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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술 찾아 3만리"…'달인' 한창현 박사 [과학동네 사람들]3년간 전국 누비며 직접 침 맞아…40여개 기술 수집 | ||||||||
한창현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상상만으로도 오만상이 찌푸려지는 장면들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생생하게 설명했다. 중완(中脘:위가 있는 자리. 배꼽 위에서 십여센티미터 떨어진 곳) 부위에 장침(長針)을 소위 '노젓기 침법'으로 맞은 얘기며, 온 몸에 불을 붙이는 화침(火針) 요법을 받은 얘기며 기행(奇行)에 가까운 경험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얼핏 TV 개그프로그램의 '달인'이 생각났지만, 다행히 얼토당토않은 합성사진을 들이대며 "안 맞아 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한 연구원임이 분명한 사진을 보여주고 "화침의 경우 실제 맞아보니 불이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가운 성질을 이용한다"며 "몸속의 독소를 기화시키는 작용을 한다지만 솔직히 비주얼 효과를 노린 듯 하다"는 분석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의학연에 3년간 전국을 누비며 한국침구치료기술을 수집한 연구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소문의 주인공은 한창현 연구원. 그는 한의학연의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사업(이하 침구 프로젝트)'의 일환인 '한국침구치료기술 DB구축' 연구를 위해 2005년부터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전래돼 내려오고 있는 각종 침구기술이나 방법 등을 수집, 연구하고 있다. 침·뜸 요법을 직접 받아 몸에 영구 흉터도 생겼고, 침술 수집을 위해 북한까지 두 번 다녀와 주변에서 "국정원에서 나왔냐"는 농담도 듣고 있는 한창현 연구원에게 유별나고 의미 있는 연구과정을 들어봤다. ◆입원(入院)과 동시 탐문 시작…문전박대에 꾸중듣기 일쑤 한창현 연구원은 한의학연에 입원(入院)해 침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범상치 않다. 대구한의대 출신인 한 연구원은 애초에 대전대 한의학과 원전학회의 조교를 하려고 대전을 방문했다. 그 때 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한의학연을 발견했고, 한의학 관련 연구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그가 모교 교수에게 문의했다가 바로 추천을 '당했다'. 침구 프로젝트의 책임자이던 최선미 한의학연 의료연구부장이 각 대학을 다니며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인재를 찾고 있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 초기의 한의대학교 커리큘럼은 약에 치우쳐 있었고, 1세대 침구시술인들 중에는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당시만 해도 국내의 침구 치료기술은 제대로 실태조사와 증례보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침구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인 한국침법 브랜드화와 침술 교육 아이템, 기술 소스 개발을 위해선 국내의 우수한 침구 치료 기술의 수집·발굴이 선결 과제였다. 입원과 동시에 "사라져 가는 한국의 침구치료기술을 발굴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게 된 한 연구원은 본인 표현대로 '신들린 듯' 탐방조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삼고초려도 마다않고 전국을 누빈지 3년. 과제책임자였던 최선미 박사조차 "불가능 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침구기술 수집은 40여건이 완료됐다. 거머리요법·황제침법·중완침법·주행침법·인산뜸요법·금사주입법 등 재야에 묻혀있는 침법들이 자료화됐고 실제 임상시술 장면까지 촬영해 연구·교육 자료로 쓸 수 있게 됐다. 또 90세를 넘긴 노(老)침술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통으로 일컬어지는 사암침에 대한 조명도 할 수 있었고, 무허가 침술사들에게서 조선시대 치료요법 계승에 대한 실마리도 찾을 수 있었다. 만주에서 조선족이 쓰던 걸 배운 침술사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1세대 침술사들의 요법 자료화는 침법 발굴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태권도선수, 기계공학도 등 다양한 사람 만나…"학문적 판단 위해 노력" 한 연구원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독특한 입문 동기와 이력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20대에 산에서 일주일을 굶었더니 웬 할아버지가 나타나 '너는 의술을 펼쳐야 한다'고 해서 침술을 배웠다"는 89세 침술사도 만났고, 침법의 특이점은 없지만 굉장한 '기(氣)'를 이용해 '만병통치'에 가까운 치료율을 자랑하는 태권도 선수 출신 침술사도 알게 됐다. 유명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해 이를 접목시킨 고학력 침술사도 있는 반면,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시아버지에게 어깨 너머로 침술을 배운 평범한 주부도 있었다. 따로 배운 것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아서 침을 시술한다는 맹인 침술사에게 "침질 배우지 마, 신경 많이 써서 빨리 늙어"라는 호통을 듣기도 했다.
한 연구원은 "절대 침술사들을 적대해서도 안 되고, 신봉해서도 안 된다"며 "단지 '어떤 질환에 특정 혈자리를 이용해 치료했더니 환자들이 이만큼 좋아지더라'하는 증례 수집을 통해 학문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조사 과정을 전했다. 또 그들 중에는 간혹 효과가 과대 포장됐거나 이론적 근거가 빈약한 침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의료기술도 임상에서 내려온 문화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도 침을 놓는 문화의 변화와 진행 과정을 배울 수 있다"며 의의를 설명했다. ◆"의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긍휼하는 마음'…건강한 사회 만들고파" 한의사 출신인 한 연구원에게 혹시 효과 좋은 치료기술은 따로 전수 받고 싶지 않았는지 묻자 호탕하게 웃으며 본인은 "재물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분들(침술사들)은 사람을 많이 상대하고 관찰해서 마음을 읽는 데는 도가 텄다"며 "기술 배워서 '내가 써 먹겠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침술을 공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변에서는 상대에 따라 다양한 접근법과 대화법으로 다가가는 한 연구원의 타고난 사교성과 넉살 덕에 어려운 연구가 진행 가능했다고 보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의학 연구만이 목적이었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의료인들을 만난 그에게 명의(名醫)의 조건도 물었다. 그는 "이론과 기술 못지않게 기(氣)적인 파워도 중요하며, 무엇보다 환자를 긍휼하는 마음이 있어야 '천의(天醫:하늘에서 내린 의사)'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답했다. '긍휼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한 연구원의 목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전공인 '기공학(氣功學)'을 심층 연구하고, 한의학 과학화와 한의학적 주제가 스며든 복지정책 수립 등에 일조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면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몸과 마음, 정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터뷰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직접 시술을 다 받은 걸까. "사실 저도 그분들(침술사들) 못지않게 간을 잘 봅니다. '육감(六感)'이라고 하죠? 직감도 뛰어나고, 기(氣)를 잘 느끼는 편입니다. 말로 듣거나 자료를 보는 것보다 일단 한 번 (침을) 맞아보면 실력이나 효과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죠." 역시 그는 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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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넷 정윤하 기자> yhjeong@hellodd.com | ||||||||
2008년 0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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