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11월 2일] 유신 권력의 2인자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어느 시대나 권력의 2인자 지위는 간단한 자리가 아니다. 1인자의 후광을 배경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휘두르지만 그게 달콤한 독이 되어 자신과 1인자를 불행으로 이끄는 경우가 허다했다. 견제와 암투가 판치는 권력의 궁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음모와 술수에 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게 지나쳐 1인자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간 하루 아침에 제거되는 것이 2인자의 운명이다. 박정희 17년 치세 기간에도 많은 2인자가 절대권력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명멸했다.
■그제 85세로 유명을 달리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대표적이다. 유신 권력의 2인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말년은 불우하고 쓸쓸했다. 세상이 그를 은밀한 정치공작의 화신, 천문학적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은 탓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하는 불법과 비리 사건의 상당수는 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수장으로 재직할 때 일어났다. 박 전 대통령은 그에게 절대적 신임을 주어 유신체제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케 했지만, 바로 그 역할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후세의 부정적 평가에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건곤일척 대결이었던 7대 대선에서 DJ측은 사실상 승리했으나 부정선거 때문에 승패가 뒤집혔다고 주장했다. 이 선거를 총지휘한 곳이 이후락의 중앙정보부였다. DJ가 "박정희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고 말한 이유다. DJ 납치 사건은 이후락이'윤필용 사건'으로 흔들린 대통령의 신임을 만회하기 위해 저질렀다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은 노쇠했고 후계자는 이후락"이라는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의 말은 절대권력의 역린을 건드렸고 결국 이후락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후락은 1980년 봄 신군부의 권력형 부정축재비리 조사에서 193억 원 상당의 재산을 부정축재한 것으로 발표됐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2조원 대에 이른다. 신군부의 권력장악 명분을 구축하기 위한 조사였음을 감안하더라도 규모가 엄청나다. 그는 "떡을 주무르다 보면 떡고물이 묻는 것 아니냐"고 변명했다. 자녀의 해외 부동산이 5,000만 달러 규모라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역시 떡고물의 일부일 터이다. 고인이 권력의 2인자 시절 저지른 온갖 불법과 부정 의혹에 대해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면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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