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부촌 속 판자촌' 30년… 이제까지 '탈출'은 3가구뿐
1979년 '자활근로대村' 조성 정부, 해체결정 뒤 "불법점유"
아직 떠나지못한 96가구 "겨우 저축해서 이사가면 보증금 압류당해 돌아와"
여름 햇빛에 물살이 반짝거렸다. 21일 오전 7시쯤 서울 양재천. 우거진 수풀 아래 시민들이 산책로를 달리고 지하철 역에서 출근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그러나 산책로 뒤편 판자촌에서는 북새통이 벌어졌다. 학교 가는 아이들, 일 나가는 어른들이 동네에 하나뿐인 수세식 공중화장실에서 양변기 3개와 소변기 1개를 번갈아 썼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 초등학생부터 60대 노인까지 96가구 270여명이 살아가는 판자촌의 주소다. 다들 판자촌을 벗어나는 꿈을 꾸지만, 엉뚱한 행정규제와 사실상 '벌금'인 변상금의 벽 때문에 이곳을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동네 생길 때 들어와 30년째 산다는 주민 대표 조철순(52)씨는 "열심히 일해 단돈 몇백 만원이라도 모아 판자촌을 탈출하는 게 꿈이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했다"고 했다.
- ▲ 서울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는 폐목재로 지은 벽이 다닥다닥 이어지는 판자촌이다. 주민대표 조철순씨는“동네 아이들이 넉넉한 집 친구들에게 놀림당할까 봐 가까운 학교에 배정받고도 30분씩 빙 돌아서 등·하교한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30년간 탈출한 건 3가구뿐
1266번지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다른 달동네들과 달리,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시유지(市有地)에 불러모아서 조성한 집단촌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게 한다는 발상이었지만, 현실은 정부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풀려나갔다.
1979년 정부는 주택가를 돌며 고물을 주워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모아 '자활근로대'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서초동 야산에 가건물을 짓고 단체생활하게 했다. 2년 뒤, 자활근로대가 400여 가구로 불어나자 정부는 이들을 40~50가구씩 나눠서 강남 곳곳의 공터에 분산 수용했다. 그중 한 곳이 개포동 1266번지(1만80㎡·3054평)였다.
1981년 조씨 부부 등 45가구가 이곳에 짐을 푼 데 이어, 1996년까지 상이용사 18가구와 서울 다른 지역 철거민 36가구가 추가로 이사 왔다. 총 99가구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 뒤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채마밭과 주택가가 뒤섞여 있던 양재천 일대는 아파트·학원가·빌딩숲이 즐비한 도심이 됐다. 그러나 폐목재로 세운 벽이 다닥다닥 이어지는 1266번지 풍경은 옛날 그대로다. 전체 99가구 중 판자촌을 벗어난 건 세 집뿐이다.
◆시유지 점거 변상금 38억원
1989년 나라가 민주화되면서 정부는 자활근로대를 해체했다. 그 소식을 듣던 날, 주민들은 밤새 막걸리 파티를 벌였다. 주민 이영식(가명·67)씨는 "자활근로대 시절 서울시 공무원과 경찰이 시시콜콜한 일까지 간섭해 괴로웠다"며 "자활근로대를 해체한다니 마냥 기뻤다"고 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해 연말부터 매년 집집마다 200만~450만원씩 '변상금 고지서'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구청은 "자활근로대가 해체된 만큼 더이상 여러분이 시유지에 살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집집마다 폐품 수집과 가사 도우미 등으로 빠듯하게 먹고 사는 처지라, 도저히 변상금을 물 수 없었다. 주민들이 변상금을 제때 못내자 가산금이 붙었다. 2010년 7월 현재 주민들 앞으로 쌓인 벌금은 변상금 23억6100만원에 가산금 14억4000만원까지 총 38억100만원이다.
- ▲ 서울 강남지역 한복판에 위치한 판자촌/네이버 지도
주민 서정순(가명·63)씨는 "판자촌에서 벗어나려 해도 변상금 때문에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강남구청에서 변상금을 징수하기 위해 주민들 재산을 압류했기 때문이다. 올 7월 현재 강남구청은 총 400건의 압류 신청을 해놨다. 압류 목록에는 주민들의 생계수단인 폐품 수집용 1t트럭도 대거 포함돼 있다.
주민 A(52·일용직)씨는 23살 때 판자촌에 들어와 20년간 악착같이 저축한 끝에 2001년 판자촌 바깥에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월세 집을 얻었다. "초등학생 남매를 번듯한 동네에서 키우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구청은 A씨의 월세 집 보증금을 압류했고, A씨는 다시 빈털터리로 판자촌에 돌아와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임대아파트를 얻어 나간 B(70)씨도 보증금을 압류당했다. B씨는 빚을 얻어 변상금을 해결했지만, 이후 수년간 빚감당에 허덕였다고 한다.
◆남자니 갈수록 변상금이 쌓이고
주민들은 "우리가 원해서 시유지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변상금을 매기니 억울하다"며 변상금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주민들 요구를 들어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자의로 들어갔건 타의로 들어갔던, 허가 없이 시유지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변상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인간적으로 딱하긴 하다"고 했다.
판자촌 인권 문제 전문가인 김영수 변호사는 "정부가 강제로 집단촌을 만들었다가 아무 대책 없이 해체하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변상금 부과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강남 한복판 판자촌에 사는 고통을 가장 예리하게 느끼는 건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서 자란 고1 김동희(가명·16)군은 "아파트 사는 친구들과 돌아다니다가 한 친구가 우리 동네를 보고 '여긴 뭐야? 거지들 사는 동네인가 봐' 해서 말문이 콱 막힌 적이 있다"고 했다.
우유배달원으로 6년, 분식집 주방장으로 24년 일해 5남매를 키운 정원자(66)씨는 "변상금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인데, 아이들이 자꾸 이사 가자고 졸라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강남 배밭이 '금싸라기 땅'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