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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와 집창촌 유리상자 속에 숨겨진 여성의 가치와 인권 |
성매매방지 특별법 시행은 소외되었던 여성들이 숨겨진 날개를 펼쳐 도약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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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자상가에 가기 위해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도심 한 복판 용산역 근처에 밀집된 집창촌을 지나쳐 상가로 들어선다. 가까운 곳에 고등학교, 초등학교가 있는데도,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그동안 버젓이 성매매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버스 속에 있는 사람들이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인형' 같은 여성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마치 무슨 가축이나 동물을 구경하듯) 동안 버스는 그 이상한 사각지대(?)를 슬그머니 통과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다시 전자상가로 향했는데, 성매매 방지 특별법을 시행한 결과로 용산역 일대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붉은 빛이 돌던 유리상자 속은 불이 꺼져 있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재건축 공사가 한창인 용산역 주변은 변함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리상자, 그 작은 세계에 갇혀 날개를 접고 살아가는 여성을 볼 때, 몇 년 전 커다란 사진으로 만났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떠올랐다. 한 컷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기억에 남아있는 아프간 여성의 가슴아픈 현실이었다.
아이를 안은 채 서 있는 여인의 얼굴은 마치 두꺼운 자루와도 같은 '부르카'로 가려져 있었다. 아니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이 부르카로 뒤덮혀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모습이었다. 검게 때가 낀 부르카에 파리가 들러붙어 있는데도, 그 여인은 파리를 쫓을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얼굴이 가려져 있어 도무지 그 여인의 마음과 표정을 읽을 수도 없었다. 사각형 유리상자 속에서 행복하지 못한 표정으로 밖을 향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면서 내가 군대 영창에 갇혀 있을 때 경험했던 한 사건이 생각났다. 어느 날은 훈련병들이 단체로 영창 견학을 온다면서, 감시병들이 철창 속에 있는 우리들 모두 벽을 향해 돌아앉으라고 했다. 그 많은 훈련병들이 한 사람씩 우리를 훑어보며 빙 돌아서 지나갈 때까지, 나는 마치 무슨 도를 닦는 사람처럼 가부좌 자세로 앉아 침묵하며 호흡조절을 했다. 내가 마치 구경거리로 동물원에 갇힌 야수가 된 것 같은 기분, 직설적인 표현으로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런데, 더 씁쓸한 것은 신병교육대 훈련병 시절, 나도 동기들 속에 섞여 같은 방식으로 영창 견학을 했었다는 거다. 그때 나는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저들이 갇혀서 어찌 지내든 말든, 고충이나 애로사항이 무엇이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그냥 빨리 지겨운 훈련 과정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했을 뿐이다. 다른 훈련병들도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부르카' 속에 숨어 답답하고 무거운 옷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아프간 여성과 유리 상자 속에서 삶의 무게를 지고, 그 세계를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여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축처럼 거래되는 아프간의 10대 소녀들과 성매매의 도구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하는 이 땅의 일부 청소년들, 그리고 북한을 탈출해 변방을 떠도는 북한 이탈 여성들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제 겨우 32년을 살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종합해 보면 이 땅은 그야말로 성에 중독된 세상, 음란 중독의 지수가 병적인 상태를 넘은 세계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람 사는 게 그렇고 그렇지 않느냐면서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육체의 쾌락에 빠져 동물적 본능과 욕구를 채우며 즐기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거다. 그러나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면서 악순환은 계속된다. 음란이라는 괴물은 너와 내 안에 점점 더 팽창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착취하는 자나 착취당하는 사람이나 말이 없다. 오죽하면 목자의 탈을 쓰고, 기묘한 교리를 창조해 성을 종교적으로 이용해 착취하는 파렴치한 인물들이 나타날까?
도대체 이 모든 악순환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어느 특정한 집단이라기보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인간 내부가 그 진원지일 것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포장만 그럴듯한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근사한 표정들이지만, 마치 오리가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 물밑 작업이 성행한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대중매체들은 성적 자극을 부채질한다. 이런 세태 속에서 과연 건강한 가정이 맺어지고 자랄 수 있겠는가? 다들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성(性)이라는 귀한 선물이 가정이라는 그릇 속에, 사랑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담길 수나 있겠는가? 건강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의 모델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기 위한 대안 찾기에 집중하지 않을 때, 시청자들은 병든 가정, 병든 관계들을 보고 듣기를 반복하면서 학습하게 한다. 아니 학습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삶에 적용해 버린다.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종이신문이든 그동안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컨텐츠, 프로그램 제작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것은 아닌가?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 좋은 어머니가 되는 법, 행복하게 가정을 꾸려 가는 법을 좀더 부지런히 알려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천도교, ... 우리나라 종교인들을 다 합치면 그 수가 얼마나 될까? 종교인들의 수는 증가하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혼탁한지 알 수 없다. 종교는 하나의 취미, 악세사리에 불과한가? 아니면 종교적인 절차와 형식들은 단지 죄의식을 줄여주는, 눌려있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돕는 일회적인 도구일 뿐인가? 이 종교, 저 종교 내가 옳다고 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카드 빚을 내어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외적인 영역 확장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삶으로, 도덕적 영적 각성으로 본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젠 정말 됐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 도가 지나치다. 마침표를 찍을 때도 되었다. 나와 너, 우리 안에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괴물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자원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때가 아니다.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모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문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를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러한 일에 투자하는 선한 부자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그들의 사업이 세계 속으로 번창하길 기도한다. 얼마든지 건강한 문화 속에서 호흡하고 건전하게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은밀한 곳에 숨어서 타락한 본능을 만족시키는 대신 잠든 감성과 영성을 깨우고 가능성에 투자하고 계발한다면, 누구든지 다른 차원의 행복을 만들어 공유하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은 업주들이나 고용된 여성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기회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으며 의미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만불 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먼저 행할 작업이 도덕적, 윤리적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되라는 요구가 아니다. 도덕적 영적 각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경제적 부흥과 부유함은 한 사람의 인격과 삶과 영혼에 도리어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트는 새벽, 여명은 감나무에서 홍시가 입 속으로 툭 떨어지듯 그냥 오지 않는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삶을 향한 간절한 소원과 열망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사회 적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 위해 번데기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게다. 자신을 억압하는 굴레, 부르카를 벗어 던지고, 유리 상자도 부숴 던지고 튀어 나와야 한다. 그 속에서 탈출한 모든 이들이 자신 안에 숨겨진 날개를 발견해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도약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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