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두 10대 청소년이 경찰차에 부딪혀 숨졌다. 이 사고를 빌미로 파리 외곽의 이민 2세 청소년들이 자동차에 불지르고 경찰에 폭력을 가하며 소요를 벌였다. 당시 사르코지(Sarkozy) 대통령은 중국 출장 중이었지만 매 시간 프랑수아 피용(Fillon) 총리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상황을 챙겼다. 이에 피용 총리가 소요 현장으로 달려가고 경찰 병력을 강화하면서 초반에 대응, 사건은 2005년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던 이민 2세들의 소요처럼 확산되지 않았다.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 사르코지 대통령은 교통사고로 숨진 10대들의 부모를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으로 불러 "사고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위로했다.
사르코지는 그보다 앞서 11월 초에는 일요일 아침인데 대통령 전용기를 띄워 아프리카 차드까지 단 하루 만에 출장을 다녀왔다. 차드에 억류돼 있던 프랑스 기자 3명과 스페인 여승무원 4명을 석방시켜 데려 오느라 왕복 12시간 넘는 비행기 여행에, 딱 2시간 차드에 머무는 '당일 출장'을 간 것이다. 밤늦게 돌아오면서 대통령 전용기를 스페인에 중간 기착시켜 스페인 여승무원들까지 고국 땅에 무사히 내려준 뒤 돌아왔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 시골에서는 47명의 폴란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계곡으로 떨어져 2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톨릭 성지를 다녀가던 40~70대의 폴란드 중·노년층이었다. 이 현장에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폴란드의 레흐 카진스키(Kazynski) 대통령도 달려왔다. 카진스키 대통령은 "가장 비극적 사고의 하나"라며 슬퍼했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사생활 문제로 인기가 추락했어도 지난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비결은 이런 데 있다. 대통령이 '대단히 높은 곳에서, 통 크게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고 국민들 문제라면 발벗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정은 총리에게 맡기고 외교에만 전념했던 전임 자크 시라크(Chirac)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정상들이 숱하게 프랑스를 방문해도 대부분 공항까지 안 나가고 파리 도심의 엘리제궁 현관에서 맞을 만큼 콧대 높은 시라크였다. 그런 그도 국민들 안전과 관계된 문제에선 달랐다. 지난 2005년 이라크에 157일간 억류됐던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기자가 살아 돌아왔을 때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프랑스 국민을, 70대의 노(老)대통령이 공항에 나가서 기다렸다가 포옹하는 장면은 죽을 고비 넘기며 객지에서 떠돌던 딸을 "집에 잘 왔다"며 아버지가 따뜻하게 반기는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그런 대통령을 보며 프랑스 국민들은 "내 나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린이 유괴 미수 사건에 안이하게 대응한 경찰을 질책하러 일산경찰서로 달려갔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믿음직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최근 잇따르는 어린이 유괴 사건의 심각성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모처럼 대통령에게 칭찬을 쏟아내고 감동하는 걸로 봐서는, 그동안 나라의 높은 분들이 말로만 국민들을 위한다고 했지, 실제로는 국민들 위에 군림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무늬만 민주화됐지, 아직도 전통적인 위계 질서가 강한 사회다. 지위의 높낮음에 따라 대우도 달라진다. 공무원도, 경찰도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에는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니면서, 보통 사람들의 읍소에는 늑장 대응한다는 게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으려면 당분간 대통령부터 앞장서고, 치안에 구멍 난 곳 없는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강경희 파리 특파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