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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드는 대통령, 역사에 묻힌 대통령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9. 17.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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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드는 대통령, 역사에 묻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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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가(政街)의 화제는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다. 지난 두달여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지난해 한때 20%대 초반까지 추락했던 지지율이 40%대에 올라섰다. 미국에서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 여부를 가르는 선이 40%다. '지지율 20% 대통령'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40% 이하로 떨어지면 정권에 적색신호가 켜진 것으로 해석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대통령의 성패(成敗)를 따지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취임 첫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그 시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대통령은 작년 여름 청와대 직원들에게 처칠의 성공 비결을 다룬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책을 돌렸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일대를 지켜봤다고도 한다. 그때 이 대통령이 속으로 되뇐 말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다짐이었을지 모른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말 '중도 실용' '친(親)서민' '사회 통합'으로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바꾸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전까지 대통령은 여권 안팎에서 "정치를 하라"는 말을 들어왔다. 현직 대통령에게 이런 주문이 나온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과거 대통령들에겐 "정치에서 손 떼고 국정에 전념하라"는 비난이 쏟아지곤 했다. 유독 이 대통령에게만은 '정치를 하라'고 했던 것은 대통령이 맞닥뜨린 난제(難題)와 리더십 위기의 상당 부분이 '대통령 정치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대통령도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와 내각의 정무라인을 대폭 강화했다. 범(汎)야권으로 분류돼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그가 표방한 중도 실용이나 친서민 정책은 정치적 중간층을 겨냥한 포석이다. 민생 현장을 돌며 즉석에서 민원을 처리해주기도 했다.

    이런 변화의 효과가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취임 첫해의 MB 프레임(틀)'에 맞춰져 있던 정치권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야(與野)는 물론 각 당의 소(小)정파들이 다른 모색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길거리 투쟁에 매달려온 민주당이 국회로 돌아왔고, 당내에선 "대통령에게 변화를 선수(先手)당했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때 친박(친박근혜)·월박(친이명박에서 친박으로 넘어간 경우) 같은 이야기로 시끄럽던 한나라당 내부도 조용해졌다. 한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던 대통령이 어느덧 정치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제 관심은 '이명박 정치'가 어디를 향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정치의 선진화 없이 나라의 선진화는 없다"며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주문했다. 이 두 과제는 개헌(改憲)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 대통령도 '제한적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치의 틀을 바꾸는 데 필요한 외부 조건은 나쁘지 않다. 국민들이 정치를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퇴임 후 정치'에 대한 욕심이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훗날 '친이(친이명박)'라는 간판으로 정치를 이어갈 계파가 존속할지도 의문스럽다. 메신저(대통령) 때문에 정치의 틀을 바꾸자는 주장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위험이 적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성 정치구조를 뜯어고치려면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 자산(資産)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도박이다. 안전한 선택은 정치 개혁을 내걸되 정치적 자산은 국정의 다른 분야에 쓰는 것이다. 정치말고도 남북·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대통령이 전력을 쏟아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통령이 정치를 이끌고 갈 동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미국 학자가 쓴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란 책을 꺼내 들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서울시장 시절 이 책에 짤막한 추천사도 썼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면 리더는 역사를 만드는 인물과 역사적 사건 속에 묻히는 인물로 나눌 수 있고, 진정한 리더십은 '틀을 바꾸는(transforming) 변혁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선자 시절의 의욕만 내세우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이 대통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치'가 또 한번의 고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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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두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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