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5.18의 화려한 부활 -‘화려한 휴가’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7. 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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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화려한 부활 -‘화려한 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건 아닌데, 라는 의문이 자꾸만 가시처럼 돋아나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없었다. 이성에 감춰진 인간의 잔혹함이 어떤 것인지, 죽음에 직면해서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보여준 ‘그날’의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그 자체에 얼마간 회의를 지니고 있었던 나는 김지훈 감독의 욕심에 어지럼증을 느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든 장르의 예술작품에 있어서 사실을 뛰어넘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그 진실을 분칠하고, 과장시키고, 친절하게도 꼼꼼한 해설과 더불어 재생산한다 해도 그 진실이 갖는 감동이나 아픔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는지. 화려한 휴가는 결코 그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물며 이십대의 첫 봄을 그 현장에서 시작했던 나로서야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만든 ‘화려한 휴가’에 대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감독이 어떤 색깔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제발, 내 회의가 기우였기를 바랬다. 엔딩 장면에 이르러서는 먹먹한 가슴으로 손바닥 아프게 손뼉을 치며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고에 치하를 하고 싶었다. 헌데 결과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버린 듯 허전하기만 했다.

 

 철저히 정치색을 배제하겠다던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아주 평화로운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곱상한 진우(이준기 분)는 평생을 자신을 위해 헌신한 형, 민우(김상경 분)가 모는 택시 안에서 그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누구보다도 더 행복해 한다. 아무도 곧 다가올 비극을 눈치 채지 못한다. 하늘을 무리지어 나는 헬리콥터와 줄지어 이동하는 군용트럭도 남도의 넉넉한 풍경 속에서는 하나의 그림이 될 뿐이다. 다만 지천으로 퍼져있는 봄빛만이 수선스러울 뿐. 그리고 몇 번의 장면이 바뀌고, 민우와 신애(이요원 분)는 극장에서 여느 연인들처럼 영화를 관람한다.

 

이주일이 주연한 코미디 영화. 왜 하필 코미디 영화였을까. 이주일의 몸짓에 따라 순박하게 웃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차라리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이미 불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관 밖에서는 계엄군의 인간사냥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극장 안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영화를 보다 밖으로 쫓겨나오는데, 아뿔싸, 세상은 그 사이에 아비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쫓겨 가는 이들의 아름답고 설레는 청춘은 그걸로 끝이었다.

 

 영화는, 신애와 민우의 연애, 민우와 진우의 형제사랑과, 시민군 간의 끈끈한 인간애가 서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 이야기 속에 정치적 구호는 없다. 왜?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가, 아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친절한 설명도 없다. 다만 감독은 “인간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로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들에게 쫓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간간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핏빛 장면들은, 몸서리 쳐지는 잔혹한 영상들은 작위적인 전라도 사투리 억양의 배우들의 코믹한 몸짓과 표정들 속에 빛을 잃을 뿐이다. 80년 5월 그날의 엄청난 비극은, 처참한 죽음은, 코믹한 몸짓과 표정들 속에서 그 무거움이 휘발해 버린다.

 

 고등학생인 진우가 교사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학교를 뛰쳐나갈 때도, 도청에서 마지막 항전을 앞두고 거리를 주시하는 시민군들의 결연한 표정이나, 가두방송을 하는 신애의 호소도 묵중하면서도 치밀하게 직조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감독은 참 영리하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단 하나. 5월 ‘그날’의 진실을 대중적 기호에 맞게 살짝 감미료를 친 감독의 계산덕분이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기. 감독은 영화가 무거워지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화려한 휴가’가 위험한 영화이고, 불편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휴가’ 속의 5.18이 ‘그날’의 전부라고 믿는, 아니 그마저도 믿을 수 없다며 까탈을 부리는 젊은 세대들과 그날의 참혹함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타 지역사람들에게 ‘화려한 휴가’는 추체험할 수 있는 현장인 것이다. 그들에게 진실은 더 참혹하고, 끔찍했다고 말하면 뭐라 할까. 앞으로 5.18은 사람들에게 ‘화려한 휴가’로만 기억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가 꼭 나쁜 영화냐고 묻는 다면 할 말은 없다. 이 영화를 본 700여만 명의 관객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혹은 모르고 살았던 27년 전의 사건을 입에 거품 물고 다시 기억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게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현대사에 그런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비로소 장님이 개안하듯 알지 않았던가. 그 점에 대해서는 딴죽 걸지 않고 박수를 치고 싶다.  

 

 어쩌면 감독은 이 말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처참하게, 그리고 의연히 죽어가던 그들을 기억하자고. 제발 잊지 말자고. 그러나 왠지 이 말 또한 영화 속에 버물어진 감미료 때문에 여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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