 영 딴판이다. 따분한 듯 발을 까불고, 들키지 않게 하품을 억지로 참아내거나 건반이 내는 소리에 신경질이 묻어나오는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기관이 등뒤에도 발달돼 있는 것처럼 흘깃 여자가 돌아보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까부는 발을 단정하게 모으고 리듬을 타는 듯 제법 어깨까지 흔들곤 하는 것이 여자에게 매번 놀라움을 안겨준다. 조금 쉬었다 하렴. 여자가 접시에 알록달록한 과자나 과일을 담아 아이에게 내밀면 이다는 사뭇 피아노에 빨려든 것처럼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자는 지금도 아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 파편 조각을 주워 모으듯 자신도 모르게 불쑥 내뱉은 이다의 말에서 결이 매끄럽지 못한 아이의 삶을 그저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모자이크한 세상일 뿐이다. 아이가 가져다주는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도 잠시, 언제부턴가 여자는 아이에게 질리기 시작했다. 질리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무서웠고, 또다시 그녀는 삶의 지루함에 빠져들었다. 아이의 도전적인 눈빛. 점점 더 진해져만 가는 삶의 비릿한 냄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피아노의 서툰 뚱땅거림. 그녀는 아이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일상의 리듬을 흐트러 놓는 아이의 존재 때문에 때론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보이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여자는 아이가 집에 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감히 여자가 어찌해 볼 수 없는 힘이 내재해 있는 듯 그녀는 아이를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아이가 오는 시간만 되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전전긍긍하며 그녀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여자는 역설적이게도 아이가 다녀간 뒤의 당분간 이어질 평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환란 뒤에 오는 평화가 더 안온하고 평온한 것을 알기에.
어릴 적 의식처럼 치러지곤 하던 아버지와의 불화. 지루한 일상에 변주곡처럼 울리던 아버지의 난폭함 뒤에 찾아오는 안도감. 이제 적어도 하루동안은 무사하리라는. 하지만 그뿐이었을까? 아이가 오는 시간에 갖는 두려움. 그녀의 지리멸렬한 삶에 새로 반입되는 아이의 존재는 그 지리멸렬함이 위협받고 있다는,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그런 설렘의 또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나 있는 곳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내 방 구경시켜 드릴게요.” 달포 전 일찍 찾아온 더위에 연신 땀을 훔쳐내며 여자가 하얗게 탈색돼 가는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빨갛게 달은 얼굴로 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물었다. 여느 때같지 않게 무엇엔가 쫓기는 것처럼 아이는 피아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여자의 손부터 잡아끌었다.
“피아노는?” “오늘만 쉴 거예요.” “너무 덥지 않니?” 전혀 예기치 않았던 아이의 초대가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팔을 빼며 말했다. 아이는 더위쯤은 상관없다는 듯 여자의 등을 막무가내로 떼밀었다. 여자는 은근한 호기심에 마음이 동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아이의 완강함에 마지못한 듯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흰 레이스 가디건을 걸치고 집시치마를 입은 여자의 손을 아이는 행여 놓칠세라 꼭 잡고 햇볕 쨍쨍한 길을 걸었다.
땀이 고이는데도 아이는 손을 푸는 법이 없었고, 택시를 불러 타고 가자는 여자의 제의를 야멸차게 물리쳤다. 아스팔트가 더위에 물러지며 여기저기에 바퀴자국이 화인처럼 남아있고, 담장을 넘은 키 큰 해바라기가 해를 쫓다 지쳐 힘겨운 듯 간신히 고개를 지탱하고 있었다. 지열로 발회목이 홧홧거렸지만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깡총거렸다.
크고 작은 관목들이 덤불을 이루고 있는 야트막한 산을 베개처럼 이고 들어서 있는 집들 사이사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을 한참 따라들어 간 아이가 한옥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서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기니? 여기예요. 여자가 표정으로 묻고, 아이가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시에 이루어진 자신의 방문을 놓고 여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서요. 여자의 망설임을 읽어낸 아이가 손을 잡아끌며 칠이 벗겨진 녹색 철대문을 밀쳤다.
안은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넓었다. 외관보다는 면적을 고려해 지었을 이층 건물은 벽을 타고 담쟁이 넝쿨이 흐드러지게 올라가고 있었고, 돌멩이들로 낮은 울타리를 만든 화단에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가 서로를 시샘하듯 꽃잎을 틔워내고 있었다. 아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이끌었다. 뚜레 꿰인 소처럼 아이의 손에 이끌려 여자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신발장이 먼저 눈에 밟혔다. 말갛게 청소가 잘 된 실내에 여기저기에서 낮은 수런거림이 들려오고, 아이처럼 단발머리를 하거나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애들이 방문 사이에서 빼꼼히 여자를 내다보았다.
“실은 오늘 나 생일이거든요. 원장엄마가 아주머니를 초대해도 좋댔어요.” 아이가 자신의 신발 옆에 여자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며 말했다. 신발장 안은 또다른 화단이었다.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처럼 빨갛고 파란, 크고 작은 신발들. 그랬구나. 선물이라도 준비할걸. 아이의 말에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가 말했다. 아이는 그녀의 말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었고 여자는 아이의 뒤를 따라 기다란 복도 끝 방으로 들어간다. 화단으로 난 창에 리본으로 묶은 분홍색 커튼이 달려있는 방엔 나비가 날고 있었다. 푸른 나비들은 사방에서 푸른 가루를 흩날리며 긴 대롱을 말고서 춤을 추고 있었다.
“벽지가 예쁘구나.” 여자의 말에 또다시 미소짓는 아이. 하지만 입술 한끝이 비틀려 올라가는 것에 여자의 말이 힘을 잃었다. 창문이 달린 벽에 나란히 놓여있는 네 개의 책상 가운데 아이의 책상은 어느 것일까? 여자가 하나하나 책상을 훑어보고 있는데 퍼머기 없는 머리를 뒤로 틀어올린 앙바틈한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잿빛 주름치마에 검정색 블라우스를 받쳐입은 여자는 오십은 훨씬 넘겨보였다.
“다가 말하는 아주머니가 이분이구나?” 미간사이에 콩만한 까만 점이 있는 여자가 이다와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묻고,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원장엄마예요. 이다의 말에 여자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참 착한 아이예요. 영리하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다를 그토록 귀여워해 주신다고요. 눈치가 빠른 애지요. 속썩일 게 없어요. 한 번 일러주면 두 번 말하는 법이 없답니다. 동생들도 잘 보살펴주고요.” 여자는 아이가 원장엄마라고 일러준 여자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언제나 할 말이 군색한 그녀였다. 흘긋 아이를 일별하는데 지금까지 집에서 보았던 아이는 아니었다.
순하디 순한, 맑은 눈빛으로 껌벅껌벅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에게서는 번번이 자신에게 멀미를 일으키곤 하던 비릿함도 없었다.
“여기에도 피아노가 있는데 꼭 아주머니 집에 가서 피아노를 친답니다.”
“피아노가 있었어요?”
“그럼요. 아주머니께 폐끼치지 말고 여기서 치라고 해도 막무가내지 뭡니까?”
원장엄마라는 여자의 말에 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해를 잃고 염천에 지친 해바라기처럼 풀이 죽어버렸다. 나 피아노 잘 치잖아요. 아주머니도 심심하지 않고…. 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방안 가득 햇살이 밀려들어와 있고, 아이의 말이 그 햇살 속에서 생기를 잃었다. 여자는 그 햇살 속에서 한 마리 카멜레온을 보았다. 몸의 색을 바꾸는.
여자는 생각한다. 한 마리 편형동물을 어깨에 기르고 있는 아이에게 서 다시 한번 순한 맑은 눈빛을 보고 싶다고. 아이가 별안간 손을 뚝 멈춘다.
“그 방송국 아저씨 잘생겼죠? 키도 크고, 남자처럼 다부지게 생겼잖 아요. 눈썹도 진하고, 입술은 또 어떻구요.” 도전적인 눈빛으로 쏘아보 듯 쳐다보며 묻는 아이가 여자는 불쾌하다. 필요이상으로 여자의 사생활에 관심을 드러내고 참견하는 아이의 당돌한 태도가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아이의 오지랖이 더더욱 싫다.
“결혼 안 하세요?” “오늘은 그만 치고 가렴.” 암컷의 동물들에게서 풍기는 암냄새가 맡아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동성으로서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여자의 경계심에 아이는 적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빤히 쳐다본다. 앙큼한 것 같으니! 그녀는 내심 아이에게 발톱을 세우며 물어뜯을 것처럼 표독스러워지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아이의 서운함을 달랜다.
“화랑에 나가봐야겠다.” 기실 마음 한편으로는 근 한달째 비워둔 채로 방치해 두고 있는 화랑의 천장이 걱정스러웠다. 지난 여름부터 생긴 누수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던 터이다. 조명 시설 때문에 전선이 뒤얽혀 있는 화랑 천장의 누수 현상은 화재의 위험이 상존해있었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를 한다는 것이 건물주의 시큰둥한 대처로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천장공사라는 것이 워낙 큰 공사라서. 더욱이 요즘같은 불황기에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있어야지…” 키작은 건물주의 음성이 빗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손에 큼직한 반지를 끼고, 개구리처럼 배가 불룩 튀어나온 건물주는 몹시 미안해하며 뒷말을 흐렸다. 여자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빗줄기를 살펴보러 다가섰던 베란다 유리문에서 물러서고, 아이는 아직 건반 위에 손을 얹고 앉아서 여자에게 피아노를 치듯 또박또박 묻는다.
“그 아저씨 마음도 좋지요?” 한 번 먹잇감을 정한 맹수가 놓치는 법 없이 사냥하 듯 아이는 예의 집요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스멀스멀, 아이에게서 냄새가 스며나온다.
독염처럼 비릿함이 더 진하다. 여자는 토악질을 일으킨다. 비가 오기 때문에, 비가 오면 기압이 낮아지므로, 냄새가 낮게 깔리지. 그러니 더 진한거야,라고 생각하며 여자는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린다.
“결혼 안 하세요?” 아이가 빤히 여자를 쳐다보며 묻는다. 아이의 눈은 화산이었다. 주변의 것들은 모두 태워버릴 것만 같은 그 눈빛을 타고 비릿함이 쿨쿨 새어나오고 있다.
“그만 가렴.” 여자는 아이의 등을 떼밀어 피아노에서 밀쳐낸다. 정말 이번에는 다음부터 오지말라고 할 작정이다.
“칼리…” 아이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어버린다.
“나는 소용없어. 네가 도로 가져 가.” 여자는 아이가 피아노 위에 얹어놓았던 칼리를 아이의 손에 짓이기듯 도로 쥐어준다. 원망의 빛이 아이의 얼굴에 깃들이고, 진흙으로 빚어 놓았던 조상이 마르기도 전에 격한 손길에 일그러지 듯 당당하기만 하던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 입양하지 않을래요?”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나 아주머니 딸로 입양해요. 하지만 결혼 안 한 여자는 입양할 수 없대요. 방송국아저씨랑 결혼해 나 입양해요. 아주머니는 나이가 많아 이제 자식도 가질 수 없잖아요. 나는 피아노도 잘 치잖아요.” 여자는 제 귀를 의심한다. 이명에 잘못 전달되는 소리겠거니 치부하며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딴청을 부리며 떨리는 가슴을 단속한다.
“나 입양해요.” 방점을 찍듯 아이는 제 말에 힘을 더한다. 당황스럽고 황당해 여자는 할말을 찾지 못한 채 뻔히 아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난 아주머니를 잘 모실 수 있어요.” 아이가 애원하 듯 말한다. “나에겐 아이 필요 없어. 내일부턴 오지 말아라.” 난 똑똑하고 영리해요. 언젠가는 날 입양했다는 걸 잘했다고 생각될 거예요.
난 아이들은 필요 없어.
나는 다를 거예요. 귀찮게 안 할게요.
어서 가. 나도 이제 그만 나가봐야겠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비루먹은 강아지를 쫓아보내듯 떠다 민 아이의 등에서 느껴지던 단단한 버팀. 아이를 내보낸 여자는 다시 담배를 찾아 입에 문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 더 이상의 자기 증식을 거부한 여자에게 있어 아이는 강신무를 추는 아기무당처럼 보인다.
밖은 여전히 폭우다. 하지만 금세 나타나야 할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작은 홍수를 일으키고 있는 아파트 단지내 포도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우산! 미처 우산을 챙겨줄 틈도 없이 아이를 내보낸 현관문에는 이다가 쓰고 왔던 검은빛깔의 우산이 그대로 놓여 있다. 나 입양해요. 아이대신 검정우산이 말한다. 그러나 여자는 나가지 않는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면서 여자는 무엇엔가 홀린 듯한 기분이 된다. 나, 입, 양, 하, 지, 않, 을, 래, 요? 굳이 제 집에 있는 피아노를 두고 여기까지 찾아온 아이의 셈속이 이 때문이었을까? 제 집 구경을 시켜준 것도? 여자는 젖은 손으로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불을 켜대지만 젖은 담배는 좀체 불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근 한달째 비워놓고 있는 화랑은 사람의 출입이 없어서인지 곰팡이 냄새로 가득하다. 흰색 석고판으로 마감한 천장 한가운데에는 누렇게 물이 들어 있고, 작동하는 메트로놈처럼 뚝뚝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내리고 있다. 누수 현상이 이전보다 더 심해지고 있었다. 색색으로 채색한 삶의 풍경들이 어느날 문득 가식으로 보여 중단해버린 화랑. 화가들은 사람의 지난한 삶을 파편화시키고 정지시키거나 왜곡시켜 오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삶은 돌아볼 줄 몰랐다. 아버지처럼. 그 아버지로 인해 색맹이 된 자신. 자신은 색맹이었다. 오직 한 가지 색만 구별해내는 색맹. 잿빛의 세상. 잿빛의 세상이 자꾸만 꿈도 없는 단조롭고 지루한 절망의 수렁으로 여자를 내몰고 있었다.
벌써부터 벽 군데군데 매기가 끼고, 텅빈 화랑은 여자의 발소리를 공명시킨다. 여자는 물이 흥건하게 괸 바닥과 천장을 번갈아 올려다본다. 언제부턴가 헐거워지기 시작한 자신의 삶의 방직시스템. 정신의 누수현상을 보는 듯 여자는 가슴 한 편이 아리다. 여자는 누수의 근원을 찾아야했다. 지붕에 올라가, 그 새는 곳을 찾아 보수해야 했다. 여기서 허물어뜨리고 중단하지 않으려면. 어쨌든 삶은 계속될테니까. 폭우 속을 헤집고 낙상의 위험을 감수한 채 지붕에 올라가 구멍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문득 정을 맞은 듯 여자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다. 손바닥에 묵직한 느낌으로 남아있던 칼리의 감각이 하나의 조형으로 완성돼 검은새와 함께 빗속에서 춤을 춘다.
너울너울 불빛이 일렁이 듯 여자의 주변을 맴돌며 춤을 춘다. 그들의 춤사위사위마다 묻어나오는 말. 자, 춤을 추라고. 온 몸을 움직여 살아있음을 확인해보라구. 우리처럼 해 봐.
하지만 여자는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자신에게 삶의 지리멸렬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홍수로부터 인간을 구원한 이다나 노아처럼 자신을 이 지독한 지리멸렬함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이는 이다가 아닐까? 여자는 팔짱을 끼고 멍하니 서있다. 그러다 무엇엔가 쫓기듯 황급하게 화랑을 빠져나온다. 택시! 물을 가르며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우고 그 안으로 몸을 숨기는 그녀.
칼리와 검은새도 그녀와 함께 택시에 오른다. 그녀를 실은 택시는 수음을 하던 남자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나가고 여자는 폭우 속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세 마리 새의 환영을 본다.
<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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