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스크랩] 내 아버지 육신을 태우던 날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5. 2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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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말 돌아가셨던 아버지 시신이 이제사 의대생들 해부학 실습이 끝났나고 연락이 왔다.

내가 아버지 생전에 못한 도리가 너무나 한이 되어 나는 그를 장례끝나고 어느 의대 병원 냉동실로 이송될때 부터 계속 추적했다.

바보 같은 넘,  살아계실때 잘 하지..,   이렇게 속으로 자꾸 되 뇌이며.. 

 

그런데 시신기증한 사람이 많아선지 재작년말 돌아가신 아버지 시신을 작년에 학상덜의 실습을 못허고 올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곤 올초에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현재 시신 기증하신 분들이 많아 학상덜 실습계획에 의거  올해에도 아버지 시신에 대한 해부학 실습이 끝나지 않을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부탁했다. 올핸 꼭 아버지 시신을 해부학 실습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내가  빨리 아버지를 태워버릴수 있게 해달라고.

그랬더니 그는 알았다고 하더니,  6월중 해부학 실습 끝나기전에 내아버지를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5월 중순에 혹 궁금하여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했다. 우리 아버지 유골 언제 찾으러 가면 되냐고.

그랬더니 벌써 공문보냈는데 모르냐며 5.23(토) 13:20 에 태우기로 됬단다.

그래서 내가 '우씨, 왜 내게 연락안했냐고 했더니' 이미 발송했단다.  그제사 새삼 나는 내가 장남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태우던 날, 아침부터 나라가 어수선했다.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내 맘속에는 내 아버지 밖에 없었으니까.

그날 나의 계획대로 내아덜넘을 면회 외출시켜 아버지 화장터로 갔다.

(그넘은 그냥 컴퓨터에 의해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에서 다시 30사단 신병교육대를 거쳐 경기도 광탄의 포병부대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군생활동안 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전방에서 근무하기를 바랬는데 아마도 내어머니 혼이 그넘을 그리 배치되게 한 것 갔다. 그넘 부대는 어머니 산소에서 차로 30분 거리였으니,)

그래서 나는 그날 아내와 집을 나와 광탄에 있는 아덜넘을 면회외출시켜 데리고 나와 내아버지 화장하는 벽제로 가서 아버지를 태워서는 다시 납골묘를 할 어머니 산소가 있는 경기도 탄현에 있는 공원묘지로 왔다.

 

그런데, 아버지를 태우는 벽제 화장터에서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했다.

예정시간 보다 내가 10분이나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내아버지 육신은 태워지러 들어가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대학병원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화장터 여건상 시간은 당겨졌지만, 이미 형제분이 다 확인하고 들어갔는데요'

하길래, 화를 내다가 또다시 나는 장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좀더 일찍 왔으면 되는데 하면서.

 

그러다 드디어 태워진 아버지 뼈가 보았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의 눈물이 막 떨어지려는 순간, 내옆에 한 여자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녀는 여지껏 내가  알지 못했던 내아내의 모습이었다.

친형도 3재라고 아버지 태워지는 과정도 보지 않고 있는데, 그녀는 내게 자기는 49세 3재라 하여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더니 아버지 유골이 나와서 받으려 할때 내가 받으려 하자, 그렇게 어리게 보였던 외아덜넘이 '아버지 제가 할께요' 해서 감동을 받았다.

 

그후 아버지 유골은 화장터에서 나와 차에 있는 곳 까지는 내가 들고 왔고,  내가 운전하는 동안은 내아덜넘이 내아버지 유골을 안고 왔다.

탄현 공원묘지에 도착한 나는 바로 어머니 산소에 갔다.  '어머니, 37년이 지나, 이제 아버지를 당신품으로 모시고 왔다' 며 인사를 드렸다.

 

그리곤 내려와 어머니 산소를  7월초 길일에 파헤쳐 화장하여 그자리에 두분을 납골묘로 모시기 전 아버지 유골을 어머니 산소 관리소에 맡기고 왔다.

그러며 관리소에 맡겨지는 내아버지 유골을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손자 품에 오시니까 좋았죠."

 

그리고 아들을 귀대시키기전 부대앞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애엄마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언젠가 현이가 오면 주려고 준비했던 용돈을 주라'고 하며 그넘에게 용돈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헤어지기전에 나는 그넘을 안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 아버지 아들, 신군아, 너는 오늘 네가 태어나서 제일 큰일을 했단다."

 

출처 : 장훈고일사회
글쓴이 : 신 준 원글보기
메모 : 준이 아들이 벌써 군대를 갔구나. 완고하셨던 아버님도 이제 어머님과 편히 쉬실꺼야. 내 아들녀석도 한 1년 한국엘 보내서 고생 좀 시켜야 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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