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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 A씨, 미국서 박사학위 받고도 귀국 않는 이유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11. 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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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다! 지식인 현장 리포트] 대입·고시 '有錢합격·無錢탈락'… 원초적 불공정성 깊어져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최우리 한신대 대학원생

 

입력 : 2010.11.01 03:01
[4]공정성 없이 통합과 연대 없다
갈수록 '학력의 대물림'…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인생 역전' 기회 사라져


유학생 A씨(31세)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난 격'이다. 지방 서민가정에서 태어나 수도권 소재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독일 훔볼트 대학에 연수 간 후 장학금을 받고 영국 애버딘 대학으로 옮겨 석사과정을 마쳤다. 독일·영국에서의 수학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 전액장학생으로 진학해 최우수논문 등급과 함께 석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에서 공부하는 동안 유엔의 사회경제발전협의회(ECOSOC) 소속 국제시민단체와 연구소에서 조교와 인턴활동도 활발하게 병행했다. 이런 이력을 인정받은 그는 미국의 명문대인 노트르담 대학에서 한 해 몇 명만 선정하는 총장 장학생으로 뽑혀, 학비 전액면제 외에 1년에 3만달러의 생활비까지 받으며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 고시학원 밀집지역인 서울 노량진에서 취재 중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A씨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당분간 귀국할 생각이 없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완강한 학벌(學閥) 피라미드 구조 안에서 운신의 여지가 별로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유엔에 취직하거나 미국 대학의 교수직을 얻는 것, 또는 미국변호사 자격증 도전을 생각하면서 희망에 차 있다. 자신의 노력과 의욕 외에는 별다른 '배경'이 없는 그가 만약 국내에 남아 사회에 나가거나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그 희망이 보답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A씨는 '한국 탈출'에 성공했지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벌 사회'의 멍에 속에서 패배감을 곱씹고 있겠는가.

 

고등학교 졸업 때의 암기식 시험 결과가 평생을 따라다니는 출신대학 꼬리표가 되어 '역전의 기회'를 방해하고, 사회생활 출발점부터 명문대 졸업생 외의 대다수 시민에게 좌절감을 주입하는 학벌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흥미있는 건 국민의 74%가 '한국은 공정치 못한 사회'라고 믿는 상황에서 대학입시가 그나마 가장 공정한 사회제도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여입학제가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이유도 그렇거니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 신입생 학부모의 직업에 관한 통계는 이런 시각이 '신화'에 가깝다는 걸 예증한다. 학력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우리 사회가 '개천에서는 피라미만 나오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 신림동 한 고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암기 위주 시험인 고시는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객관적인 성적에 따라 선발함으로써‘인생 역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받아들여진다. /김시현 기자

 

우리 사회에서 인생역전을 오랫동안 대표한 것이 고시제도다. 공정성의 화두를 폭발시킨 계기였던 외교통상부의 장관 딸 특채사건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술렁거리게 했다. 격분한 고시생들이 1인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그 결과 정부는 시대 변화에 맞게 공무원 특채 비율을 늘리려던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시험성적에 의거해 뽑는 현행제도가 더 공정하다는 여론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기위주 시험인 고시가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B씨(32세)는 명문대 법대를 나온 고시준비생이다. 대학 졸업 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던 선후배 가운데 몇명은 이미 시험에 합격했다. 부모와 주변의 기대가 무겁게 느껴지고, 법학전문대학원의 출범으로 인한 합격인원 축소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기도 하지만 고시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조금만 더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골 출신인 그는 '대학 입학 때 학과 소개에 나온, 사회지도층이 된 졸업생 선배들의 화려한 면면'을 보며 감탄했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대학시절의 독서와 성찰 결과 '출세보다는 인권변호사로 사회에 봉사하겠다'며 목표를 정한 그는 오늘도 고시촌 원룸으로 총총히 발길을 돌린다.

 

 

 

절대적 공부량이 많은 고시는 최소 몇 년의 전력투구가 필수적이다. 시험 노하우를 전수하는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고향에 토굴을 파고 칩거하는 방식은 옛날이야기다. 최신 시설의 고시촌 원룸 비용, 학원비, 식비, 책값 등 1년에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서민층이 감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유전(有錢) 합격, 무전(無錢) 탈락'의 추세는 통계로 확인된다. 최근 10년간 특목고와 서울 강남지역 고교 출신의 사법시험 합격 비율이 계속 증가해 2009년 37%를 기록했고, 최근 5년간 행정고시 합격자의 경우 48%에 이르렀다. 특정대학 출신의 고시 합격률을 보태면 편중 현상은 더 심각하다. 구조적으로 불공정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의 최후 보루로 여겨져 온 대학입시와 고시제도의 '원초적 불공정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사회통합위원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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