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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명 목숨 앗아간 '킬링필드' 역사적 재판 오늘 개정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2. 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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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명 목숨 앗아간 '킬링필드' 역사적 재판 오늘 개정

뉴시스 | 기사입력 2009.02.17 10:12

 

프놈펜(캄보디아)=로이터/뉴시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흉악스러운 일을 저지르게 했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를 죽였는지, 왜 고문한 건지 묻고 싶다."

악명높은 투올슬렝 감옥에 투옥된 1만6000명의 죄수 가운데 살아남은 14명 중 한 명인 첨만(78)은 17일 드디어 자신을 끔찍하게 고문했던 인물이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내가 체인을 움직이는 소리라도 내면 한번에 200번이 넘게 전깃줄로 매를 맞아야 했다. 그들은 내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아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았다"며 "S-21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며 고통스런 과거를 떠올렸다.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킬링필드'로 알려진 캄보디아 대학살이 실시된 지 30년만인 17일, 드디어 크메르루주 폴 포트 정권에 대한 역사적인 재판이 시작된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2006년 7월 합의에 따라 국제재판소를 구성해 지난 2년6개월여 동안 5명의 피의자를 체포해 수감했으며, 이번 재판은 당시 S-21로 불리던 악명높은 투올슬렝 감옥의 교도소장이었던 카잉 구엑 에아브(66), 일명 '더치'를 심판대에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뒤 이어 폴 포트의 오른팔로 '브라더 넘버 2'로 불리던 누온 체아(82), 국가주석이던 키우 삼판(77), 외무장관을 맡았던 이엥 사리(83)와 폴 포트의 동생이자 사회장관이었던 그의 부인 이엥 티리트(76) 등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역사의 어두운 그늘, '킬링필드'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 캄보디아는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 장군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1967년에 크메르루즈를 결성한 폴 포트는 서방세력에 억압받는 현실에 분노, 농촌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세력 확장을 통해 1975년 4월17일 마침내 론놀 정권을 무너뜨린다,

'캄보디아의 내전을 종식시켜줄 것'이라 희망을 품은 민중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폴 포트는 수도 프놈펜에 입성했다.

그러나 불과 수 시간 후, 악몽은 시작됐다.
폴 포트는 '노동자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회실험을 감행했다. 수도 프놈펜의 주민 200만~250만 명은 이주 통보를 받은 지 3일만에 모두 쫓겨나 시골의 집단농장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화폐 사용은 금지되고 은행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심지어 자동차들도 모두 프놈펜 공항에 폐기 처분, 모든 자본주의의 상징은 철저하게 금지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안경 쓴 사람, 손이 부드러운 사람까지 모두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부르주아'로 간주, 잔혹한 고문 끝에 처형했다. 1975~1979년까지 실시된 실시된 '킬링필드' 학살로 170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 크메르루주는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반군과 베트남군에 의해 축출됐지만, 폴 포트는 밀림에 몸을 숨긴 채 20여년 간 저항하다 1998년 사망했다.

◇ 재판 순조롭게 진행될까
비록 킬링필드의 주범인 폴 포트는 이미 숨지고 나머지 잔당들만이 법정에 서게 되지만,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킬링필드' 학살을 주도하고도 이날까지 단 한 차례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던 이들에게 처음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체포된 이들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다 현 캄보디아 정권 역시 크메르루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죄를 인정한 에아브 외 나머지 4명은 지금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또 재판정 내 캄보디아 관계자들 간 발생한 부정부패, 수감 중인 5명 외 다른 6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둘러싼 외국인 판사들과 캄보디아 출신 판사들 간 알력 등으로 인해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재판이 상당히 제한적으로 진행, 상징적인 의미에 그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캄보디아의 현 훈센 총리와 고위 간부들의 상당수가 크메르루즈 정권의 출신이라는 점 등도 이번 재판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인권센터가 최근 캄보디아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85%의 응답자들이 이번 국제재판에 대해 "조금 알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7년부터 크메르루즈 학살과 관련,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캄보디아 역사연구소의 욕 창 소장은 이번 재판은 크메르루즈 정권 붕괴 이후의 세대들에게 어두운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또 이번 재판은 범죄를 저지르면 30년 후에라도 정의의 심판대에 서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정옥주기자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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