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한국을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일본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11. 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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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일본
 


지난주 도쿄 출장길에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간부는 "일본 정치가 이제야 겨우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했다. 자민당의 50여년 장기집권이 무너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는 한국 정치를 '3류'라 하지만, 그래도 정권교체 경험만큼은 일본보다 11년 빨랐다. 이게 일본 눈엔 부러웠던 모양이다.


서점에서 펴본 극우 성향 시사지('SAPIO')엔 일본의 스포츠가 왜 한국에 밀리는지 '개탄'하는 특집이 실렸다. 몇몇 잡지는 김연아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고, 신문들은 일본 전자업계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대서특필한다. 정치·경제에서 스포츠까지, 일본은 내놓고 한국을 '라이벌'로 삼고 있었다.

 

10년 전쯤, 내가 도쿄 특파원 시절 보았던 TV 방송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일본 고교생들에게 지도를 주면서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찍어보라고 했다. 그 결과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한국의 위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심지어 아프리카 언저리를 짚는 학생까지 있었다.


일본 고교생의 지리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일본 사회는 오만한 경제대국이었고, 한국은 안중(眼中)에도 없었다. 평균적인 일본인이 가진 한국 이미지를 요약하면 '성수대교가 무너진 개도국' 정도 됐다. 일본 총리 부인이 한류 팬임을 자처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드나, 불과 몇년 전까지만도 우리 위상이 그랬다.


내 기억으로 일본이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일본이 아날로그 성공체험에 취해 있는 사이, 우리는 디지털 혁명에 성공적으로 올라탔다. 한류 붐이 있었고, IMF 사태 덕에 강해진 대기업들의 약진이 더해졌다. 그 짧은 기간에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붙었으니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렇다고 우쭐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성장 전략은 일본 하던 것을 그대로 쫓아가는 방식일 뿐이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일본의 돈과 기술을 들여오고 일본식 제도와 노하우를 베껴다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렇게 40여년을 열심히 뛴 결과 일본과의 격차를 가시권 안으로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일의 국력 경쟁은 게임의 룰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일본이 우리를 라이벌로 여기는 순간,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기존 방식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거대 일본이 정색하고 달려들 때 과연 이겨낼 역량이 되는가. 일본 '추격'은 성공했지만,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추월'의 전략이 있는가.


얼마 전 방한한 전신애 전(前) 미 노동부 차관보의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의 인재 정책을 오래 담당했던 그는 "한국의 '지적(知的) 에너지'가 일본을 능가했다"고 잘라 말했다(주간조선 인터뷰). "일본 젊은이가 어디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단연 한국의 젊은 세대다. 한국의 청년들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의 상위권을 휩쓸고, 비보이(브레이크댄스)·e스포츠·온라인게임에서 세계를 리드한다. 가수 '비'로 상징되는 한류 전사, 김연아·여자 골퍼들로 대표되는 스포츠 전사들은 일본의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과거의 일본은 실용적 혁신성으로 가득 찬 나라였다. 일본의 구(舊)세대는 컵라면과 워크맨과 가라오케를 창안해내며 세계의 이노베이션을 주도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일본의 젊은 세대는, 패기도 창의성도 그만 못하다. 차세대 인재 경쟁력은 분명 우리가 앞선다.


까마득하게 앞서가던 일본을 이 정도까지 따라잡은 것은 아버지 세대의 분투 덕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본 추월'을 이뤄내느냐는 이제 다음 세대의 몫이 됐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  -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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