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스크랩] 친애하는 80518 카페식구 여러분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3. 14.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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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80518 카페식구 여러분,

 

흰돌 강희남 목사님을 생각하며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늘 그렇듯 출장뒤에 보고서도 작성하여야 하고. 또 다음 출장을 준비해야 하고. 무척 바쁘긴 합니다만. 지난 주말 돌아가신 강희남 목사님의 모습이 어른거려 일이 잘 잡히지 않네요. 잠시 그분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합니다.

 

1980년 5월 17일, 5.18의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가 금마공수 부대원에 살해된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토끼몰이 사냥꾼에 잡흰 산토끼처럼 잡혀. 보안대의 고문과 구타 그리고 헌병대 유치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카페 이곳 저곳에서 언급한바가 있습니다.

 

대학 1학년, 시국에 대해 알아야 얼마나 알것이며, 비분강개 우국충정의 민주열사의 열정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사자후를 토하던 그지역 출신 학생회 간부들은 사돈의 팔촌에 이웃사촌들이 보안대 졸개들이고 정보과 형사들이었습니다.

 

서울, 객지에서 전주로 유학온 대학 1학년생인 저는 무고하고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학원소요를 이르키려는 운동권의 괴수로 조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하나 나의 편이 되어, 나의 무고한 사정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두환이 국민화합차원에서 대사면을 실시하여 학교로 돌아왔던 저는 도망갔다 돌아온 학생회 간부며 소위 운동권의 괴수들과 비슷한 반열에 놓이고 때로는 중앙정보부의 끄나풀이라는 음해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내게 인생의 살만한 가치를 준 분들이 옆에 있어서 이런 억울하고 분통한 마음을 삭이며 지낼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그 시골학교를 입학했던 분들 중에는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팔고. 철도무선실에서 모르스 부호를 치던 철도고등학교 출신분들이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환경회사를 하시는 카톨릭경제인협회 회장을 지내신 박래준 사장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로 세계 나노물리학의 대가이며 한국 10대석학의 한분으로 불리우는 이영희 박사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이리역에서 기차표를 팔던 이영희 박사님은 2년일찍 전북대 물리학과를 들어가 전주의 남문교회를 통해 당시 전주고, 전북대 농대생으로 총학생회장이던 한상열 선배를 알게되고. 저와 박래준 형에게 소개를 하였답니다.

 

요즘도 가금 한국신문에 개량한복을 입고 흰수염을 보이며 등장하는 목사, 한상열 선배는 한신대 신학과로 진학하여 고백교회를 만들고 그곳에 우리들을 모이게 하였지요.

 

그덕에 유신반대로 10년 옥살이를 마치신 김제 난산교회의 흰돌 강희남 목사님을 접할수 있었답니다.

 

전북대를 다니던 내내 울적하고 답답하면 김제벌 중간쯤 위치한 작은 난산교회에 혼자 들러 마음을 풀고 오기도 하고. 사귀던 여자친구와 함께 데이트코스로 들르기도 하였답니다.

 

뵐때마다 해 맑은 웃음으로 반겨주시고 부담없는 담소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던 자상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국어교육과 여학생과 함께 찾아뵈었을때는 우리 국어는 한글전용으로 하여야 한다고 자세하게 그 이유와 내막을 설명하여 주셨답니다.

 

한겨레신문이 한글 전용신문이 되었던 이유에는 흰돌 강희남 목사님의 깊은 한글 사랑과 한글 연구가 바탕이 되었다는걸 아는 사람들이 드물어 아쉽기도 합니다.

 

강희남 목사님은 한신대 영문과를 나오시고 목사안수를 받기전까지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영어선생님이셨답니다. 제가 강희남 목사님을 뵐때마다 영어공부를 잘해야 좋은 책들을 많이 접할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미국유학을 갈수 있는 바탕을 일깨워 주셨답니다.

 

사실 강희남 목사님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그시절 친했던 전북대 출신들로는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인 이영희 박사,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인 노상우, 김천기 박사, 반도체학과 교수인 김재연 박사, 고분자공학과 교수인 이승희 박사등이 강희남 목사님의 그늘 은총을 입고 유학하여 박사를 받고 돌아가 한국사회의 교수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하여, 강희남 목사님의 지고 지순한 삶이 이들의 걸음 걸음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에 우려를 보낸걸 기억합니다.

 

그런 우려의 글을 제 불로그에 올려놓기도 했었구요. 아무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정권을 거쳐 전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조차 총칼로 찬탈한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의 손으로 뽑았습니다.

 

제 작은 소견으로는 죽으나 사나 임기가 끝날때까지는 이명박 정권에 따라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난 대선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투표한 분들은 그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그런 실수를 말아야 겠지요.

 

자신이 지도자가 될수는 없을지라도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줄 아는것 그것이 이제 한국인이 지녀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세월 한국사회와 떨어져 살아 제가 의견을 개진하기는 무리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강희남 목사님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북한 독재권력에 이용당하는 무조건적인 통일의지와 행동은 무조건 동의 할수 만은 없어 그분의 순결이 제 마음을 너무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런점에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합니다.

 

우리 80518 카페는 근자에 일어나는 일체의 정치적인 모습에 중도의 입장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절대 80518 카페가 정치투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합니다.

 

우리 80518 카페는 1980년 5월, 전두환의 집권 야욕에 의한 광주학살에 저항하고 민주질서를 지키고 바로 세우려했던 5.18 대동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80518 의 후예와 80518의 정신을 본받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많이 배울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합니다.

 

그 뜻을 10분 헤아리셔서 정치투쟁의 게시물을 삼가하여 주시고 '희망의 5월노래' 봉사단 장학회에 참여를 적극 권하는 바 입니다.

 

오늘 이후 정치투쟁성향의 카페로 부터 퍼나른 게시물들은 80518 카페 운영진에 의해 삭제될겁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2009년 6월 9일 오후 4시 20분 미국서부시간

 

80519 카페지기 노란장미 이상원 올림

출처 : 5.18 민주화운동 - 80518
글쓴이 : 黃薔(李尙遠)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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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薔(李尙遠)|등급변경|조회 68|추천 0|2009.06.10. 09:00http://cafe.daum.net/80518/eJk/205 

친애하는 80518 카페식구 여러분,

 

흰돌 강희남 목사님을 생각하며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늘 그렇듯 출장뒤에 보고서도 작성하여야 하고. 또 다음 출장을 준비해야 하고. 무척 바쁘긴 합니다만. 지난 주말 돌아가신 강희남 목사님의 모습이 어른거려 일이 잘 잡히지 않네요. 잠시 그분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합니다.

 

1980년 5월 17일, 5.18의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가 금마공수 부대원에 살해된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토끼몰이 사냥꾼에 잡흰 산토끼처럼 잡혀. 보안대의 고문과 구타 그리고 헌병대 유치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카페 이곳 저곳에서 언급한바가 있습니다.

 

대학 1학년, 시국에 대해 알아야 얼마나 알것이며, 비분강개 우국충정의 민주열사의 열정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사자후를 토하던 그지역 출신 학생회 간부들은 사돈의 팔촌에 이웃사촌들이 보안대 졸개들이고 정보과 형사들이었습니다.

 

서울, 객지에서 전주로 유학온 대학 1학년생인 저는 무고하고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학원소요를 이르키려는 운동권의 괴수로 조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하나 나의 편이 되어, 나의 무고한 사정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두환이 국민화합차원에서 대사면을 실시하여 학교로 돌아왔던 저는 도망갔다 돌아온 학생회 간부며 소위 운동권의 괴수들과 비슷한 반열에 놓이고 때로는 중앙정보부의 끄나풀이라는 음해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내게 인생의 살만한 가치를 준 분들이 옆에 있어서 이런 억울하고 분통한 마음을 삭이며 지낼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그 시골학교를 입학했던 분들 중에는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팔고. 철도무선실에서 모르스 부호를 치던 철도고등학교 출신분들이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환경회사를 하시는 카톨릭경제인협회 회장을 지내신 박래준 사장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로 세계 나노물리학의 대가이며 한국 10대석학의 한분으로 불리우는 이영희 박사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이리역에서 기차표를 팔던 이영희 박사님은 2년일찍 전북대 물리학과를 들어가 전주의 남문교회를 통해 당시 전주고, 전북대 농대생으로 총학생회장이던 한상열 선배를 알게되고. 저와 박래준 형에게 소개를 하였답니다.

 

요즘도 가금 한국신문에 개량한복을 입고 흰수염을 보이며 등장하는 목사, 한상열 선배는 한신대 신학과로 진학하여 고백교회를 만들고 그곳에 우리들을 모이게 하였지요.

 

그덕에 유신반대로 10년 옥살이를 마치신 김제 난산교회의 흰돌 강희남 목사님을 접할수 있었답니다.

 

전북대를 다니던 내내 울적하고 답답하면 김제벌 중간쯤 위치한 작은 난산교회에 혼자 들러 마음을 풀고 오기도 하고. 사귀던 여자친구와 함께 데이트코스로 들르기도 하였답니다.

 

뵐때마다 해 맑은 웃음으로 반겨주시고 부담없는 담소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던 자상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국어교육과 여학생과 함께 찾아뵈었을때는 우리 국어는 한글전용으로 하여야 한다고 자세하게 그 이유와 내막을 설명하여 주셨답니다.

 

한겨레신문이 한글 전용신문이 되었던 이유에는 흰돌 강희남 목사님의 깊은 한글 사랑과 한글 연구가 바탕이 되었다는걸 아는 사람들이 드물어 아쉽기도 합니다.

 

강희남 목사님은 한신대 영문과를 나오시고 목사안수를 받기전까지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영어선생님이셨답니다. 제가 강희남 목사님을 뵐때마다 영어공부를 잘해야 좋은 책들을 많이 접할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미국유학을 갈수 있는 바탕을 일깨워 주셨답니다.

 

사실 강희남 목사님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그시절 친했던 전북대 출신들로는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인 이영희 박사,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인 노상우, 김천기 박사, 반도체학과 교수인 김재연 박사, 고분자공학과 교수인 이승희 박사등이 강희남 목사님의 그늘 은총을 입고 유학하여 박사를 받고 돌아가 한국사회의 교수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하여, 강희남 목사님의 지고 지순한 삶이 이들의 걸음 걸음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에 우려를 보낸걸 기억합니다.

 

그런 우려의 글을 제 불로그에 올려놓기도 했었구요. 아무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정권을 거쳐 전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조차 총칼로 찬탈한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의 손으로 뽑았습니다.

 

제 작은 소견으로는 죽으나 사나 임기가 끝날때까지는 이명박 정권에 따라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난 대선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투표한 분들은 그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그런 실수를 말아야 겠지요.

 

자신이 지도자가 될수는 없을지라도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줄 아는것 그것이 이제 한국인이 지녀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세월 한국사회와 떨어져 살아 제가 의견을 개진하기는 무리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강희남 목사님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북한 독재권력에 이용당하는 무조건적인 통일의지와 행동은 무조건 동의 할수 만은 없어 그분의 순결이 제 마음을 너무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런점에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합니다.

 

우리 80518 카페는 근자에 일어나는 일체의 정치적인 모습에 중도의 입장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절대 80518 카페가 정치투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합니다.

 

우리 80518 카페는 1980년 5월, 전두환의 집권 야욕에 의한 광주학살에 저항하고 민주질서를 지키고 바로 세우려했던 5.18 대동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80518 의 후예와 80518의 정신을 본받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많이 배울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합니다.

 

그 뜻을 10분 헤아리셔서 정치투쟁의 게시물을 삼가하여 주시고 '희망의 5월노래' 봉사단 장학회에 참여를 적극 권하는 바 입니다.

 

오늘 이후 정치투쟁성향의 카페로 부터 퍼나른 게시물들은 80518 카페 운영진에 의해 삭제될겁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2009년 6월 9일 오후 4시 20분 미국서부시간

 

80519 카페지기 노란장미 이상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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