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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파탄주의' 이혼 판결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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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주의' 이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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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 관료직에서 물러난 A씨는 얼마 전 옛 애인과 만나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30년 전 '배경'을 보고 결혼했던 아내와는 애정이 없었다. A씨는 별거에 들어간 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탄 아내는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재벌가 사위 B씨는 바람둥이로 소문났다. 재산을 노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일부러 난봉을 피운다. 아내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려 이혼에 합의해주지 않고 있다.

    ▶ 이런 경우 A씨나 B씨가 이혼 요구 소송을 내면? 현행 민법이나 대법원 판례로는 이길 수 없다. 혼인을 파경에 빠뜨린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게 돼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가정 파탄 책임자가 이혼까지 요구하면 상대방이 이중의 고통을 당한다는 점을 들어 책임 없는 배우자의 이혼 요구만 받아들이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법률 용어로는 '유책(有責)주의'라 한다.

    ▶ 유책주의는 세계에 유례가 드문 이혼 시스템이다. 많은 나라들이 '책임에 관계없이 결혼이 파탄에 빠진 경우' 이혼을 허가해주고 있다. 이혼 사유를 폭넓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파탄(破綻)주의'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영국은 벌써 1969년에 유책주의를 버렸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민법체계와 혼인제도를 갖고 있지만 이혼만큼은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 우리 법원에서도 파탄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그제 종교문제로 아내와 별거하게 된 30대 남자의 이혼 소송에서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이 났다"며 이혼을 허가했다. 불륜이나 폭력처럼 파탄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낸 소송에서도 이혼을 허가해주는 판결이 1·2심에서 잇따르고 있다.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판에도 '파탄주의로 가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 파탄주의를 옹호하는 판사들은 "국가가 '죽어버린 혼인'에 호흡기를 달아놓고 '살아나라'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한다. 과거 남편에게 쫓겨나는 아내를 보호하려고 만든 유책주의가 지금 '여성 상위'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다 보면 적대감만 커져 양육을 서로 떠미는 등 자녀에게 피해가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파렴치한 파탄 책임을 지닌 배우자가 새로운 판결 경향을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재판부가 사례마다 세심히 살펴야 할 것 같다. 풍속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어도 지킬 것은 지켜가는 이혼재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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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홍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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