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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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수발의 사회학 2008/10/02 15:17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0. 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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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수발의 사회학

인천시에서 2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한 병원장의 얘기다. 근래 자신의 병원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 암(癌) 수술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예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식들한테 "아버님·어머님이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대번 "우리나라에서 암 수술을 어디가 제일 잘해요? 아는 의사 있으면 원장님이 소개시켜 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응이 사뭇 다르다고 한다. 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부모님은 잠깐 밖에 나가 계시라고 한 후 "이 병원에서도 암 수술이 됩니까?"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70세 이상 노인 환자의 수술 건수가 부쩍 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 말을 듣고 서울의 대형 병원 몇 군데에 70세 이상 노인 수술 실적을 알아봤더니 그 비율이 지방 병원들보다 높지 않고 되레 낮았다. 환자 나이가 고령일수록 수술 난이도가 높아지는 법이어서 규모를 갖춘 큰 병원을 찾기 마련인데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 온다는 유명 병원치고는 그 비율이 낮았다.

환자들을 서울의 대형 병원에 뺏긴다고 불만인 지방의 병원장들에게 "주로 어떤 환자들이 서울로 가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경제권을 쥐고 있는 가장들, 재산을 제법 모아놓은 일부 노년과 함께 '중병에 걸린 소아 환자들'이 단연 많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전국의 소아 암(癌) 환자 80~90%가 서울의 몇몇 대형 병원에 몰려 있다. 부모들은 자식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을 제쳐두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들은 대형 병원 근방에 조그만 월세 방을 얻어 놓고 치료가 끝나는 1~2년간 아이와 함께 머문다. 엄마는 서울에, 아빠는 지방에 따로 사는 '자식 병수발 기러기'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요즘은 서울과 지방의 의료 수준에 별 차이가 없다고 해도 아이의 부모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한 지역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병원장이 고급스러운 소아병원을 짓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저(低)출산 때문에 기존의 소아과들도 환자가 없어 울상인데 그게 되겠냐고 충고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소아병원을 놀이공원처럼 깔끔하게 지어놓자, 일반 의원보다 2배 가량 비싼 진료비를 내면서도 멀리 일산이나 인천에서도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요즘 노인요양 의료 서비스나 치매 관리 서비스를 더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어르신들 무료 독감 백신 접종에는 매년 엄청난 관심이 쏟아진다. 다들 정부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사업들이다. 반면 소아 백신 접종 사업이나 소아 의료 서비스 확대 목소리는 작게 들린다. 아이들에 관한 한, 부모들이 알아서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어르신 병수발은 절약형으로 바뀌고, 다들 정부가 나서서 이 부분을 잘 해결해주길 바란다. 의료 문제에서 노인은 점점 공적(公的) 영역, 소아는 사적(私的) 영역으로 나뉘고 있는 셈이다. 어르신들이 이런 얘기 들으면 "세상 참 고약해졌다"고 혀를 찰지 모르겠다 

불황으로 의료기관 이용이 줄어들어 올해 건강보험재정이 2조원 정도 남을 거라고 한다. 그 돈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병수발의 사회학을 보면 답이 나온다.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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