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다
미국인들의 시스템에 대한 집착은 유별스럽다.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느냐"하는 문제부터 따지고 든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강박증에 가까울 만큼 시스템에 집착한다.
국제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2000년 12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USS 콜(Cole)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 사건부터 2001년 9·11 테러, 넉 달 전에 발생한 민간 항공기 자살폭탄 테러 미수 사건까지 최근 10년 동안 미국을 겨냥한 크고 작은 테러 공격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미국 정부는 어김없이 시스템을 손질했다. 그러나 아무리 물 샐 틈 없이 보안망을 짜도 종종 허망하게 구멍이 뚫리곤 했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12월 25일 나이지리아 국적의 23세 청년 압둘무탈라브가 속옷에 고성능 폭발물질(PETN)을 숨긴 채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미국 디트로이트행(行) 비행기에 오른 사건이다.
이 사건은 폭발물이 제대로 터지지 않은 직후 승객과 승무원들이 범인을 제압하고 담요에 붙은 불을 끈 덕분에 테러 미수(未遂)로 끝났다. 그러나 278명을 태운 비행기가 또 한 번 테러의 희생물이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범인은 2년 전부터 미국 정부가 집중 관리해 온 55만명 테러용의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사건 발생 6개월 전에는 범인의 아버지가 "아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고 미국 정부에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이런 정보들이 관료 시스템의 어느 지점에선가 묻혀 버렸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 때부터 되풀이돼 온 '시스템 오류(誤謬)'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이번에도 대대적인 시스템 점검에 돌입했다. 이런 시스템 강박증을 가리켜 밑으로 굴러 떨어질 바위를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보다 완벽한 테러 방지 시스템을 향한 미국 정부의 노력이야말로 국민이 국가를 믿고 안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반면, 우리의 대형 참사(慘死) 대응은 미국과 정반대다. 대개의 경우 직접적인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관련자를 문책하는 선에서 서둘러 조사를 끝내곤 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사건까지 이런 임시방편으로 마무리해선 안 된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드러난 안보상 허점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천안함 사건을 조사중인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은 "(우리는) 침몰 원인 규명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군은 합참(合參) 소속 '전비태세검열단'을 통해 합참의 대응 태세를 점검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합참의 대응 체제는 안보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안보시스템 전반을 점검하는 일이다.
서해(西海)를 비롯한 우리 바다의 안전은 '천안함 이전(以前)과 이후(以後)'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 전직 국방장관은 "우리 군이 (북한 어뢰·기뢰를 실어나르는) 북한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탐지해내는 비율이 50%가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설령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 무관한 것으로 판명된다 해도, 이번 사건을 지켜본 북한은 어디가 취약지점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비책 없이 어떻게 6만8000여 해군 장병(將兵)들에게 바다로 나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전후해 북한 쪽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고 했다. 북한이 천안함을 몰래 공격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흔적을 남겼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늘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란 말인가. 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에 이르는 과정의 문제는 없었는지, 국가 비상사태에 맞춰 설계된 위기대응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분석과 진단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안보시스템 개선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미국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에 맡기는 게 정답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돌파해야 우리 안보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천안함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 박두식·논설위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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