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4_외국이야기

미모의 프랑스 장관이 기모노 입은 까닭은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3. 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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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프랑스 장관이 기모노 입은 까닭은  

 

 

유럽 출장길에 프랑스 시사주간지 '파리 마치'를 샀다. '파리 마치'는 사진을 큼직하게 쓰고,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사적인 얘깃거리도 쏠쏠하게 담아내 프랑스 중·상류층들도 즐겨 보는 잡지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얼마 전 한국에서 인터뷰한 프랑스 여성 장관이 나오기에 반가운 마음에 눈길이 갔다. 기사의 주인공은 지난달 17~19일 한국에 왔던 나탈리 코쉬스코 모리제(Kosciusko-Morizet·35) 프랑스 미래기획·디지털경제개발 담당 국무장관이었다.

막상 그 기사를 보고는 입맛이 씁쓸해졌다. 4쪽에 달하는 기사 중에 첫 두 페이지는 모리제 장관이 도쿄대 로봇공학연구소에서 일본 연구원과 환하게 웃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그 다음에는 한 면 가득, 모리제 장관이 하코네 온천에서 다도(茶道)를 체험하기 위해 기모노를 차려입은 사진이 실렸다. 하코네 온천은 예전에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다녀간 곳이라는 사진 설명도 붙어 있었다.

"아, 한국도 왔었는데…."

내 입에서 이런 안타까움이 터져 나온 건, 당시 모리제 장관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들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삼성전자·SK텔레콤 등을 둘러보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고, 그 다음 일본에 갔다. 기사는 파리 마치 기자가 일본에 특파(特派)돼 쓴 내용들이었다. 기사 첫머리에 한 줄, '2월 17~22일, 장관이 하이테크의 선구자인 한국과 일본에 날아갔다'는 표현, 그리고 기사 중간에 장관이 짧게 한국을 언급한 대목이 한국과 관련해서는 전부였다. 멋진 사진도, '전통과 현대의 매력' 같은 미사여구도 몽땅 일본 몫이었다. 나라 이미지를 드높이는 칭찬 일색의 그 기사에서 한국은 밀린 것이다.

유명인들 얘기를 빼놓지 않는 프랑스 잡지에서 모리제 장관의 해외 일정을 취재한 이유는 그만큼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73㎝의 늘씬한 키에,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고, 정치 명문가 출신이며, 사르코지 정부에서 발탁된 30대 여성 장관이요, 집권 여당에서는 우파의 신세대 기수로 꼽힌다.

게다가 프랑스의 엘리트 여성이 기모노 입고 활짝 웃는 걸 프랑스 잡지가 대문짝만하게 싣는다는 건, 프랑스에 퍼져 있는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행의 도시라는 파리에서도 친구나 애인 만나 서툰 젓가락질 하면서 값비싼 스시를 먹는 게 최신 유행이요, 문화로 콧대 높은 프랑스의 서점가에는 일본 망가(만화) 코너에 10대, 20대 프랑스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돈 모아 언젠가 일본 여행 가고 싶다는 젊은이들도 많다.

프랑스를 비롯, 멀리 유럽에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지만,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 존재감이 너무 없다. 지난 정부 때는 국가이미지위원회, 최근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겠다고 나섰지만, 거창한 정부 구호나 자화자찬성 홍보로 될 일도 아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을 입히고, 먹이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특히 그 나라 유명인들에게 한국을 입히고, 먹이고, 느끼게 하면서 하코네 온천처럼, 외국 장관이나 유명인들이 왔을 때 빡빡한 일정에도 한국을 깊이 심어줄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있어야 한다. 또 그런 문화적 이미지가 그 나라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해외 미디어들과 친해질 홍보 전략도 더 치밀하게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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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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