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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이력서의 차이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0. 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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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이력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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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미국으로 배달된 한국의 '국회수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18대 국회의원 299명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는 이 수첩엔 각 의원들의 출생연도와 출신 대학이 맨 앞에 기록돼 있다. 누구나 알 만한 명문고를 졸업한 일부 선량(選良)들은 7줄짜리 자기 소개란에 출신 고등학교 이름까지 집어넣었다. '○○중·고'라는 약칭으로 중학교 이름까지 거론한 의원도 있었다.

    박사학위를 가진 한나라당 K의원은 자신의 이력 중 80%를 출신 학교로 채웠다. K의원의 이력 중 학력이 아닌 것은 '○○고시 합격'과 기업체 대표 경력 두 가지뿐이었다. 의원들이 사회에서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보다 20년, 30년 전에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가 부각되는 관행은 여전했다.

    국회 사무처가 발간한 국회 수첩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학력과 과거 중심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기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Y고 인맥 부상, K대 출신 중용' 등의 기사가 종종 회자된다.

    이에 비해 학력과 관련한 미국의 문화는 정반대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가면 연사(演士)에 대한 한 장짜리 소개서가 배포된다. 기자는 숱한 행사를 취재하면서 이들을 소개하는 자료에 수십 년 전에 졸업한 대학이 먼저 나오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출신 고교가 소개된 자료는 물론 없었다.

    지난 7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강연한 크리스토퍼 힐(Hill) 국무부 차관보의 이력서에서 현직 다음에 언급된 것은 주한 미국대사 경력이다. 이어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에 임명됐다는 사실이 나오고 폴란드, 마케도니아 대사를 역임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그가 졸업한 메인 주(州)의 보드앵 대학은 맨 마지막에 언급돼 있었다. 가장 최근의 경력에서 시작, 역순(逆順)으로 기술된 것이다.

    출신 대학이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한반도 전문가들의 모임인 '코리아 클럽'에서 강연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Straub) 전 국무부 한국과장의 이력서는 "2006년 국무부에서 30년간의 경력을 쌓은 후 퇴직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한국식으로 스트라우브 전 과장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궁금해서 그의 이력서를 찬찬히 살폈지만 끝내 출신 대학을 찾지 못했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이력서도 가장 최근의 경력에서 시작해서 학력이 마지막에 언급되는 것이 관행이다. 이는 수십 년 전에 어떤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한국보다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도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어떤 사회경험을 쌓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실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과거에 자신이 나온 학교에 기대지 않고 최신(最新)의 최고(最高) 경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단지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인맥이 형성돼 특혜가 베풀어질 확률은 높지 않다. 한국도 최근에 쌓은 경력이 중시되고 과거의 학력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될 때 선진국에 더 근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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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하원·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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